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코르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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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식 포드 코르세어 V4. 당시로서는 상당히 예외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Ford Corsair'''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 모터 컴퍼니의 영국 지사 및 호주 지사가 판매한 중형차의 명칭이다.[1]
1963년 10월, 영국 포드에서는 런던 모터쇼를 통해 포드 컨설 코르세어(Consul Corsair)라는 명칭의 새 중형차를 공개했다. 1964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이 차는 4도어와 2도어 세단, 왜건이 주요 라인업이었고, 비슷한 시기의 포드 선더버드와 유사한 앞모습 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2] 포드 코티나를 기반으로 휠베이스를 늘리고 앞뒤 스타일링을 손본 차량으로서, 코티나 대비 고급 라인업으로 자리잡았으며 처음에는 카뷰레터가 1개 설치된 1498cc 60마력 켄트 엔진을 장착했다.
1965년 3월에는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코치빌더 회사인 E. D. Abbott Ltd가 제작한 왜건 버전이 출시되었으며, 크레이포드(Crayford)에서는 3리터 에섹스 V6 엔진 개조 옵션을 제공하거나 4~5인승 컨버터블 사양을 100대 생산하기도 했고, 그 중 18대는 독일의 Karl Deutsche와 기술제휴를 맺고 만들어졌다. 컨버터블 버전은 현재 75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 독일 회사와 제휴하고 만든 차량은 4대 정도만 남아 있다.
1965년 9월에는 73마력짜리 1663cc 포드 에섹스(Essex) V4 엔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고, 1966년에는 1996cc 93마력 버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V4 엔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차량 명칭도 단순한 '포드 코르세어'로 바꾸었고, 홍보 카피도 "어디선가 봤지만 들어보진 못한 차(The Car That Is Seen But Not Heard)", "보닛 안에 V형 엔진을 얻었습니다(I've got a V in my bonnet)"와 같이 만들어 홍보했는데, 고급차에 쓰기에는 정숙성이 워낙 떨어지는 편이라 당대에는 큰 호흥을 얻진 못했다. 그 대신 당시로서는 성능이 꽤 좋았던 편이라, 1996cc 버전은 최고시속 약 180km/h에 가속 시간도 예외적인 수준이었다.
1967년에는 포드 코티나와 함께 고급화 사양이 추가되어, 2000E라는 이름으로 전용 휠캡과 후진등, 비닐 지붕 마감, 개선된 실내 마감, 전용 문 손잡이가 적용되었고 당시 가격은 로버 2000과 험버 셉터 등의 같은 시기 4기통 고급차들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1970년대 3세대 코티나와 통합되어 단종될 때까지 31만 대의 코르세어가 만들어졌으며, 이들 중 약 350대 정도가 현역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3] 초기에는 영국의 해일우드(Halewood)에서 생산했다가 1969년부터 대거넘(Dagenham) 공장으로 생산지를 옮겼으며, 독특한 외모와 희소성 때문에 클래식카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포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프로젝트 마틸다(Matilda)"라는 이름 하에 포드 텔스타[4] 의 후속으로서 일본차 기반의 새 중형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호주에서는 자국의 제조업 진흥을 위해 "Button Plan"이라는 이름 하에 일본 업체들과 호주 업체들이 차량을 같이 판매하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닛산과 손을 잡게 된 포드에서는 닛산 핀타라(Pintara)[5] 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으로서 코르세어의 이름을 다시 사용했다.
호주의 클레이턴(Clayton)에서 생산되어 4도어 세단과 5도어 리프트백 차체로 판매되었으며, 2리터 CA20E나 2.4리터 KA24E 4기통 엔진을 얹고 GL이나 기아(Ghia) 트림으로 판매했다. 포드에서는 2세대 코르세어를 판매하는 동시에, 일본제 텔스타는 고성능 해치백인 TX5만 호주에 수입 판매했으며, 1992년에 닛산이 클레이턴 공장을 폐쇄하면서 텔스타가 다시 코르세어의 자리를 대신했고, 1995년부터는 텔스타 대신 몬데오를 수입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0년식 포드 코르세어 V4. 당시로서는 상당히 예외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Ford Corsair'''
1. 개요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 모터 컴퍼니의 영국 지사 및 호주 지사가 판매한 중형차의 명칭이다.[1]
2. 역사
2.1. 1세대 (포드 컨설 코르세어/코르세어 V4, 1964~1970)
1963년 10월, 영국 포드에서는 런던 모터쇼를 통해 포드 컨설 코르세어(Consul Corsair)라는 명칭의 새 중형차를 공개했다. 1964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이 차는 4도어와 2도어 세단, 왜건이 주요 라인업이었고, 비슷한 시기의 포드 선더버드와 유사한 앞모습 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2] 포드 코티나를 기반으로 휠베이스를 늘리고 앞뒤 스타일링을 손본 차량으로서, 코티나 대비 고급 라인업으로 자리잡았으며 처음에는 카뷰레터가 1개 설치된 1498cc 60마력 켄트 엔진을 장착했다.
1965년 3월에는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코치빌더 회사인 E. D. Abbott Ltd가 제작한 왜건 버전이 출시되었으며, 크레이포드(Crayford)에서는 3리터 에섹스 V6 엔진 개조 옵션을 제공하거나 4~5인승 컨버터블 사양을 100대 생산하기도 했고, 그 중 18대는 독일의 Karl Deutsche와 기술제휴를 맺고 만들어졌다. 컨버터블 버전은 현재 75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 독일 회사와 제휴하고 만든 차량은 4대 정도만 남아 있다.
1965년 9월에는 73마력짜리 1663cc 포드 에섹스(Essex) V4 엔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고, 1966년에는 1996cc 93마력 버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V4 엔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차량 명칭도 단순한 '포드 코르세어'로 바꾸었고, 홍보 카피도 "어디선가 봤지만 들어보진 못한 차(The Car That Is Seen But Not Heard)", "보닛 안에 V형 엔진을 얻었습니다(I've got a V in my bonnet)"와 같이 만들어 홍보했는데, 고급차에 쓰기에는 정숙성이 워낙 떨어지는 편이라 당대에는 큰 호흥을 얻진 못했다. 그 대신 당시로서는 성능이 꽤 좋았던 편이라, 1996cc 버전은 최고시속 약 180km/h에 가속 시간도 예외적인 수준이었다.
1967년에는 포드 코티나와 함께 고급화 사양이 추가되어, 2000E라는 이름으로 전용 휠캡과 후진등, 비닐 지붕 마감, 개선된 실내 마감, 전용 문 손잡이가 적용되었고 당시 가격은 로버 2000과 험버 셉터 등의 같은 시기 4기통 고급차들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1970년대 3세대 코티나와 통합되어 단종될 때까지 31만 대의 코르세어가 만들어졌으며, 이들 중 약 350대 정도가 현역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3] 초기에는 영국의 해일우드(Halewood)에서 생산했다가 1969년부터 대거넘(Dagenham) 공장으로 생산지를 옮겼으며, 독특한 외모와 희소성 때문에 클래식카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2.2. 2세대 (포드 코르세어, 1989~1992)
포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프로젝트 마틸다(Matilda)"라는 이름 하에 포드 텔스타[4] 의 후속으로서 일본차 기반의 새 중형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호주에서는 자국의 제조업 진흥을 위해 "Button Plan"이라는 이름 하에 일본 업체들과 호주 업체들이 차량을 같이 판매하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닛산과 손을 잡게 된 포드에서는 닛산 핀타라(Pintara)[5] 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으로서 코르세어의 이름을 다시 사용했다.
호주의 클레이턴(Clayton)에서 생산되어 4도어 세단과 5도어 리프트백 차체로 판매되었으며, 2리터 CA20E나 2.4리터 KA24E 4기통 엔진을 얹고 GL이나 기아(Ghia) 트림으로 판매했다. 포드에서는 2세대 코르세어를 판매하는 동시에, 일본제 텔스타는 고성능 해치백인 TX5만 호주에 수입 판매했으며, 1992년에 닛산이 클레이턴 공장을 폐쇄하면서 텔스타가 다시 코르세어의 자리를 대신했고, 1995년부터는 텔스타 대신 몬데오를 수입 판매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