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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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제7대 군주. 초대 왕. 휘는 강(康). 한나라의 명군인 한소후의 아들이며, 한양왕의 아버지. 최초로 왕을 칭했지만, 이때부터 국력이 커진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서서히 약해지는 아이러니 함을 보였다.[1]
2. 생애
한 선혜왕 7년(기원전 326년), 조(趙)나라가 한나라와 연합해 위(魏)나라를 쳤다. 그리하여 위나라의 양동을 포위했다.
한 선혜왕 8년(기원전 325년), 위나라가 한, 조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이때 출전한 장수는 한거(韓擧)였다.[2] 4월 진(秦)나라의 군주 영사(嬴駟)가 왕을 자칭하니, 그가 바로 진혜문왕(秦惠文王)이다. 양혜왕이 진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5월에 양 혜왕이 한 선혜왕과 만나 왕을 칭하기로 했다.[3]
한 선혜왕 10년(기원전 323년), 한나라는 위나라, 조나라, 연(燕)나라와 함께 중산국에서 서로를 왕으로 인정하고 진나라에게 대항하기로 했다.
한 선혜왕 11년(기원전 322년), 조나라와 우서(區鼠)에서 회맹하였다.
한 선혜왕 14년(기원전 319년), 진나라가 한나라의 언(鄢) 땅을 차지했다.[4]
한 선혜왕 15년(기원전 318년),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초(楚)나라, 연나라 5개국이 진나라를 쳤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수어(脩魚) 전투를 일으켜 한나라를 물리쳤다. 장수 모(獏)와 신치(申差)가 포로로 잡혔다. 그러자 그는 공중치의 말을 듣고 초나라를 치려 했는데, 초회왕이 진진(陳軫)의 말을 듣고 한을 구하는 척 하니 한 선혜왕은 진나라와 동맹을 파기하고 탈탈 털렸지만, 공중치의 말대로 초나라는 구원을 오지 않았다.[5]
한 선혜왕 19년(기원전 314년), 진나라가 한나라의 안문(岸門)을 차지했다. 이에 한 선혜왕은 태자 창을 보내 진나라와 화친했다.
한 선혜왕 21년(기원전 312년), 진나라와 함께 초나라를 쳐서 굴개(屈丐)를 죽이고, 단양(丹陽)에서 8만 개의 수급을 얻었다. 이해에 한 선혜왕이 죽고 태자 한창(韓倉)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한 양왕이다.
[1] 그런데, 양혜왕 대의 위나라도 비슷한 테크를 탔다.[2] 사기 한세가 한선혜왕 편에서 나온다.[3] 전국칠웅 중에서 최약체라는 한나라지만, 그 당시에는 한소후 대의 상국인 신불해(申不害)의 변법으로 인해 강력한 상태라 왕을 칭하는데 무리가 없었다.[4] 그 이유는 진나라에서 한나라가 제일 가깝기 때문이다.[5] 초나라와 동맹을 파기하고 치려고 했으니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