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아이티 관계
1. 개요
프랑스와 아이티에 대한 관계이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가 공용어이지만, 과거 프랑스의 혹독한 지배와 탄압으로 사이가 굉장히 험악한 편이다. 또한, 이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독립 후 프랑스의 간섭은 오늘날까지 아이티가 최빈국으로 남게 한 원인들 일부이기도 하다.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프랑스는 스페인으로부터 이스파니올라 섬서쪽을 빼앗았고 차지했다. 당시 산토도밍고라고 불렸던 스페인의 지배하 있던 이스파니올라 섬은 프랑스가 서쪽을 차지하면서 생도맹그라는 이름이 되었고 서쪽의 프랑스령과 동쪽의 스페인령으로 나뉘어지면서 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뿌리가 되었다.[1] 프랑스는 아이티 지역을 지배하면서 아프리카로부터 흑인 노예들을 들여왔고 아이티내의 흑인들은 프랑스의 지배하에서 탄압을 받았다. 당시 생도맹그는 프랑스의 주요 식민지였고 이곳의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생산은 경제적으로 프랑스에게 매우 중요하였다.
18세기말에 아이티에서도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날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프랑스는 군대를 파견했다. 이때 아이티에서는 프랑스군, 흑인노예, 백인 농장주간의 학살이 일어났고 아이티내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19세기초에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이후,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 스페인령이었던 도미니카 공화국을 점령했고 40년간 지배했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의 지배에 반발했고 아이티에서 다시 독립했다.
아이티는 투생 루베르튀르의 지도 하에 독립전쟁을 거쳐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경제적인 종속은 심화되었다. 또한, 프랑스의 식민지배의 유산이었던 설탕 플랜테이션 위주의 경제는 아이티가 노예노동에 매우 의존하게 하였고[2] , 거기에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던 다른 열강들의 압박, 그리고 함대를 파견하여 압박하며 요구한 프랑스의 아이티 근대화 비용 및 아이티에 경제적 이권을 가지던 프랑스인들을 위한 배상금[3][4] 과 프랑스가 아이티에서 철수하면서 그간 자신들이 건설해놓은 병원, 학교 등의 근간 시설들을 모조리 폭파시켜버린 만행 덕분에 오늘날 아이티가 최빈국으로 남아있는 원인도 제공했다. 샤를 10세 참고.
2.2. 21세기
현대에도 아이티는 프랑스와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혹독한 지배와 탄압으로 지금도 반불감정이 심한 편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가 공용어이고[5] 프랑스의 영향이 남아 있다. 또한 아이티는 프랑코포니, 라틴 연합 회원국이며 아이티인들중에도 프랑스로 건너간 경우도 있다.
3. 관련 문서
[1] 또한, 언어, 문화, 혈통적으로도 차이가 나게 되었다.[2] 실제로 아이티는 독립 후에도 기득권 흑인들이 군대를 앞세워 다른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는 사실상의 노예제가 유지되었다[3] 한마디로 프랑스가 아이티가 프랑스 농장주들의 재산인 농장과 흑인 노예들을 '도둑질'했으니, 그 대가로 배상금을 내놓으라는 소리이다. 당시 유럽 제국주의가 얼마나 악독했는가를 말해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4] 프랑스의 최초 요구는 1억 5천만 금 프랑이었고 아이티가 빌고 빌어 9천만 금 프랑으로 깍았음에도 아이티는 없는 살림에 국가예산의 ''80%''를 122년간 1947년까지 이를 지불하는데 지출하여야 했었다. 최빈국이 안되는게 더 이상할 정도[5] 아이티는 중남미에선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의 프랑스령 지역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프랑스어 사용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