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동진)

 


<colbgcolor=#800080><colcolor=#ece5b6> '''동진 제7대 황제'''
'''顯宗 成皇帝 | 현종 성황제'''
'''묘호'''
'''현종(顯宗)'''
'''시호'''
성황제(成皇帝)
'''연호'''
함화(咸和, 326년 2월 ~ 334년)
함강(咸康, 335년 ~ 342년)
'''출생'''
321년
'''사망'''
342년 (21세)
'''재위'''
'''동진의 황제'''
325년 ~ 342년 (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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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ece5b6> ''''''
사마(司馬)
''''''
연(衍)
''''''
세근(世根)
'''부모'''
부황 명제(明帝) 사마소(司馬紹)
모후 명목황후(明穆皇后) 유문군(庾文君)
'''황후'''
성공황후 두릉양(成恭皇后 杜陵陽)

1. 소개
2. 생애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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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진나라(晉)의 제7대 황제이자, 동진(東晉)의 제3대 황제. 묘호는 현종, 시호는 성황제. 휘는 연(衍). 자는 세근(世根).

2. 생애


대흥 4년(321년)에 명제 사마소와 유문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녕 3년(325년) 3월 태자가 되었고, 윤8월, 5살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유태후가 섭정하고 사도 왕도, 중서령 유량[1], 상서령 변호가 보좌했다. 왕도는 관대하고 화합하는 정치를 해서 여전히 인심을 얻었으나, 유량은 독단으로 결정하여 모든 대사를 혼자 처리했다. 역양내사 소준은 동진의 공신이었고 성망이 매우 높았으며 10,000명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 장비가 우수해서 자기의 힘이 강해지자 이전에 있었던 조정에 대한 불만과 함께[2] 교만하고 방자해져서 조정을 우습게 봤다. 유량은 그의 반역을 눈치채고 대사농으로 임명하여 병권을 뺏으려고 했으나, 소준은 무시했다.
함화 원년(326년), 유량은 소준의 친한 벗이엇던 남돈왕 사마종을 살해했다.
함화 3년(328년), 결국 소준은 예주 자사 조약과 함께 유량 토벌을 명분으로 건강에 쳐들어가 강제로 사마연을 석두성으로 데려갔다. 사마연은 울면서 가마에 올랐고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통곡했다. 사마연은 석두성 곳간에 감금되었는데 소준이 자주 와서 그에게 악담과 야유를 날렸으나, 사마연은 태연히 책을 읽었다. 유량은 심양으로 도주하여 강주자사 온교, 서주 자사 치감[3], 정서 대장군 도간[4]과 함께 소준을 토벌했다.
함화 4년(329년) 2월, 소준의 난이 평정되고 사마연은 구출되었으며 여러 대신들은 사마연 앞에서 통곡했다.
사마연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넓었다. 6살 때 남돈왕 사마종이 죽은 줄 몰랐던 사마연은 유량에게 '평소 그 머리가 흰 어르신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으니 유량은 모반을 꾀하다가 죽었다고 답했다. 이에 사마연은 눈물을 흘리며 '외숙부가 다른 사람을 역적이라 죽인다면 남이 외삼촌을 역적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유량은 대경실색했다. 유량의 동생이엇던 유역이 사소한 일로 강주 자사 강윤지에게 술을 보냈는데 강윤지는 의심스러워서 개에게 먹이니 개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 일로 사마연은 화가 나서 '큰 외숙부(유량)가 이미 천하를 망쳤는데 작은 외숙부(유역)도 그렇게 하실 겁니까?'라고 질책하니 유역은 겁을 먹고 자살했다.
사마연은 성인이 되자 정사에 힘을 기울이고 법률을 간소화했다. 궁중 동산 내에 활터를 만들려고 했는데 황금 40냥이 들어야 했으므로 스스로 포기했다.[5]
함강 8년(342년) 6월, 사마연은 재위 18년 만에 불과 '''2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7월에 흥평릉에 안장되었다.

3. 둘러보기




[1] 사마연의 모친 유문군의 오빠로 사마연의 외삼촌[2] 사마예 때 북벌을 건의했다가 튕겼다.[3] 참고로 그의 고조부가 후한 어자중승으로 공융을 죽이는데 이바지한 치려다.[4] 그의 증손자가 전원 시인으로 유명한 도연명이다.[5] 그래도 명색이 일국의 황제라는 사람이 고작 이 정도의 돈 때문에 활터를 만들지 못했을 정도로 나라의 경제 상황이 막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