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우 아우렐리우
1. 개요
'''한 때 리버풀의 왼발 스페셜리스트'''
'''실력은 출중했으나 항상 부상이 발목을 잡았던 비운의 선수'''
과거 발렌시아 CF와 리버풀 FC에서 활약했던 브라질 국적의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2.1. 발렌시아 CF 이전
1997년 만 17세의 어린 나이에 상파울루 FC에서 데뷔경기를 가졌다.
2.2. 발렌시아 CF
브라질 U-17, U-20 팀을 거쳐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올림픽 이후 발렌시아 CF와의 계약이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6년.
01-02시즌부터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베법사의 지도 아래 발렌시아의 '''31년'''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02-03시즌에는 리그 27경기를 포함해 총 36경기를 소화하면서 팀의 핵심멤버로 성장하였다.
03-04시즌에는 팀이 2년만에 리그를 다시 제패했고 '''구단 최초'''로 UEFA컵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정작 본인은 장기부상으로 인해 한 시즌동안 100분도 채 뛰지 못했다.
2.3. 리버풀 FC
'''실력으로 욘 아르네 리세를 밀어냈으나 부상으로 리버풀 레프트백 잔혹사의 시조가 된 선수'''[2]
2006년 이적료 없이 자유계약으로 리버풀 FC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3] 계약기간은 4년. 등번호는 12번이었으나, 2010년 재계약 이후 6번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가 6번 달고 뛴 경기가 얼마 없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 사실을 팬들에게 알려주면 tmi 취급당한다는게 아이러니.
이적 첫 시즌부터 리세와 경쟁 체제를 가져가며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 말에 PSV 에인트호번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아웃'''이 확정되었고, 반 년 가량 푹 쉰 뒤 다음 시즌 FC 포르투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복귀하였다.
07-08시즌 좋은 활약을 보여주다가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4] 에서 조 콜과 충돌 이후 다리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또''' 시즌아웃 당하였다. -
08-09시즌 '''또''' 종아리 부상으로 약 2~3주 정도 결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안드레아 도세나의 영입으로 주전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결국 도세나를 밀어내는데 성공하였고, 포츠머스전에서의 간접프리킥 골, 맨유전에서의 프리킥 골 등 킥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클래스를 과시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첼시 원정에서 허를 찌르는 프리킥으로 페트르 체흐를 농락하면서 선취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였고, 한 시즌 동안 무려 - 33경기를 소화하며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09-10시즌 초반에는 후에 서술할 '''엽기적인 부상'''을 당하면서 최대 6개월정도 결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아우렐리우가 부상당한 동안 계속 백업으로 있던 에밀리아노 인수아가 주전을 차지한다.[5]
원래 09-10 시즌이 끝나고 자유 계약으로 떠났지만 그 기간 동안 '''아무도 원하는 팀이 없어서'''(...) 다시 리버풀에 2년 계약에 서명하였다. 10-11시즌 트라브존스포르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또'''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장기간 결장하게 되었다. 긴 회복시간 이후 복귀했으나 4월 17일 아스날 FC전에서 '''또다시'''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 -
11-12시즌은 - 호세 엔리케의 영입과 잔부상으로 인해 입지가 좁아져 겨우 4경기에 출장하는 데에 그쳤다. 시즌종료 이후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되었다.
2.4. 리버풀 FC 이후
2012년 리버풀과의 계약이 끝난 후 그레미우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2014년 4월 4일, 만 34세의 나이로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부상으로 인해 묻혀진 날카로운 왼발'''
'''일단 출전하면 임팩트는 확실했던 선수'''
사실 부상때문에 얼마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상당히 날카로운 왼발을 가지고 있다. 왼발이 필요한 지역에서는 항상 킥을 전담해서 직접 골을 넣거나, 당시 뛰던 토레스나 디르크 카위트 등의 골을 돕는 등 쏠쏠하게 공격포인트를 쌓아올렸다. 이러한 왼발을 바탕으로 발렌시아 시절에는 루벤 바라하와 함께 팀내 득점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6]
킥 능력 이외에도 빠른 발과 브라질리언 특유의 발기술을 바탕으로 공수 전환이 자유로웠고 팀의 연계플레이에 자주 관여했으며, 가끔씩 때려놓는 롱패스가 일품이었다.
4. 여담
유리몸의 막장을 달리던 리버풀 시절에는 심지어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가족들과 축구를 하다가 무릎 부상을 당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이 부상으로 거의 5~6개월 정도를 쉬었기 때문에 이 선수가 어느정도의 유리몸인지를(...) 잘 보여주는 부상이었다.
아우렐리우가 리버풀에 있던 시절, 대략 2006년정도부터 리버풀 축구를 봐왔던 콥들은 아우렐리우에 대해 '부상만 없었다면 월클 레프트백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몇몇 팬들은 부상을 제외하고 비교했을 때, 리세보다는 아우렐리우가 경기에서 끼쳤던 임팩트가 상당했다고 말한다. -
포지션 경쟁자였던 욘 아르네 리세와 생일이 같다. 리세가 정확히 1년 어리다. [7]
[1] 이 날 경기는 첼시와 리버풀 양 팀 팬들이 21세기 챔피언스리그 명승부를 뽑을 때 승패여부에 무관하게 반드시 거론하는 전무후무한 혈전으로, 선수들도 팬들도 해설자도 관중들도 모두 정신줄을 놓은채 하얗게 불태운 명경기였다. 오히려 이 경기 때문에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가 머리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1차전이 묻혔다(...)[2] 리세가 2008년 여름 로마로 이적한 후 아우렐리우가 딱 한 해만 그나마 멀쩡한 폼을 보여준 뒤 무너지면서 리버풀 레프트백은 2017/18시즌 알베르토 모레노의 갱생, 앤드루 로버트슨의 가세 이전까지 8년에 달하는 세월을 돌려막기로 때워야 했다. 07/08 시즌부터 계산하면 10년간 이 자리에서 땜질에 나선 오른발잡이 선수만 해도 대여섯 명은 될 정도. 글렌 존슨, 존 플라나간, 알바로 아르벨로아, 마틴 켈리, 조 고메즈, 심지어 미드필더 제임스 밀너까지... 단적으로 리세와 아우렐리우, 모레노와 로버트슨의 나이 차이는 12년~15년에 달한다. 그 사이 연배의 레프트백들이 모조리 똥망했다(...)[3] 이적 과정에서 자신의 은사인 베니테즈 감독이 리버풀에 있던 것이 리버풀로의 이적을 결심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4] 리세의 영광스러웠던 리버풀 커리어가 너무도 잔인하게 끝장난 그 경기.[5] 다만 인수아 역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으며 라파 베니테즈가 경질되고, 로이 호지슨이 후임 감독으로 부임한 후 리버풀은 새로운 레프트백을 영입하게 되는데...[6] 물론 이 시기에는 아우렐리우가 왼쪽 미드필더까지 겸하던 시절이었고, 당시 발렌시아의 득점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7] 리세는 리버풀에서 7 시즌을 보냈고, 아우렐리우는 6시즌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