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랜드

 

'''폴 랜드
Paul Rand'''
'''출생'''
1914년 8월 15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사망'''
1996년 11월 26일, 미국 코네티컷 노워크
'''국적'''
미국 [image]
'''학력'''
프랫 인스티튜트 (1929-1932)
파슨스 디자인 스쿨 (1932-1933)
아트 스튜던트 리그 (1933-1934)
'''직업'''
그래픽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교수
'''가족'''
'''부모'''
이작 예후다 로젠바움, 레아 로젠바움
'''배우자'''
앤 빙클리 (1949~1960)
마리온 스와니 랜드 (1975~1996)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상세
3. 생애
4. 평가
5. 기타


1. 개요


미국의 디자이너.

2. 상세


미국 그래픽 역사상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로 세계적로 유명한 IBM, ABC 방송국, CBS 방송국, UPS 등 다수의 기업 로고를 디자인했으며 세계의 그래픽 디자인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반 세기동안 광고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부터 광고 디자인, 기업 아이덴티티, 타이포그래피 등 훌륭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많이 선보였다. 특히 트레이드 마크색깔의 다양성, 심볼의 역할, 포장 디자인과 정치 디자인에서의 유머는 그가 평생을 탐구해왔다.

3. 생애


'''학교에서 작업하고 있는 폴 랜드'''
1914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프랫과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공부했다. 여기서 그의 경력을 4번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35년, 23세 나이에 에스콰이어의 아트디렉터로 일하면서 첫 번째 경력이 시작되었다. 이때 폴 랜드는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과 타이포그래피를 19세기 문자에 결합한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이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모더니즘, 기발함과 단순함에 열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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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Jacqueline Cochran의 잡지 광고'''
'''1945년, 와인회사의 광고[1]'''
두 번째는 1941년 에스콰이어 아트디렉터를 내려놓고 광고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소비자가 그들의 지식을 활용해서 광고 메시지를 해독하고 이해한다'는 소위 New Advertising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창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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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컴퓨터 회사 IBM'''
'''스티브 잡스가 세운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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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방송국 ABC'''
'''미국의 물류회사 UPS'''
세 번째는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세기의 유명 로고를 제작하는데 바로 IBM, ABC 방송국, CBS 방송국, UPS 등의 로고 디자인이다. 이 로고는 디자인 역사상 큰 획을 그은 로고로 단순함이라는 기초에 충실하고 눈에 잘 띄며 각 기업의 컨셉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로고의 상당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1993년, '디자인, 형태 그리고 혼돈''''
'''1996년, '라스코에서 브루클린까지''''
그의 네 번째 경력은 Cooper Union에서 교육자로서 시작되었는데 예일대학교에서 1956년부터 1993년까지 그래픽 디자인 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교육기관 및 유명 디자인 관련 기관에서 수없이 많은 상을 수상받았고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 저서를 쓰기도 했다.
1996년 사망하기 바로 직전까지 강의세미나, 전시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4. 평가


폴 랜드를 천재라고 평가했던 뉴바우하우스의 라즐로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는 폴 랜드에 대해 "시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자, 사업가이상주의자인 동시에 현실주의자이다. 폴 랜드는 필요(need)와 기능적(function)인 견지에서 생각한다. 그는 그의 문제를 분석할 수 있지만 그의 환상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물론 안 좋은 평도 있다. '극단적인 모더니스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주의자'. 심지어 그의 애제자였던 제시카 헬펀드는 그를 '성급하고 용서없고 견디기 힘든 사람'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오만함, 완고함, 타협할 줄 모름, 가차없음 같은 말도 그를 묘사하는 많은 표현 중 하나이다. 여기에 그의 마지막 저서 <폴 랜드, 미학적 경험(라스코에서 브루클린까지)>에 적힌 헌사가 '나의 모든 친구들과 적들에게'라는 걸 생각하면 그가 참 많은 적을 두고 살았던 듯 하다. 그러나 그에 대해 저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조차 나중에 가서는 그의 통찰력, 독창성, 혹은 현대 그래픽 디자인계에 끼친 영향 등을 언급한다.

5. 기타


  • 한 가지 일화가 있는데 폴 랜드는 디자인 미팅 당시 홍보 담당자가 아닌 해당 기업의 CEO만 상대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CEO가 자기 기업의 아이덴티티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1] 폴 랜드가 추구했던 유머러스한 표현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