트라이엄프 돌로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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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umph Dolomite'''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트라이엄프 모터 컴퍼니가 생산한 차량으로, 1934년 ~ 1935년 생산한 스포츠카와 1937년 ~ 1940년 생산한 차량, 브리티시 레일랜드 시절인 1972년 ~ 1980년 생산한 소형 [[세단] 이름으로 쓰였다. (참고자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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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엄프에서 "돌로마이트"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건 1934년으로, 알파로메오 8C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인 8기통 스포츠카였다. 1990cc 엔진에 이중 캠축, 루츠식 슈퍼차저를 얹어 140마력(bhp)을 기록했고, 최고시속도 브룩랜즈(Brooklands) 지역 테스트에서 180km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록히드(Lockheed)에서 만든 유압식 브레이크, 강철 차대, 전륜 빔액슬 등이 적용되었고, 서스펜션으로는 반 타원식 드럼 스프링이 네 바퀴 모두 부착되었다. 1935년에 도널드 힐리(Donale Healey)[1] 가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사용하기도 했으나 열차와 충돌로 퇴역했고, 당시 자사의 재정난으로 인해 총 3대만이 만들어졌다.
1937년에는 1767cc 4기통 엔진을 얹은 세단으로 출시되었으며, 도널드 힐리가 디자인을 감독했다. 월터 벨그로브(Walter Belgrove)가 당시로선 인상적인 그릴 디자인을 제안했다.[2] 고급 스포츠 세단으로서 판매된 이 차는 자동 차대 윤활장치, 손잡이를 돌려서 여는 옆창문, 가죽으로 마감된 위치 조절식 스터어링 휠, 이중 유압 브레이크, 이중 경적, 주행등같은 편의장비들을 구비하고 있었고, 운전석 쿠션 밑에 숨겨진 재떨이나 라디오 같은 옵션도 존재했다. 차체 설계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차대 위에다 알루미늄 차체를 얹는 식으로 이루어졌고, 당시로선 비교적 편안하고 운전 감각이 좋으며, 6기통 차량만큼 부드럽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에는 60마력 엔진을 얹은 14/60 사양이 먼저 판매되었으며, 1938년 4월부터는 SU 이중 카뷰레터를 추가한 14/65가 라인업에 추가되었다.[3] 그해 3월 29일에는 14/65를 기반으로 만든 로드스터 쿠페가 공개되었는데, 3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시트 1열을 배치하고 지붕을 완전히 평평하게 접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1938년 7월에는 휠베이스를 늘리고 1991cc 엔진+3중 SU 카뷰레터[4] 를 얹은 차량이 공개되었으며, 1496cc 엔진 버전도 세단과 일반 컨버터블을 위해 준비했다. 이때는 1767cc 엔진이 옵션 처리되었다가 1939년 기본으로 복귀했고, 쿠페도 공개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양산화되지 못했다.
트라이엄프에서는 "Ajax"라는 코드명 하에, 1965년 헤랄드의 후속으로 자사 최초인 전륜구동 소형차, 1300을 도입했다. 1300은 헤랄드처럼 지오반니 미켈로티 디자인에 1296cc 엔진을 얹어 그럭저럭 잘 팔렸으며, 저가 버전인 톨레도(Toledo)와 고배기랑 버전인 1500도 차례대로 추가되었다. 하지만 1300은 헤랄드보다 비싸고 구조도 복잡했으며, 때문에 단가가 높아지고 판매댓수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게다가 트라이엄프는 1300의 핸들링에 실망한 참이라 이를 도로 후륜구동으로 재설계하기로 결정했다.
1300과 1500, 톨레도의 플랫폼을 재설계해 만든 새 라인업 중, 비테스를 대신할 고급 사양은 30여년 전에 사용했던 "돌로마이트"를 부여받았다. 1971년 10월 런던 모터쇼에서 공개되었으며, 차체 길이를 늘리고 톨레도의 후륜구동 부속들을 대거 채용한 뒤 OHC가 장착된 1854cc 4기통 슬랜트 엔진[5] 을 얹어 최고출력 91마력(bhp), 최고시속 160km/h, 0-96km/h까지의 가속시간 약 11초를 기록했다. 소형 고급차로서 BMW 2002와 포드 코티나 GXL과 경쟁하는 위치인 만큼 고급 시트와 카펫, 4점식 헤드램프, 시계, 고급형 계기판 등을 갖추었고, 1500과 생김새가 비슷하되 검은색 후미 패널과 새로운 휠캡을 씌워 구분지었다. 오버드라이브 수동변속기와 자동변속기도 옵션으로 도입했지만, 돌로마이트는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비롯한 온 영국 산업계 파업으로 1972년 10월까지 제대로 판매되지 못했다.
한편, 트라이엄프에서는 1973년 6월 고성능 버전인 돌로마이트 스프린트(Sprint)를 공개했다. 마침 BMW는 2002 터보 등을 공개해 트라이엄프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었고, 스펜 킹(Spen King)[6] 이 이끄는 기술팀에서 기존 엔진을 1998cc로 확대하고 카뷰레터 크기도 키운 뒤, 16밸브 SOHC 실린더헤드를 씌워 127마력(bhp)으로 출력을 대폭 늘렸다.[7] 당시에는 로터스같은 극소수인 수제업체들만 SOHC같은 멀티밸브 실린더헤드를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돌로마이트 스프린터는 대량생산차로서 이를 처음 채택해 세간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성능상으로도 0-96km/h까지 가속하는 데 8.4초가 갈렸고, 최고시속도 192km/h로 대거 개선되어 주목을 받았다.
돌로마이트 스프린트는 비닐 마감된 지붕, 앞범퍼 스포일러, 이중 배기관, 높이를 낮춘 서스펜션, 알로이휠을 기본 장착해 돌로마이트 1850과 구분을 지었으며, 그 중 알로이휠은 영국제 차량으로서 처음으로 기본 장착하였다. 가격도 비슷한 성능인 다른 차들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4도어 세단으로서 실용성까지 갖추고 있어 언론의 평가도 호의적이었다. 이와 더불어 실린더 헤드 설계는 1974년에 브리티시 디자인 카운슬(British Design Council)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모사 옐로우(Mimosa Yellow)"라는 색상으로만 출고되었고, 출력이 늘어난 만큼 변속기와 디퍼렌셜도 트라이엄프 2000과 TR 시리즈 것을 가져다 사용했으며, 브레이크도 드럼을 키우고 패드 재료를 바꿈으로서 성능을 강화했다. 그 외에도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트라이엄프에서는 대형 카뷰레터와 고성능 배기장치, 고성능 캠축을 특별 튜닝 패키지로 제공하기도 했고, 실제 사내 레이싱팀이 부품을 설계했다.
1970년대 중순으로 가면서 돌로마이트와 1500, 1300 등으로 구성된 트라이엄프의 소형 고급차 라인이 복잡해졌고, 1976년에 "라이더 리포트"의 내용에 따라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국유화된 뒤에는 이들 라인업을 모두 돌로마이트라는 이름 하에 통합했다. 따라서 라인업도 1300, 1500, 1500HL, 1850HL, 스프린트로 대거 확대되었으며, 그동안 톨레도와 1500, 돌로마이트가 나눠 가지던 모든 사양을 포함하고 있었다. 1300은 왠만한 디자인은 그대로 둔 채로 돌로마이트의 긴 트렁크가 적용되었으며, 톨레도에서 쓰던 짧은 차체도 완전히 단종되었다. 기본 장비에는 뒤로 젖힐 수 있는 앞좌석 등받이, 담배 라이터, 안전벨트 경고등, 운전석 백미러, 2점식 후진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오버드라이브 변속기와 자동변속기는 1500부터 장착할 수 있었다. 1500 TC는 돌로마이트 1500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1500HL은 1850과 엔진만 달리한 채 전압계, 타코미터, 분리형 온도계 및 연료계, 높이조절식 스티어링 칼럼 및 앞좌석, 헤드레스트, 앞좌석 주머니, 뒷좌석 팔걸이, 호두나무 그레인같은 고급 장비들이 적용되었다. 전륜구동 사양은 이때부터 단종되었다.
이후 돌로마이트 시리즈는 계속 생산되는데, 바뀌는 것들도 주로 소소한 트림 디자인이나 편의장비 재조정 정도였다. 1975년 5월, 오버드라이브 수동변속기와 썬팅 유리창이 스프린트 사양에 기본 적용되었으며, 측면 트림과 변속기 레버 주변 플라스틱 마감재, 운전석 백미러가 기본 장비화되었다. 이때 옵션으로 헤드 레스트를 도입했다. 1976년 3월부터는 스프린트 사양에 헤드 레스트와 라디오 옵션과 안전 유리를 앞창문을 적용했다. 1978년에는 나머지 창문에도 적용했으며, 1979년에는 SE 2160대가 1500의 단일 헤드램프+상급 사양의 고급 인테리어, 회색 벨로아 마감재, 검은색 외장과 은색 스트라이프, 스포티 휠을 적용한 채로 만들어졌다. 1980년에는 스프린트에 2점식 후방안개등이 법규 충족을 위해 부착되었다.
본래 1970년대 말에 새로 페이스리프트해 판매할 계획이 있었다. 지오반니 미켈로티가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피아트 132를 연상시키는 현대화된 디자인을 적용했다. 그러나 당시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여전히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결국은 새로운 경영진들이 회사 전반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취소되었다. 1980년 8월까지 그대로 생산되었으며, 품질 문제를 타계하기 위한 혼다기연공업과 기술제휴를 통해 만들어진 어클레임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품질이 형편없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지만 자동차 경기에서 높은 활약으로 주목받았으며, 204,003대가 만들어져 1300대 가량이 지금까지도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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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umph Dolomite'''
1. 개요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트라이엄프 모터 컴퍼니가 생산한 차량으로, 1934년 ~ 1935년 생산한 스포츠카와 1937년 ~ 1940년 생산한 차량, 브리티시 레일랜드 시절인 1972년 ~ 1980년 생산한 소형 [[세단] 이름으로 쓰였다. (참고자료 1/2/3)
2. 모델별 설명
2.1. 돌로마이트 8 (193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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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엄프에서 "돌로마이트"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건 1934년으로, 알파로메오 8C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인 8기통 스포츠카였다. 1990cc 엔진에 이중 캠축, 루츠식 슈퍼차저를 얹어 140마력(bhp)을 기록했고, 최고시속도 브룩랜즈(Brooklands) 지역 테스트에서 180km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록히드(Lockheed)에서 만든 유압식 브레이크, 강철 차대, 전륜 빔액슬 등이 적용되었고, 서스펜션으로는 반 타원식 드럼 스프링이 네 바퀴 모두 부착되었다. 1935년에 도널드 힐리(Donale Healey)[1] 가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사용하기도 했으나 열차와 충돌로 퇴역했고, 당시 자사의 재정난으로 인해 총 3대만이 만들어졌다.
2.2. 1937~1940년
1937년에는 1767cc 4기통 엔진을 얹은 세단으로 출시되었으며, 도널드 힐리가 디자인을 감독했다. 월터 벨그로브(Walter Belgrove)가 당시로선 인상적인 그릴 디자인을 제안했다.[2] 고급 스포츠 세단으로서 판매된 이 차는 자동 차대 윤활장치, 손잡이를 돌려서 여는 옆창문, 가죽으로 마감된 위치 조절식 스터어링 휠, 이중 유압 브레이크, 이중 경적, 주행등같은 편의장비들을 구비하고 있었고, 운전석 쿠션 밑에 숨겨진 재떨이나 라디오 같은 옵션도 존재했다. 차체 설계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차대 위에다 알루미늄 차체를 얹는 식으로 이루어졌고, 당시로선 비교적 편안하고 운전 감각이 좋으며, 6기통 차량만큼 부드럽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에는 60마력 엔진을 얹은 14/60 사양이 먼저 판매되었으며, 1938년 4월부터는 SU 이중 카뷰레터를 추가한 14/65가 라인업에 추가되었다.[3] 그해 3월 29일에는 14/65를 기반으로 만든 로드스터 쿠페가 공개되었는데, 3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시트 1열을 배치하고 지붕을 완전히 평평하게 접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1938년 7월에는 휠베이스를 늘리고 1991cc 엔진+3중 SU 카뷰레터[4] 를 얹은 차량이 공개되었으며, 1496cc 엔진 버전도 세단과 일반 컨버터블을 위해 준비했다. 이때는 1767cc 엔진이 옵션 처리되었다가 1939년 기본으로 복귀했고, 쿠페도 공개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양산화되지 못했다.
2.3. 1972~1980년
트라이엄프에서는 "Ajax"라는 코드명 하에, 1965년 헤랄드의 후속으로 자사 최초인 전륜구동 소형차, 1300을 도입했다. 1300은 헤랄드처럼 지오반니 미켈로티 디자인에 1296cc 엔진을 얹어 그럭저럭 잘 팔렸으며, 저가 버전인 톨레도(Toledo)와 고배기랑 버전인 1500도 차례대로 추가되었다. 하지만 1300은 헤랄드보다 비싸고 구조도 복잡했으며, 때문에 단가가 높아지고 판매댓수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게다가 트라이엄프는 1300의 핸들링에 실망한 참이라 이를 도로 후륜구동으로 재설계하기로 결정했다.
1300과 1500, 톨레도의 플랫폼을 재설계해 만든 새 라인업 중, 비테스를 대신할 고급 사양은 30여년 전에 사용했던 "돌로마이트"를 부여받았다. 1971년 10월 런던 모터쇼에서 공개되었으며, 차체 길이를 늘리고 톨레도의 후륜구동 부속들을 대거 채용한 뒤 OHC가 장착된 1854cc 4기통 슬랜트 엔진[5] 을 얹어 최고출력 91마력(bhp), 최고시속 160km/h, 0-96km/h까지의 가속시간 약 11초를 기록했다. 소형 고급차로서 BMW 2002와 포드 코티나 GXL과 경쟁하는 위치인 만큼 고급 시트와 카펫, 4점식 헤드램프, 시계, 고급형 계기판 등을 갖추었고, 1500과 생김새가 비슷하되 검은색 후미 패널과 새로운 휠캡을 씌워 구분지었다. 오버드라이브 수동변속기와 자동변속기도 옵션으로 도입했지만, 돌로마이트는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비롯한 온 영국 산업계 파업으로 1972년 10월까지 제대로 판매되지 못했다.
한편, 트라이엄프에서는 1973년 6월 고성능 버전인 돌로마이트 스프린트(Sprint)를 공개했다. 마침 BMW는 2002 터보 등을 공개해 트라이엄프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었고, 스펜 킹(Spen King)[6] 이 이끄는 기술팀에서 기존 엔진을 1998cc로 확대하고 카뷰레터 크기도 키운 뒤, 16밸브 SOHC 실린더헤드를 씌워 127마력(bhp)으로 출력을 대폭 늘렸다.[7] 당시에는 로터스같은 극소수인 수제업체들만 SOHC같은 멀티밸브 실린더헤드를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돌로마이트 스프린터는 대량생산차로서 이를 처음 채택해 세간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성능상으로도 0-96km/h까지 가속하는 데 8.4초가 갈렸고, 최고시속도 192km/h로 대거 개선되어 주목을 받았다.
돌로마이트 스프린트는 비닐 마감된 지붕, 앞범퍼 스포일러, 이중 배기관, 높이를 낮춘 서스펜션, 알로이휠을 기본 장착해 돌로마이트 1850과 구분을 지었으며, 그 중 알로이휠은 영국제 차량으로서 처음으로 기본 장착하였다. 가격도 비슷한 성능인 다른 차들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4도어 세단으로서 실용성까지 갖추고 있어 언론의 평가도 호의적이었다. 이와 더불어 실린더 헤드 설계는 1974년에 브리티시 디자인 카운슬(British Design Council)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모사 옐로우(Mimosa Yellow)"라는 색상으로만 출고되었고, 출력이 늘어난 만큼 변속기와 디퍼렌셜도 트라이엄프 2000과 TR 시리즈 것을 가져다 사용했으며, 브레이크도 드럼을 키우고 패드 재료를 바꿈으로서 성능을 강화했다. 그 외에도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트라이엄프에서는 대형 카뷰레터와 고성능 배기장치, 고성능 캠축을 특별 튜닝 패키지로 제공하기도 했고, 실제 사내 레이싱팀이 부품을 설계했다.
1970년대 중순으로 가면서 돌로마이트와 1500, 1300 등으로 구성된 트라이엄프의 소형 고급차 라인이 복잡해졌고, 1976년에 "라이더 리포트"의 내용에 따라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국유화된 뒤에는 이들 라인업을 모두 돌로마이트라는 이름 하에 통합했다. 따라서 라인업도 1300, 1500, 1500HL, 1850HL, 스프린트로 대거 확대되었으며, 그동안 톨레도와 1500, 돌로마이트가 나눠 가지던 모든 사양을 포함하고 있었다. 1300은 왠만한 디자인은 그대로 둔 채로 돌로마이트의 긴 트렁크가 적용되었으며, 톨레도에서 쓰던 짧은 차체도 완전히 단종되었다. 기본 장비에는 뒤로 젖힐 수 있는 앞좌석 등받이, 담배 라이터, 안전벨트 경고등, 운전석 백미러, 2점식 후진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오버드라이브 변속기와 자동변속기는 1500부터 장착할 수 있었다. 1500 TC는 돌로마이트 1500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1500HL은 1850과 엔진만 달리한 채 전압계, 타코미터, 분리형 온도계 및 연료계, 높이조절식 스티어링 칼럼 및 앞좌석, 헤드레스트, 앞좌석 주머니, 뒷좌석 팔걸이, 호두나무 그레인같은 고급 장비들이 적용되었다. 전륜구동 사양은 이때부터 단종되었다.
이후 돌로마이트 시리즈는 계속 생산되는데, 바뀌는 것들도 주로 소소한 트림 디자인이나 편의장비 재조정 정도였다. 1975년 5월, 오버드라이브 수동변속기와 썬팅 유리창이 스프린트 사양에 기본 적용되었으며, 측면 트림과 변속기 레버 주변 플라스틱 마감재, 운전석 백미러가 기본 장비화되었다. 이때 옵션으로 헤드 레스트를 도입했다. 1976년 3월부터는 스프린트 사양에 헤드 레스트와 라디오 옵션과 안전 유리를 앞창문을 적용했다. 1978년에는 나머지 창문에도 적용했으며, 1979년에는 SE 2160대가 1500의 단일 헤드램프+상급 사양의 고급 인테리어, 회색 벨로아 마감재, 검은색 외장과 은색 스트라이프, 스포티 휠을 적용한 채로 만들어졌다. 1980년에는 스프린트에 2점식 후방안개등이 법규 충족을 위해 부착되었다.
본래 1970년대 말에 새로 페이스리프트해 판매할 계획이 있었다. 지오반니 미켈로티가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피아트 132를 연상시키는 현대화된 디자인을 적용했다. 그러나 당시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여전히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결국은 새로운 경영진들이 회사 전반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취소되었다. 1980년 8월까지 그대로 생산되었으며, 품질 문제를 타계하기 위한 혼다기연공업과 기술제휴를 통해 만들어진 어클레임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품질이 형편없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지만 자동차 경기에서 높은 활약으로 주목받았으며, 204,003대가 만들어져 1300대 가량이 지금까지도 등록되어 있다.
3. 미디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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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중에 오스틴과 제휴를 맺어 오스틴-힐리라는 스포츠카 회사를 창설한다.[2] 당시 미국차들처럼 화려한 금속제 그릴이었다. 그러나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성향이 비교적 보수적이었기에, 트라이엄프에서는 라디에이터가 밖으로 드러난 비테스(Vitesse) 사양을 나중에 추가했다.[3] 모델명의 숫자 중 14는 세금제도상 마력 수를 나타내며, 60과 65는 차량의 실제 출력 수를 의미한다.[4] 세단 버전은 이중 카뷰레터만 장착했다.[5] 사브와 공동 개발했으며, 사브 99의 엔진으로도 쓰였다.[6]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1세대 모델을 설계한 종본인이다.[7] 본래는 135마력까지였고 기술팀의 순수 역량대로라면 150마력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생산 라인의 품질유지 문제로 인해 127마력으로 낮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