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

 




'''푸에르토리코 자유연합주
Estado Libre Asociado de Puerto Rico
Commonwealth of Puerto Rico
'''
[image]
[image]
'''깃발'''
'''문장'''
'''Joannes est nomen ejus
아기 이름은 요한이다'''[1]
'''노래'''
La Borinqueña
'''행정'''
'''국가'''
미국 [image]
'''시간대'''
대서양 표준시 (UTC-04)
'''수도''' | '''최대도시'''
산후안
'''하위 행정구역'''
'''시'''
78 (municipio / municipality)[2]
'''인문 환경'''
'''면적'''
9,104㎢
'''인구'''
2,828,246명(2021년) | 세계 140위
'''인종구성'''
백인[3] 75.8%, 흑인 12.4%, 혼혈 3.3%, 아메리카 원주민 0.5%, 아시아계 0.2%
'''인구밀도'''
351명/㎢
'''공용어'''
스페인어, 영어
'''종교'''
가톨릭(80%), 개신교(18%), 기타(2%)
'''경제'''
'''명목'''
'''GDP'''
'''전체 GDP'''
$1031억 3500만(2018년)
'''1인당'''
'''GDP'''
$30,769(2018년)
'''정치'''
'''대통령'''
'''(국가원수)'''
조 바이든[4]

'''지사'''
페드로 피에를루이시
'''신진보당''']]
'''상주대표'''
제니퍼 곤살레스[5]
'''신진보당''']]
'''자치의회 상원의원'''
13석
'''대중민주당''']]
9석
'''신진보당''']]
2석
'''MVC''']]
1석
'''독립당''']]
1석
'''PD''']]
1석

'''자치의회 하원의원'''
21석
'''신진보당''']]
26석
'''대중민주당''']]
2석
'''MVC''']]
1석
'''독립당''']]
1석
'''PD''']]
'''ISO 3166'''
'''약자'''
PR
'''지역번호'''
1-787, 1-939
'''위치'''

1. 개요
2. 상징
2.1. 이름
2.2. 깃발
2.3. 국가
3. 역사
4. 인구 및 인종
6. 지리 및 자연
7. 정치
7.1. 정당
7.2. 51번째 주 승격?
7.3. 분리 독립 운동
8. 경제
9. 관광
10. 언어
11. 관계
11.1. 스페인과의 관계
11.2. 미국과의 관계
12. 푸에르토리코 한인
13. 군사 및 치안
14. 기타
15. 출신 인물
1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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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리브해 북동부에 있는 이자 미국자치령이다. 명목상 국가원수는 미국 대통령이고, 직접 뽑은 지사(Governor)가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히스파니올라 섬 옆에 있다. 그러니까 쿠바[6] 옆에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고 도미니카 공화국 옆에 푸에르토리코가 있는 셈. 카리브 문서의 지도 참조.

2. 상징



2.1. 이름


정식 명칭은 스페인어로 Estado Libre Asociado de Puerto Rico(푸에르토리코 자유연합주), 영어로는 Commonwealth of Puerto Rico이다. 이름인 푸에르토 리코는 영어로는 포르토 리코(Porto Rico) 혹은 포트 리치(Port Rich), 즉 부유한 항구란 뜻이다. 본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섬 이름을 세례자 요한에게서 딴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라고 하고 중심도시 산후안을 푸에르토리코(Ciudad de Puerto Rico)라 했는데, 시간이 흘러 도시 이름이 섬 이름이 되고 반대로 섬 이름이 도시 이름이 된 것이다.
원어로는 '푸에르토 리코'로 띄어 있지만, 한국 표준어에서는 '''푸에르토리코'''로 붙여 쓴다.[7] 나무위키에서는 띄어쓰기를 하는 사람도 많은데 원래 붙여쓰는 게 맞는다.

2.2. 깃발


[image]
푸에르토리코의 깃발은 인근의 쿠바 국기의 영향을 받아 정해진 것으로, 1895년 푸에르토리코 독립 운동 진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깃발은 스페인 지배 시기는 물론 미국 자치령 시절에도 금지되었다가 1952년에 해금되었다. 푸에르토리코의 관공서에서는 성조기와 함께 게양하며 성조기가 더 커야 한다.
깃발이 쿠바와 비슷해서 자주 헷갈리곤 한다. 2017년 우버가 이 일로 사고를 한 번 쳤는데, 푸에르토리코 독립 기념일을 축하한다고 쿠바 국기를 내건 사진을 올린 것. #
[image]
[image]
푸에르토리코
쿠바

2.3. 국가



미국령인 만큼 미국 국가가 공식 국가이며 푸에르토리코 주가(州歌)도 있다. 주가는 위와 같다. 행사 등에는 미국 국가가 연주된다.

3. 역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중남미로 식민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508년 스페인의 후안 폰세 데 레온이 푸에르토리코에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허나 곧 스페인인들은 이곳에서 소량의 금이 나오는 것 이외엔 별다른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플랜테이션 농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원주민들은 플렌테이션 노동에 강제로 동원되어야 했고, 열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한 원주민들이 과로와 질병으로 빠르게 죽어나가자 이들을 메우고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곧 푸에르토리코는 연이은 정복전쟁에 있어 물류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나가게 되었고 스페인 정부로부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400년간 스페인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 스페인령 푸에르토리코는 '''포트 리치(Port Rich)'''라 불리며 신대륙의 귀금속과 물자의 집산지와 중개무역 기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1879년 노예 제도가 폐지되고 나서는 1897년 스페인이 자치권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인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미국에 할양되었다.
미국령이 된 뒤에도 한동안 미국은 이 섬에 관심이 없었다. 원래 미국이 원한 건 플로리다 반도의 부속도서 쿠바를 먹는거였다. 사탕수수를 미국에 수출하고, 플로리다 반도의 부속도서로서 미국 발 밑에 있으며[8] 면적도 꽤 넓은[9] 쿠바와 좁아터지고 대부분 못 쓰는 쓰레기 땅인 이 섬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푸에르토리코는 너무 좁고 가운데에 떡하니 큰 산인 엘 윤퀘 산이 있어서 평지도 별로 없었으며 농업 생산량이야 여기도 사탕수수바나나 등 플랜테이션이 실시됬으나 같은 미국령이던 필리핀보단 생산량이 낮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10] 쿠바를 집어먹진 못해서 할 수 없이 이 섬을 대신 먹었다.[11] 그렇게 이 섬을 방치하다가 어느새 이 섬이 카리브 해 교통요지로 쓸모가 있단 걸 알고는[12] 관심을 가지기 시작, 1917년에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에게도 미국 시민권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자치가 실시되어 그들 스스로의 총독을 뽑게 된 것은 1947년에 되어서였다. 그 전까진 생판 모르는 미국인을 총독으로 임명해 내려보냈다.
결국 1950년 미국 의회에서 자치성을 고려해 헌법 제정을 승인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1952년 7월 25일에 새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푸에르토리코는 자치령이 되었다. 그리고 총독은 주지사로 지위가 바뀌었다. 1947년 이전까진 생판 모르는 미국인이 총독으로 왔으나 이후에는 푸에르토리코 현지인들이 선거로 현지인을 주지사를 뽑는다.
이후 1950년대에 미국 본토로부터의 지원으로 고속도로와 항구 등, 사회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푸에르토리코가 가진 미국 시장의 접근성, 그리고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을 최대한 이용하여 경제성장을 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에 각종 소득세, 재산세, 면허세 등을 면제하고, 저임금 인센티브로 미국 회사를 유치하는데 주력하여 1956년에는 제조업 총소득이 농업부문 총소득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후 연방대법원이 설정한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 act)을 적용하여 1980년대 초에는 본토인 '''미국의 최저임금'''과 동일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카리브 해 항로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정유산업을 육성하여 중화학 공업으로의 산업 전환을 꾀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중동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오일쇼크와 미국의 경기침체로 푸에르토리코는 경제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특히 오일쇼크로 인해 발생한 금수조치로 인해 미국의 석유 수입이 줄고, 석유 수요량도 감소한것은 푸에르토리코의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미 본토에 종속된 산업구조로 인해 전통적인 설탕농업, 섬유산업에서도 대량 실업자가 발생했고, 푸에르토리코 정부의 막대한 지방부채는 이미 개별적인 경제정책으로 감당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13] 또한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지방채 발행시 면세혜택을 받고, 연방 파산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본토의 은행, 헤지펀드에서 실 가치에 비해 높은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이 이점이 푸에르토리코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이후 도리어 발목을 잡고 있다.
이후 1980년대1990년대 초 미국의 경제 위기로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89년에는 허리케인 휴고가 전 국토를 물바다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면서 미국본토로 이주가 늘었는데 이 섬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 본토와의 왕래가 자유롭기 때문에 그만큼 인구 유출도 많은 편이다. #
2017년에 트럼프 대통령이 푸에르토리코를 매각하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증언이 나왔다.# 물론 아이디어로만 그쳤다. 사실 매각해봐야 살 나라도 없다. 만약 잘못하면 러시아나 중국이 아싸쿠나(...) 하고 매입하려 들 것이고 그나마 카리브 해에 연고가 있던 영국은 카리브 지역을 포기한 지 오래이며 프랑스도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2019년 이후 미 연방정부의 지원과 관광업 장려로 경제가 살아나자 묻혔다.
미국에서 피한지로 각광받는다. 카리브 크루즈들은 죄다 코스가 이 섬을 찍고 가는 것이며 이 섬의 산후안에 크루즈선이 기항하면 돈 많은 백인 은퇴 노인들이 호텔 내 카지노에서 돈을 팍팍 쓰고 간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인들에게 휴양지로 유명하며 관광업이 발달했다. 기존 산업의 몰락으로 인구 유출이 컸으나 대신 휴양지로의 개발을 택해 1인당 GDP는 어지간한 남유럽 국가 수준은 되는 것이다.

4. 인구 및 인종


주류 인종은 혼혈인 위주의 푸에르토리코인이다. 혼혈이 3%대라고 하지만 혈통으로는 혼혈이라도 스스로가 백인이라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아 혈통상의 혼혈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인 혈통이 강한 메스티소인 카스티소가 대부분이라서 백인으로 정체성을 두는데 백인 혈통의 출신지는 스페인 특히 카나리아 제도 관체족 출신이 많다. 12%의 흑인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노예 무역으로 건너온 서아프리카 출신들이다. 0.5%는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타이노족 혈통을 이어받았다.
종교가톨릭이 80%, 개신교가 18%를 차지하는 기독교 주류의 지역이다. 일부 유대교이슬람교 신자가 외국 이민자를 중심으로 있다.[14]
인구는 2018년 통계 기준 3,195,153명으로 1990년 당시엔 352만 명. 부산 정도의 인구로, 미국 내 주와 비교하면 오클라호마(28등)와 코네티컷(29등) 사이이다. 미국의 국외 인구의 89.2%, 미국 전체 인구의 1.19%에 해당하는 인구다. 136만 명의 하와이(40등)와 71만 명의 알래스카(47등)를 합친 것의 1.5배로, 이들도 "해외"로 친다고 해도 미국 전체 국외 인구의 59.6%이다. 사실 푸에르토리코 내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인보다는 오히려 미국 내 다른 주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인 인구가 더 많은 편이다. 미국 내 다른 주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인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579만여 명에 달한다.
히스패닉들의 출산율이 높다는 얘기가 많지만, 푸에르토리코에서만큼은 예외인데 미국에서도 출산율이 낮은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이 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 출산율 '''1.04명[15]'''으로 초저출산을 겪고 있는 나라들 못지 않은 수준. 더군다나 경제 사정이 그리 좋은 곳이 아니고 빈부 격차 또한 커서 미국 본토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미 2001년에 인구가 고점을 찍었고 최근까지도 인구가 감소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본토 이주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푸에르토리코 정부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평이 많다. 물론 이는 2010년대 미국경기 회복 때 얘기고 현재는 본토로 간 인구들이 코로나19로 모든 게 롤백되고 미국 내 구직난의 여파가 들이닥치며 푸에르토리코 정부에 미 연방정부가 대거 예산을 지원해서 푸에르토리코 경제가 회복되자 대거 되돌아와서 인구감소는 제동이 걸렸다.

5. 스포츠


미국의 영향이 커서 농구야구의 인기가 많다.
농구에서는 2004 아테네 올림픽미국 드림팀을 92-73으로 이기기도 했으며, 2011년 농구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한국도 뭉갰다.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에선 요르단을 93-52로 이기며 8강까지 진출했다. 4강전에서 리투아니아와 격전 끝에 76-72로 패해 올림픽 본선 진출은 좌절. 2013년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에선 아르헨티나를 이기면서 멕시코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 진출권을 얻었다. 비록 16강에 못 오르고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야구도 메이저리거가 많듯이 상당한 강호.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선 미국을 제치고 4강에 올라갔으며, 준결승전에선 3연패 우승을 노리던 일본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 도미니카 공화국과 맞붙어 준우승을 거뒀다.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미국에게 패배하며 2개 대회 연속 준우승을 기록한다. 이때 푸에르토리코에서는 결승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금빛 머리로 염색한 것을 보고 너도 나도 금빛 염색을 하는 바람에 염색약이 동이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국가 주요 수출품은 '''MLB 야구선수'''이며, 가장 유명한 선수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푸에르토리코 프로야구 리그의 정식 명칭은 로베르토 클레멘테 프로야구 리그일 정도로 푸에르토리코 선수들에게는 우상이자 롤모델이다. 다만 요즘은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에 좀 밀린 듯. LBPRC라는 프로야구 리그도 있다. '푸에르토리코산 포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수한 포수가 특히 많이 나왔던 지역이다. '''이반 로드리게스''', 호르헤 포사다 등 메이저리그에서도 역대급으로 꼽히는 포수들이 동시대에 튀어나왔고, 준주전급 포수들까지 합치면 양 손을 다 써도 손에 꼽기가 힘들었을 정도. 다만 지금은 야디어 몰리나 외에는 이렇다할 우수한 포수가 없는 실정이다. 그렇긴 해도 도미니카 공화국(563명), 베네수엘라(286명) 다음으로 메이저리거가 많은 나라 '''세계 4위다.'''
미국에선 이들을 전투민족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이 인구 300만의 조그마한 동네에서 복싱 챔피언들의 수가 웬만한 나라보다 수십 배 많기 때문이다. 멕시코 vs 푸에르토리코 이 둘이 복싱 라이벌인데, 인구 1억 1천만으로 산술 비교로만 30배인 멕시코보다 푸에르토리코 선수들이 이기는 경우가 많다.
주로 웰터-미들급의 전설들이 많다. 유명한 복서로는 웰터급의 강자 펠릭스 '티토' 트리니다드, 1980년대 F4와 일합을 겨룰 만 했었던 게으른 천재복서 윌프레도 베니테즈, 슈퍼밴텀급, 페더급, 슈퍼페더급 3체급을 정복한 윌프레도 고메즈, 역시 3체급을 정복한 엑토르 카마초, 현시대 웰터급의 강자인 미겔 코토가 있다. 이 선수들의 주요 라이벌들이 주로 멕시칸 복서들. 코토 vs 안토니오 마가리토, 카마초 vs 훌리오 세사르 차베스, 고메즈 vs 카를로스 사라테전 등이 유명한 푸에르토리코 vs 멕시코 라이벌전.
프로복싱 4대 메이저 기구 WBO의 본부가 푸에르토리코에 있다.WBO
축구는 약체다. 국대 축구에 대한 건 푸에르토리코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미국과는 따로 올림픽에 출전한다. 즉, 올림픽 위원회가 따로 있다는 것. 다만 영국의 축구 선수가 어느 지역 대표로 출전하게 되는가의 논란처럼 푸에르토리코 출신 선수들이 미국 대표로 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푸에르토리코 역사상 첫 금메달이 나왔다. 테니스 여자 단식의 모니카 푸이그가 그 주인공.[16]

6. 지리 및 자연


면적은 9,104km²으로 로드아일랜드의 2배, 제주도의 5배 정도 된다.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의 한 주로 치면, 면적으로 따졌을 때 48위인 뉴저지의 절반인 49위가 된다. 그 밑에 델라웨어로드아일랜드가 있다.
이곳에서 개발된 견종은 보리쿠안 마스티프가 있는데 견종의 목록 참고.
엘 윤케(El Yunque)산이라는 해발 2000미터의 산이 있다. 이 산의 푼타 델 에스텔 봉에는 미국 해군의 레이더 기지도 있고 나이트스토커, 델타 포스, 해병수색대, 네이비 실 등의 특수부대들도 산 속에서 자주 훈련한다.

7. 정치


이곳은 미국의 Unincorporated-Organized Territory, 즉 주로 편입할 생각이 없는 지역 중 하나다. 독자적인 자치의회와 정부수반(지사)을 선출하고 독자적인 사법부를 거느린다. 미국 대통령은 이 지역 지사에 임명장을 주는 역할만을 한다. 미국 영토이나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해외령이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자도 입국심사와 세관검사를 거쳐야 한다. 물론 미국 시민권자는 여권확인만 하고 프리패스이다.
1917년 이후로 푸에르토리코는 본토와 마찬가지로 출생한 모든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 #. 따라서 대통령 선거권이 있으나, 선거인단이 배정되어있지 않아 투표는 못 한다. 거주지를 주나 컬럼비아 특별구로 옮기면 투표가 가능하다(마찬가지로 본토 미국인이 여기로 주소를 옮기면 투표권이 봉인된다).[17] 현재는 미국 하원에 발언권만 있고 투표권이 없는 1명의 의원을 보내고 있다. 영문 명칭은 Resident Commissioner of Puerto Rico. 1901년부터 존재했으며, 일반적인 미 연방 하원의원들과 달리 임기가 4년이다.
미국 헌법상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헌법 영토 조항에 따라 미 의회의 총괄적인 권한 아래 있으며, 연방 차원에서 제정된 법률은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푸에르토리코에 적용된다는 점은 미국의 다른 주들과 같다. 이에 따라 미국 헌법의 상무·외교·영토·민사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로컬 레벨에서의 국제관계, 상업관계는 푸에르토리코 행정부에서 처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 파나마와 같은 히스파닉 아메리카 국가들과의 무역협정을 체결하기도 하며, 스페인 뿐만 아니라 워싱턴DC, 플로리다스페인어 사용인구가 많은 다른 주에 무역사무소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는 미 국무부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미국과 다른 국가간의 협정에 갈음하여 대부분 승인되는 편이다.
최근에는 지사인 리카르도 로세요텔레그램 뒷담화 스캔들로 인해 사임하고 그의 뒤를 이은 후임자가 승계 절차 미비로 대법원으로부터 취임을 취소당하는 등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기사 결국 후임으로 지명받은 페드로 피에를루이시 대신 완다 바스케스 가르세드가 13대 지사로 취임했다.
쿠바인들은 2015년 수교 전까지 미국 여행이 금지되어 있었고 푸에르토리코와 멕시코가 미국-쿠바 간의 중재지 역할을 해 왔다.
미국 다른 주들과 다른 특이한 권리로 푸에르토리코 시민권(Puerto Rican citizenship)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푸에르토리코인이 선천적으로 갖는 미국 시민권(U.S citizenship)과는 다른 개념으로 푸에르토리코인은 출생시 미국 시민권과 함께 푸에르토리코 시민권을 보유한다. 푸에르토리코 시민권은 푸에르토리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직후 미국 의회에서 부여한것으로(1900) 1917년, 푸에르토리코인이 미국 시민권을 부여받은 후에도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대다수 푸에르토리코인은 미국 여권을 쓰고 미국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때문에 잘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대외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받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 정부는 미국 시민권과 다른 개념의 푸에르토리코 시민권을 인정한다. 푸에르토리코 시민권자는 스페인 국적법상 이베로-아메리카인(Ibero-American)으로 인정되어, 거주요건(2년)만 인정되면 스페인 국적을 부여받고, 복수국적도 허용되는 파격적인 혜택[18]을 받는다. 스페인 국적을 취득한 푸에르토리코인은 4개 시민권[19]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7.1. 정당



정치적으로는 주 승격을 지지하는 중도우파 신진보당(PNP)과 자치령 지위 유지를 선호하는 리버럴 대중민주당(PPD)이 양당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소수정당으로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지지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푸에르토리코 독립당(PIP)이 있다.
다른 미국의 속령들과 달리 공화당민주당은 여기서 힘을 못 쓰지만, PNP와 PPD의 인사들은 본토의 주요 정당들과 연대 관계를 가진다. PNP는 개별 당원마다 제각각이고, PPD는 민주당과 관계를 가진 당원들이 많다.

7.2. 51번째 주 승격?


오래 전부터 미국의 51번째 주로 승격되는 게 어떠냐는 주장이 의회에서 돌았다. 실제로 미국에 51번째 주가 생긴다면 그것은 푸에르토리코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상당히 지배적. 하지만 푸에르토리코 입장에서 보면 승격되지 않은 채로 자치령으로 남는 정도로 충분히 이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1992년, 1998년, 2003년에 실시한 주민투표에서도 자유연합주로서의 현재 지위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미국으로의 편입을 원하는 의견보다 근소한 차로 우세하게 나타났다. 2004년의 지사 선거에서도 편입을 해야 한다는 후보가 0.2%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그러나 2008년 주지사, 의회선거에서 편입을 해야 한다는 후보가 당선되었고 의회에서도 신진보당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선거에서 드디어 미국에 편입하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인한 실책 때문인지 지사 선거와 의회 선거에서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후보와 정당(인민민주당)이 승리했다.[20]
만약 미국의 주가 된다면 하원 의원은 5~6명, 선거인단은 7~8명 정도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웬만한 미국 본토 주 못지않은 숫자로, 히스패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민주당의 텃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탐탁찮은 문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가 미국 주가 되면 연방정부로부터 한해 2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각종 지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경제적인 이유가 실업률이 높은 푸에르토리코 주민이 주 가입안에 찬성한 이유라고 한다.
주민들의 소득이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높지만, 미국 본토에 비해서는 크게 낮아 부담금의 지원이 들어가는 문제는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으로 봤을 때 녹록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리고 주민의 절대다수가 영어보다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현실도 미국에서는 이질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2012년 11월 6일 미국 본토에서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질 때 '''4번째'''[21] 주민투표가 시행되었는데,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로 가입하는 안이 가결되었다. 기사 미국 연방의회에서 이 주민투표 결과를 승인(인준)하고 법률을 제정, 정부에서 대통령의 서명을 통해 법률을 공포하면 2014년 1월 1일에 미국의 주가 된다고 했으나# 절차가 지연되었고, 끝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6월 11일 '''5번째''' 주민 투표가 시행되어 90% 이상이 찬성하였지만 주 편입 반대파들의 보이콧으로 투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 23%였다. 그리고 미 국무부도 투표 결과를 승인하지 않아 이번에도 51번째 주 승격은 물 건너 간듯하다.
그간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자는 주장은 1970년대부터 계속됐으나 늘 이런 식이라 이제는 다들 주기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로 취급한다. 미국이 되지 못한 대신 자치령으로서 최대한 연방 정부로부터 이득을 얻는 쪽으로 자리를 잡은 것.
뉴욕 양키스의 영구결번인 버니 윌리엄스는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등번호를 51번으로 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날에 대통령 선출 권한이 없는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자체적으로 주 승격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결과는 찬성이 5% 앞서서 이겼다. 게다가 찬성이 과반수를 넘었다.#
대통령 당선자인 조 바이든은 2020년 9월에 주승격을 지지한 바가 있다.#

7.3. 분리 독립 운동


주 승격론과는 반대로 푸에르토리코가 독립국이 되자는 분리주의 독립운동도 있다.
본래 푸에르토리코는 쿠바와 함께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던 곳이었다가, 미국-스페인 전쟁미국령으로 넘어간 지역이라서 미국과는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분리독립에 대한 논의가 있다. 1950년대에는 이게 아주 극성을 부려 해리 S. 트루먼 암살시도나 미국 의회에서 저격 소동 등의 테러 활동들이 펼쳐져 맹위를 떨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로는 주춤해졌고, 현재는 푸에르토리코가 독립해도 알래스카텍사스처럼 자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캘리포니아뉴욕처럼 산업기반이 탄탄한 것도 아니라서 경제적으로 더 나은 상황이 되기 힘든지라 독립 여론은 옛날에 비해 미미해졌다.
하지만 현재도 푸에르토리코 의회에서 여전히 독립당이 소수의석이나마 있고, 미미하게나마 아직도 독립운동과 시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8. 경제



2010년대 중후반엔 끔찍한 경제난을 겪기도 했다. 이 영상은 당시 푸에르토리코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존 올리버의 세그먼트.[22]
1인당 GDP가 3만 미국 달러스페인, 이탈리아남유럽 국가 수준까지 육박한다. 오히려 구매력 기준 GDP는 포르투갈보다도 높다. 주산업은 제약이나 전자 등의 2차산업이며, 따뜻한 날씨를 무기로 관광산업도 번창해있다. 의외로 1차산업 비중은 낮다.
카리브 해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전체 기준으로 부유하기는 하지만 미국 본토에 종속된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1인당 총생산을 보면 1930년대 말 이래로 타 라틴아메리카 국가보다는 부유하지만 미국 본토의 50개 주 중 가장 가난하다는 미시시피에도 못 미친다.
한편 빈부격차가 심하다. 지니계수2006년에 53.5로 한국보다 20 정도나 높다.
1970년대 중반기부터 1990년대 중반기까지 자치령에서 미국 기업이 생산한 물품에 대해 연방세를 면제하기로 법안이 적용되었고 이러한 특혜를 바탕으로 상당한 경제성장세를 보였지만 [23] 1990년대에 특혜법안이 폐지되면서 푸에르토리코로 진출했던 기업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며, 푸에르토리코의 경제는 말 그대로 활력을 잃어버렸고 기업들이 푸에르토리코에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푸에르토리코에 질 좋은 일자리들이 사라지면서 젊은층들은 미국 본토로 빠져나가고, 거기에 더해 저출산으로 인해 푸에르토리코의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가속화되었다. 그러면서 푸에르토리코의 경제는 좀체 불황에서 빠져나올 줄 몰랐고, 세수기반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그리고 2015년 6월 29일 채무불이행 사태가 터졌다. 푸에르토리코 행정관이 720억 달러에 달하는 공채의 상환 능력이 없다고 발언한 것. 공채 규모가 2012년 파산한 디트로이트보다도 4배나 크다고 한다. 결국 2015년 8월 푸에르토리코는 디폴트에 들어서게 되었다. 게다가 2016년 4월에는 행정관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경제적으로는 거의 망하기 직전에 처했다. 게다가 속령이기 때문에 연방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지도 못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결국 2017년 5월 3일, 사실상의 파산보호를 연방법원에 신청했다. 이렇게 2010년대가 제일 심각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2018년 이후로는 점차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2018년도 실업률이 1970년대 이후 최저수준이 되었다. 물론 그 낮다는것도 미국내 다른 지역보다는 높지만 그래도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뜻하고 있기는 하다. 그 전해인 2017년 9월 허리케인 마리아가 습격한 이후에는 기본시설이 불안정했다. 이 때는 푸에르토리칸들도 미국 시민권자들이기에 영어가 되는 사람들은 거의 미국본토로 일시적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영어가 안되는 사람들조차 히스패닉 인구가 상당해 스페인어가 어느 정도 통하는 곳으로 원래 스페인 땅이던 서남부 및 동남부나 역시 푸에르토리칸이 많이 사는 뉴욕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부터는 푸에르토리코 경제사정이 나아지면서 영어도 안 되고 직장 잡기도 힘들던 이주민들은 대거 귀향했다. 미국 중앙정부가 경제난을 겪는 푸에르토리코 정부에 대대적인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9. 관광


푸에르토리코는 과거에 400년 동안 스페인 제국의 지배를 받아 왔기 때문에 현재도 산후안스페인인들이 세운 도시와 항구, 성벽, 요새가 남아 있다. 이 유적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또한 카리브 해에 위치한 곳답게 해변 휴양지로 유명하며 열대우림 관광도 유명하다.
특히 카리브 크루즈는 꼭 정박할 정도로 유명한 피한지이자 휴양지로 미국인들은 대게 푸에르토리코를 한국에서 푸켓이나 발리, 세부를 생각하듯 휴양지로 여긴다. 그래서 한여름인 7-8월과 추위가 심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이 섬으로 갈려는 미국인들이 줄을 선다.
단점이라면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산후안 같은 대도시가 아니면 영어가 통하지 않을 수 있어서 한국에서 가기에는 언어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에 거리가 너무나 멀다. 미국령이니까 미국을 통해 들어가는 것까진 당연하지만 문제는 미국 어지간한 대도시에서도 이 섬까지 5-6시간은 기본으로 걸리며 환승 등을 할 경우 환승시간까지 감안하면 거의 24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미국 ESTA를 받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후 미국령들의 입국도 까다로워져서 여기 들어올때도 입국심사가 걸리적거린다.

10. 언어


미국의 자치령이지만 2020년 기준 인구의 '''99.0%'''가 모어로 스페인어를 쓰며[24] 2005년-2009년의 경우 인구의 85%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진 못한다고 한다.
관광지나 대도시는 영어가 통한다. 그러나 스페인어식 발음을 하며, 저학력자나 시골 사람들은 잘 못 한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쓰이는 스페인어카리브 해 쪽인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등의 스페인어와 관련이 깊은 편이다.
푸에르토리코는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방언이 존재하는데 -r로 끝나는 단어가 미국의 -l 발음으로 되기도 하고 굴림 r의 발음의 경우 스페인어 j와 발음이 똑같아 지기도 한다. 또한 s의 발음이 경우에 따라 약해진다. 예를 들어 Calor이 Calol, Gusta 가 Guhta, Correr가 Cojer 처럼 발음 된다.

11. 관계




11.1. 스페인과의 관계




11.2. 미국과의 관계




12. 푸에르토리코 한인


푸에르토리코 한인회가 있다. 푸에르토리코한인회 [25]

13. 군사 및 치안


군사적으로 미군 소속인 푸에르토리코 주방위군[26]이 있고 연방군에 속하지 않는 주방위대(State defense force)도 갖고 있다.
경찰로는 푸에르토리코 경찰이 있으며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처럼 스페인어로 경찰을 뜻하는 폴리시아(policia)라고 부른다. FBIDEA도 지국을 두고 있어 수사관이 본토의 워싱턴 D.C에서 직접 파견된다.
소방 업무는 푸에르토리코 소방국(Bomberos de Puerto Rico)에서 맡고 호출 번호는 미국 본토처럼 911이다. 미 본토처럼 구급차가 유료이며 적십자(Cruz roja)에서 운영하고 소방대가 초기 응급처치를 맡는다. 소방대의 임무는 구급 초기대응, 각종 사고 시 인명 구조, 화재 예방 및 진압, 각종 재해구호 등이 있다. 푸에르토리코 소방국은 1986년 산후안 드봉 호텔 대형화재, 1996년 푸에르토리코 가스 폭발 사고 등 각종 재난에 대처한 적 있다.
법정 미국 시민으로서 푸에르토리코인은 미 연방군에 입대할 수 있다. 스페인 제국 시절에는 나폴레옹 전쟁,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등 스페인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했지만, 1898년 이래 미군의 일원으로 제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27]베트남, 걸프, 이라크 전쟁 등 미국이 주도한 작전에 많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자들이 참여해왔다.


14. 기타


2015년, 푸에르토리코 '''자치 정부'''가 지난 몇 해 동안 "무상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허위 사실로''' 관내 마약 중독자들을 꼬드겨, 이들을 미국 본토에 산재해 있는 무허가 '재활 기관'에 보내 놓고는 사후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영어 주의). 이들 비인가 재활 기관은 관내 수용자들을 생계비 지원 대상자로 등록시킨 후 그 보장 비용을 부당하게 빼먹어왔다.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이 치료는커녕 식사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열악한 시설에서 도망쳐나와 시카고뉴욕 시 등지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나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그 실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다. 특히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이를 '복지 정책'이란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홍보해 왔다는 점이 확인되어 논란을 키웠다. 이 환자들은 당연히 푸에르토리코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여권만 달랑 가지고 온 신세라 돈이 없다. 영어도 못 한다. 차라리 불법체류자라면 본국으로 추방이라도 당할 수 있겠다만 이들은 미국 시민이니 추방당할 수도 없다. 게다가 마약에 쩔어 있다. 그야말로 공중에 붕 뜬 셈이다.
섬의 중서부에는 한때 세계 최대의 전파 망원경으로 꼽혔던 아레시보(Arecibo) 전파 망원경 및 천문대가 위치해 있었다. 아레시보는 전파망원경이 위치한 동네의 지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후화로 인해 57년만에 해체한다고 했으나 철거를 시작하기 전에 결국 붕괴됐다.#
푸에르토리코 자치 정부는 미국 연방정부가 투계 금지령을 발효하기 전에 투계를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
캐럴송의 베스트 셀러 Feliz Navidad스페인어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의미로 1970년, 푸에르토 리코 출신 맹인가수인 호세 펠리시아노(José Feliciano)가 불렀다.

15. 출신 인물


(출생지가 푸에르토리코인 인물)

16. 둘러보기




[1] 성경 루가의 복음서 1장 63절, 아기 세례자 요한을 명명하는 장면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섬 이름을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 성 요한 세례자)로 명명한 데서 유래해 이 구절을 표어로 삼았다. 현재도 푸에르토리코의 수도이자 최대도시 이름이 산후안이다.[2] 푸에르토리코에는 카운티가 없이 기초자치단체 개념인 municipio / municipality가 최상위 행정구역이다.[3] 다른 라틴 아메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혼혈인들도 차별을 피하기 위해 자체 조사에서 스스로를 백인으로 체크하는 경우가 많다. 1765년 조사 당시 39.2%가 백인이었다.[4] 푸에르토리코는 태생적 권리로서 자치를 보장받은 미국의 주들과는 달리 연방정부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아(devolution) 자치를 행한다. 그래서 명목상 국가원수는 미국 대통령이지만 주민들이 직접 뽑은 지사가 실질적으로 통치를 하며 미국 대통령은 그저 지사에 임명장을 주는 역할만 한다.[5] 연방 하원에 파견되는 의원. 다른 연방 하원의원과 거의 같은 권한을 지니지만 표결권이 없다. 연방 하원에서는 공화당 소속으로 활동한다.[6] 국기 모양이 비슷한 데서도 알 수 있지만, 이 동네는 인구 구성 면에서나 문화 면에서나 쿠바와 밀접한 관계다. 쿠바인은 법률상 미국의 적국으로 미국 여행 금지 대상이었으나 푸에르토리코는 자유롭게 드나드는 게 허락되었고, 그래서 현재도 양측 교류가 많다. 어찌보면 미국-쿠바 간 중재지인 셈이다.[7] 원래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 원어에서 띄어 쓴 말은 띄어 쓴 대로 한글 표기를 하되, 붙여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 지명은 외래어 표기 용례집을 따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붙여서 적음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붙여 쓰는 것이다. 쉬운 예시로, 뉴욕로스앤젤레스 역시 같은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세인트루시아, 파푸아뉴기니, 카보베르데 등의 국명도 마찬가지다. 다만 'and'가 들어가는 국명은 띄어 적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상투메 프린시페,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그 예다.[8] 사실 한반도 본토와 제주도 간 거리와 비슷한 게 플로리다와 쿠바 사이다.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사들인 후 쿠바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애초 미서전쟁의 원인부터 미국이 호세 마르티가 시작한 쿠바 독립운동을 도와줄려고 발 뻗치다가 스페인과 충돌한 것이다. 이 때 미국은 쿠바 전선이 싱겁게 끝나자 이제는 중국으로 가는 관문인 영국령 홍콩과 가까운 필리핀도 같이 집어먹었다.[9] 쿠바는 초기 히스파니올라 식민지의 중심지로 쓸 만큼 땅 크기가 넓고 기후도 좋은 편이다.[10] 유럽 각국이 미국이 쿠바 집어먹는 꼴은 못 보겠다며 반발할 게 뻔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유럽세가 쇠퇴해도 미국 같은 근본없는 신흥국가가 신대륙의 유럽 식민지를 대놓고 마구 집어먹는 꼴은 못 봤던 것이다. 결국 미국은 유럽국가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19세기면 현재 미합중국 해군항공모함 전단 및 이로 투사되는 미합중국 해병대 원정군 같은 강력한 해군력을 갖지도 못했고 핵무기도 없던 시절이다.[11] 쿠바는 대신 미국의 보호국 신세로 전락했으며 1962년 쿠바 혁명 이전까지 쿠바는 사실상 미국 식민지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미국인들도 쿠바에서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다고 믿었을 정도였다. 피델 카스트로가 처음 혁명을 시도했을 때 본인이 사회주의자였음에도 민족주의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쿠바를 속국으로 취급하던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때문이었다.[12] 카리브 해는 유럽세가 신대륙으로 오는 길목이라 이 섬을 비롯한 섬 몇개만 미국이 가져도 제해권을 확실히 잡고 유럽세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지라 먼로 독트린 이후 유럽세의 아메리카 개입을 차단해오던 미국에게 이 푸에르토리코 섬은 꼭 필요한 곳이 되었다.[13] 2011년에는 푸에르토리코의 1인당 소득 대비 88.9%가 공공부채인 것으로 집계되었다.[14] 여기에 약간의 시리아, 레바논, 수단,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다.[15] 출생아수를 봤을 때 2020년은 0명대로 추정된다.[16] 다만 최초의 푸에르토리코 사람은 아니다. 미국 대표로 금메달을 딴 푸에르토리코 선수가 전에 있긴 했다.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도 이 선수를 '최초로 푸에르토리코를 대표하여 금메달을 딴 푸에르토리코 사람'으로 언급한다.[17] 1917년 이전에는 미국 '국민권'을 부여했는데 이들은 국민이지만 미국 시민이 아니라 미국 본토에 거주해도 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이 없었다.[18] 스페인 국적을 받게 되면 독일을 위시한 유럽연합 소속 선진국에 '''아무런 제한 없이 거주 및 취업이 가능'''하며, 브렉시트 이전에는 영국에서도 이것이 가능했다.[19] 미국 시민권, 푸에르토리코 시민권, 스페인 시민권, 유럽연합 시민권(스페인 국적 취득시 자동 취득)[20] 자치주를 제창하는 당은 인민민주당 (Partido Popular Democrático de Puerto Rico). 주 편입을 제창하는 당은 푸에르토리코 신진보당(Partido Nuevo Progresista de Puerto Rico)이다.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당인 푸에르토리코 독립당(Partido Independentista Puertorriqueño)도 존재한다.[21] 1967년1993년, 1998년.[22] 마지막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해밀턴린 마누엘 미란다가 직접 나와 구제를 호소하는 랩까지 한다.[23] 1976년 IRS 936에 의한 면세혜택으로 미 본토 업체가 푸에르토리코 소재 은행에 자금을 예치하거나 다른 형질의 자산을 이동하는 경우 혜택을 주었다. 1998년 푸에르토리코로의 직접 투자는 '''108억 달러.'''에 이르렀다.[24] 간판에 적혀있는 언어도 스페인어가 대부분이며, 두 언어를 함께 쓰는 경우에는 주로 스페인어를 위에, 영어를 아래에 표기한다.[25] 현재 푸에르토리코 한인 커뮤니티 내에서 문제가 발생중인 듯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를 참조하자. 푸에르토리코 신삼용 관련글[26] 스페인어로 과르디아 나시오날 데 푸에르토리코(Guardia Nacional de Puerto Rico), 영어로는 푸에르토리코 네셔널 가드(Puerto Rico National Guard)로 불린다.[27] 보린케니어스(Borinqueneers)라 불린 미육군 제65연대의 활약이 유명하다. 한국전쟁 기간 61,000명에 이르는 푸에르토리코인이 미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28] PR Balrog로 알려져 있는 EG의 유명한 스파4 프로게이머[29] 푸에르토리코 태생의 미국인으로 라틴계가 아닌 게르만 혈통의 전형적인 백인이다. 이름인 호아킨만 스페인어에서 유래했을 뿐 스페인 혈통이 아니다. 종교적으로도 무신론으로 가톨릭이 아니다. 푸에르토리코인의 주류 종교는 80%를 차지하는 가톨릭이다.[30] Feliz Navidad의 작사, 작곡가[31] 대표적인 곡으로 조회수 약 20억회의 ‘Calma’ 가 있다. 그러나 조회수 20억회의 곡은 원곡이 아닌 파루코(구독자 약 1,210만명)와 함께한 리믹스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