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외교
1. 개요
아이티의 외교에 관한 문서.
2. 아시아
2.1. 대한민국과의 관계
한국전쟁때는 대한민국에 2000달러를 구호금으로 보낸 역사가 있다.
남북한 모두와 수교국이지만 현지교민은 몇 안 된다. 그렇기에 대사관도 없이 주 도미니카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겸임하고 있다. 정부도 가급적 아이티에 거주하지 말 것을 권하는 판이고, 사실 교민들이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정도로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소위 현세에 구현된 전근대 사회라고 봐도 무방하다.
매우 열악한 나라이기에 도미니카공화국 및 아이티를 담당하는 한국대사가 유엔의 말을 인용하며 "제발 식사 문제 등 개인적인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분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지만 모 기자의 곡해 때문인지 귀찮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편집, 왜곡되었다. 아이티 지진 구조대 보도 논란 참조. (후에 정정보도되었고 해당 기자는 성추행 문제로 잘렸다.)
하지만 아이티에도 한국의 의류업체 세아상역이 진출해서 아이티의 재건을 돕고 있고, 학교도 세웠다.#
여기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있다.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참고해보도록 하자. https://blog.naver.com/pengiun1211[1] 말에 의하면 딱히 위험한 일은 없었으며, 가난하고 거지같은 이미지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다고 한다.
진흙쿠키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먹을 게 없어서 얇게 편 진흙을 햇볕에 쬐 굳혀 먹는 모습이 한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겨 기부를 통해 아이티를 돕게 했다. 또한 이 진흙쿠키와 같이 나온것이 플라스틱 페트병 신발이다.
2010년 아이티 지진이 발생하자 단비부대가 수도 포르토프랭스 인근 레오간 지역에 파병되어 장기간 재건 임무를 수행했었다.
2.2. 중국, 대만과의 관계
대만의 정말 몇 안 남은 수교국 중 하나이다.
2019년에 중국이 수교 제안을 하였다. 이에 대해 아이티측은 중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2020년부터 미국에서 타이완 동맹 보호법을 제정하면서 아이티는 대만과의 관계가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2.3. 일본과의 관계
일본도 아이티와 수교를 맺었다. 그리고 적지만, 아이티인들중에 일본에 거주하는 경우가 있으며 반대로 아이티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도 있다. 그리고 US오픈을 재패한 오사카 나오미는 아이티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2.4. 인도와의 관계
인도와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아이티내에도 소수의 인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3. 유럽
3.1. 바티칸과의 관계
아이티는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당시 국교가 가톨릭으로 정해졌지만 바티칸과의 관계는 1860년에 이뤄졌다. 바티칸은 1860년 아이티와 수교를 맺고 교황 대사와 사제를 파견했다.
이후 100년 뒤인 1960년 뒤발리에 독재정권이 가톨릭 교회를 탄압하면서 가톨릭 교회와 국가 간 관계는 위기를 맞게 된다. 뒤발리에 대통령은 포르토프랭스 대교구장 주교를 추방시키고 연달아 사제들을 내쫓았다. 또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 1만여 명을 살해하기도 한다.
아이티 교회는 갖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정부와 대치하는 대신 정부가 미처 손쓰지 못한 국민들의 가난과 인권, 사회복지에 눈을 돌린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포르토프랭스를 방문했고 이때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이티 정부를 비판하며 폭력과 살인, 정쟁없는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을 주문했다.
1991년에는 가톨릭 사제 출신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다. 하지만 곧 군부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다. 2004년까지 복귀와 축출을 반복하며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었다.
아이티 국민 80%는 가톨릭 신자지만, 토착신앙인 부두교가 아직 사회 저변에 깔려 있으며 근래에 들어서는 개신교(주로 오순절교회)가 매우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3.2. 프랑스와의 관계
예전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프랑스어가 아이티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고 프랑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이티 크레올어도 아이티에선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이자 라틴 연합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이티의 상황이 매우 안 좋아서 아이티인들중에는 프랑스로 이주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3.3. 스페인과의 관계
예전에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의 지배를 함께 받았지만, 아이티 지역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언어, 문화에서 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어의 경우에는 아이티 크레올어에서 차용어가 일부 존재해 있고, 스페인어는 아이티에서도 취업을 위해 중요 외국어로도 배우고 있다. 또한, 아이티는 스페인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아이티는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고 라틴 연합에도 가입되어 있다.
3.4. 폴란드와의 관계
폴란드와는 19세기에 아이티 혁명당시에 프랑스군에 소속된 폴란드인들의 일부가 아이티인들의 편에 섰다. 아이티 독립 이후에 폴란드인들의 일부가 아이티에 거주하게 되었고 아이티에는 소수의 폴란드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4. 아메리카
4.1.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관계
4.2. 캐나다와의 관계
캐나다와는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언어적으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 주에 아이티인들이 거주하고 있다.[2] 그리고 미국이 아이티 난민들을 임시 보호 신분으로 분류했다가 5월부터 갱신하지 않기로 밝히면서 캐나다로 이주하는 아이티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4.3.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는 정반대로 좋지 못한 관계이다. 나베사 섬을 두고 미국과 영토갈등중이며 역사적으로도 상술했듯이 미국이 채무불이행을 명분으로 침공하여 군정지배 중 정,경,군을 때려박아 통합하여 군부독재와 부패를 이식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최빈국 딱지를 가지고 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가 아이티를 시궁창(Shithole)이라 비하하면서 미국과 국민감정 상 갈등이 생겨났고 이에 2018년 1월 23일에 아이티의 미국 대사관이 반트럼프 시위로 일시적으로 문을 닫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미국내에도 아이티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은 플로리다, 뉴욕 등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