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발데스
1. 개요
前 프로야구 선수.
2.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시절
3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통산 53경기 타율 0.247로 큰 활약은 하지 못했다.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활약하며 팀의 2003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홈런을 노리는 슬러거 타입이라기보다는 중장거리 타자로서 활약하였으며, 홈런도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문샷보다는 쭉 뻗어나가는 라이너성 홈런이 많았던 타자.
4시즌 동안 타율 0.302 86홈런 335타점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도 공헌하였으나, 주루와 송구 부분에서 아쉬운 플레이를 보였으며, 특히 평범한 땅볼성 타구를 친 후 내야안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전력질주를 하지 않는 플레이나 심판 판정에 불복해 퇴장을 당하는 등, 약간의 불량(?)한 모습도 보여줬으며 이런 태도로 인해 당시 감독이었던 왕정치가 불만을 제기하였고 결국 04년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부상을 이유로 방출되었다.
2003년에 3번 이구치 타다히토(109타점), 4번 마쓰나카 노부히코(123타점), 5번 조지마 겐지(119타점)의 뒤를 받치는 6번 타자로 출전해 104타점을 기록하며 100타점 4중주라는 별명을 얻었다.[3]
4. LG 트윈스 시절
2005년과 2006년에는 멕시코에서 뛰었으며, 2007년에는 LG 트윈스에서 뛰게 된다. LG에서의 별명은 '잠실의 흑진주'.
당시 LG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발데스를 지명타자로 쓸 생각이었으나, 발데스 본인이 수비를 하지 않으면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수비를 봐야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고, 실제로도 수비를 봤을 때 성적이 좋아 어쩔 수 없이 외야수로 기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광활한 잠실 야구장를 홈으로 두고 있는 LG에게 있어서 "발Death"라고 불릴 정도로 느린 발을 가진 발데스의 외야 수비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타격 면에서도 아쉬운 모습을 보였는데, 타율 대비 출루율은 꽤 높았으나 본래 슬러거 타입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도 타팀의 외국인타자였던 클리프 브룸바나 제이콥 크루즈와 비교했을 때 장타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LG는 성적도 애매하고 나이도 적지 않은 발데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한다. LG에서의 성적은 116경기 타율 .283, 123안타, 13홈런, 72타점, 50득점, 70볼넷, 장타율 .407, 출루율 .381.
여담이지만 말이 없는 과묵한 성격이며 진지한 선수였다. 아들 이스마엘 발데스는 여름 방학 때 LG에서 볼보이를 한 적이 있다.
5. 그 이후
2008년에는 멕시코 리그에서 뛰었으며 2009년부터 주로 푸에르토리코 윈터 리그에서 뛰었다.
2010년에는 타율 .316(6위), 홈런 4(공동 1위), 타점 27(1위)를 기록했고 시즌 MVP를 수상했다. 또한 캐롤시로부터 현역 최고령 선수의 영예를 칭송받아 발데스의 등번호 20번이 영구결번 되었다. 수상 시 "이런 상을 받아 매우 감동하고 있다. 여기 캐롤리나에서 내 가족, 아들, 시장, 그리고 매 경기 자신을 응원 해준 캐롤리나 팬들과 항상 보내왔다"고 말했다.
2013년 제3회 WBC에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으로 출전하였다.
2017년 1월 12일, 오릭스 버팔로즈의 주미 스카우트로 임명되었다.
6. 연도별 성적
7. 관련 문서
[1] 안! 타! 발데스 go![2] 이후에 이대형이 사용하게된다.[3] 2001~2003년 다이에 호크스 타선은 장타력을 과시하며 '다이하드 타선'이라는 별명이 있었다.[4]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