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모터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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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오스틴의 옛 로고 중 하나인 "플라잉 A" 엠블럼. 경우에 따라서는 폰트 대신에 창립자의 서명이 같이 쓰이기도 했다.)
1. 개요
2. 역사
3. 생산 차종들


1. 개요


오스틴 모터 컴퍼니(Austin Motor Company)는 1905년에 허버트 오스틴(Herbert Austin)에 의해 설립된 영국의 자동차 회사로, 1952년에 모리스와 합병했으며 오스틴 브랜드 자체는 1987년까지 사용되었다. 본래는 모리스에 비해서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합병 후에는 모리스보다 우위를 두다시피했으며, 브리티시 레일랜드 합병 후에는 오히려 모리스의 "진보적인" 이미지를 꿰차갔다. 상표권은 현재 SAIC가 소유하고 있으며, 2015년에 John Stubbs라는 사람이 동명의 자동차 회사를 다시 세우고 2016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으나 그 이상의 소식이 없다. (관련 정보 링크)

2. 역사


허버트 오스틴은 1887년에 양털깎이 기기 사업을 하던 중 아일랜드 출신의 프레드릭 울즐리(Fredrick Wolsely)를 만났고, 1984년에 합작으로 시제품 자동차를 제작한 것을 계기로 자동차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울즐리와 따로 자동차 회사를 꾸리고 싶었던 오스틴은 1905년 9월에 영국 버밍엄의 롱브릿지(Longbridge)에 있는 폐업한 인쇄소 건물을 거점으로 삼고, 은행 융자와 투자 설명회를 통해 필요한 자원을 마련한 후에 그해 12월에 "오스틴 자동차 회사(Austin Motor Company)"를 설립했다. 1906년 4월에 최초의 오스틴 차가 출고되었고, 그해 말까지 50명의 노동자들이 26대의 차를 생산했다.
노리치, 맨체스터, 런던에 전시장을 차린 오스틴은 "대중에게 자동차를 공급할 것이며, 일관 작업 방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차를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을 조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오스틴 자동차 회사에서는 일부 부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들을 한 공장에서 생산해 사용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전차, 항공기, 군수품을 제작하고 납품하는 과정을 통해 급속히 성장했으며, 전쟁이 끝난 1918년에는 오스틴 사에 체용된 직원들이 약 2만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 직후의 피폐한 경제 상황 때문에 오스틴에서 판매하던 대형차들의 수요가 크게 감소했고, 오스틴이 직원들에게 1달간의 급여를 포기해달라는 요청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이때 직원들이 오스틴의 요청에 따른 덕분에, 회사는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22년에는 그동안 오스틴이 창업자로서 꿈꾸어 왔던 "제대로 된 대중차"인 오스틴 세븐을 출시할 수 있었다. 오스틴 세븐은 1차 세계대전이 갓 끝난 시기였던 그 당시의 영국에 잘 부합한 덕분에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1939년까지 총 29만 924대나 되는 수를 판매했으며, 일본의 닷선과 독일의 BMW, 미국의 아메리칸 밴텀 등이 라이센스를 따 가기까지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를 비롯한 여러 군수용 운송수단들을 생산했고, 오스틴이 세상을 떠났던 1941년에는 누적 생산대수가 86만 5천대까지 이르렀다. 1947년에는 100만번째 오스틴 자동차가 생산되었으며, 1952년에 200만번째 차가 생산되었다. 또한 이때는 오스틴 A90 아틀란틱이나 오스틴 메트로폴리탄과 같은 차들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등, 나름대로의 수출 중심 업체로 번성하기도 했다.
1952년에는 경쟁사인 모리스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면서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ritish Motor Corporation. 이하 BMC)"를 결성했고, 또한 자동차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였던 도널드 힐리(Donald Healey)와의 합작이 성사되어 오스틴-힐리 브랜드가 설립되었다. 1956년에 수에즈 위기로 인해 유럽의 석유 공급이 부진해졌을 때, 모리스 출신의 엔지니어 겸 디자이너인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가 설계한 클래식 미니를 오스틴과 모리스 브랜드로 출시했으며, 이것 역시 "제대로 된 대중차"였던 오스틴 세븐과 마찬가지로 영국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1965년에는 롱브릿지 공장이 약 37만 7천대의 차를 생산하면서 최대 연간 생산대수를 기록했고, 미니와 BMC ADO16을 비롯한 베스트셀러 소형차들이 성과를 뒷받침해주었다.
그러나, BMC는 제정 부족으로 정부로부터 수 차레 지원을 받아야만 했으'며 결국 1968년에 이르러 영국 정부의 제안으로 로버트라이엄프 고급차 및 상용차를 생산하던 레일랜드와 합병하면서 "브리티시 레일랜드(British Leyland. 이하 BL)"가 설립되었다. 이때도 오스틴 브랜드는 계속 살아있었지만 BL이라는 거대 기업이 겪어야만 했던 회사 임원들의 끊임없는 불화와 갈등, 파업이 유난히 심각했던 1970년대 영국에서도 더욱 두드러지는 수준의 파업사태, 끝없이 떨어지는 품질과 생산대수로 인해 엄청난 수난을 겪었고, 이때 출시된 오스틴 알레그로 등의 차들은 심각한 디자인과 품질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1974년 말에 회사 전체가 파산했으며, "라이더 리포트"라는 제안에 따라 BL은 국유화되기에 이른다. 물론 국유화 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하지만 오스틴에게도 한 줄기 빛이 있었는데, 1980년에 출시된 슈퍼미니급 소형 해치백은 오스틴 메트로가 크게 히트하면서 한동안 오스틴과 BL의 돈줄이 되어 준 덕분이였다. 새 경영자인 마이클 에드워즈(Michael Edwards)의 경영 하에서, BL은 불필요한 살을 걷어낸 뒤 "오스틴 로버 그룹(Austin Rover Group)"으로 재정리되었고, 모리스트라이엄프, 재규어 브랜드를 정리한 뒤 오스틴과 로버, MG, 랜드로버, 그리고 레일랜드 브랜드로 차기 라인업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1983년에는 알레그로의 후속으로 오스틴 마에스트로 준중형 해치백이 생산되었고 잠시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지만 파업과 품질 문제에 또다시 휘말렸고, 이듬해에 출시된 중형 세단 오스틴 몬테고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1988년에는 마거릿 대처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ritish Aerospace. 이하 BAe)로 매각되었다. 1986년에 "로버 그룹(Rover Group)"으로 개명한 것과 어울리도록 하고 제품을 고급화하고자 로버 브랜드와 혼다와의 기술제휴 관계에 집중하기로 한 BAe의 정책에 따라 1987년에 오스틴 브랜드는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기존에 오스틴 브랜드로 생산했던 메트로와 마에스트로, 몬테고는 저가 라인업의 수요를 보충하기 위해 모델명으로만 죽 생산되었고 마에스트로와 몬테고는 1994년에 이름 그대로, 메트로는 "로버 100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1997년에 최종 단종되었다.
현재 상표권은 로버 그룹의 본체를 인수한 SAIC[1]가 소유하고 있으며, 2012년에 오스틴 자동차 회사가 영국 법인에 등록되었다가 얼마 안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3. 생산 차종들


  • 오스틴 세븐
  • 오스틴 에잇
  • 오스틴 트웰브
  • 오스틴 A30과 A35[2]
  • 오스틴 A40
  • 오스틴 A50
  • 오스틴 A60
  • 오스틴 A90 아틀란틱
  • 오스틴 메트로폴리탄[3]
  • 오스틴 FX4[4]
  • 오스틴 웨스트민스터
  • 오스틴 캠브릿지
  • 오스틴 프린세스와 엠배서더
  • 오스틴 스프라이트
  • 미니 (오스틴 세븐/오스틴 미니/오스틴 미니 쿠퍼/오스틴 미니 컨트리맨)
  • BMC ADO16 (오스틴 1100/1300)
  • BMC ADO17 (오스틴 1800/2200/3-Litre)
  • 오스틴 맥시
  • 오스틴 알레그로
  • 오스틴 메트로
  • 오스틴 마에스트로
  • 오스틴 몬테고


[1] 처음에는 산하 기업인 난징자동차가 사들였으나 곧 모회사로 넘어갔다.[2] 월래스와 그로밋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차가 오스틴 A35 밴이다.[3] 미국에서는 "내쉬 메트로폴리탄"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4] 영국 런던에 많이 돌아다니는 블랙캡 택시의 대표차종으로 현재 영국에서 현역으로 운행되는 LTI TX 시리즈가 이 차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