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

 


韓定食, Korean Table d'h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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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놋그릇이나 도자기에 음식을 내오는 고급형
이쪽은 가정식 백반과도 일맥상통한다.
1. 개요
2. 유래
3. 형식
5.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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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 요리의 반상 차림을 서양의 정찬처럼 시간 전개형으로 격식을 갖추어 차려내는 음식으로 전채, 주식, 반찬,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차림으로 한국 요리의 정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고급식당[1]이 아닌 대중적인 한정식집은 일인분에 보통 15,000 ~ 30,000원 정도 하며, 반찬의 가짓수는 많지만 접시당 양이 많지 않은 관계로 대식가가 아니더라도 그리 많이 남기지 않고도 일어설 수 있는 편이다. 준비 시간과 먹는 시간이 긴 관계로 되도록이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오는게 좋다.

2. 유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말하는 유래에는 오류가 많다.
조금만 생각해도 한정식의 으리으리한 밥상이 조선시대에서 유래되었다는것은 이상하다 느낄 수 있는데. 조선은 후기까지도 상업을 천시했으니 이러한 형태의 고급요식업이 발달 했을리도 만무하다. 게다가 수라상만 해도 대한제국에 와서야 황제가 되면서 12첩으로 늘어난 거지 조선시대까지 왕의 식단은 대체적으로 사대부와 같은 7/9첩상이었다.
애초에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일제시대까지 한국의 "정식'이란 궁중연회든 양반집이든 농민이든 여러 가지 음식을 1인분씩 개다리 소반 같은 독상에 차려 주는것이 기본이었다. 이를 위하여 마을마다 1인용 소반을 수십,수백개씩 보관하는 공동창고가 있었다. 80년대까지만해도 안동에서 큰 제사를 치르면 참가한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줄 때 1인상에 줬다고 한다. 춘향전에도 이몽룡이 어사또가 되어 관아로 들이닥치자 잔칫상이 엎어지는 묘사가 나온다.[2]
대체로 한정식에서 내오는 음식들의 형식은 궁중요리와 일본의 고급 숙박시설인 료칸[3]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会席)[4]를 이용한다.
이러한 형식은 일제강점기기생집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반찬을 다수 놓고 먹는 건 조선민화에서도 수차례 나온다. 그리고 기생집의 겸상은 기생집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편의상 겸상을 한 거지 정식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1950년대까지만해도 한정식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1960년대 와서 기생집이 세금문제로 간판 바꿔달고 음식점으로 바뀌면서 한정식이라는 적당한 이름 붙여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5] 이것이 70년대 들어서 룸사롱에 밀리기 시작하며 순수 음식점으로만 남게 됐는데 이것이 지금의 한정식이다.
쉽게 정리하자면, 본래 우리네 전통 문화에 '한정식'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없었고, 우리가 아는 한정식은 그 성격(시스템)을 일본의 가이세키에서 빌려와 한국의 궁중 음식으로 차려 현지화한, 상당히 '''현대적인 퓨전 문화'''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한국화한 일본 문화'''이다. 물론, 아래 항목에서 보듯이 그 가이세키 역시 서양 식문화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이고, 그 서양 식문화 역시 또 유럽 내에서 주거니 받거니 한 결과이므로 한정식의 유래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민감하게 민족주의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문화나 문물의 전래와 발달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이런 식이다.

3. 형식


한국식 상차림의 기본인 밥, 국, 반찬과 김치, 장류에서 범위를 보다 확장해서 각 종류들을 늘려가며 상을 차린다. 보통 육류요리로는 구이, 조림, 전, 찜, 육회 등이 올라오고 국물요리로는 전골 내지는 찌개가 올라오며, 생선회나 조개류 같은 갖가지 해산물이나 생채 및 숙채 그리고 절인 반찬 및 젓갈 등이 올라온다.
제사상 또한 어느 정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일부 한정식집에서는 한상에 가득 나오는 것이 아니고, 코스요리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코스화된 한정식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의영향을 받은 조리법과음식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코스화된 점을 들어 이는 한정식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지만 가이세키 또한 에도시대 초기에는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아서 발전했다. 또한 프랑스 요리도 18세기에 러시아 요리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는 코스요리가 아니고 한정식처럼 한상 거나하게 차리는 방식이었다. 음식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것이다. 단순히 코스로 나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정식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4. 혼자 한정식 먹기


한정식을 다루는 식당은 대체로 1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닌 연회나 접대를 겸할 목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전통 식문화에 겸상은 없고 혼자 먹었는데 이 무슨 소리인가?" 할 수도 있는데, 애당초 유래가 된 기생집부터가 정말로 고관대작이거나 부호가 아닌 이상 보통은 2인 이상 출입을 하는 게 보통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게다가 가게 입장에서는 전통보다 실리를 추구해야 하는 면도 있고...
다만 요릿집으로서의 한정식집이 아닌 일반 식당으로서의 한정식집 한정으로 1인 손님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러한 가게의 메뉴 구성은 가정식 백반에 가깝다. 어쨌든 일단 분위기 있는 한정식 집이라면 1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

5. 비판


식당에서 내놓는 한정식들을 보면 대부분 음식의 가짓수에 치중하여 많이 내놓는 데 급급하는 경우가 많다. 식객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중점이 되는 음식이 따로 없이 정식 그 자체라는 틀에 맞추기 때문에 많은 음식을 내놓지만 막상 손대는 음식은 많이 없고 여러 음식이 섞여서 혼란스럽기에 음식 자체의 맛을 최대한 느끼기보다 그냥 많이 먹는 데 치중하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 다 먹지 못 하고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커다란 문제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다 포장을 안 해주는 집도 많고 포장해 가기도 그런 경우가 많아 남는 음식은 전부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 결국 한정식은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이런 점을 떠나서도 한정식은 2010년대 정도가 되면 확연한 쇠락세이다. 이유는 2가지인데, 한정식에는 필연적으로 2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수많은 반찬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공간[6]과, 그 반찬을 만들어대는 인력이다. 즉, 노동집약적이면서 동시에 주방이 엄청나게 넓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것이 과거 가능했던 것은 말 그대로 최고급 접대용 요정이었기 때문인데, 현대에 와서는 이런 영업형태가 유지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이 때문에 인력을 줄이거나, 음식을 미리 만들어둔다거나 하는 행태가 보이면서 맛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결국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1인당 접대 식대를 3만원으로 제한하자 접대 손님 위주로 장사를 해오던 한정식 업주들이 다 죽게 생겼다며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대놓고 불법행위를 하는 걸 보고도 입 싹 닫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셈. 물론 이런 아우성만 지르지 않고 메뉴를 조정하고 접대 식대에 맞춰서 판매를 시도하는 업주들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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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재료나 분위기에 따라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일인당 2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2] 운봉 영감은 도망가고 본관(변학도)가 변실금을 하면서 잔치상이 뒤엎어지는데 이것이 전부 1인상으로 나온 소반이다. 최근에 나오는 영화들은 이런 고증을 잘 지키는 편이어서 잔칫상이 전부 1인 독상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3] 旅館(りょかん ) 한국식으로 읽으면 여관이지만 한국에서 생각하는 여관의 이미지와는 약간 다르다. 주로 일본의 온천지역에 위치하며 각자 고유의 전통방식에 따라 운영되는 고급숙박시설이다. 역사가 깊은곳은 1400년이 넘는 곳도 있다.[4] 보통 1즙3채(一汁三菜), 1즙5채(一汁五菜), 2즙5채(二汁五菜)[5] 실제로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밤에 한정식집 가면 밥상차려놓고 아가씨 붙이고 놀았다는 증언도 많다.[6] 음식은 그 자리에서 만들어서 올려야 한다. 주방에서 여기서는 생선굽고, 저기서는 고기 굽고, 다른 곳에서는 전 부치고, 거의 동시에 나물을 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