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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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인, 현 노무현재단 이사장. 전직 정치인이며, 정치평론가[은퇴] 이다.
대한민국 제16·17대 국회의원과 제44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했으며[6] ,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민참여당 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한때 현란한 말솜씨와 배경 지식 등으로 큰 인기를 얻어 진보 진영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경선에서 참패했고 이후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고향으로 지역구를 바꾸어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했으며, 이후 다시 경기지사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약화되었다. 이후 통진당 부정경선 사건으로 통합진보당에서 정의당으로 당적을 바꾼 후, 얼마 뒤인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20년에는 총선을 끝으로 '정치 비평'에서 은퇴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알릴레오 역시 59회 방송분을 끝으로 종영했다. 앞으로는 집필 활동 및 개인 활동, 그리고 현직인 재단 이사장 업무를 완수하겠다고 한다.
2. 일생
3. 정치, 경제 성향
3.1. 정치 성향
'''"저는 뼛속까지 친노죠.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노무현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 유시민 씨 만나보면요. 제가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때때로 그 저기 쓴소리들 많이 해요. 물론 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오늘 제가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줬습니다. 여러분이 그렇듯이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7]
ㅡ 노무현 前 대통령의 퇴임 직후 봉하마을 연설 中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했거나 포기했다고 말하지 맙시다."
그분이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참여정부의 자산을 상속받겠다는 데 대해서 우리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누구도 참여정부의 부채를 승계하지 않으려 하는데 대해서도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그 부채는 우리 국민참여당이 인수해서 갚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가 남긴 좋은 자산은 다른 사람과 다른 정당과 대한민국에 넘기고,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빚지고 가신것만 인수해서 끝까지 그 빚을 갚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합시다!
그분이 불가능한 꿈을 꾼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합시다! 참여정부가 모든 것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결코, 실패한 정부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입시다!"
ㅡ 국민참여당 당 대표직 수락연설 中(2011.3.19, 국민참여당 전국 당원 대회)[8]
[9]
저는 리버럴로서 당원에게 아무 권한도 주지 않는 정당체제와 싸웁니다. 국가상징물 앞에서 주권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공개적인 충성 서약을 하게 하는 국민의례에 반대합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원합니다. 성차별을 제도화한 호주제 역시 폐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파업권을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으로 인정하며 이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하며, 그런 전제 위에서 불법파업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데 찬성합니다.
ㅡ 2002년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 中
민주당-진보 계열 정치권의 대표적인 인사로 꼽히지만 오랫동안 민주당 계열에서 주류를 차지해 온 호남계 인사들과는 사이가 껄끄롭다 못해 거의 척을 진 수준이다. 유시민은 호남 출신 인사들과는 친한 경우가 거의 없는 반면, 소위 말하는 영남 출신 민주당계 인사들과 매우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유시민 본인부터가 영남 출신이며, 유시민이 정치적으로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노무현, 조국, 문재인 등이 모두 영남 출신이다. 또 영남 출신인 박원순과도 친분이 있었으며, 이재명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밖에 이해찬, 안희정 등 충청도 출신 민주당계 인사들과도 친한 경우가 많다.(전략) 로마 때도, 아테네 때도 대중들의 지지라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에요.
(중략)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욕망, 대중의 욕망을 추종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지지율 하락이) 저는 대통령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정부의 권한을 행사해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라고 보고요.
ㅡ 2018년 12월 21일, 돌베개 특강에서
유시민은 운동권 선배인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평화민주당에서 처음 정치권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김대중 총재와 동교동계 가신들[10] 을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특히 김대중 총재가 보인 인기 영합적 행보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 지칭하며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3김 시대의 정점에 있던 그 80년대말 평민당에서 감히 김대중 총재를 까서 당내 파장이 일기까지 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결국 유시민은 이해찬 보좌관을 그만두자마자 평민당을 탈당했다.
이후에도 유시민은 진보권 정치권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항상 김대중과 동교동계 호남 정치인들을 누차 비난했다. 그는 독일에서 귀국하자마자 "97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김대중 후보로는 대선에 절대 승리할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당시 비호남 출신을 내세워야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주자로 자신의 은사인 조순 전 서울시장을 꼽았다.
결국 DJP 연합을 통해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유시민은 김대중이 대선 과정에서 보인 야합에 다시 한번 크게 실망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2년 가까이 흐른 시점에서 유시민은 "유시민의 세상읽기-김대중 대통령님께"라는 칼럼을 발표하여 현직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유시민은 칼럼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계 가신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이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이제 온전히 접으며 2년이면 실망하기에 충분히 긴 세월이라고 개탄했다. 유시민은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특검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정작 정권을 잡자 이를 폐기했다는 점을 들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훗날 장관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었을 때, 우연하게도 인사청문회 첫 적용대상자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유시민 본인이었는데, 유시민은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후반에 이르자 유시민은 김대중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 등으로 인해 이미 정상적인 판단력과 통치력을 상실했다면서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유시민은 호남-진보계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호남 혐오론자''', '''영남 패권론자'''라는 비판을 공공연히 받아왔다. 유시민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 전인 2010년대 초까지 선거 때마다 이와 유사한 주장을 계속하면서 호남 정치인들 및 그들이 주류를 차지한 민주당계 정당과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유시민은 '''민주통합신당에 잠깐 머물렀다가 탈당한 이후 호남계 민주당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으며, 대신 진보당-정의당 계열의 정당에 계속 몸을 담았다.''' 하지만 사실 유시민은 진보당 계열과도 노선이 달라서 과거 노회찬, 심상정, 진중권 등 정의당 계열의 대표적 인사들과 모두 크게 대립한 적이 있었다.[11] 하지만 워낙 호남계를 싫어했기에 그나마 사이가 덜 나빴고 수용 가능했던 진보당을 마지못해 택했던 것이다. 물론 이전에는 개혁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참담한 지지율 속에 임기를 마치고 열린우리당은 해체되었으며, 친노 세력 또한 표면적으로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기에 이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김대중과 동교동계 호남 정치인들에게 실망을 넘어서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던 유시민은 같은 영남 출신의 떠오르는 정치인 노무현과 뜻을 함께 하게 되었고, 노무현이 대선에 나서게 되자 마침내 그를 돕기 위해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된다.
이후 유시민은 정치적으로 '''친노의 적통'''으로 불리고 있다. 유시민 본인은 자신을 '''불온한 '자유주의자''''라고 칭하고 있다.[12]
정치인 유시민을 논할 때는 친노를 떼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유시민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친노계의 적통이나 다름없는 정치인이다. 실제로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 불리는 문재인, 오른팔, 왼팔인 안희정, 이광재보다도 친노라는 틀 속에서는 유시민보다 적통인 인물이 없다는 말까지 있다.
특이한 점을 꼽자면 일반적인 친노 정치인들과는 상당히 색다른 경력과 과정을 거쳤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학연, 지연, 혈연, 당적, 경력에서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해 독일 유학을 했던 유시민과는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고, 유시민은 경제학을 전공한 저술가로서의 경력을 가진 반면, 노무현은 부산 지역의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경상북도 월성군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유시민과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활동을 부산 지역에서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지역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물론 넓게 봤을 때 같은 영남권 출신이라는 점이 있으나 아무리 같은 영남권이라도 TK와 PK는 지역색이나 정치색이 꽤 다르고, 지역 활동 상으로 크게 딱히 겹쳤던 것도 아니므로[13]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 애초에 유시민이 같은 영남이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것도 아니다.[14]
노무현 당시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당시 유시민은 새천년민주당 당원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해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후보교체론'을 들고나와 위기에 처해 있었던 노 후보를 바깥에서 도왔다. 인권 변호사 & 노동 변호사로 활동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유시민은 서울대 경제학부 전공자였다.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학생 운동을 했던 명문대 출신 운동권 정치인들이 뛰어난 능력과 신념을 가졌는데도 고졸 출신이라며 노무현을 깔보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종의 반발 심리로 '나도 당신들처럼 명문대 나왔고 학생 운동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노무현의 밑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무현과 정치 역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전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멘트들.#
이렇듯 뭘로 보나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사람의 대표격이 유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김근태 의장이 존경스러웠던 분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스러운 분이셨어요. 김근태 의장이 따라배우고 싶으신 분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뭔가를 해주고 싶은 분이었어요.''
ㅡ 영화 '노무현입니다' 중에서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 전후에 유시민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노무현 개인에게 흠뻑 반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자기가 호모는 아닌데 노무현이란 사람이 그냥 좋다고 말하기도. 그리고 본인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노무현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유시민 본인도 똑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사람이고 심재철이나 김문수 등 여권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15] 들과 젊었을 적 친분을 가지고 많은 교류를 나누었던 걸 보면 정치계에선 노무현이 제일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민주당의 친노계 의원과 친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 유시민이라는 사람만의 특징이다. 그 이유로는 비록 정당은 달라도 다른 친노계 민주당 의원들과도 정치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으며,[16] 사적으로도 참여정부 시절 맺었던 끈끈한 관계를 여전히 잘 유지하기 때문인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가 열릴 때에면 자주 민주당 소속 친노계 정치인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입담을 과시하곤 한다. 이 때문에 유시민을 민주당계로 아는 사람도 제법 적지 않고, 실제로도 민주당계와 제3지대를 아우르는 광역계 친노계열로 구분된다.
유시민이 있던 진보 정당들의 강령도 노무현의 신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그로 인해 진보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거리를 좁힌 인물로 손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 정당 사이에 끼친 영향은 크며, 친노 성향의 의원들이 이 둘 사이의 화합을 유도하는 행동도 자주 하고 있으며 유시민도 그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유시민을 친노라고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노무현의 측근 중 하나인 강금원 회장과 노무현이 있는데, 강금원 회장은 유시민의 행보를 비판하며 '쥐XX처럼 정치하지 마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으며, 그를 친노라고 보는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인터뷰를 했다. 또한, 노무현 본인이 직접 유시민에 대해 '우리편이 아니다. 그저 우리와 비슷해서 인정한 것이다'라고 잘라말했다. 다만 유시민이 기존의 가신그룹인 금강팀, 대표적으로 안희정, 이광재 등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도왔던 인물들과 함께 걸음을 맞추던 인물이 아니기에 있던 일이다. 노무현 본인이 비슷한 사람이라 이야기했고 본인이 어려울때 자신을 지켜준 사람이라 극찬한 유시민이 친노가 아니라면 친노라고 할만한 정치인은 많지 않다.국민참여당이 친노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ㅡ 시사IN 179호, 강금원과의 인터뷰에서
여담으로 한겨레 절독을 선언한 적이 있다. '소비자' 유시민이 <한겨레>와 작별한 까닭은? 이유는 한겨레에서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 하지만 순간적인 욱한 감정으로 그런 것이고 본인 이름으로 구독하는 것은 미안하다며 아내의 이름으로 계속 구독 중이라 한다. 그랬던 그도 훗날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 되자 TV조선에 노무현재단에 노무현시민센터 설립을 위한 광고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친노에서의 위치 때문에 유시민을 친문으로 보아야 할 지는 복잡하지만, 최근의 행보에 따르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유시민은 문재인과도 매우 가까운 관계이며, 위에 나왔듯이 '진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며 문재인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친노 내에서 유시민이 가지는 강력한 상징성과 위치 때문에 유시민을 문재인의 인사로 보기에는 대단히 애매한 편이고, 유시민 본인은 썰전 158화에서 전원책이 지금도 친문이냐고 묻자 저는 친문이죠 라고 바로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되게 좋아한다고 하면서 대외적으론 친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 되고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인간적인 매력이 확 땡기는 맛이 있나? 대선때 다들 고구마라 그랬잖나. 구도를 특별히 짰나? 그것도 없다. 그냥 시민들이 촛불 혁명을 일으켜서 그냥 나갔고 그냥 원래 생기신대로 어어 하다 대통령이 되었다.'란 발언을 해서 잠깐 논란이 됐는데 발언의 앞뒤 맥락을 거세해 부분만 두드러지게 보도된 게 드러났다.
유시민은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욕망, 대중의 욕망을 추종하는 스타일이 아니며, 대통령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정부의 권한을 행사해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라고 평했다.
3.2. 정치, 경제 관련 어록
정치란 때로는 짐승이 되는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 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17]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정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 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말.
인간의 뇌세포는, 그러니까 노화라는 것은 20세가 지나면 노화가 바로 시작됩니다. 한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죠. 사람이 멍청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원칙 중에 하나가 가능하면 60세가 넘으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65세가 넘으면 때려 죽여도 책임있는 자리에는 가지 말자, 이게 제 소신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뇌세포가 너무 많이 죽은 상태에서, 뇌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할때 이루어둔 업적을 배경으로 얻은 지위를 가지고 그 사람, 과거에 그 지위를 획득할 당시의 능력있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에요. 20대, 30대, 40대 때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던 사람이, 학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뇌세포가 엄청 많이 돼갖고, 65, 66, 67, 68 돼가지고, 그때, 잘 나갈 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때의 지위를 이용해서 말을 하는데, 그것은 20여 년 전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가 말을 하는 겁니다. 뇌세포의 일치 정도가 몇 %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고 나쁜 사람에게는 미움을 사는 사람이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재정 적자를 다 합쳐봐야 18조 5천억 원밖에 안 됐어요. 건전하게 재정을 운영했다고요. 그러면서도 보육비 지원도 늘리고, 기초 연금도 도입하고, 장기 요양 보험제도 도입하고, 건강 보험도 혜택을 많이 늘렸어요. 그러면서도 18조 5천억 원밖에 재정 적자가 안 났어요. 그게 정부가 적자를 좀 보는 건 괜찮거든요. 왜냐하면 전체 GDP중에서 1~2%의 적자를 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1억 연봉 버는 사람이 백만 원 정도 빚진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GDP에 1천조 정도 넘었으니까 그 당시엔 한 십조 정도 빚지는 것은 5년 정도 큰 문제 없어요.
이명박 대통령 5년간 국가 부채 중에 어떤 것은 돈을 빌려서 산 것도 있기 때문에, 금융성 채무는 또 달라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이 더 많은 거'요. 우리가 IMF때 은행들 살리려고 정부 자금을 투입해서 주식을 취득하고 정상화시킨 다음에 되팔아가지고 많이 회수했잖아요. 그런 금융성 채무는 괜찮아요. 화폐 가치를 안정화시키려고 외국환 평형 채권 기금을 발행해서 거기에서 빚을 얻어서 거기서 달러를 매입해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고 나중에 달러 팔면 돈이 생기는 거니까 괜찮다고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이 적자성 채무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60조였어요 연평균 32~33조 원. 근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 '''565조 원'''이에요, 그것도 3년간이요. 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 5년 동안 25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남기게 돼요. 문제가 엄청 심각하거든요. 다음 정권 교체를 해서 야당이 집권을 한다고 하면 쓸 돈이 없어요. 펑펑 다 써 가지고. (이 많은 돈을 다) 어따 퍼줬냐? 국민들에게 퍼준 게 아니고 재벌들한테 퍼준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감세(= 부자 감세 정책) 그걸 원위치를 안 시켰기 때문에(= 부자 증세 정책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한 번 고쳐놓으면 항구적으로 감세가 되잖아요. 그게 누적되면서 그 효과가 계속 쌓여서 연간 50조 이상의 적자 재정을 보고 있잖아요. 아주 나라 경제를 망쳐놓고 성장률은 2%밖에 안 되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평균 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잖아요. 근데 지금 2%예요.
적자성 채무는 세입보다 세출을 많이 썼기 때문에 돈이 모자르는 거니까 나중에 생으로 갚아야하는 돈이에요. 그게 참여정부 5년 동안 적자성 채무가 18조 5억 원 정도였어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89조 원대 정도로 추산됩니다. 4대강 사업 8조 원은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놨으니까 포함이 안 된 거구요. 그거까지 합치면 '''10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졌어요. 근데 박근혜 정부는 이 추세로 가면 MB 정부를 초월하는 적자성 채무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이 돼요.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 이 문제가 제기 되어서 정부가 단년도 예산안을 내는 거 말고도 5년짜리 옛날 중기 기획, 지금은 국가 재정 운영 기획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마다 향후 5년치를 예상하는데 기획재정부에서 이걸 냈어요. 이걸 보면 U커브인데요 '첫해는 적자성 채무가 많아서 재무가 불건전하고 해마다 노력해서 줄여가서 임기 말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 이게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나온 거와 똑같은 그림이에요. 이명박 정부 말대로 됐으면 2013년에는 균형 재정이 됐어야죠. 근데 2014년~2015년 오면서 적자성 채무가 커지기만 해서 이제 단년도에 30조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단 말이에요. 그럼 2018년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는 말인데 '그럼 2018년 되면 올라가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고 마찬가지로 20~30조 원 상태의 적자 상태로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이거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쓰더라도 정직하게 말하고 써야지 5년짜리 국가 재정 운영을 엉터리로 작성해서 낸다. (중략) 국가 채무에 관해서는 유럽 연합이 경제 통합을 할 때, 통화 통합을 할 때의 기준이 국가 채무가 GDP 기준의 6%가 기준이었어요. 해마다 지는 거. 해마다 GDP 3%에 기준으로 잡았단 말이에요. 우리가 1억을 연봉을 버는 사람이 한 6천만 원 부채를 안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돼요. 해마다 6%를 유지하려면 해마다 그 정도 빚지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국가는 부도가 안 나니까 괜찮다' 뭐, 이런 건데 제가 사실 채무 걱정을 하는 것은 '제대로 쓰면서 채무를 지는 거냐'는 문제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국가 채무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문제 의식이 또 하나 있어요.
지금 내년도 예산안이 통합 재정 기준 기금까지 합쳐서 376조 원인데 복지 분야가 3%를 넘었다고 정부에서 엄청 이야기 하잖아요. 내년도 보건복지의 고용의 예산액이 통합 기준으로 기금 포함해서 155조 원이에요. 근데 이게 금년도보다 얼마 늘어났냐하면 9조 천억 원 정도 늘어난 거예요. 이 9조 천억 원의 대부분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어나서 지출액이 많아지는 거 하나하고, 기초 연금 도입해서 금년도에 7월 달부터 줬기 때문에 1년 내내 주는 것에 3조 원 주는 것이 거의 다예요. 나머지는 늘어난 게 아주 미미합니다. 보육이라든가, 학교 무상교육이라든가, 실업자 지원이라든가 여기선 미미한 증가밖에 없고요, 나머지는 2014년 예산안에서 각 부처별로 조금씩 조금씩 늘린 거예요.
특별히 늘었거나 줄은 게 없고 SOC[20]
건설 예산안은 7천억 늘었고요, 일반 지방 행정은 2조 원 늘었고요. 다 비슷비슷 늘어난 거예요. 그럼 재정 능력이 없어서 빚을 지는 거냐? 이건 또 아니라는 거예요. 김무성 대표가 '부자 감세라는 건 야당의 선동'이라 이야기하는데 (중략) 법인세, 소득세, 법인소득세, 개인소득세, 감세시켜준 게 이명박 정부 때 감세해준 게 지금까지 누적이 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세수(국민에게서 조세(租稅)를 징수하여 얻는 정부의 수입)가, 지금 내년도에 법인세가 0.1%밖에 안 늘어나는 걸로 잡히는데 그러니까 돈을 낼 능력이 있는 사람, 세무 행정의 기본 원리는 '능력에 따라 납세'인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겐 세금을 안 걷고 한쪽으로 담배며 상업용 자동차며 무슨 주민세며 이런 걸 인상해서 돈을 걷는다는 이런 발상 자체 제가 볼 때에는 빚을 30조 원 지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이것은 불건전 예산이다.
2005년도인가 국회에 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정 연설을 했는데요. 국회 시정연설 중에 보건 의료 서비스 무역 수지 적자가 1조 원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그걸 근거로 해서 '의료 산업 선진화 위원회'라는 걸 국정 과정 위원회로 만들어서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하고, 대통령 보고에도 몇 차례 하고 그랬어요. 그게 민간 합동 위원회인데 정보 쪽 간사[21]
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했고, 그리고 민간에도 간사가 있어요.이렇게 해서 여러 번 회의를 했는데 제가 장관 되자마자 1조 원이라는 데이터가 어디서 나왔냐고 물어봤죠. 그때는 기획재정부가 아니고 재경부(재정경제부)에서 나온 데이터래요. 그래서 제가 재경부 국장에게 물어봤죠. 회의 중에 제가 '이거 재경부에서 데이터를 냈다고 그랬는데 출처를 밝혀보시오'라고. 연구보고서에도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 어디서 만든 보고서냐 제목이 뭐냐 물었더니 다음 회의 때 보고 드리겠다고 해서 한 달 후 다음 회의 때 또 물어봤어요 제가. 그랬더니 민간 병원의 연구보고서에 있는 거래요. 그래서 '민간 병원 어디서?' 물어봤더니 미즈메디 병원에서 나온 연구보고서래요.
그러면 미즈메디의 연구보고서라면 틀림없이 정부 데이터를 근거로 산출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이면 우리 외환 관련 자료를 못 가지고 있지 않냐, 틀림없이 한국은행 자료나 참고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 연구보고서에는 이 1조 원이라는 산출 내역이 어떻게 되어있고 산출 내역이 되는 데이터는 어디서 가져온 걸로 밝혀졌더냐 물어봤더니 그거까진 미처 확인을 못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열을 냈죠. '''아니 이런 불분명한 데이터를 대통령 시정 연설에 넣고 이렇게 회의 자리에 맨날 넣어 놓으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그 당시 산자부(산업자원부) 장관하던 정태익, 정세균 장관이 (저랑) 같이 화를 벌컥내면서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해놓으면 정부 공문서 전체가 불신 받지 않냐, 그래서 제가 돌아와서 제가 직접 조사했죠. 한국은행과 협조해서 그 유학생이나 상사주재원 교민 말고, 치료를 목적으로 출국한 사람 환전 기록을 데이터로 조사해서 해 봤더니 적자 폭이 56억 원이라고. 1년 동안이요. 그래서 56억 원이면 곧바로 흑자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한 컨소시엄을 민간 합동으로 만들고 그래서 바로 흑자로 전환시켰죠. 대통령이 나중에 보고를 받고 징계하라고 했어요, 책임자를.
'''근데 재경부에서 징계 안 하고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관료들이 다 짜고 하는 거예요.''' 노 대통령은 상당히 머리 좋은 분이잖아요. 정치적으로 싫어하더라도 그건 인정할 거예요. '''그런 (머리 좋은) 대통령도 데이터가 그렇게 올라오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시정 연설 와서도 읽는 거라고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담화문에, 이건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예요. 일국의 대통령의 담화문에 이런 게 들어가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만 이렇게 했어요 (중략) 밥 먹고 취재하는 게 일인 언론인이나 학자들 있잖아. 이거 뭐하는 거예요. 지금 이게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예요. 대통령 담화문이.
묘한 기사들이 나왔더라고요. '보험업계 걱정 지금 손보자'라든가. 생보사(생명보험 회사)에서 그동안에 여러 가지 미끼 상품으로 종신 연금을 많이 팔았거든요. 근데 소득대체율(소득이 없을 때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금전의 비율)은 40%~50%로 올리게 되면 보험료도 올려야 되고 안 올릴 순 없어요. 보험료를 올리게 되면 민간 가계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노후 소득 공적 연금 노후 소득 보장율이 높아지니까 사적 연금이 줄어들 거라고 수요가.
이것 때문에 보험업계에서 엄청 로비를 하는 건 불보듯 뻔한 거고 (중략) 국민연금의 문제점의 하나가 가입하면 무조건 이익을 봐요.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손해를 봐요. 나중에 세금이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도 국민연금은 다른 민간 보험 상품보다 수익율이 높아요. 왜? 단순한 이유예요. 우선 이윤을 안 남겨요.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도 없고, 경영진이 수십억 연봉 가져가는 것도 없고, 관리비도 국가에서 다 대요. 국민연금 기금의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 기여금, 이거는 고대로 기금 운영을 해서 돌려주기 때문에 민간 보험과 견줄 수 없어요. 그럼 나중에 부가식으로 전환하는 걸 전제로 해서 국가가 지급 보증을 하게 되면 이 국민연금의 수익율은 고소득 계층에게 있어서도 민간 보험보다 무조건 유리하고 중간 소득 이하 계층들은 수익율이 더 높고, 거기다가 비용 근로자는 회사에서 반을 내줘, 무조건 이익인 거예요.
그러니까 중산층 강남3구 중산층 주부들이, 임의 가입자들이 많다니까 이게 최고의 금융 상품이기 때문에 꼭 가입할 필요가 사람들인데도 한 달에 40만 원, 50만 원 막 내서 가입하는 거야. 그래서 이게 없는 사람만 몰라서, '나는 국민연금 싫어', '나는 손해보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거. 이 점이 좀 안타깝고요, 두 번째는 합의 기구 구성 문제인데, 저는 이거 야당이 50%를 굳이 명시 안 한다고 해도 된다고 봐요, 그냥 '일원 정도로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제를 포함하여 배제하지 않는 걸로 포함하여', 뭐 여부 못박기 싫으면, '50% 소득대체율 인상을 할지 여부를 포함하여' 그렇게 (법안 문구를) 합의를 보면 청와대에서 뭔 말 못 해요. 50%로 못박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러나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국회와 민간이 다참여 하는 논의 기구를 만들어서 여러 활동을 체계적으로 논의를 하고, 그렇게 해서 합의가 이뤄지면 하면 될 거 아니야. 이거는 서로 간의 정치 공방을 주고 받고,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이건 그냥 돈 계산하고 따지면 되는 문제인데. 그래서 이런 거는 국회에서 구성을 해서 몇십 년을 하는 거야. 계속 왜냐하면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변할 수 있고 국민연금은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건 함구적으로 국회의장 산하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놓고 국회 정당이 참여하고, 민간 전문가도, 가입자 단체, 이익자 단체, 관련자 단체 다 참가해서 논의를 정권이 바뀌건 국회가 선거를 새로하든 상관 없이 상시적으로, 인적 구성은 바뀌더라도 상시적으로 가동하면 돼요 근데 뭘 대통령이 뭐 공무원 연금만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이야기하지 마라
어떤 국민 경제를 파멸에 빠뜨리는 가장 빠른 길은 화폐를 타락시키는 것이란 말이 있어요. 이게 케인즈가 한 말인데요. 한 국민 경제를 타락시키고 싶으면 화폐를 타락시키면 돼요. 그러면 모든 거래 관계가 다 불신에 휩싸이고 저절로 경제가 밑으로 꼬라박게 되어있습니다. '''한 사회를 타락시키는 제일 빠른 길을 저는 언어를 타락시키는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이 '''국론 분열'''이라는 용어 있잖아요. 저희 어렸을 때부터 아주 지겹도록 들었고요, 제가 20대 때는 저나 노 대표님 진중권 교수 같은 사람을 가리켜서 박정희 정권~전두환 정권, 언론, 또 정부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좌경 불순 세력'''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지금 "국민이 분열되어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아니 어떻게 국민들의 의견이 하나도 모아져요?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우리가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의견들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지를 찾기 위해서 서로 논쟁하고 토론하고 경쟁하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국론 분열은 문제다, 국민을 통합해야한다, 이런 것이 적폐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하면 되죠.
ㅡ 특집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7.03.26
2002년 7월달에 그때 마포 제 작업실에 오셨을 때 저한테 물어봤었거든요.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제가 '아, 오지요. 100% 오죠 그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 그랬더니 '''"아,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니 뭐 그럴 수는 있죠. 후보님은 첫 물결이세요.' 내가 그때 그랬어요. '첫 물결이세요. 새로운 조류가 밀려오는데 그 첫 파도에 올라타신 분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근데 이 첫파도가 가려고 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이 첫 파도가 못 가고, 그 다음 파도가 오고 그 다음 파도가 와서 계속 파도들이 밀려와서, 여러차례 밀려와서 거기 갈 수는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 정신과 새로운 변화, 새로운 문화를 체현하고 있으시기 때문에 첫 파도 머리와 같은 분이세요 후보님은. 근데 가시고 싶은데까지 못 가실 수도 있죠. 근데 언젠가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갈 거에요. 근데 그렇게 되기만 하면야 뭐 후보님이 거기 계시든 안 계시든 뭐 상관있나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때 또 '''"하긴 그래요. 내가 뭐 그런 세상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내가 꼭 거기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너무 냉정하게 말을 했다는 후회를 나중에 좀 했는데.''' 근데 이제 그렇게 말씀드려도 하나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건데.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좀 앞서 나간 것 같아요.
앞서 나갔다는 표현보다 노무현이라는 이 사람의 존재 그 자체, 그분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의 총합으로서의 한 인간, 정치인으로서의. 이게 받아들일 수 없는 풍토예요 우리가. 대통령이 될 수 없어요, 그 캐릭터로는. 근데 됐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던 거예요. 그게. 굉장히 힘들었고, 마치 좋은 결과를 못 낸 것 같은 그런 시선을 받는 거고.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는 면도 많아요, 왜 저러는지. 그래서 노 대통령 자신이 너무 앞서간 거는 아니에요. 그분은 대중과 함께 가려고 계속 노력했던 분이고. 근데 그분이 가직 있는 모든것의 총합으로서의 '정치인 노무현' 이 존재 그 자체가 너무 앞서 있는 존재였어요 제 생각에는.
ㅡ 2017년 2월 9일 노무현재단의 인터뷰 中
한 1989년도에 사석에서 초선인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는데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나왔어요. , 그 때 ''' 노무현 의원님이 대통령 하시고 이해찬 의원님이 총리 하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 했단 말이에요. 근데 한 15년 후에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요.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 500만명이나 된다는거 아니예요. 그것때문에 30년간 일하던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해고했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피눈물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30년동안 한 직장에서 일한 사람한테 최저임금을 줄 수가 있어요.''' 이게.. 우리 사회가 이러면 안되거든요.
2019년 jtbc 신년토론에서
다 죽을 거예요 , 다 죽고 혼자만 당선되어서 올 거예요.
ㅡ 21대 총선 특집 프로그램 정치합시다 에서 민주당 180석 압승론을 주장하다가 전원책 변호사가 " 그럼 보수진영 대권주자들이 다 죽는다는 뜻이냐 " 라고 질문하자 답변.
4. 방송 활동
4.1. 과거 출연작
-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극본)[22]
- 100분 토론(진행)
- 비정상회담(게스트)
- 언니들의 슬램덩크(게스트)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 1, 2, 3
- 차이나는 클라스(게스트)
- 마이 리틀 텔레비전(게스트)
- 무한도전(게스트)
- 수요미식회(게스트)
- 썰전
- 패키지로 세계일주 - 뭉쳐야 뜬다(게스트)
- 방구석1열(게스트)
- 대화의 희열 2(게스트)
- 오늘밤 김제동(게스트)
- 저널리즘 토크쇼 J(게스트)
- 정치합시다
5. 저서
정치색이 뚜렷한 책이 아니면 기본으로 10만 부는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경제 관련 저서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가 꽤 유명하다.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집필했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집필했고, 2013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의 NLL대화록 관련하여 중립적인 시선에서 기술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이 있다.
2014년에는 자신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우리나라 현대사를 서술한 『나의 한국현대사』를 출판했으며 2015년에는 글쓰기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유시민의 논술 특강』을 출판했다. 본인의 소개에 따르면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에 대한 책이라고. 글쓰기 특강의 경우에는 다음 크라우드 펀딩 유시민의 글쓰기 고민상담소를 통해 먼저 진행했다.
자녀의 대입 논술도 스스로 가르쳐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 가르쳐서야 하느냐고 투덜댔지만, 자녀 유수진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다.[23] 중학교 때까지 축구에만 관심이 있어 성적이 별로였던 아들도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전교 1등이라고...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밝히길 '너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호나우두나 메시가 될 재능은 아버지가 물려주지 못했다, 미안하다, 그러나 꼭 축구선수가 되는 것만이 취미를 살리는 길이 아니다. 영국 유학을 가서 스포츠 평론가가 될 수도 있다'라고 차근차근 달랬다고 한다.
''' 목록 '''
- 『아침으로 가는 길』, 학민사, 1986.
- 『거꾸로 읽는 세계사』, 푸른나무,1988.
- 공저, 『기억하는 자의 광주』, 돌베개,1990.
-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푸른나무, 1992.
-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푸른나무, 1994.
- 『97년 게임의 법칙』, 돌베개, 1997.
- 『WHY NOT?: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 읽기』, 개마고원, 2000.
- 강준만, 유시민 공저, 『지역 감정 예찬론』, 개마고원, 2000.
-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돌베개, 2002.
-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개마고원, 2002.
- 『대한민국 개조론』, 돌베개, 2007.
- 『후불제 민주주의』, 돌베개, 2009.
- 『청춘의 독서』, 웅진지식하우스, 2009.[24]
- 『운명이다』, 돌베개, 2010.[25]
-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개, 2011.[26]
-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의길, 2013.
-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돌베개, 2013.
-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2014.
- 공저, 『기억의 방법』, 도모북스, 2014.
- 공저, 『생각해봤어?』, 웅진지식하우스, 2015.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생각의길, 2015.
- 『유시민의 논술 특강』, 생각의길, 2015.
- 공저,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 쉼, 2016.
- 유시민, 정훈이 공저, 『표현의 기술』, 생각의길, 2016.
- 『유시민의 공감필법』, 창비, 2016.
- 『국가란 무엇인가 2017』, 돌베개, 2017.
-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돌베개, 2017.
- 『청춘의 독서 (recover edition)』, 웅진지식하우스, 2017.
- 『역사의 역사』, 돌베개, 2018.
- 『유럽도시기행 1』, 생각의길, 2019
6. 선거 이력
7. 소속 정당
8. 비판과 논란
9. 여담
정계 은퇴 후에는 작가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1988년)가 있다. 일개 대학생이었던 유시민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바로 그 책이다. 교양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00만부나 팔렸다. 당시 초중고교생들에게 필독서로 꼽힐 정도였고, 90년대 후반 대입 본고사 및 논술 고사 시절에도 배경지식용 기본 필도서 중 하나로 꼽혔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작가, 논술 강사, 강연자, 방송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을 소개할 때 '이것저것 하다가 지금은 글 쓰는 사람'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정계 은퇴 후 보통 대중강연이나 언론 등에는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또한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 '진보 어용 지식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며, 방송 활동이 활발해진 2017년 들어와서는 스스로를 ‘방랑 예능인’이라 자칭하기도 한다. 사실 일단은 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에 출연하기 때문인지 그전부터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예능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농담조의 발언이고, 진지하게는 방송이 ‘부업’이고 본업은 작가라고 단언하고 있다.
정계 은퇴 직후인 2010년대 초중반에는 논술 및 글쓰기 저서를 몇 개 내고 논술 특강을 열기도 했지만 이쪽에서는 별도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이후 방송인과 강연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유 작가의 '''시민'''이라는 이름은 역사교사였던 선친이 조선 무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참고로 서애 류성룡의 13대 직계손이다. 탤런트 류시원과 같은 항렬이다. 유시민의 12대조는 장수찰방 류여, 11대조는 졸재 류원지이다. 알쓸신잡 시즌 2 안동편에서 풍산 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을 방문했는데, 만난 유시민의 항렬이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마을 주민 어르신들이 유시민을 '할배'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 닮은 사람이 은근 많다. 양조위를 묘하게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느와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진이 여럿 있다. 김국진하고도 은근히 닮았다. 한국계 코미디언 프레드 아미슨과도 닮았다.#
- 친노의 대명사인 만큼 장관 업무 수행 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장관 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임명 과정에서 논란이 많아서 다른 부서에서 그를 무시할까 봐 유시민이 업무차 청와대를 들르면 별일이 없는데도 단 둘이서 차를 마시고는 했다고. 그럼 유시민 장관이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더라!라는 소문이 쫙 퍼져서 재경부 등 돈에 민감한 부서들이 둘이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예의주시를 하게 되고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힘이 실렸다고 한다.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무시를 당하는 유시민에게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는 있었지만 별 이야기를 한 건 아니고 남는 시간에 단둘이서 차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33]
- 시티즌 유라는 별명이 꽤 유명하다. 유래는 당연히 시민을 뜻하는 시티즌과 성씨 유를 합친 것.
- 노회찬의 언변은 상황을 비유법으로 묘사하면서도 항상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그 때문인지 유시민, 노회찬과 박형준, 나경원이 출연했던 MBC 100분토론에서 예전부터 서로를 인정하던 박형준과 유시민은 토론상에서 승부가 나지 않다시피 치열했지만, 노회찬은 그 박형준조차 잠시 쩔쩔매게 한 적이 있다. 달변가라고 평가받는 이들도 문장이 길어지고 많아지면 비문이 많아지게 마련인데, 유시민은 그런 부분에서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명확한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에 기인한 전달력 또한 당대의 정치인과 논객들 중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한 또다른 강점으로, 그의 논리적 정합성 넘치는 언변을 느끼고 싶다면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즌 1을 통해 확인하거나 유튜브에 유시민 토론 영상을 검색해보자.
-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시절때만 해도 모가 난 성격이니 인성이 덜 됐다느니 하는 악평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었고, 여야를 막론하고 동료 정치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 꼽혔었다. 오죽하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유시민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하자,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이를 강력히 반대해서 이런 당의 의견을 수렴한 이해찬 국무총리도 유시민 장관 임명에 대해 대놓고 반대하는 바람에 노 대통령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던 더민주 소속 김영춘 의원은 "저토록 옳은 얘기를 어쩌면 그렇게 싸가지없이 할까"라면서 대놓고 디스했던 적이 있었다. 노회찬 의원은 유시민에 대해 "유시민은 100미터 미인이다. 멀리서 보는 대중들은 좋아하지만, 정작 가까이서 접해본 이들은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청래 의원 역시 유시민을 여러 차례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다. 훗날 전원책이 썰전에서 말하길, "예전엔 바른 말도 싸가지없게 했는데 지금은 나쁜 말도 품격있게 한다"며 예전에 비하면 온화해지고 예의를 갖추게 된 유시민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지, 알쓸신잡으로 유시민과 많이 지내본 음식칼럼니스트 황교익도 tvN 예능프로그램 '우리가 남이가'에서 다른 멤버들이 유시민에 대해 질문하자 "인간미가 전혀 없는 차가운 사람"이라며 시큰둥하게 답하기도 했다.
- 그런데 보수 쪽 정치인인 강용석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 중에 가장 실력있고 콘텐츠가 풍부한 인물이 유시민이고, 자기도 많이 벤치마킹하고 싶다며 유시민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근데 이것은 인성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지식과 재능에 대한 평가인데[35] , 유시민이 똑똑하고 실력있다는 건 그를 싫어하는 정치인들도 다 인정하는 바이다.
- 유시민도 자신도 좋아하는 정치인과 싫어하는 정치인이 있는데, 그동안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노무현과 김영삼은 좋아하고, 이재명은 싫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김대중의 경우 97년 대선 당시에는 선호하지 않았지만 후에 정계에서 활동하며 호의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 일부는 이재명에 대해선 2017년 1월 초에 방영된 JTBC ‘신년특집 토론’을 거론하며 대기실에서와 토론 시작 전 잡담 등을 그대로 담은 미방 특별영상에서 이재명을 보자마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요즘 좀 잘 나간다고 잘난 척 하지 마라. 언제 갑자기 고꾸라질지 모른다."라며 쏘아붙였다고 주장하나, 해당 동영상을 보면 전혀 불쾌한 표정도 아니고 쏘아붙이는 것도 아니다.[36] 그리고 2020년 총선 후 진행한 알릴레오에서 이재명의 행정 능력에 대해 아주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면, 어느정도는 이재명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명박 정부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한나라당 및 친이계 인물 중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들과도 토론을 벌였는데, 그 상대가 김문수, 나경원과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이동관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실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논리정연하게 토론을 이끌면서 김문수, 나경원은 완전히 입을 다물게 만들었고, 이동관의 경우 그나마 어느 정도 토론답게 이끌어 갔으나 그 또한 유시민에게 패배했다. 그 이후에도 유시민이 한 번 나경원을 조롱하는 투로 나경원 의원 사용 설명서란 강의까지 하면서 그 주어는 없다를 인용했다.#
- 유시민이 출연하는 방송이나 팟캐스트에서 유승민 얘기를 할 때, 다른 출연자나 진행자가 발음을 어설프게 해서 유승민을 유시민에 가깝게 부르면 유시민이 "왜 저한테 그래요"라고 농담을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친척 간이냐고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이에 관한 하소연(?)이 재미있다. "나는 버들 유씨(柳)고, 그 사람은 유비 할 때 유씨(劉, 묘금도 류)예요."[37] 두 사람은 대륜중-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 사이다. 유시민은 유승민이 대학교 선배인 줄만 알았지[38] 중학교 선배인 줄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 중학교 동문회에서 유승민을 보게 되면서 중학교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썰전에서 유시민이 "유승민 의원은 21세기 합리적 보수 성향이다"라고 하자, 전원책이 유시민에게 "유 장관이랑 유승민 의원이랑 같은 과 아닙니까?"고 했고, 유시민이 어이없어하면서 "무슨 소리세요? 우리는 전혀 (정치적으로) 같은 과 아니에요."라고 반발했다가, "물론 대학은 같은 '과' 나왔는데... (정치 성향은) 달라요."라고 하고 넘어갔다.
- 유시민이 보수정당 계열 전현직 정치인들 중에서 자질이 뛰어나다고 인정한 토론 상대는 몇 없는데, 바로 유승민[39] 과 박형준[40] 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명박 정부 중반에 남원정의 일원인 원희룡 現 제주도지사와도 토론을 벌인 바 있는데, 원희룡 의원님 같은 인물이 한나라당 대표라면 한나라당 수준이 훨씬 올라갔을 것이라고 함과 동시에 보수 쪽에서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분이라고 원희룡을 칭찬한 바 있다.#
- 2019년 5월 알릴레오에서 한국당에 복귀하려고 명분 쌓고 있다는 말을 듣는 유승민을 보면서 어차피 정계 복귀한다는 말을 듣는 자신과 겹쳐 보인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기사
-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와도 몇 번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사석에서는 의외로 상당히 친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다.[41] 유시민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남경필의 중도실용적이면서 사교적인 성격이 의외로 서로 잘 맞는 듯하다.
- 노무현 前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 당시, 전여옥과 치열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 유시민이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적 미숙아라고 하자 전여옥이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큰 다음 다시 나와야 한다며 맞받아치며 인큐베이터 발언을 해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에 유시민은 전여옥을 노려보며, 매우 비열한 인용방식이라고 맞받아쳤다. 토론 자체는 서로 막상막하로 치열했다.[42][43]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로 인해 자살하였던 지라 검찰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다. 썰전 184화에서 김형준 부장검사에 대해 다룰 때 전원책이 이런 비리검사들은 검사하지 말고 밤의 조직의 행동대장이 딱이라고 말하자 유시민은 그 조직이랑 그 조직이 닮지 않았냐고 말했다. 그리고 236화에서 법원과 검찰 간의 영장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야말로 완전히 검찰을 맹폭하며 깠다.
- 정계 은퇴를 할 때 가장 좋아했던 여인이 아내와 어머니라고 한다. 딸은 자신이 뭘 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 취미는 낚시라고 한다. 물고기가 낚일 때까지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아 그게 좋다고 한다. 단순히 시간 날때 낚시를 하는 정도를 넘어서 낚시춘추에 표지모델을 하는 등 조사 소리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제대로 즐기는 편.
- 노유진의 정치카페의 부록편이라 할 수 있는 '정치카페 테라스'에 출연했을 때 친구인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와 낚시를 다니기도 했지만 낚시는 안 하고 술만 마셔서 애먹이는 바람에 지금은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고, 파주에 있는 계곡 저수지에 낚시를 하러 갔을 땐 너무 낚시가 잘 돼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을 초대했지만 정작 그날은 낚시가 전혀 안 되는 바람에 미치는 줄 알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 그리고 낚시터를 고를 때 물고기가 잘 낚이는 곳이냐를 많이 따지지만, 맛집이 있는가도 그만큼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카페 테라스에서 자신이 다녀본 맛집들도 함께 소개했으며 그중에서 진도군에서 먹은 간재미 회무침을 최고로 꼽았다. 알쓸신잡 예고편에서는 마찬가지로 낚시를 즐기는 황교익과 30분간 주야장천 낚시토크를 해서 주변사람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기도 했다.
- 차이나는 클라스 1회에서 밝히길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내라고 한다.
- 팬클럽 시민광장에서는 '첨맘'님이라고 불린다. 팬카페 시절 만들었던 유시민 본인의 아이디로 호칭하는 것. '처음마음初心'을 빠르게 발음한 '첨맘'이 당시 닉네임. 참고로, 국민참여당에서는 오프라인 토론회 때 당원들이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닉네임으로 호칭하는 것이 디폴트였다. 이는 개혁국민정당부터 이어진 전통으로 추정된다.
- NLPDR의 '김대중 비판적 지지'의 영향력이 강하던 80년대 운동권 출신답지 않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인 노선을 견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예로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97년 5월에 발간한 '1997 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통해 "영남과 군부의 맹목적 비토를 당하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을 확률보다 낮다.", "조순 씨같이 이미지가 좋은 제3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고 신한국당 측이 헛발질을 하지 않는 한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던 것인데 그해 대통령 여론 조사에서 김대중 당시 후보는 김종필과 DJP연합의 효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도 레드 콤플렉스를 완화하면서 줄곳 선두를 유지하다 대세론까지 나왔고 이회창 후보의 병풍으로 싱겁게 끝나나했다가, 막판 영남권 표 결집과 북풍과 색깔론이 나오며 40.3%의 득표율을 얻어 극적으로 당선되었다.
-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말년에 권노갑 등 측근비리와 전정권 김현철의 선례가 있음에도 대통령 아들 3형제 홍삼 트리오 비리에 연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김대중은 더 이상 이 나라 대통령도 아니며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사람이고, 대통령 자리에 있지만 실제 통치권은 비서들이 가지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었으면 하야했다. 부슨 부귀영화에 애국하겠다고 청와대에 있냐.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건 청와대가 아니라 한나라당이며 이회창 총재가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다. 그러니까 김대중은 분수를 알아라. 자신이 법적으로 대통령이지만 정치적으론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인신공격을 포함한 모욕을 퍼부었다. 훗날 유시민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되고나서 한 말이지만, 김대중이 유시민을 비서로 채용하려 제안했던 것을 보면 호의를 배신한 셈. 그러나 정계에 입문하자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김대중 부채 승계론을 주장했고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출간한 저서인 『청춘의 독서』와 『나의 한국현대사』를 통해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고, 2009년 8월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나의 첫 대통령, 사랑했습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기기도 했다. 2010년엔 이희호 여사를 방문하여 "시사 평론할 때 몇 차례 비판했던 것 늘 마음에 걸렸다. 사과 말씀 드리고 싶었다"면서 "정부에 있어보니 김대중 대통령님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뚫고 거기까지 이루셨는지 알 것 같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 유시민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에 흔치 않은 자유주의 계열 지식인이지만, 그런 포지션에 있던 지식인들 중에는 유일하게 국회의원(2선)과 장관, 당대표(2회)를 지낸 전직 정치인이다. 이러한 경력은 여타 진보 & 자유주의 진영 참석자들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요소이며, 토론회 등을 보면 그가 이러한 경력들을 활용하여 주제의 맥을 짚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 2016년 1월 25일 JTBC의 비정상회담에 패널로 출연하였다. 이 자리에서 정계 은퇴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국민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3번 확인(낙선)했고 다시 정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작가로 사는 게 더 좋다고. 이 와중에 기욤이 방글방글 웃으면서 던진 자기 포장에 세 차례 실패한 거 아니냐는 돌직구에 떡실신당한 건 덤. 또 출연자들에게 언젠가부터 너무 한국에 좋은 말만 한다며 속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 하라고 직구를 날리기도. 한편 독일 유학파로서 다니엘과 독일어 프리 토킹을 했는데, 다니엘이 진중권 교수보다 발음이 좋다고 평가할 정도로 녹슬지 않은 독일어 실력을 보여줬다.
- 키가 168cm 정도였던 노무현보다 약간 큰 것을 보면 키는 170cm 초중반인 것으로 보인다.
- 2016년 1월 21일에 방영된 썰전에서 쯔위 사태의 시발점 격인 황안이라는 대만 가수를 두고 "이 친구는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북에 있었더라면 보위부할 친구야"라면서 비판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땅은 넓은데 속은 좁다고 비판했다.스포츠조선 썰전, # 이 밖에도 중국에 대해서 아예 일당독재라고 의견을 밝히는가 하면스포츠한국 썰전, #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라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사드 배치 논란에 대해서는 한국이 중국 경제 의존도 높고 한중관계가 험악해진다고 반대 입장을 주장했다. (썰전 201회)
- 2016년 1월 28일에 방영된 썰전에서 검찰이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계좌를 추적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기들이 집권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MB는 화를 내면 안 된다"며 날선 반응을 드러냈다. 이 사건에 대해 한 줄 논평을 내놓을 때에도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청장으로 임명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노무현이 자살한 이유는 차명계좌 발견 때문이 아닌가'라고 발언했는데, 평소에는 언성을 높이지 않던 유시민이 그 말을 듣고는 언성을 크게 높이면서 분노한 목소리로 조현오 파면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 선거철에 의정부시로 온 적이 있었는데 의정부시 시민들 앞에서 '구리 시민 여러분'이라고 한 적이 있다. 워낙 이동이 잦아서 혼동했었다고. 이는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흔히 하는 실수라 별로 특별한 건 아니다.
- 인디 만화가 최지룡의 작품에 그를 풍자한 듯한 인물이 나온 적이 있다. 축생도 외전에 국민연금을 풍자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민 연금을 내라고 독촉하는 정부 관료로...
- 통진당 사태 당시 통진당 당권파 중 일부는 좌파 조직원들에게 유시민은 CIA의 사주를 받아서 통진당을 파괴시키려 했다라고 교육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유시민은 극우 인사들에겐 종북이라고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극우에게는 종북이라고 비판받고 극좌에게는 미국의 졸개로 비판받는다...
- 병역은 제7보병사단예하 제5보병연대에서 소총수로 복무를 마쳤다. 병장 만기제대했으며, 심지어 GOP에서 철책 근무까지 했다고. 이 점을 이용해서 경기도지사 유세 때 미필자 고위층들을 신랄히 깠다. 이 군 시절 선거 때 '공개 투표'가 있었는데, 간부가 보는 앞에서 찍을 번호가 암묵적으로 다 정해진 상황인데 그냥 반대표를 찍었다고 한다. 간부가 '너 어쩌려고 이러느냐'며 혀를 내둘렀다고.
- 이명박 정부 시절, 심상정을 찾아가서[46] 심상정에게 이명박의 실책을 비난한 다음, MB정부의 심판을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심상정은 이를 수락하는 동시에 유시민과 의기투합했다. 한때는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 직후 바로 심상정을 찾아오기도 하는 성의까지 보였으나, 그 이후로 심상정은 이명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 의외로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통진당 댄스 영상은 당의 행보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너무나 깨는 가발과 의상 때문에 제대로 흑역사 취급.[48] 마리텔에 출연했을 때 팟수들이 계속 관련 드립을 치자 김구라가 이에 대해 캐물었는데 유시민은 "그거 흑역사야."라고 대답했다.
- 2011년 11월 100분 토론에서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었던 원희룡 제주지사와의 토론이 레전드 토론으로 회자되는 듯하다.유튜브 영상 썰전에서도 원희룡을 언급한 적이 있었고, 원희룡도 유시민에 대해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라고 언급했었다.
- 썰전 출연 이후로 자연인 유시민의 모습이 많이 보여진다. 대중문화 전반에 웬만한 젊은층 이상으로 관심이 많고 지식도 많은 모습이다. 인기있는 드라마는 물론이고 트와이스, 여자친구 등 걸그룹과 그들의 히트곡까지 줄줄 꿰고 있어서 이 분은 도대체 모르는 게 뭐지 싶을 정도다. 재밌게도 방송이 직업인 김구라보다도 잘 알아서, 되려 그것도 모르냐며 유시민이 김구라를 타박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 2017년 3월 2일 보해양조의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보해양조 측에서 부탁을 했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호기심이 생겼다고. 그러나 정작 유시민의 이사회 참석율은 30퍼센트에 남짓하다.
- 잘 부각이 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당적 변경 이력이 은근히 화려하다. 개혁국민정당 → 열린우리당 → 무소속 → 국민참여당 → 통합진보당 탈당 후 진보정의당으로 자의적으로 당적을 바꾼 횟수가 4회나 된다.[53]
-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그날 밤에 열린 JTBC 특집토론에서 상대방 패널이 이 사태의 원인이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발생한 것이므로 문제해결을 위해 조기대선과 함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하자 그에 반발하여 "현 헌법이 문제가 아니라 헌법을 어긴 대통령의 문제"라고 흥분해 맞받아치며 "헌법이 말을 할 수 있으면 주먹쥐고 나와서 억울해 했을 거다"라고 일갈했다. 영상 애당초 개헌이란 문제가 2개월 만에 후딱 해치울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팩트체크] 개헌, 정말로 '두 달 반'?
- 손석희가 JTBC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인 2016년부터 계속 토론 때마다 등장한다. 지금 썰전하는 것도 모자라서 2016년 총선, 탄핵 소추 통과, 신년 토론, 탄핵 인용, 2017년 대선까지 계속 나와서 앉게 했는데, 2017년 대선 개표방송 때는 6시간 내내 앉아있었다고. 화장실도 못갔다고 한다.[54]
- 좋아하는 가수로는 심수봉을 들었다. 대학가요제 2회에 "그때 그 사람"을 듣고는 뭐라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고... 그러나 음악 등 예술에 대해 별 관심이나 애정은 없는 듯 하다. 알쓸신잡에서도 자기는 역사같이 사실적인 것들에 관심이 많지, 시 같은 문학작품들에는 감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가 좋아하는 소설로 꼽은 박경리의 토지도[55] 역사성을 중시하는 리얼리즘적인 소설이다.
- 썰전 214회에서 문준용 취업 특혜 의혹과 관련하여 전원책 변호사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정황이 있다"는 말에 "있죠"라며 동의하였다. 또한 "입사 과정이 그렇게 깔끔하지 않았다는 팩트가 있고"라는 언급을 하며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극화되어 나온 적이 있다. 배우는 김수근.[56] 12회에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의 서울대 3학년 학생으로 나와 심재철 등 다른 운동권 학생들과 함께 전두환과 유신 잔당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참고로 이때 심재철 역은 배우 김용희가 맡았다.
- 지난 정권 시절 성균관대 출신 인사가 많다고 성시경 인사라는 말을 썼듯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유·시·민 인사가 많다고 비판한 적 있는데 여기서 유·시·민은 유시민 본인이 아니라 유명대학, 시민단체, 민주당 출신의 약자이다.
- 아폴로 계획 음모론을 꽤 강하게 믿고 있는 듯 하다. 대표적으로 2015년 6월 23일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정재승, 진중권, 노회찬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아폴로가 달에서 어떻게 지구로 올 수 있냐. 발사대가 안 보이는데.", 즉 지구에서 보낼 땐 거대한 발사대가 존재하고 새턴 로켓이라는 거대한 추진체를 이용해 날아가는데 달의 중력이 지구의 1/6이라고 해도 그게 가능하냐고 주장하며 홀로 키배를 벌이기도 했다. 중력이 1/6이니까 달에도 새턴 5의 1/6만 한 로켓으로 발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매우 단순한 생각이지만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별도의 가벼운 달 착륙선을 써서 착륙했으며, 로켓의 원리상 크기가 커지고 연료를 많이 실을수록 그 연료를 나르기 위한 연료가 추가로 필요해져서 로켓이 지수함수적으로 커지고 비효율적이 된다는 로켓공학의 가장 기본적 원리인 치올콥스키 로켓 방정식도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발언일 뿐이다.
- 2017년 12월 23일 방영된 무한도전에서 올해의 인물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박명수의 깊은 해학이 담긴 어록들에 대해 당사자도 담아내지 못한 통찰을 강해한 바 있다. 유재석과 유시민이 원샷에 담긴 장면이 담긴 극히 드문 장면도 연출되었다.
- 알쓸신잡 시즌 2 제작발표회에서 "유시민 작가가 역사 관련 틀린 말을 많이 한다." "방송에 나가는 것은 그중 고르고 고른 것이다' 라는 나영석 PD의 폭로가 있었다(...) # 다만 이 부분은 기사가 곡해한 것으로, 실제 영상에서 나영석 PD가 말한 취지는 구체적인 년도나 시간 흐름 등을 줄줄이 읊는데, 조사를 해보면 전후 1, 2년씩 틀리는 등 디테일에서 약간씩 오류가 있다는 말이지 내용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한 게 아니다. 애초부터 이 말 자체가 나 PD가 반쯤은 농담삼아서 했던 말에 가깝다. 해당 기사의 댓글 역시 어그로성 기사라며 기자를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앞뒤 짜른 왜곡기사가 어지간히 퍼진 모양인지, 2018년 기준으로 아직도 유시민에 대해 이 기사를 근거로 하는 비판성 서술이 달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유시민 작가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에야 그의 이야기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고[57] , 그 자신도 거듭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재료를 주는 역할"이라고 했지 100% 옳다 따위의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하지도 않은 발언을 왜곡해서 기사를 쓰거나, 이렇게 잘못된 기사를 근거로 들고와 비판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반문으로 돌아선 진중권도 유시민을 비판 혹은 비난하기 위해 인용했다가 오히려 비웃음을 산 바 있다.
- 거꾸로 쓰는 세계사 등 유시민이 저술한 역사 관련 교양도서가 학계 기준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낡고 논파된 사관으로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역사블로거 초록불의 유시민 비판. 이는 유시민의 본 전공이 경제학인 점과 학생운동에 참가한 이력 때문에 당시 운동권에서 유행하던 역사관으로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유시민 본인도 썰전을 통해 "(거꾸로 쓰는 세계사는) 하도 신통찮아서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라며 언급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이후 유시민이 저술한 역사서들이 이 비판점을 극복하지 못한 게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역덕 사이의 평가가 갈리는 편.
- 논란과 별개로 분석력이 상당한 수준이다. 박형준과의 대담에서 최근 반문으로 돌아선 진중권이 큰 호응을 얻자 이를 진중권 현상이라 하며 총선에서 중도층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하자 아무도 상대 안한다고 일축하며 박형준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침한다. 이후에도 민주당의 획득 의석수를 분석하며 대승을 예측, 그대로 적중시키며 본인의 분석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애초 유시민도 장관에 국회의원 2선에 한 정당의 대표까지 하며 정치판을 굴렀던 정치인임을 생각하면 놀랄 것도 없다.
- 명성과 분석력과 비교하면 막상 예상을 적중시킨 경우는 많지 않다. 카운터파트 전원책이 전무당, 전스트라다무스라 불리는 것에 비하면 적중률은 현저히 떨어지는 편으로, 썰전에서 전원책이 목에 힘을 주고 유시민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밈을 민 적이 있을 정도. 사후 분석만 뛰어나다는 점에서 증권사의 주식 시장 분석을 연상시킨다. 일부 팬들은 애정을 담아 유펠레라고도 부른다(...) 훗날 정치비평을 관두겠다고 선언하면서 과거의 예상은 범진보의 정치적 이익 등을 생각하여 과장 또는 축소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하며 평론가로서 하지말았어야할 말이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 2018년 연말 들어서는 정두언 전 의원이 계속 유시민 복귀설을 떠들어서 툭하면 유시민 복귀하냐, 마냐로 말이 많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 본인은 정치에 복귀하는 건 절대 사양이라며 거부하고 있고 민주당이나 정의당에서도 어떠한 입장이나 변화도 없는데 유시민 작가와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정치적 입장에서는 극과 극일 정두언 전 의원이 왜 저러냐며 이해가 되지 않다는 반응들이 많다. 2019년 초반 기준으로 유시민이 정계 복귀를 계속 거부 하는데도,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대선주자로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친이재명계의 차선책으로 유시민을 선택한 게 아니냔 입장도 있는데, 실제로 오마이뉴스에서 리얼미터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이전부터 유시민을 대선주자로 넣어왔으나 이재명이 친형 강제입원 혐의 및 공직선거법 위반에서 1심 무죄를 받고 난 뒤부턴 유시민을 대선후보 조사에 뺀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 운전면허를 독일에서 땄다고 한다. 독일 대학원으로 유학갔던 시절에 딴 듯. 참고로 독일의 운전면허 시험은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렵다.
- 서울대학교생들의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이용자들이 뽑은 2019년 상반기 최악의 동문 투표에서 조국에 이어 2위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3위는 안민석, 4위는 이해찬, 5위는 나경원이었다. #
- 항소이유서로 유명한 인물이다. 명문이라 할 수 없지만 달필인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