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민
1. 개요
한창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생애
1973년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2.1. 학창 시절
진안 백화초등학교와 안천중학교를 거쳐 대전대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대전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공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고교 시절 전교조로 해직된 은사의 영향으로 학생 운동과 사회적 참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대학 진학 이후, 정치사회적인 학습과 토론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총학 간부 등 학생회에는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2.2. 노사모 활동
군대에 다녀온 후 언론운동과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언론권력과 지식인 사회의 위선이 자본과 기득권을 강화하고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다는 문제의식이 강했다. '안티조선 우리모두' 활동과 강준만교수와 함께 한 인사모(인물과 사상 독자모임) 활동 등은 모두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실천이었다. 안티조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언론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상식적인 결론에서 나온 주체적 실천 중 하나였다고 본인이 밝힌 바 있다.
언론운동과 사회적 실천의 과정에서 노무현 의원을 만났다. 2001년 노사모 회원으로서 노무현 후보 국민경선 대책위원을 맡아 선거인단을 조직했으며, 노무현 후보가 대선후보가 된 후에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경선 이후 후보 단일화 협의회(후단협) 사건이 발생하자 유시민과 함께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하며 국민후보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대선캠프에서는 대전국민참여운동본부 홍보국장 역할을 하였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노사모 출신들은 대통령께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정치 일선에서 한 발 물러섰다. 대학원으로 돌아가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 대전 대표와 명계남, 문성근 등이 안티조선단체 등과 연합해 창립한 언론개혁 시민단체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 대전 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하며 노무현 대통령을 후방에서 지원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내 혁신그룹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 이사로 대전지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3. 노무현재단
2009년 노무현 자살사망 이후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 운영팀장으로 일했다. 이후 재단의 대전세종충남 지역위 상임운영위원을 거쳐 공동대표로 추대되었다.
노무현 자살 이후 봉하마을에서 3년상을 치렀다. 그 시간은 노무현과 함께 한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치유하고 단단히 하는 시간 이었다 한다. 5분 15초부터
2.4. 정의당
2012년 진보정의당 대전광역시당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2014년 정의당 대전광역시당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정의당을 알리기 위해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출마확정기사#
2015년 정의당 대변인으로 임명되어 2년의 임기를 마쳤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논평
2017년 정의당 7월, 대변인 임기를 마치고 부대표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19년 정의당 부대표선거에서는 낙선했다. 당시 정의당에선 한창민 부대표의 낙선이 충격이라는 여론이 있었으며 당내 선거운동 절차의 개선 필요성마저 제기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