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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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진나라(晉)의 제11대 황제이자, 동진(東晉)의 제7대 황제. 자는 연령(延齡).
2. 생애
2.1. 즉위 이전
사마혁은 함강 8년(342년)에 태어났으며 애제 사마비의 친동생이었다. 사마혁은 한 살이 되는 해에 동해왕(東海王)이 되었다가, 승평 5년(361년) 5월에 낭야왕에 책봉되었다.
2.2. 황제 즉위
흥녕 3년(365년) 2월, 애제 사마비가 사망하자 후사가 없어 사마혁이 뒤를 이었다. 실권자였던 대사마 환온은 자기의 재략과 성망을 믿고 북벌을 행해왔으나, 결국 모두 실패했다. 일찍부터 반역의 뜻을 품고 베개를 어루만지면서 '대장부로서 후손에게 이름을 전하지 못할 바에는 악명을 천추에 남기는게 낫다!'라면서 북벌을 통해 명망을 높이고 권력을 강화해 찬탈을 꿈꿨지만 북벌이 시망해서 다른 방법으로 바꿨다.
2.3. 폐위
태화 6년(371년), 환온은 사마혁을 폐위하기 위해 사마혁의 흠집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사마혁이 워낙 신중하고 꼼꼼해서 찾지 못했다. 결국은 사마혁의 잠자리 문제를 이용했는데 '황제는 일찍부터 중풍이 있어 여인들은 총애를 못 받고 침실에서 시중들던 전씨, 맹씨 등이 다른 남자에게서 세 아들을 낳아 황제로 만들 것이다'라는 루머를 퍼뜨렸다. 저태후는 진위도 알아내지 않고 사마혁을 남색가 내지 고자로 몰았다. 같은 해 11월, 재위 7년 만에 폐위시켰다.
2.4. 폐위 후의 삶
함안 2년(372년) 정월(1월), 폐위가 된 이후 해서현공(海西縣公)으로 강등되었다. 4월에 오현으로 유배보냈다. 사마혁은 이미 형세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화를 면하기 위해 두문불출하며 밤낮 술과 여자에 빠져 지냈다.
태원 11년(386년), 폐제 사마혁은 45세의 나이로 오현에서 사망했다. 사실 환온이 퍼뜨린 소문은 다 헛소리였으며, 사마혁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3. 둘러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