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 브룸바
1. 소개
전 현대 유니콘스, 히어로즈 소속 외국인 선수.
2016년 기준으로 외국인으로서 최초이자 유이하게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선수이며, 그가 세운 2004 시즌 타율 .343은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높은 시즌 타율이었으나 2015년 에릭 테임즈가 3할 8푼을 찍었다. 당시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어 MVP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한 배영수에 밀려 수상은 하지 못하였다.
성적도 좋았으며, 친화력도 뛰어나 현대, 히어로즈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상 용병이 아니라 히어로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5] 다만 그가 활약했던 시절이 한국프로야구의 암흑기 기간이었기 때문에 저평가되는 감이 있다. 한편 조용준과 함께 삼성 팬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상대이기도 했다.
2. 선수 커리어
199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13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던 중, 2001년 메이저로 승격이 된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는 대부분 대타로 활동하다가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후 다시 마이너 리그로 내려가게 되고 2003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을 맺는다.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 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로의 승격이 되지 않자 한국 프로야구 팀인 현대 유니콘스와 계약을 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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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절.
2003년 시즌 후반기 마이클 프랭클린의 대체선수로 한국 땅을 밟은 브룸바는 70경기를 뛰며 타율 3할3리, 14홈런, 51타점을 기록했다.[6]
2003 시즌 후 현대 유니콘스와 재계약한 그는 2004년에 '''타율 1위, 홈런 2위, 타점 3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현대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공헌했다. 특히 2004년에는 끝내기 안타만 4개를 기록하며 단일 시즌 최다 끝내기 기록을 남겼다.[7] 그런데 이 성적으로 브룸바는 MVP는 고사하고, 올스타전에서조차 뽑히지 못해 KBO 리그의 외국인 선수 차별 사례 중 가장 유명한 사례로 꼽힌다.[8]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으로 출전할 수 없었던 내야수 정성훈을 대신하여 외야가 아닌 3루수로 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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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는 일본프로야구 팀인 오릭스 버팔로스로 이적하였으나 고질적인 발목 부상과 성적 부진,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2006년 시즌을 끝으로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등록명이 일본어 발음상 ブランボー(브람보)로 표기되어서 이름 덕에 나름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KBO로 보자면 스캇 시볼같은 경우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듯.[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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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시즌 종료 후, 2007년에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했다. 시즌 초반, 4월에 매우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으나, 5~6월 무렵부터 타격감이 살아나면서 엄청난 장타력을 과시했다. 최종 성적은 126경기 출장 0.308 29홈런 87타점. 그렇게 현대 유니콘스의 역사가 끝나가는 동안 유니콘스의 마지막 4번 타자로 활약하였다.
현대의 고별전인 수원 한화전에서 30홈런을 쳐내고 싶어했는지 안타를 치고 방망이를 내동댕이쳤다(...). 그후 바로 대주자로 교체. 경기는 0:2로 현대가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007년 말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선수단이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로 넘어갈 때 함께 히어로즈의 선수가 되었다. 2008년에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102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93, 13홈런 61타점을 기록하였다.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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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시즌 초반에는 붙박이 4번 타자로 출장하였고, 덕 클락이 히어로즈에 새로 영입되면서 주로 지명타자로 나왔다. 초반엔 발목 부상도 다 나았는지 개막 이튿날부터 시작해 6월까지 23개의 홈런을 쳐내며 40홈런 홈런왕도 바라봤으나, 7월 이후에 허리 부상의 여파와 심판들의 지나친 브룸바존 때문에[10][11]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게 되며 7, 8, 9월 세 달간 '''4개'''의 홈런을 친다(…). 이 때문에 4번 자리에서 시작한 타순이 점점 내려가 6번 타자로 출장하기도 했다.
부진이 길어지는 동안 트위터에 새롭게 눈을 떠 투수 크리스 니코스키,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 등의 용병 선수들과 친목을 하기도 했는데, 우스갯소리로 부진의 원인이 트위터가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또 트위터를 클락에게도 전파하는거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팬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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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에서 벗어나고자 바꾼 헤어스타일.
최종 성적은 타율 0.245, 홈런 27, 타점 86으로 시즌을 마감하였고, 결국 2009년 시즌 종료 이후 방출되면서 많은 히어로즈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타격이 약한 한화 이글스[12] 등의 팀에서 영입하기를 바라는 팬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나이나 부상, 그리고 KBO의 용병 투수 붐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고 결국 2009년을 마지막으로 한국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2010년엔 잠시 멕시코 리그에서 뛰었고, 이후엔 독립 리그인 골든 베이스볼 리그 소속의 에드먼턴 캐피털스에서 뛰었다. 76경기 출장해서 타율 0.383에 23홈런 90타점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상과 나이 등 여러 여건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했고, 살고 있는 곳인 오클라호마 주에서 야구와 소프트볼을 가르치는 일을 잠시 했다. 이후 코치 생활을 시작한 모양이다.
그가 떠나고 2년 후 히어로즈의 1루에 정착한 박병호가 히어로즈에서 빛을 발하자, 그의 이름을 본따서 "브룸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한민국에서 코치를 할 의항이 있다고 한다. 브랜든 나이트의 사례가 있으니 키움에서 코치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3. 야구 외
아들이 셋 있다. 장남이 케이든, 둘째가 카슨, 막내가 캠든. 히어로즈 홈 경기일 때 케이든과 카슨이 시구/시타를 한 적도 있다.
2003년부터 대한민국 생활을 시작했으니 한국 용병 중에서 생존기간이 긴 편이다. 오랜 대한민국 생활로 대한민국에 대한 애착도 꽤 있는 듯. 2008년에 히어로즈로 바뀌면서 연봉이 줄었음에도 계속 뛴 걸 보면... 트위터에도 대한민국에서 처음 활동한 현대 유니콘스를 잊지 못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만큼 대한민국과 정이 많이 든 듯...
2009년 7월 18일에 방송된 천하무적 야구단 팀과의 이벤트 경기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적이 있다."I will never forget the Hyundai Unicorns!! Its where it all started!! Good Times!!!"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이 선수 목록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잠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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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원짜리 수표를 10만 원짜리인 줄 알고 펑펑 쓴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100만 원짜리를 쓰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고, 브룸바는 마누라한테 엄청난 바가지를 긁혔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떠난 이후에도 히어로즈의 행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지 이택근이 트레이드될 당시에 의견을 물은 한 팬에게 "잘된 일이다, 젊고 좋은 선수는 기회가 있는 팀에서 뛰어야 한다. 히어로즈 사장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디스했다. 또 2010년 덕 클락의 대체용병으로 넥센에 입단하게 된 투수 크리스 니코스키에게 트위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날카로운 이장석 디스에 팬들은 역시 대한민국형 용병이라며 시원해하면서도 한편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행운을 빌어, 친구. 나랑 같이 뛰었던 선수들에게 안부 전해주고.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친구들 다 트레이드되었겠군."'''
2012년 12월 인터뷰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임주완 옹의 명언 "에라 모르겠다잉~" 을 이끌어낸 장본인. 장원준에게 높은 공 헛스윙 삼진을 당한 후 분함을 참지 못하고 배트를 땅바닥에 내려쳤을때 흥을 돋우기 위해(?) 나온 멘트다.
장모님이 태국인이신데, 김치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아내도 한국 요리를 즐겨먹는다고.
여전히 대한민국 야구와 넥센 히어로즈에 관심이 많은지, 트위터에서 KBO 리그의 소식을 알려주는 트윗을 자주 리트윗한다. 2014년에 넥센 히어로즈가 창단 첫 한국시리즈행을 달성하자, 넥센의 승리를 응원하는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2017년 인터뷰 기사가 떴는데, 대한민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다.
이후엔 2019년 10월 16일 보도된 바로는 현재는 미국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오클라호마 퓨엘’이라는 야구 아카데미를 8년째 운영 중이라고 한다.
박명환야구TV에서 조용훈이 미키 캘러웨이와 래리 서튼은 물건은 자신보다 작았고 브룸바는 더 컸다는 개드립을 쳤다. 조용훈은 버스에서 브룸바가 듣는 음악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몰래 듣다가 이를 발견한 브룸바한테 맞을 뻔했다고. 무슨 음악을 브룸바 너가 듣는지 궁금했다고 콩글리시로 설명해서 오해를 풀었다고 한다.
2003년 중반 ~ 2004년 사이의 조용준에게도 에피소드 하나가 있는데, 생명의 은인이라 감사한다고 한다. 사건이 발단은 이랬다. 조용준이 등판한 날 블론세이브와 패전을 적립하고 경기 종료 후 덕아웃 라커룸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을 찰나, 당시 주장이던 이숭용이 이날 하필 버스에서 쉬다가 졸고 있던 조용준과 눈빛을 마주친 것이다. 그것도 그렇고 팀의 패배까지 했으니 이숭용 입장에서는 화가나서 머리를 한대 때렸는데 브룸바가 조용준을 감싸고 이숭용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그날 만약 브룸바 없었으면 지옥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가끔 타이론 우즈,제이 데이비스,펠릭스 호세,톰 퀸란,에릭 테임즈 등등 KBO에서 뛰던 외인들이 나오면 종종 언급되며, 현대 유니콘스 선수 이야기가 나오면 심정수, 송지만과 자주 엮인다.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1] 넥센 히어로즈 시절 은퇴 임박이 가까워진 시즌 2년간 지명타자로 나왔다. 2009년에는 잠시 좌익수로 대수비를 나온 적도 있다.[2] 마이너리그 시절 3루수로 500경기 이상을 출장하였다. 그리고 2004년 병역비리 때 정성훈이 출장할 수 없게 되자 3루수로 출장하기도 했다. 3루 수비에서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3] 홈런! 홈런! 홈~런! 브룸바![4] 이 구호는 박병호가 이어받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5] 심지어 2010 시즌엔 목동구장에서 브룸바 버거를 판매한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2009 시즌 후 결국 방출되면서 어찌됐건 없던 일이 되었다.[6] 한국시리즈에서도 10타점으로 맹활약 했지만 3승을 한 정민태에 밀려 MVP를 받지 못했다.[7] 토종 선수들 중에서는 2020년에 배정대가 브룸바의 단일 시즌 최다 끝내기 안타 타이 기록을 세웠다. 우연하게도 브룸바가 현대에 있었을 적의 홈이 수원이었고, 배정대 역시 수원 연고의 kt wiz에서 뛴다는 게 특이점. 현대가 수원을 임시 연고지로 썼다는 것만 다르다.[8] 1998년에 타이론 우즈가 패넌트레이스 MVP가 되고도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이승엽이 수상한것도 KBO리그의 외국인 선수 차별 사례로 꼽힌다.[9] 그 시볼도 일본에서 뛰었다. 2008년 FA로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한 아라이 타카히로의 3루 공백을 메우기 위해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싼 값에 주워서 2시즌동안 써먹었다.[10] 이전부터 바깥쪽 공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이 자주 나온 탓에 생긴 말.[11] 7월에는 볼 판정에 불만을 갖다가 퇴장까지 당했다.[12] 2009 시즌 이후 김태균, 이범호가 모두 떠났고 최진행의 각성이 일어나기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