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실린(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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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의 [1] 싱글 홍보용 사진.)[2]
일본 3인조 비주얼 록 밴드.
1992년 같은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끼리 결성한 것에서 시작되었다.[3] 원래는 기타를 맡고 있는 Chisato가 보컬을 맡았으나, 곧바로(…) Hakuei로 교체. 1996년 Vibe 앨범으로 메이져 데뷔했으며, 1998년 발표한 멋지다! 마사루 오프닝 ロマンス(로망스)가 가장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1997년 발표한 정규앨범 Limelight의 수록곡 男のロマン(남자의 로망)도 많이 알려져 있다. 남자의 로망은 제목이 로망스와 비슷한 탓에, 그리고 골때리는 가사가 마사루를 연상시키는 탓에 로망스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으나 두 곡은 전혀 관련이 없다.
1992년 데뷔 이후 꾸준히 음반을 내고 있는 근성있는 밴드.
1990년대에는 메이저 밴드로 활동하였으나, 2001년, 소속사인 EAST WEST JAPAN의 사정으로 인하여 인디즈로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앨범의 대중성 하락 때문이었으며, 많은 고참 비주얼계 밴드들의 사건사고와 삽질 역시 그들의 앨범 판매량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2000년에 정규 앨범 UNION JAP을 만들 때 리더 치사토가 프로듀서 시게모리 미하루를 배제하면서까지 이전과 다른 음악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로 판매량이 감소했다. 90년대가 지나면서 비주얼락이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가 낮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UNION JAP이 상업적으로 실패한 후에는 다시 하쿠에이가 주도권을 쥐고 예전 음악의 요소(소위 뽕끼)를 어느 정도 집어넣었으나 시대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인디즈로 떨어진 후에는 인디즈의 한계로 인해 올드팬을 제외한 새로운 팬의 유입은 줄어갔고, 점점 팬덤의 규모도 작아지게 된다. 하지만 다시 심기일전하여, 이 때 전성기에 비해 오히려 음악성 면에서는 더 깊어졌다는 평을 받았다.
2005년, 메이저 음반사인 avex trex와 계약하고 메이저로 다시 올라온다. 오리콘 차트 30위를 기록하는 등 상당한 인기를 모으나, avex trex의 사정상 Nippon Crown으로 이적한다. 이후 발표한 4장의 싱글도 오리콘차트 30위권 안에 들며 나름의 저력을 보여준다. 2007년에는 기쇼가 탈퇴했다. 2010년부터는 다시 소규모 레이블인 That's Record에서 음반을 내고 있다.
오샤레계의 대표자격으로 불리며 미야비 등의 이후 비주얼계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내한 당시를 포함하여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과도한 화장이 아닌 스트리트 패션이나 멋쟁이(오샤레) 정도의 모습으로 이후 미야비나 아리스나인등의 밴드에서도 시도한 댄디한 룩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비주얼계 초기의 코테계를 오마쥬하는 컨셉으로 돌아가서 강한 화장과 화려한 음악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4분기에 방송되는 클래시컬로이드에서 리더인 치사토가 드보르자크의 무지크 프로듀서로 선발되었다. 2019년 12월에는 미니앨범 '九龍頭'를 발매, 음악방송 Melodix에 WANDS와 함께 90년대를 주름잡은 카리스마 밴드로 초청받아 출연했다.
비주얼계 전성기 시절의 밴드로 분류된다.
음악적으로는 강렬한 비트와 개성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강한 비주얼을 가지고 있는 밴드이지만, 충분히 대중성있는 곡이나, 음악성있는 곡도 포함되어 있는 등 얼굴로만 승부하려는 일부 비주얼 록 밴드와 달리 실력있는 밴드로 평가받는다.
초기에는 대중성 있던 밴드였으나, 중반 이후 매니아층을 주로 공략하는 컨셉으로 바꾸었다. 음악 스타일이나 패션 등도 매니아 지향적이며, 특히 올드 비주얼계 매니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게다가, 일부 공연은 비밀 공연으로 팬들끼리만 모여서 진행한다든가 하는 등 독특한 점이 있다.[5] 또한 멤버의 생일에는 아예 공연 이름을 바꿔서 진행할 정도. 또한 멤버들 개인이 모두 솔로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음악적, 비주얼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평이 있다. 물론 매니아적이라 그쪽 외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 활동도 상당히 활발히 하여 미국 쪽에서 어느정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리더는 기타의 치사토이며 실질적으로 페니실린을 상징하는 인물은 보컬 하쿠에이라고 할 수 있다. 밴드 활동 초기에는 뛰어난 외모로 많은 소녀팬들을 끌어 모으기도 하였다. 또한 그만의 독특한 창법은 페니실린의 음악성을 확립하는데 빠질 수 없는 요소이며, 이후 언더그라운드의 록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6] 안대가 트레이드 마크이지만 안하고 나올때도 많다. 또한 핫팬츠속성 보유자이다. 참고로 위의 사진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문신이 상당히 많다[7] .
일본 음악이 개방된지 얼마 안 돼서 베스트앨범이 국내에 발매되었을 정도로 국내에도 상당한 팬층이 형성되어 있었던 밴드이다. 특히 이때 남자의 로망의 경우 한국어 버전 가사를 본인들이 직접 부르기도 했는데, 발음이 조금 안타까운 나머지 한국에서는 '''일본 노래인데 한국어로 들리는 노래''' 즉, '''몬더그린'''이라고 오인받아[8] 유명해졌다.
2000년에 한국에서 공연을 개최하였다. 한국 공연 전, 일본 문화 개방에 맞춰 일본 밴드 최초로 악수회를 개최하였는데 당시만 해도 일본 가수 방한은커녕 일본 드라마나 일본 노래 등을 한국 매체에서 접할 수조차 없었던 한국의 일본 비주얼 밴드 팬들은 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당시 신촌 모처에서 열린 악수회에는 페니실린의 팬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각트(말리스 미제르), 라르크앙시엘, 엑스 재팬, 소피아, 라퓨타, 라크리마 크리스티, 벅틱, 에인스 피, 루아쥬, 루나시 등 타 밴드 팬들은 물론 스맵, 소년대, 후쿠야마 마사하루 팬들까지 함께 몰려 기념비적인 순간을 만끽했다.
지금 들으면 이상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던 시절이라 일본 연예인을 직접 보려면 일본에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도 발달되지 않아서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도 쉽게 접하지 못했었고 그나마 뮤직비디오라도 한 번 보겠다고 각 연예인의 비공식 팬클럽이 개최하는 영상회에 참가하여 스크린 너머로 얼굴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보니 일본 연예인을 한국 땅에서 볼 수 있다는 것자체가 마냥 신기한 시절이었다.
악수회 수용 인원이 200여 명이었던지라 미처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팬들은 회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페니실린과 직접 만난 팬들이 하쿠에이가 내 손을 잡으면서 고맙다고 말해줬어!! 하고 소감을 말하며 엉엉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다 함께 얼싸안고 감격에 겨워 울부짖었다.
그러나 2000년 당시 일본에서는 이미 비주얼락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으며, 페니실린도 1998년에 멋지다 마사루 오프닝인 ロマンス로 반짝 히트를 친 후 인기가 급속도로 식은 상태였다. 어찌 보면 2000년에 페니실린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사랑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 일본 문화가 한국으로 유입되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나타난 시간차였다.
2001년에는 CROSS HEART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한국의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촬영했다. 이 곡은 같은 해 1월에 발표된 싱글 イナズマ의 수록곡이었는데, 타이틀곡이 아니다 보니 뮤직비디오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한국에서도 비주얼락의 인기가 낮아지면서 팬이 극히 드물어졌으며, 그들이 인디로 내려간 이후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찾아보면 '''현재까지도''' 팬블로그를 운영하거나 팬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듯.
2009년도의 [1] 싱글 홍보용 사진.)[2]
1. 개요
일본 3인조 비주얼 록 밴드.
1992년 같은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끼리 결성한 것에서 시작되었다.[3] 원래는 기타를 맡고 있는 Chisato가 보컬을 맡았으나, 곧바로(…) Hakuei로 교체. 1996년 Vibe 앨범으로 메이져 데뷔했으며, 1998년 발표한 멋지다! 마사루 오프닝 ロマンス(로망스)가 가장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1997년 발표한 정규앨범 Limelight의 수록곡 男のロマン(남자의 로망)도 많이 알려져 있다. 남자의 로망은 제목이 로망스와 비슷한 탓에, 그리고 골때리는 가사가 마사루를 연상시키는 탓에 로망스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으나 두 곡은 전혀 관련이 없다.
1992년 데뷔 이후 꾸준히 음반을 내고 있는 근성있는 밴드.
2. 멤버
- 보컬 : Hakuei
- 기타 : Chisato
- 드럼 : O-Jiro[4]
2.1. 前 멤버
- 베이스 : Gisho - 페니실린에서 탈퇴했지만, 아직도 라이브에서는 세션 지원으로 자주 등장한다. 사실상 히든 멤버라고 봐야할 듯.
3. 바이오그라피
1990년대에는 메이저 밴드로 활동하였으나, 2001년, 소속사인 EAST WEST JAPAN의 사정으로 인하여 인디즈로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앨범의 대중성 하락 때문이었으며, 많은 고참 비주얼계 밴드들의 사건사고와 삽질 역시 그들의 앨범 판매량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2000년에 정규 앨범 UNION JAP을 만들 때 리더 치사토가 프로듀서 시게모리 미하루를 배제하면서까지 이전과 다른 음악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로 판매량이 감소했다. 90년대가 지나면서 비주얼락이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가 낮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UNION JAP이 상업적으로 실패한 후에는 다시 하쿠에이가 주도권을 쥐고 예전 음악의 요소(소위 뽕끼)를 어느 정도 집어넣었으나 시대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인디즈로 떨어진 후에는 인디즈의 한계로 인해 올드팬을 제외한 새로운 팬의 유입은 줄어갔고, 점점 팬덤의 규모도 작아지게 된다. 하지만 다시 심기일전하여, 이 때 전성기에 비해 오히려 음악성 면에서는 더 깊어졌다는 평을 받았다.
2005년, 메이저 음반사인 avex trex와 계약하고 메이저로 다시 올라온다. 오리콘 차트 30위를 기록하는 등 상당한 인기를 모으나, avex trex의 사정상 Nippon Crown으로 이적한다. 이후 발표한 4장의 싱글도 오리콘차트 30위권 안에 들며 나름의 저력을 보여준다. 2007년에는 기쇼가 탈퇴했다. 2010년부터는 다시 소규모 레이블인 That's Record에서 음반을 내고 있다.
오샤레계의 대표자격으로 불리며 미야비 등의 이후 비주얼계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내한 당시를 포함하여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과도한 화장이 아닌 스트리트 패션이나 멋쟁이(오샤레) 정도의 모습으로 이후 미야비나 아리스나인등의 밴드에서도 시도한 댄디한 룩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비주얼계 초기의 코테계를 오마쥬하는 컨셉으로 돌아가서 강한 화장과 화려한 음악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4분기에 방송되는 클래시컬로이드에서 리더인 치사토가 드보르자크의 무지크 프로듀서로 선발되었다. 2019년 12월에는 미니앨범 '九龍頭'를 발매, 음악방송 Melodix에 WANDS와 함께 90년대를 주름잡은 카리스마 밴드로 초청받아 출연했다.
4. 특징
비주얼계 전성기 시절의 밴드로 분류된다.
음악적으로는 강렬한 비트와 개성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강한 비주얼을 가지고 있는 밴드이지만, 충분히 대중성있는 곡이나, 음악성있는 곡도 포함되어 있는 등 얼굴로만 승부하려는 일부 비주얼 록 밴드와 달리 실력있는 밴드로 평가받는다.
초기에는 대중성 있던 밴드였으나, 중반 이후 매니아층을 주로 공략하는 컨셉으로 바꾸었다. 음악 스타일이나 패션 등도 매니아 지향적이며, 특히 올드 비주얼계 매니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게다가, 일부 공연은 비밀 공연으로 팬들끼리만 모여서 진행한다든가 하는 등 독특한 점이 있다.[5] 또한 멤버의 생일에는 아예 공연 이름을 바꿔서 진행할 정도. 또한 멤버들 개인이 모두 솔로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음악적, 비주얼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평이 있다. 물론 매니아적이라 그쪽 외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 활동도 상당히 활발히 하여 미국 쪽에서 어느정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리더는 기타의 치사토이며 실질적으로 페니실린을 상징하는 인물은 보컬 하쿠에이라고 할 수 있다. 밴드 활동 초기에는 뛰어난 외모로 많은 소녀팬들을 끌어 모으기도 하였다. 또한 그만의 독특한 창법은 페니실린의 음악성을 확립하는데 빠질 수 없는 요소이며, 이후 언더그라운드의 록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6] 안대가 트레이드 마크이지만 안하고 나올때도 많다. 또한 핫팬츠속성 보유자이다. 참고로 위의 사진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문신이 상당히 많다[7] .
5. 한국과의 관계
일본 음악이 개방된지 얼마 안 돼서 베스트앨범이 국내에 발매되었을 정도로 국내에도 상당한 팬층이 형성되어 있었던 밴드이다. 특히 이때 남자의 로망의 경우 한국어 버전 가사를 본인들이 직접 부르기도 했는데, 발음이 조금 안타까운 나머지 한국에서는 '''일본 노래인데 한국어로 들리는 노래''' 즉, '''몬더그린'''이라고 오인받아[8] 유명해졌다.
2000년에 한국에서 공연을 개최하였다. 한국 공연 전, 일본 문화 개방에 맞춰 일본 밴드 최초로 악수회를 개최하였는데 당시만 해도 일본 가수 방한은커녕 일본 드라마나 일본 노래 등을 한국 매체에서 접할 수조차 없었던 한국의 일본 비주얼 밴드 팬들은 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당시 신촌 모처에서 열린 악수회에는 페니실린의 팬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각트(말리스 미제르), 라르크앙시엘, 엑스 재팬, 소피아, 라퓨타, 라크리마 크리스티, 벅틱, 에인스 피, 루아쥬, 루나시 등 타 밴드 팬들은 물론 스맵, 소년대, 후쿠야마 마사하루 팬들까지 함께 몰려 기념비적인 순간을 만끽했다.
지금 들으면 이상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던 시절이라 일본 연예인을 직접 보려면 일본에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도 발달되지 않아서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도 쉽게 접하지 못했었고 그나마 뮤직비디오라도 한 번 보겠다고 각 연예인의 비공식 팬클럽이 개최하는 영상회에 참가하여 스크린 너머로 얼굴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보니 일본 연예인을 한국 땅에서 볼 수 있다는 것자체가 마냥 신기한 시절이었다.
악수회 수용 인원이 200여 명이었던지라 미처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팬들은 회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페니실린과 직접 만난 팬들이 하쿠에이가 내 손을 잡으면서 고맙다고 말해줬어!! 하고 소감을 말하며 엉엉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다 함께 얼싸안고 감격에 겨워 울부짖었다.
그러나 2000년 당시 일본에서는 이미 비주얼락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으며, 페니실린도 1998년에 멋지다 마사루 오프닝인 ロマンス로 반짝 히트를 친 후 인기가 급속도로 식은 상태였다. 어찌 보면 2000년에 페니실린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사랑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 일본 문화가 한국으로 유입되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나타난 시간차였다.
2001년에는 CROSS HEART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한국의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촬영했다. 이 곡은 같은 해 1월에 발표된 싱글 イナズマ의 수록곡이었는데, 타이틀곡이 아니다 보니 뮤직비디오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한국에서도 비주얼락의 인기가 낮아지면서 팬이 극히 드물어졌으며, 그들이 인디로 내려간 이후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찾아보면 '''현재까지도''' 팬블로그를 운영하거나 팬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듯.
[1] 덧붙여 하쿠에이는 '''박명수와 동갑'''이다(…).[2] 그리고 2011년 기준 전 멤버가 40대에 돌입했다.[3] 멤버들이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여 학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보컬인 하쿠에이는 교육학 학사, 기타인 치사토는 법학사이며, 탈퇴한 베이시스트 기쇼는 경영학 학사이다. 기쇼의 경우 오메가 프로젝트 홀딩스라는 영화사의 CEO를 역임하기도 하였다.[4] 참고로 제일 이미지변화가 없는 멤버(...)였는데 2010년 인디즈로 복귀한 뒤 갑자기 체중을 감량하는 등 스타일을 바꿔서 다소 이질적이었던 기존이 이미지에서 밴드 전체적인 이미지에 맞게 바뀌었다.[5] 보컬인 하쿠에이의 경우 오직 비밀 공연만을 진행하는 프로젝트 밴드를 따로 운영하기도 한다.[6] 공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미야비가 이 양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외모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7] 윗 사진에서도 목에 약간 보이긴 한다.[8] 어디까지나 일본어 가사가 아니라 한국어 가사인데 발음이 안 좋아서 몬더그린이라고 잘못 알려진 것이지 원래의 일본어 가사가 우리말로 들린 것이 아니므로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몬더그린에 해당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