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왕
[clearfix]
1. 개요
중국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제9대 군주이자 제3대 왕. 한양왕의 아들. 한환혜왕의 아버지다.
2. 생애
한 희왕 3년(기원전 293년), 한 희왕은 공손희(公孫喜)를 보내 주나라, 위(魏)나라와 함게 진(秦)나라를 쳐서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나라는 한나라 군대를 무찌르고, 이궐(伊闕)에서 공손희를 포로로 잡았다.
한 희왕 5년(기원전 291년), 진나라가 한나라를 쳐서 완성(宛城)을 차지했다.
한 희왕 6년(기원전 290년), 한 희왕은 진나라에게 무수 땅 200여 리를 주었다.
한 희왕 10년(기원전 286년), 진군은 하산(夏山)에서 한군을 이겼다.
한 희왕 12년(기원전 284년), 한 희왕은 진소양왕(秦昭襄王)과 함께 서주(西周)에서 회맹하여 제나라를 치니 제민왕이 달아났다.
한 희왕 14년(기원전 282년), 한 희왕은 진소양과 동주(東周)와 서주 사이에서 회맹했다.
한 희왕 21년(기원전 275년), 진나라의 상국 양후 위염(魏冉)은 위나라를 쳤다. 이에 한 희왕은 폭연(暴鳶)에게 위나라를 구원하게 했으나 패배해 4만명을 잃었다.[1] 그리고 폭연은 계봉으로 달아났다.
한 희왕 23년(기원전 273년), 조(趙)나라, 위나라가 한의 화양(華陽) 땅을 쳤다. 이에 한 희왕은 급한 사정을 진나라에 호소했다. 이에 진나라는 구원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마음을 바꾸고 구원병을 보내 조나라와 위나라를 쳐부쉈다. 이때 한 희왕이 죽고 아들인 한연(韓然)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한 환혜왕이다.
[1] 이것으로 한나라의 멸망은 사실상 기정사실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