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당(1960년)

 

민족주의 민주사회당

'''한국사회당'''

한국독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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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결성과정
3. 정강 및 정책
5. 5.16 군사정변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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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0년 5월 21일 전진한민족주의 민주사회당에서 이름을 바꿔 창당한 정당.

2. 결성과정


1960년 5월 21일 전진한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민주사회당과 김성숙을 중심으로 한 민주혁신당의 반 서상일계는 서울에서 민족주의민주사회당을 해체함과 동시에 가칭 한국사회당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이후 6월 14일 시공관에서 대의원 915명 중 823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대회를 열고 선거강령, 임시 집행부를 발표하였다.

3. 정강 및 정책


장비의 현대화

정예병화로 병력인원을 감축하고 복무기한을 2년으로 줄인다.

국제연합 감시 아래 총선거를 통한 민족통일

지방자치제도의 확립을 통한 정치 민주화

중소기업의 산업별 협동화

농산물 가격의 정부 보장, 농가부채 동결

기간산업과 공익성을 상실한 중요산업의 국유화


4. 제5대 국회의원 선거와 그 이후


결성대회만 치렀을 뿐 창당대회도 치르지 못한 채 선거에 나가게 된 한국사회당은 7월 29일에 있는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의원 19명 참의원 2명 도합 21명의 후보자를 냈지만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전진한은 서울특별시 제 8 선거구(성동 을)에서 민주당 유성권 후보에게 밀려 낙선을 하고 민의원에서는 남제주군에 출마한 김성숙후보만이 당선되고, 참의원에서는 경상북도에 출마한 최달희후보만이 당선되는 안좋은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후 혁신당, 사회대중당 등 혁신 세력과 혁신세력 통합을 추진했다.

5. 5.16 군사정변과 그 이후


1961년 5월. 5.16 군사정변으로 군사쿠데타 세력이 정치 활동 전면 금지령을 내리면서 한국사회당은 해체되고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또한 혁명재판에서 당의 조직부장이던 최백근씨는 사형선고를 받고, 최근우 준비위원장이 옥사하는 등 다른 혁신계 정당에 비해 입은 타격이 매우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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