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툼

 

[image]
아랍어 الخرطوم
영어 Khartoum
1. 개요
2. 교통
3. 역사
4. 문화
5. 여담


1. 개요


[image]
[image]
구글 지도
왼쪽이 하르툼, 오른쪽은 북 하르툼, 위쪽은 옴두르만[1]
수단의 수도. 청나일과 백나일이 합류하여 나일 강 본류가 되는 곳에 형성된 도시이다. 시내 자체에는 64만명이 살지만 북서쪽 백나일 건너편의 옴두르만과 청나일 건너편의 북하르툼까지 합친 광역권 인구는 550만명이다[2]. 하르툼 본 시가지 북쪽 청나일 강변에 하르툼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

2. 교통


하르툼 본시가지 동쪽 청나일 강변에 있는 교외지역에 하르툼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 도심에서 5km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공항을 걸어서 빠져나와서 큰길에서 툭툭을 잡으면 (툭툭은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게 금지되었다 있다), 시가지까지 300-400파운드 (3-4천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짐이 많다면 공항에서 진을 치고 있는 택시를 잡으면 된다.
이론상으로는 기차로 이집트 국경이나, 홍해의 포트수단 까지 갈수는 있는데, 편수도 적고. 스케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버스나 비행기가 낫다. 행여 도시 밖으로 돌아다닐 생각으로 렌터카를 빌리는것을 고려한다면, 수단에서는 렌터카를 빌리는데 하루 $100정도 하고, 주행거리도 하루 100km로 제한되어있는경우가 많다. 렌터카가 비싼 이유는, 수단에서는 렌터카에 운전수가 따라 붙어오기 때문이다.
시내 자체에는 64만명이 살지만 북서쪽 백나일 건너편의 옴두르만과 청나일 건너편의 북하르툼까지 합친 광역권 인구는 550만명이다[3]. 그러나 인구 500만명 대 도시권치고는 대중교통이 부실한 편으로 위의 카이로에서 다니는 카이로 지하철 같은 지하철은 꿈도 못 꾸며 아랍어 숫자로 갈겨적히고 대게 봉고차가 다니는 마을버스 및 낙후한 일본제 차량이 다니는 시내버스가 주 교통수단이다. 그나마 이들 버스도 아랍어를 모르면 이용이 어렵다.[4] 택시는 불러서 오는 콜택시뿐이다. 이 외에 길거리에 툭툭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3륜차, 인도나 페루에서도 많다)은 많고, 가격도 서구권 수준으로는 비싸지 않다. 사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교통 편한 대도시가 흔치 않기는 하다. 도시 밖으로 가는 기차의 경우도 선로가 노후되어 있고 운행 편수도 적은데다 단선이라서 이용이 극악이다. 이론상으로는 기차로 이집트 국경이나, 홍해의 포트수단 까지 갈수는 있는데, 편수도 적고. 스케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버스나 비행기가 낫다. 행여 도시 밖으로 돌아다닐 생각으로 렌터카를 빌리는것을 고려해볼수도 있지만, 수단에서는 렌터카를 빌리는데 하루 $100정도 하고, 주행거리도 하루 100km로 제한되어있는경우가 많다. 렌터카가 비싼 이유는, 수단에서는 렌터카에 운전수가 따라 붙어오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툭툭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3륜차, 인도나 페루에서도 많다)은 많고, 가격도 비싸지 않다.

3. 역사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이집트 총독이던 메흐메트 알리가 수단을 정복한 이후 1821년 메흐메트 알리의 아들인 이브라힘 파샤에 의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수단에 주둔하는 이집트군 병영이었으나 절묘한 위치 덕분에 수단 지역의 무역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6년만에 이집트령 수단의 치소로 거듭났다. 하르툼은 아랍어로 코끼리 코라는 뜻인데, 두 강이 모이면서 만들어낸 지형이 코끼리 코 모양과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서구권에 하르툼이 유명해진 것은 명목상으로나마 오스만 제국의 영토이던 19세기 말엽에 벌어진 이집트-영국군과 마흐디 운동 (강경 이슬람 수단 민족주의) 세력 간의 격전 때문이었다. 특히 1884 ~ 1885년에 걸친 1차 하르툼 공방전에서 하르툼 시민과 함께 싸우다 전사한 고든[5]의 이야기는 영화화 되었다. 10여년간 마흐디 세력의 통치를 받던 하르툼은 1899년에 영국군에 함락되어 1956년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독립과 함께 수단의 수도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2019년 12월 3일 하르툼의 타일생산공장에서 불이나 최소 16명이 사망하고 90명이 부상당했다.#

4. 문화


아직도 이슬람 근본주의자 마흐디스트들이 활개치는 도시는 아니다. 초창기 도시 건설 당시 콥트 정교회 신도들이 활약했던 이유로 기독교도 인구도 약간 남아있다. 콥트교 외에도 살레시오회 (기술학교), 사랑의 선교회 (환자돌봄) 등의 천주교 계열 단체는 간판을 걸어놓고 활동을 하고있고, 나일강 근처에 있는 교구소속 대성당에서는 주일미사도 있다. 대놓고 전교활동을 하지 않으면 종교활동도 어느정도까지는 허락이 되는모양이다. 의외로 수단, 특히 하르툼은 겉보기로는 많은 개도국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거리에서도 여성들 니캅이나 부르카 보다는 히잡만 두르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5. 여담


수단은 관광업이 발달되어 있지않기 때문에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고급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할수 있지만, 그 외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나, 가게 점원들이 영어를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안하는게 좋다. 그래도 가끔씩 유창한 영어를 하는 동네 할머니가 갑툭튀 해서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대놓고 다리의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있다 (군 기밀이라고 한다). 나일강을 건너는 다리마다 양쪽에 군인들이 초소가 있고, 다리 사진을 찍으면 다가와서 이거저거 물어보고, 다리 사진을 찍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1] 이 사진의 오른쪽이 북쪽이고, 사진의 아래가 동쪽이다[2] 강 건너편에 바로 수도와 대도시가 있는 나라는 대표적으로 이집트가 있다.(카이로, 기자)[3] 강 건너편에 바로 수도와 대도시가 있는 나라는 대표적으로 이집트가 있다.(카이로, 기자)[4] 하지만 이런 버스는 주로 큰길로 다니기 때문에 대략 가는 방향은 짐작할수 있고, 내가 가려고하는 도착지 이름만 발음하면, 나머지는 눈치로 해결할수 있다[5] 1903년에 그를 기리는 고든 기념대학교가 하르툼 시내에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