햐르멘다킬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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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yaher
Hyarmendacil I
1. 소개
2. 업적


1. 소개


''''''중 네 번째인 햐르멘다킬 1세는 제3시대 899년[1] 곤도르에서 키랸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인 '''키랴헤르(Ciryaher)'''는 퀘냐로 '''배의 군주'''라는 뜻이다. 1015년 부왕인 키랸딜움바르에서 전사하자 곤도르의 15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그의 시대에 곤도르의 국력은 누메노르를 연상시킬 정도로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햐르멘다킬은 1149년 250세의 나이에 서거하고, 그의 아들인 아타나타르 알카린이 그의 뒤를 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곤도르의 선박왕들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2. 업적


1050년 키랴헤르는 하라드를 정복하고 움바르의 포위를 풀었다[2]. 검은 누메노르인들은 완전히 몰락하고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움바르에서의 대승리 이후, 키랴헤르는 퀘냐로 '''남부의 승리자(정복자)'''라는 뜻의 '''햐르멘다킬(Hyarmendacil)'''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시기 '''곤도르의 군사력은 절정에 달하였으니, 누구도 감히 곤도르를 공격하지 못하였다.''' 안두인 북쪽의 북부인들도 곤도르의 북쪽 영역의 통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라드의 왕자들은 곤도르의 궁정에 볼모로 보내어졌다.
또한 곤도르의 강역은 '''건국 이후 최대'''에 달하여 북으로는 켈레브란트 벌판과 푸른숲 남쪽, 서로는 회색(Gwathló)강, 동으로는 룬 해, 남으로는 하르넨강과 움바르 지역에 이르렀다. 모르도르에는 새로운 요새를 짓거나 보강하여 들이 감히 돌아오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감시하였다.

[1] 아직 초대 선박왕인 타란논 팔라스투르가 살아있던 시절이다.(짧지만 네 선박왕들 모두 함께 살았다는 것.)[2] 왕이 전사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곤도르의 해군은 막강하여 원군이 올때까지 움바르를 사수해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