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

 


이대형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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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10 KBO 리그 도루왕

KBO 보유 기록
단일 시즌 최다 타수
600타수
단일 시즌 최다 단타
174개
연속 시즌 60도루
3년 연속[21]



LG 트윈스 등번호 53번
이용호
(2002)

이대형
(2003~2013)


양석환
(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53번
이종환
(2012~2013)

이대형
(2014)


김호령
(2015~2017)
<color=#373a3c> KT 위즈 등번호 53번
김사연
(2014)

이대형
(2015~2019)


김민혁
(2020~)



이대형
李大炯 | Dae-Hyeong Lee

생년월일
1983년 7월 19일 (40세)
출신지
충청남도 보령시[1][2]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4cm / 78kg / O형
학력
서림초 - 무등중 - 광주일고
병역
병역면제[3]
종교
개신교
포지션
외야수[4]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3년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11번 / LG)
소속팀
[image] [image] LG 트윈스 (2003~2013)
[image] KIA 타이거즈 (2014)
[image] kt wiz (2015~2019)
등장곡
[ 이전 등장곡 보기 ]
LG / KIA / KT: Black Eyed Peas - Pump It[22]

응원가
[ 이전 응원가 보기 ]
LG: Boney M. - Bahama Mama[23][24]
KIA: 굿 럭!! OST 'Departure'[25]
KT: FT아일랜드 - 멋쟁이 vs 예쁜이[26][27][28]
럼블피쉬 - 으라차차[29]
포지션#s-5 - Paradise(Rock'n'roll Party)[30]

1. 개요
2. 상세
4. 은퇴 후
6. 여담
6.1. 잘생긴 외모
6.2. 통산 홈런
6.2.1. 이대형의 저주?
7. 연도별 성적
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 kt wiz 소속의 외야수로, 낮은 홈런 개수와 많은 도루 개수로 대표되는 리드오프 타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 선수.

2. 상세


심수창과 더불어 LG 트윈스 비주얼의 양대축이었으나, 2011년 8월 1일부로 심수창이 넥센 히어로즈 선수가 되었고, 2013년 11월 17일부로 이대형마저 KIA 타이거즈로 FA 이적함으로써 완전히 해체됐으나 심수창은 8년만에 LG 트윈스로 돌아와서 은퇴했다. 이것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이대형도 다시 LG로 돌아오면 된다는 드립이 있었다.
LG 트윈스를 대표하는 세련된 이미지와 빠른 다리로 슈퍼 소닉이라는 공식 별명이 있으나 성적 하락과 부정적 이미지 덕에 사용 빈도가 많이 줄었고,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김해갈매기'란 유저가 꾸준글로 달리며 붙인 개씹대형이나 역시 야갤에서 만든 깝대형이라는 별명이 오히려 많이 쓰였다.
잘생긴 얼굴과 날씬하고 길쭉한 몸매와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서 여성 팬들과 어린이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184cm라는 키는 야수 중에서는 상위 20%안에 드는 좋은 조건이었으며 중견수로만 한정하면 이보다 큰 키는 흔치않았다. 어깨만 제외하면 대단히 좋은 신체조건.[5] 하지만 막상 도루 능력과 수비 능력을 제외하고는 타격 성적은 최악이었기 때문에 이대형을 달갑지 않게 보는 팬들도 많은 편이었다. 2007, 2016년을 제외하고는 1번 타자 맡았으면서 출루율이 0.350를 넘긴 적이 없으며, 장타율 또한 타율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리그 통산 OPS 0.662. 이래저래 LG에게 있어서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면 운동부 특유의 까까머리도 곧잘 소화한 모습도 보일 정도로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는 등 완벽해 보였지만 결정적으로 야구선수로서의 성적이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거기에 충공스런 FA 계약은 그의 이미지에 크리티컬을 가했다.[6] 야구만 잘한다면 그야말로 완벽할 사람이다.
2000년대 초중반, 좌용택(박용택)-중병규(큰 이병규)라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LG의 외야에 이병규의 주니치 드래곤즈 이적으로 인한 공백이 생기자, '마르지 않는 샘물 LG외야'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이대형이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
거기서 밀려난 이용규가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는데 이용규가 KIA로 트레이드된 건 2005년 초. 이땐 아직 이병규가 건재하던 때였다. 더 웃긴 것은 2013년 시즌 종료후에 사상 최대 규모의 FA시장이 폭발하자 기아에 있던 이용규가 거액 FA 제도한화 이글스로 가자, 바로 몇시간 뒤에 LG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이대형도 FA 제도를 통해 KIA 타이거즈로 가버린 것. 이용규를 놓치자 꿩대신 닭이라고 이대형을 지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LG 트윈스 팬들은 풍악을 울렸고, KIA 타이거즈 팬들은 광분했고, 타 구단 팬들은 어이없어했다. 어이없는 정도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는 하단의 FA 부분의 길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탈쥐효과에 그 다음해 FA거품이 겹치면서 아주 준수한 영입으로 보인다는 거. 특히 75억 선풍기를 생각해보면 아주 준수한 영입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2014년 타율은 김현수보다 위다. 물론 2014년이 극심한 타고투저라는 걸 감안해야하지만, 그런 부분을 어느정도 감안하더라도 LG 시절의 깝대형을 생각해보면 정말 감개가 무량한 성장이었다.
하지만 2014 시즌이 끝나고, kt wiz로의 이적이 확정됐다. 무슨 연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신생팀 특권으로 20인외 선수를 하나 받는 과정에서 보호명단 안에 이름이 없었던 것. 1년 전만 해도 무슨 생각에서 저런 폐기물을 데려왔냐고 불을 뿜던 KIA팬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3할을 쳐준 풀타임 중견수를 내버리냐고 다시 한번 불을 뿜는 중.
그리고 2015년 시즌 초반 이대형이 다시 예년의 모습으로 돌아간 데다 그 빈자리를 메꿔줄 것으로 기대되는 김호령의 등장으로 전 소속팀 KIA 팬들은 감독 찬양모드로 태세전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대형이 후반기에 선전하여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타율 3할을 유지하며 시즌을 마쳤다. 당시 선수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7] KIA 타이거즈로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2015년도의 이대형은 풀타임 3할 40도루(그 이상) 리드오프 중견수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이 성적이면 4년 24억 원 계약은 오히려 혜자로 볼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2015년 김기태의 실책 중 하나로 꼭 언급되는 것이 이대형.[8] 그러나 그 이후 이대형의 노쇠화가 시작되고 김호령이 성장, 2017년에는 외인타자 로저 버나디나가 정상급 활약을 하면서 이대형을 아깝다고 하는 KIA팬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됐다.
2019년 시즌 종료 후 KT에서 방출됐으며, 2020년 4월 10일 은퇴를 발표했다.

3. 선수 경력



이대형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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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선수 경력#s-1|LG 트윈스 시절]]
2003년~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이대형/선수 경력#s-2|KIA 타이거즈 시절]]
2014년

<color=#373a3c> [[이대형/선수 경력#s-3|kt wiz 시절]]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4. 은퇴 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0년 10월 13일, 남성 패션 매거진 '로프시엘 옴므 YK에디션'을 시작으로 모델로 전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원래부터 잘생긴 외모로 현역 시절에도 화보를 찍었던 적이 있었던 만큼, 팬들은 그의 제 2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다. ‘슈퍼소닉’ 이대형, 패션 화보 촬영…모델로 연예계 데뷔 신고
이후 심수창과 함께 도시어부에 출연했다.

5. 플레이 스타일




6. 여담


  • 잘생겨서 가벼울 것 같은 이미지가 있으나 사생활 면으로 잡음이 나온 적이 한번도 없다. 실제 성격은 착하고 순하며 팬 서비스도 좋고[9] 특히 어린이들에게 기부와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등 선행을 자주 한다. 실제로 현역 시절에도 실력에 관한 비판은 들었을지언정 인성에 관한 비판은 들은 적이 없었던 선수였다.
  • 과거 괴악한 패션 센스로 유명했던 적이 있다. 이후 스톡킹에서 밝혔는데, 전날 입은 옷을 또 입었다간 밖에서 놀다가 외박했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옷장을 전부 뒤져가면서 옷을 입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패션 센스가 개판이 된 것도 있고, 당시 유행에 맞춰 따라가다 보니 상당히 괴악한 조합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샛노란색 옷은 잘생긴 이대형조차 커버해내지 못했다(...). 이후 이대형이 충분히 나이를 먹고 상술한 오해가 사라질 때 쯤 되자 패션 센스에 관한 논란은 사라졌다.
  •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투수였다. 감독의 혹사로 어깨가 망가진 데다[10] 원래 빠른 발이 있어서 후에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 이대형/플레이 스타일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주자로 나가면 경계대상 1순위로 꼽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에릭 해커가 1루에 이대형이 있을 때 한 타자를 상대할 동안 9번이나 견제구를 던지기도 하였다.
  • 2016년 한 시즌 최다 타수 600타수[11], 한 시즌 최다 단타 174개, 한 시즌 최다 내야안타 62개, 한 시즌 개인 최다안타 192개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192개의 안타 중 장타가 18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 장타력은 매우 저조하지만 생각보다 힘이 세다. 벤치프레스 110kg를 들고, 악력이 70kg...[12]
  • 2010년, 삼성 배터리를 제대로 농락하였다[13]. 이 영상의 백미는 도루 후 이대형과 현재윤의 표정.
  • 등번호는 선수 시절 내내 53번을 사용했다. 3개의 팀을 거쳤음에도 등번호만큼은 항상 53번을 유지했다.[14]
  • 2020년 10월 13일 이대형의 유튜브 53슈퍼소닉에 제목이 2020년 10월 13일인 1분 내 동영상 8개가 올라왔다. 영상은 타격, 골프, 노는 영상 등이 있다. 그 뒤로 영상은 안 올라오는 중이다.

6.1. 잘생긴 외모


상당한 동안이다. 곧 40대에 진입하는 나이에도 LG에서 주전으로 뛰던 20대 시절과 외모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나이 38세인데 팬들이나 다른 일반인들에겐 아직도 갓 서른 살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참고로 최형우[15], 김진우, 작뱅, 장원삼, 이현승동갑이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송창식보다 [16]이다. 아울러 김별명보다 한 살 동생. 게다가 키도 184cm의 장신인 데다 몸매까지 날씬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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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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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환우들을 돕기 위해 박용택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기부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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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저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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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허리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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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이 그냥 꿇어앉은 것이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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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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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와도 그림 같은 샷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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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이적 후 찍은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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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7일 시범 경기에서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가 찍은 이용규와의 투샷[17]
[image]
[image]
2014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 왼쪽은 이대형(83년생 31세), 오른쪽은 손아섭(88년생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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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범도 오징어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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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시범경기 캡처.
[image]
50명의 선수들이 뽑은 미남 순위 1위에 랭크되었다. 스포츠경향 페이스북
[image]
입동님조차도 반하게 만들었다(...).
[image]
kt 프런트에서 이대형의 외모를 아주 찰지게 이용하고 있다(...).

6.2. 통산 홈런



선수생활 통산 9홈런을 친 극단적인 똑딱이 타자다.[18] 오죽하면 이대형이 10홈런을 치면 탕수육을 준다는 쿠폰 짤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는 아쉽게 채우지 못하고 현역 커리어를 마감했다.
[image]
이것이 전통의 구형. 이 버전도 완전 초기버전에 비하면 깔끔하다.
[image]
세련미가 돋보이고 2013년 7호 쿠폰까지 반영된 신형
[image]
뉴등반점 개점 쿠폰 [19]
그리고 이 탕수육 쿠폰이 네이버 기사에 올라왔다!! #
[image]
수원 버전.
2009년의 2호 홈런은 놀랍게도 잠실구장에서, 그것도 X-존이 아닌 원래 잠실 좌측 펜스를 밀어쳐서 살짝 넘기는 홈런이었다. 2홈런까지는 전부 삼성에게 친 홈런이다. 1호 홈런을 허용했던 임동규가 군대를 갔기 때문에[20] 2호 홈런을 허용한 안지만도 조만간 군입대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삼성팬들의 우려를 받았다. 안지만의 경우 2010년 이후 각성한데다 그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혀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등 병역 면제까지 받아서 현재까지 이대형의 저주 리스트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대신 이대형에게 홈런을 맞은 그 해(2009년)에 어깨 부상으로 인해 일찌감치 시즌을 접어야 했다.
2009년 6월 10일 잠실구장에서 3호 홈런을 쳤는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다. 참고로 이대형의 3호 홈런을 허용한 두산의 정재훈 투수는 홈런 맞은지 얼마 안 돼서, 어깨 부상으로 2군에서 휴식한 후 2009년 8월 9일 LG:두산 전에 1군 복귀 후 첫 등판을 가졌는데, 9회 말 또 이대형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맞아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2012년 7월 13일 잠실 야구장에서 넥센 히어로즈 김영민을 상대로 좌익수 쪽 담장을 살짝 넘기는 솔로홈런을 밀어치기 뽑아 내며 통산 6호 홈런을 기록하였다.
2013년 6월 4일 잠실 야구장에서 9회말에 대타로 나와서 두산 베어스 홍상삼을 상대로 초구에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때려내여 통산 7호 홈런을 기록했다.
2014년 5월 15일 마산 야구장에서 1회초 선두 타자로 첫 타석때 이민호를 상대로 8호 홈런을 기록.
2016년 6월 18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1회초 선두 타자로 첫 타석때 이재학을 상대로 765일만에 9호 홈런을 기록했다.
의외로 1, 8, 9호 홈런을 빼면 전부 다 홈런 나오기 가장 힘든 잠실 야구장에서 쳤다는 것. 다만 2014년부터는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까닭에 잠실에서 타석에 들어설 확률이 줄었으니 잠실구장 편식이 달라질 듯.
결국 10장은 못 채우고 은퇴를 하게 되었다.
이후 스톡킹에 출연하여 농담으로 심수창에게 홈런을 쳐 10개를 채우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6.2.1. 이대형의 저주?


그런데 그에게 홈런을 맞은 투수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일명 깝수육의 저주.
이대형에게 데뷔 첫 홈런을 허용한 허용투수. 2007년 시즌 전 미필이었기에 해외출국 가능 나이가 차서 스프링캠프에 참여하지 못한 탓에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결국 시즌 내내 부진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가 소집 해제되어 복귀한 2010 시즌, 실전 경험 부족으로 인해 1군에 오르지 못하고 방출
부상, 그 후 두 차례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계약 해지
2009년 플레이오프 피홈런왕
2016 시즌 선발 투수로 낙점되었으나 3이닝 6실점의 스타트 퀄리티(...)를 남발하며 선발 로테이션이 붕괴되었다.
몇 안되는 예외. 2012년 두산 베어스 선발진의 한 축을 든든하게 맡아 주었고 롯데 이적 후에도 불펜으로써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줬다.
완벽히 슬럼프에 빠져서 연패와 조기강판을 반복하고 있다가 방화범으로 전락했다. 다만 2016년, 김세현으로 개명하고 마무리 투수로 전환한 이후 세이브왕을 찍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후 KIA로 트레이드된 뒤에는 방화범 → 커리어하이 → 방화범을 반복 중. 그나마 트레이드된 후 우승반지를 하나 얻었다.
3연전 2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연속으로 끝내기 홈런을 맞는다. 깝수육 이후 9회에만 홈런을 5개 허용했고, 준플에서는 박병호를 피하겠다고 고의사구를 보낸 게 폭투가 되질 않나, 다시 공을 던졌는데 또 폭투, 그리고 풀카운트에서 또 폭투(기록은 안 됐지만)로 박병호는 출루했고, 다음 강정호 타석에서 또 폭투를 해서 한 이닝 폭투 세개(+1)로 화룡점정을 찍어놓기까지 했다. 사실상 가장 큰 저주를 받은 선수이다.
홈런을 맞았던 당시에는 전반기에는 갈수록 부진하여 선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후반기에는 필승조로 쏠쏠하게 활약해주었다. 그러다가 선발을 맡았던 2016년 7월 부인 폭행과 합법 의혹에 휘말려 크게 곤욕을 치렀다. 더군다나 이민호는 당시 겨우 24살로 선수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갈 때 그런 일이 생긴 거다.
당해 올스타전에서 3타자 연속 홈런을 맞았을 정도로 부진했던 데다가 김세현, 송승준 따위는 애기 놀음으로 보일 정도로 큰 사건에 휘말려 포스트시즌에도 출전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검찰에서 이재학과 관련된 혐의를 모두 무혐의&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그러나 2017 시즌은 완전히 망했고, 2018 시즌에는 어느정도 부활에 성공했으나 답이 없는 득점지원 속에 시즌 최다패투수가 되고 말았다.
한화의 2014년 1차 지명 선수로, 그 이후 두 차례나 토미 존 수술을 겪으며 오랜 시간동안 재활을 거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19년부터는 재활을 끝내고 1군 무대에도 콜업되기도 하는등 프로로서 뛰고 있다.
사실 이토록 타격이 엉망인 이대형에게 홈런을 맞는다는 것은 그 선수가 현재 정상이 아니거나,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원래 못하거나 하는 경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선후관계가 뒤집힌 셈. 이대형의 홈런을 맞고 부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부진하니까 이대형에게 홈런을 맞는다는 것. 물론 통산 9개 친 타자에게 홈런맞는건 나름 쇼크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부진이 심화되었을 수도 있긴 하다.

7.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LG
47
53
.245
13
2
2
0
4
12
7
2
0
.358
.273
2004
13
11
.091
1
0
0
0
0
1
2
0
0
.091
.091
2005
107
127
.268
34
4
1
0
5
40
37
(3위)
11
1
.315
.331
2006
87
155
.258
40
3
0
0
4
23
15
5
0
.277
.281
2007
125
451
.308
139
(4위)
13
1
1
31
68
53
(1위)
38
5
.348
.367
2008
126
523
.264
138
(5위)
5
2
0
33
71
63
(1위)
39
2
.281
.317
2009
133
521
.280
146
10
2
2
41
92
(4위)
64
(1위)
50
0
.319
.341
2010
130
494
.261
129
14
2
1
43
73
66
(1위)
58
2
.304
.341
2011
104
354
.249
88
11
5
(3위)
1
24
56
34
(2위)
30
2
.316
.310
2012
101
258
.178
46
4
4
(4위)
1
19
32
25
25
1
.236
.253
2013
102
177
.237
42
5
1
1
10
36
13
19
1
.294
.312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4
KIA
126
461
.323
149
15
9
1
40
75
22
35
2
.401
.372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5
kt
140
546
.302
165
23
3
0
37
86
44
(3위)
53
6
.355
.370
2016
143
600
(1위)
.320
192
(3위)
14
3
1
42
89
37
(3위)
44
2
.368
.358
2017
100
337
.267
90
8
3
0
24
51
23
(4위)
24
0
.309
.315
2018
1
1
.000
0
0
0
0
0
0
0
0
0
.000
.000
2019
18
14
.143
2
1
0
0
4
2
0
4
0
.214
.316
<color=#373a3c> KBO 통산
(15시즌)
1603
5083
.278
1414
132
38
9
361
807
505(3위)
437
24
.324
.337
타율하고 출루율이 좋지 않은 편인데 꾸준히 20도루 이상씩 기록하는 걸 보면, 다리만큼은 빠르긴 빨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관련 문서


[1] 부모님의 고향은 광주광역시라 한다. KIA 시절 조부상 있었을 때를 보면 전남 화순선산이 있다. 이대형은 아버지가 전근갔던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으나 본인이 야구를 하고 싶어 졸라서 다시 광주로 왔다고.[2] 이대형 본인은 호남 광주를 본인 고향으로 생각한다. 보통 이런 케이스의 경우는 운동선수를 떠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자라온 지역을 고향으로 여기기 마련이고, 운동선수들이 보통 고향 이야기를 하면 태어난 곳보다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곳을 고향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광주에서 야구를 시작한 이대형이 광주를 고향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허나 은퇴 후 인터뷰에서는 프로선수 시절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기때문에 고향을 서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3] 광주일고 시절 투수를 하다가 어깨부상으로 인한 수술로 군 면제가 되었다.[4] 데뷔 초에는 좌중우 골고루 나오다가, 07시즌부터 테이블세터로 고정되면서 기본 중견수+가끔 좌익수로 나왔다. kt 이적 초기까지 중견수로 많이 나오다가 선수 생활 말년에는 좌익수로 고정되다시피했다.[5] 다만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게, 원래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투수였다. 당시 감독이 그를 엄청 혹사시킨 탓에 어깨가 결국 망가져 수술 후 군면제 처리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대형을 베이징 올림픽으로 군면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아니다.[6] 재밌는 점은 FA로 이적했는데도 LG 트윈스는 프론트 차원에서 환송식을 열어줬다.[7] 2015년시즌 동안 부진과 부상으로 인해 규정타석을 소화한 KIA의 외야수는 0명이다.[8] 그렇지만 김기태 감독도 이대형이 부진하던 시기에도 많은 기회를 주었으나, 문제는 당시 이대형의 타율이 2011년 다리 부상 이 후로 하락을 하고 있었다.[9] 다만 LG 시절에서는 여성 팬과 어린이한테만 좋다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래도 KT 와서는 달라졌다는 얘기도 있고, 이대형의 팬이 여성팬이 많다는걸 생각해 보면 어린이들과 여성 팬에게 우선으로 했을 가능성도 있기야 하다.[10] 이는 이대형의 소녀 어깨의 이유와 군 면제의 이유이기도 하다.[11] KBO 최초 600타수[12] KBO 대표 거포 이대호의 운동 능력이 사람 수준이 아닌 걸 생각하면, 야구선수들의 운동능력은 어지간한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건장한 성인 남성도 투구 시 구속 80km도 넘기기 힘듦을 생각하면 차원이 다르긴 할 것이다.[13] 상황을 설명하자면 2사에 이대형이 출루했는데, 차우찬과 현재윤은 그를 의식하며 3개의 피치아웃으로 풀카운트를 만든다. 그러나 이런 삼성 배터리의 노력을 가볍게 무시하며 이대형은 풀카운트가 되자 차우찬과 현재윤이 사인을 주고받으려 하고 있을때 빈틈을 찾아 도루를 성공시키며 현재윤을 벙찌게 만들었다.[14] 참고로 준족인 선수는 보통 한 자릿수나 낮은 번호를 쓰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대형은 데뷔할 때부터 53번을 사용한 경우이다. 신인 때 달았던 번호를 선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상징으로 만든 케이스라고 봐야할 듯.[15] 심지어 최형우는 빠른 84년생이다.[16] 이대형 1983년생 > 송창식 1985년생.뭐 굳이 무서운 사실을 더 표기하자면 노안을 자랑하는 안승민보다 8살이나 더 많다.[17] 둘의 인연은 참 묘하다. 이용규가 LG에 입단했을 적엔 같은 포지션인 이대형에게 밀려, 결국 KIA로 트레이드 되었고, 이후 2013년에 이용규가 한화로 이적한 후, 그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이대형이 KIA에 오게 되었다.[18] 은근히 간과하지만 통산 1414개의 안타를 쳐낸 선수다. 하지만 그 중에 장타가 200개가 채 안된다. 심지어 통산 도루 개수가 본인 2루타 4배에 가깝다.[19] 이대형과 비슷한 과로 생각된 서건창도 중국집 쿠폰이 있는데 3년차만에 포텐이 대폭발해 이대형의 적립한 쿠폰을 다 따라잡고 탕수육까지 공짜로 나눠주었다(...) [20] 그후 임동규는 2010년 시즌 후 방출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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