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제1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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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필리핀에서 약 2년간 짧게 존속한 공화국이다.
2. 역사
필리핀은 1565년부터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스페인어로 교육을 받은 필리핀 토착 엘리트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페인식 교육을 받아 스스로를 스페인인으로 인식했지만 본토 스페인인들은 그들을 같은 스페인인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해왔고, 이에 이들은 불만을 품게 되어 독자적인 민족주의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19세기 말에 들어서 독립운동이 격렬해진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을 기회로 삼아 2년 전 반스페인 봉기를 일으킨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자신들의 무리와 함께 5월 24일 정부 수립을 선포했고, 6월 12일에는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혁명 정부"라 주장했다. 7월 15일에는 아폴리나리오 마비니를 수상으로 한 내각이 성립되었으며, 필리핀 독립군은 미군과 함께 스페인군울 몰아냈다. 1899년 1월 1일에는 아기날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1월 21일 필리핀 제1공화국이 들어선다.
그러나 미국은 1898년 12월 10일, 스페인과의 강화 조약에서 필리핀을 넘겨받기로 한 상황이였다. 미국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는 1898년 12월 21일 필리핀에 대한 우애적 동화 선언을 발표했다. 이로써 미국이 필리핀을 독립국으로 두지 않겠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마닐라에 주둔한 미군이 사살된것을 빌미로 미국은 필리핀 제1공화국에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99년 8월 미국은 선전포고도 없이[1] 10000여명의 군대를 파견했고, 필리핀 제1공화국을 "진압"한다. 1900년 12월 20일 미국은 필리핀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필리핀인 '''60여만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1901년 3월 23일에는 아기날도가 미군에 체포되며 필리핀 제1공화국 정부가 몰락했다. 이후 필리핀 독립군 잔여 병력과 미군의 전투가 벌어지다가 1902년 7월 4일 진압이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남부 일부는 1913년까지 저항했다.
3. 한계
필리핀 제1공화국의 좌절은 물론 미국의 압도적인 힘 때문이지만 내부적인 한계도 있었다. 필리핀 민족주의를 주장하고 크게 확대하던 지식인들을 보면 필리핀과 스페인계 혼혈이 다수였고, 이들은 스페인인이라고 자부하고 비혼혈 필리핀인이나 무슬림을 하등하게 보았지만 스페인에게 무시당한 경험으로 인해 독립운동에 나섰다.
[1]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필리핀 제1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저 자국 영토에서 일어난 반란 세력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