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문
1. 개요
惠化門 / Hyehwamun
조선의 한성 4소문 중 하나. 동소문이다. 1938년 헐렸고, 1994년 복원공사를 통해 만들긴 했는데 원래 위치에 만들지 않았다.
2. 상세
본래의 혜화문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헐렸고, 이를 1992년부터 복원공사를 통해 복원한 것인데, 원래 혜화문이 있었던 곳과는 약간(10m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는 혜화문이 철거될 당시와 복원될 당시의 해당 지역 지형이 아주 딴판이였기 때문.
복원하고 난 문의 세부적 모습만 봐도 아주 별볼일 없을 정도다. 현판의 글씨 방향도 현대 국어의 오른쓰기로 쓰여있고, 글씨 서체도 위엄없이 날려쓴 글씨체다. 원본 현판이 있음에도 원본을 본따 다시 제작하지 않은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돼 왔었지만 2019년 11월 22일, 원래의 혜화문 현판을 본따 제작한 현판으로 복원을 해 조선시대 당시의 정취가 조금은 되살아 났다. #
1939년 일제가 혜화동 종점인 전차노선을 돈암동 종점으로 연장하면서[1] 혜화문을 철거함과 동시에 해당 도로의 레벨(높이)도 전차 통행을 위해 토목공사로 낮췄다. 따라서 혜화문이 있던 원래 터는 혜화문이 있을 때보다 7m정도 낮아진 것. 동소문로 좌우의 서울성곽 높이가 지금기준 꽤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증거.
따라서 혜화문을 진짜 '''원래 위치'''에 복원하려면 도로 위 공중에 띄워야만 한다. 도로레벨까지 혜화문 있던 당시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했고[2] 결국 지금처럼 원래 혜화문 위치에서 '''수평'''으로 조금 옮긴 곳에 만들었다. 만일 원래 위치를 강조해서 동소문로에 만들었다면 '''수직'''으로 조금 옮겨야 한다. 즉 원래 위치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3] 즉 현지의 지형 구조상 어떤 방법으로 복원하더라도 오리지널 위치의 아우라는 만들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의 이름을 따 동소문로라는 도로명이 생겨났는데, 혜화동로터리 ~ 한성대입구역 구간이 창경궁로로 편입되면서 '''동소문로에 동소문(혜화문)이 없게 되었다!''' 그래도 겨우 200m 정도라는게 위안. 또한 동소문동도 이 문의 이름을 따왔다.[4]
[1] 1937년 돈암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전차선 연장. 쉽게 이야기하면 신도시 개발하면서 지하철 노선을 연장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2] 종로구-성북구 경계인 해당지역은 대한민국 자동차 등록댓수가 지금의 1/100도 안 되었던 1970년대에도 전국에서 교통량이 많기로 알려진 곳 Top 10 안에 들었던 곳이다. 물론 지금도 장난아니고.[3] 물론 원래 위치에 구름다리를 만들어(마치 미아리고개 정상부 버스정류장 위 아치형 도로처럼) 그곳에 복원하고 아래에는 차량 통행용 터널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모양이 좀 우스꽝스러워진다.[4] 원래는 돈암동의 일부였으나, 1963년에 분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