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웅(언어학자)
1. 개요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정신이며 그 겨레의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다."
허웅은 대한민국의 국어학자·언어학자·한글학자이다. 평생을 한글연구와 보급에 힘썼으며 세계적으로 한글의 우수함을 알렸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아호는 '눈뫼'이다. 형제로는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역임한 허발(1928 ~ )이 있다."우리 말글과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것에서 나아가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2. 생애
1918년 7월 26일에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 동상동 966-1에서 출생하였다. 김해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럭비, 축구선수로 활동 할 만큼 건강했지만 2학년때 폐결핵으로 1년간 휴학을 하였다. 김해에 돌아온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본 어머니 덕분에 건강을 되찾은 후 3학년에 복학하며 국어공부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허웅은 한글을 배우고 연구하기 위해 1938년 18세의 나이로 최현배가 재직하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3] 최현배의 《우리 말본》을 읽었고 학우들과 비밀독서모임을 이끌며 항일의지를 길렀다. 1939년에 최현배가 일제의 압력으로 교수직에서 파직되고 경찰에 체포되자 혼자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1940년 학교를 중퇴하였다. 이때부터 독학으로 15세기 국어를 연구하며 세계의 언어학 이론을 공부하였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김해에서 한글강습소를 열어 우리말과 우리글을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1947년 9월부터 부산대, 성균관대, 연세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수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또한 34년간 한글학회를 이끌며 한글전용론을 주장하였고 한글날 공휴일 폐지 반대운동을 펼쳤다.
2004년 1월 26일에 별세하였고 남양주시 모란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3. 이야깃거리
- 맏아들 황(晃, 1944 ~ )은 울산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둘째 아들 원욱(元旭, 1958 ~ )은 2019년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한국어문콘텐츠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스승 최현배가 이숭녕과 오랜 세월 학문적 논쟁을 벌였던 것처럼 그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이기문과 일종의 라이벌 관계였던 것 같다.
-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이윤재ㆍ허웅 기념관이 나비공원과 김해문화원 사이에 2019년 3월에 착공해서 2020년 상반기 개관한다.
- 생전에 늘 고향 김해를 자랑하며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김해에는 고작 허웅의 생가터[4] 에 표지석 하나만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 안소영 작가의 저서인 「시인동주」에서 윤동주의 동기로 언급된다. 최현배 교수를 동경하는 장면과 몸이 안좋아 김해로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4. 관련 문서
허웅 저 '말과 생각'. 눈뫼 허웅 상. 눈뫼 허웅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