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진(바이올리니스트)
1. 개요
한국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나이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동갑이고, 같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신지아, 김다미, 김봄소리보다는 조금 많다.
국내보다는 해외 무대에서 더 유명한 인물이다.
2. 약력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2세'''때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영국 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1] 어릴 때 영국으로 이주하였으며 Isle of Man에 살다 몇년 후 런던으로 이주했다. 어릴때 어머니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듣고 호기심에 시작하였으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5세'''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하지만 '''7세'''때 잠깐 한국에 와서 외할머니가 또래 아이들 연주에 칭찬하는 모습에 용기를 얻어 바이올린을 시작한다.
'''9세'''때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음악학교 오디션에 합격 하였으나 너무 어린 나이에 기숙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2]
'''11세'''때 집에서 통학 가능한 Purcell 음악학교로 전학하였다.
'''12세'''때 영국 런던의 유서깊은 실내 연주회장 위그모어 홀에서 독주를 하였다.
'''15세'''때 비에니아프스키 국제콩쿠르에 최연소 참가하여 한국인 최초 2위를 수상했다. 부상으로 활, 2점의 그림, 음악평론가상, 폴란드 국영방송 청취자상 등, 총 7개의 상을 받았다.[3][4]
성인이 되어 옥스퍼드 대학에서 음악학(musicology)[5] 을 수료하고 휴학을 했는데, 영국 런던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서 석사과정 제안을 받아 학교를 옮겼다. 이후 크론버그 아카데미(독일)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하였다.
3. 음악적 면모
'''깔끔한 테크닉과 아름다운 음색'''이 돋보이며, 무엇보다 '''바이올린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런던 심포니, 포즈 난 필 하모닉, 도쿄 필 하모닉, 서울 필 하모닉, 한국 심포니, 런던 솔로이스트 챔버 오케스트라, L' Ensemble Ricercata de Paris와 같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솔로 연주자로 활동했고 거의 모든 주요 런던 콘서트 홀, Concertgebouw Amsterdam, Suntory Hall, Operacity 및 Bunkamura Orchard Hall, 도쿄, 오사카 심포니 홀 및 서울 세종 아트 센터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4. 기타
- 그녀의 바이올린 음색은 매우 따뜻하고 다채롭다.[6] 이 음색 덕분인지 연주를 오랜시간 들어도 매우 편안함을 선사한다.
- 태어날때부터 왼쪽귀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7]
- 어릴때 선생님이 느긋한 성격이었으며 많은 연습량을 고집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스스로도 연습시간이 3~4시간 이상 넘어가면 오히려 연주가 잘되지 않고 근육들이 말을 안듣는 기분이 들때가 많았다고 한다. 장성한 후에도 연습시간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편이며, 대신 연습하는 시간동안에 얼마나 집중하는지와 연주 이후 분석에 더 중점을 둔다고 한다.
- 15세때 지휘자 정명훈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린 재능’ 이라고 극찬 받은 바 있다. 이후 6회의 협연을 했다.
- 옥스포드에서 음악학을 전공할 때 공부해야할 양[8] 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9] 틈틈히 연주도 하며 학업을 병행하다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휴학을 결정하였고 고민하던 중 왕립음악대학원에서 제의가와서 이후로는 연주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 2001년부터 영국의 챨스 비어로부터 과다니니를 지원 받았으며, 현재는 1666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지원받아 연주하고 있다.[10][11]
- 과다니니와 스트라디바리우스 두 악기에 대한 감상에 대하여 과다니니는 연주자가 연주하는 대로 바로바로 청량하고 예쁜 소리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악기가 변덕이 심하고[12] 도도한 느낌이 들어 화려하고 변덕스러운 점이 마치 디바같다고 평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경우는 해당 악기만의 느낌을 찾아 달래듯이 연주하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 2012년 어릴적에 다친 오른쪽 턱관절이 직업병으로 발전하면서 수술이 불가피하게 되어 결국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약 5년이상 안정을 취해야 했으며 이기간 중 3년반 정도는 악기에 손도 대지 못했다고 한다.[13]
- 역대 작곡가 중에 단 1명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요하네스 브람스를 만나보고 싶다고 한다.[14] 만난다면 우선 자신이 엄청난 팬임을 밝히고 싶고, 브람스의 힘들었던 인생에 대해 들어주며 위로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 어릴때부터 체력이 좋은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호기심과 상상력이 많아[15] 잠을 자는것을 아까워 했다고 한다. 악기 연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숙면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금은 수면을 매우 중요시한다고 한다.
- 연주를 위해 혈액 순환 위주의 스트레칭을 즐겨한다. 연습시간이 길어져 많이 뭉치는 경우는 마사지를 받아 반드시 풀어준다고 한다.
- 연주 전에 특별한 징크스는 없다. 잠을 잘 수 있다면 잠시라도 수면을 취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연주전에는 어머니가 직접 구워주신 소고기를 챙겨주셔서 먹고 좋았던 기억이 있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소고기를 먹은 날과 아닌 날은 확실히 체력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바나나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 인생에 가장 중요한 3가지를 꼽는다면 소통, 소신[16] , 사랑
- 살아가면서 과거,현재,미래 혹은 자연과 사람등을 음악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바램이 있다.
- 최근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연주 영상은 물론, 구독자들을 위한 인사도 한국어 영어로 각각 올리고 있다.
- 2019년, 한국의 음대생들이 운영하고 있는 유명 클래식 유튜브 채널인 “또모”에 출연하며 연주도 하고, 레슨도 해주는 등, 온라인 무대에서도 명성을 얻고있는 중이다.
[1] 아버지는 물리학을 전공했다.[2] 지금도 다시 이때로 돌아가라면 기숙생활은 못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가장 힘든점은 부모님을 볼 수 없는 점과 자기전에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어린 아이들일 경우 저녁 8시면 강제소등하는 경우가 많다.[3] 비니아프스키는 19세기 폴란드 바이올리니스트로, 쉽게 설명하자면 바이올린의 쇼팽같은 존재이다. 2011년 윤소영 2016년 김봄소리도 같은 콩쿨에서 입상한 바 있다.[4] 이 콩쿠르는 5년마다 개최되는 권위있는 국제 콩쿠르로 당시 연주했던 음원은 해당 홈페이지에서도 들을 수 있다. #[5] 음악에 관한 학문 전반을 배우는 전공인데, 한국 서울대 작곡과의 이론 전공과 비슷한 편이다.[6] 어느정도 실력있는 연주자라도 고음부에서는 찢어지거나 듣기 싫은 고음이 나는 경우가 많다.[7] 어머니가 왼쪽귀가 안들리는 유전병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격세유전을 예상하여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한수진도 왼쪽귀가 태어날때부터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8] 역사나 분석뿐 아니라 심리학, 철학등 거의 인문학 수준의 전반적인 음악 배경에 대한 방대한 양을 공부했다고 한다.[9] 음악학을 전공하면서 연주를 병행하는 경우가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10] 악기를 대여받던 찰스 비어로부터 악기 소유주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직접 한수진의 연주를 듣고 바로 해당 악기를 평생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11] 이 영상 14:13 지점에서부터 직접 언급하는걸 볼 수 있다.[12] 날씨에도 민감하며 그날 그날 악기 컨디션에 따라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준다.[13] 나이로 보면 26~30세 정도로 보통 연주가들이 가장 왕성한 연주 활동을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3년반 정도 악기를 놓게되고 5년이상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한수진은 회고하길 많은 정신적 고통과 초조함이 있었으나 음악가로서의 삶에 대한 고찰과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시기에 더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가지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고 하였다.[14]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작곡자의 내면 세계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15] 자기가 잠들면 인형들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16] 남에 의해서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리지 않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