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동
1. 홍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한필동
한필동은 1921년 1월 20일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부평리에서 아버지 한철유(韓哲裕)와 독립유공자인 어머니 청주 한씨 유예도 사이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유관순 열사의 사촌 언니로, 1919년 경성부 파고다공원과 천안군 아우내 장터에서 열린 3.1 운동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바 있었다.# 출생 이후 큰아버지인 한서우(韓瑞禹)에 입양되었다.
그는 1944년경 학병으로 징집되어 창사의 일본군 제64부대 소속 중국군 포로 감시병으로 근무하다가 탈출했고, 1945년 충칭에 소재한 대한광복군 총사령부로 후송된 뒤 토교대(土橋隊)에 배속되어 임정 요인의 호위, 총사령부 지시에 의한 공작수행 등을 전개했다. 그러다 8.15 광복을 맞이한 후 육군 헌병 CID부대장을 맡았다. 197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생활하다 1993년 1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한필동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합천군 출신 독립운동가, 한필동
한필동은 1888년 1월 26일 경상도 삼가현 중촌면 덕촌리(현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덕촌리)에서 아버지 한익원(韓翊源)과 어머니 함안 조씨 조용하(趙鏞夏)의 딸 사이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합천군 삼가면에 거주하던 중 서울에서 3.1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한 친구 윤규현(尹圭鉉)으로부터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제의받고 즉각 수락했다. 이후 그는 각 면의 동지들을 규합하고 연락을 취하며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했다.
1919년 3월 3일 오후 1시경 삼가 시장으로 나가 '조선독립기(朝鮮獨立旗)'라고 쓴 깃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군중을 격려하였다. 수많은 군중은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합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2년 11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한필동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