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젠더리즘

 



1. 개요
2. 포스트젠더리즘과 성별적 주의
3. 같이 보기


1. 개요


과학기술을 통해 젠더 이분법 체계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사실 현대에도 기술적으로는 불완전하게나마 중성이나 양성으로의 성전환 수술이 이론상 가능하지만 뉴트로이스가 아닌 한 제3의 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신체의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1] 지정성별의 생식능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완전히 트랜지션을 할 수도 없고, 원하는 성별의 생식능력을 가질 수도 없는 실정이다. 현재 제3의 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뉴트로이스 들은 대부분 성기를 아예 제거하고 있다.
포스트젠더리즘이 완전히 실현될 경우 완전한 성전환 수술이 가능해지고 임의적인 중간성별로의 성전환이 가능해질 뿐 아니라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의 구별은 물론 젠더의 구별이 해체되며 2세를 가지기 위해서 생식기관을 신체에 달고 있을 필요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

2. 포스트젠더리즘과 성별적 주의


포스트젠더리즘이 실현된 사회가 '거세'하는 것에는 단순히 각 개인의 성별뿐만 아니라 '성별의 사회적 권력' 또한 포함된다.[2] 이는 여성주의, 남성주의는 어쩔 수 없이 파괴됨을 의미한다. 만약 포스트젠더리즘의 시대에 여성주의, 남성주의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성별에 대한 교체 거부를 의미하므로 포스트젠더리즘에 대한 저항으로만 연결되지 이에 반발이 있다면 다른 성별로 전환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무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윤리적/사회적 문제 이전에 기술적으로만 봐도 가까운 시기 이내에 포스트젠더리즘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은 낮으므로(성별트랜지션이 그렇게 간단한 수술이 아닐 뿐더러 어떤 성별로의 전환수술(MTF/FTM)이던 현재에는 생식능력은 포기하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자) 결국 성별의 사회적 권력이 계속해서 이슈가 될 것이다.
자, 현재와 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옹호가, (여러 부정적인 관점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문제로 놓아두자) 그 중의 하나인 여성주의가 사회적인 세력을 얻고 이에 대한 반발 또한 거세지고 있는, 성별적 갈등이 완전히 수면 위로는 떠오르지 않지만[3]분명히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트젠더리즘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고 하자. 과연 여성주의, 남성주의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포스트젠더리즘의 수술을 받을까? '그들이 약자라 주장했으니 강자로 먼저 수술되어라'는 조롱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쉽게 수술받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주의, 남성주의는 결국 '여성으로서',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지위 개선을 원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일부 행동주의자들은 한 번 해보자며 상대 성별로의 전환을 할 지 몰라도, 결국 여성주의, 남성주의의 '염원'을 '''포스트젠더리즘이 풀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슐라미스의 경우 같은 래디컬 계열이라면 그들에게 짊어진 낙인-즉 성기-을 떼어낼 수 있으므로 환영할 만한 변화라고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게 변화한 후에 주장하는 것은 '성별적 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한편 '중립적'인 대중, 남성과 여성에 대해 크게 치우치지 않는 평균적인 성별 인식관을 가진 사람들의 여론은 포스트젠더리즘에 대해 어디에 향할까? 찬성일까, 반대일까? 성별적 권력이 극단적인 국가라면 찬성일 가능성이 높지만, 성별적 권력 자체가 한 국가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현재의 시대가 약자들을 위하는 시대이고 정치인들도 이를 다수 고려한다 해도, 중립적인 대중이 이것만으로 완전한 성별적 거세를 자청할까? 성별적 거세가 거세하는 것은 성별의 사회적 권력뿐만 아니라 '성별에 의한 사고' 자체에 이른다.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것,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무성애는 이 문제에서는 약간 거리감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미룬다.)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포스트젠더가 포스트젠더를 사랑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중립적인 대중이 가지고 있던 이성이 허락한다 하더라도 감성 또한 허락할까? 이는 시대가 더 지나고 기술적으로 포스트젠더리즘이 성립되는 시대가 가까워서야 이야기 가능한 문제가 될 것이다.

3. 같이 보기



[1] 제3의 성이라서 수술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트랜스여성의 경우에 고환을 뱃속에 집어넣는식의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경우가 존재한다. 또 트랜스남성이 내성기를 제거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후타나리물처럼 음경음순을 다 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실제 그런 수술을 받은 경우는 없지만, 남성의 외성기와 여성의 외성기를 모두 달려면 음경을 제거하고 회음부에 질을 만들면 가능하긴 하다.[2] 혹자에게는 페미니즘 서적 중에서도 문제작으로 대립각이 특히 날카로워지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저서 <성의 변증법>에서 '인공자궁은 여성의 역할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 한 것과 연결되어 보이겠으나 포스트젠더리즘이 추구하는 바는 이렇게 단순히 생식적인 역할을 해방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역할과 의무 '모두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3] 여기서 완전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 논의 부족, 정치적 논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슈보다도 중요한 제1의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투표권에 대한 시위가 일어나던 시대는 구체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시대이지만, 현재와 같이 '여성의 권익이 필요하다'는 구호 하나로 상황(여성이 피해입는 상황 하나하나)에 맞추어 전개되는, 목표가 일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념 지향성과는 별개로) 정치적 시위들 등이 적어도 수면 위로는 떠올랐다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