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1. 개요
'''전차''', 또는 '''탱크'''는 총탄은 물론이고 저구경 포탄에 대해서도 방호력을 장담할 수 있는 튼튼한 장갑판, 무한궤도, 그리고 강한 직사포를 가진 강철 혹은 그에 준하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전투용 차량으로, 현대전의 주력 지상 병기 중 하나이다.
단어의 의미는 말그대로 '''전투에 쓰이는 차'''이지만 현재의 일반적인 전차의 의미는 실제로 만든 것만 고려할 때 흔히 탱크라는 개념의, 제1차 세계 대전 도중 영국과 프랑스에서 만든 병기가 가장 처음이다. 하지만 많은 문헌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허버트 조지 웰즈가 탱크라는 개념을 예견 또는 발명한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어로는 고대 전차와 이름이 같으나 사실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런데 다른 언어권에서도 'Tank'를 'Chariot'에 빗대어서 말하는 사례가 가끔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그러하며, 이스라엘의 주력 전차인 '메르카바 전차'는 성서에도 나오는 '병거(兵車) 메르카바'의 이름에서 따왔다. 현대 기병사단의 직계 조상이 기병, 더 나아가 채리엇이기도 하고.
2. 역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차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병기를 구상한 적이 있다. 나무로 만든 장갑체 주위에 대포와 인력 바퀴를 이용하는 형태로 전차와 비슷한 설계를 지니고 있다.[5] 하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이와 같은 좁은 공간 안에 인력 이외의 동력으로 이러한 무거운 차량을 움직일 수단이 없었기에 500년 동안 묻혔다. 레오나르도가 고안한 전차를 설계도대로 복원품을 만들어 영국군 챌린저 2 승무원들이 재현해봤더니(참조링크), 진짜 쎄빠지게 돌려야 간신히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이러한 생각을 실제화한 차량은 지루한 참호전 양상을 타파하기 위하여 만든 장갑 차량이다. 이름의 유래는 최초의 전차로 꼽히는, 영국에서 만든 Mk 시리즈의 암호명 ''''Tank''''. 이 단어는 나중에 확립되었고, 현대 '전차'의 대표적 특징인 '강한 직사포와 일반적인 장갑차에 비해 매우 튼튼한 장갑판을 가졌으며, 무한궤도를 장비해 험지 돌파력이 뛰어난 장갑차량'을 부르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사실 처음 생각한 암호명은 'Water Carrier' 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약자로 줄이면 WC(Water Closet, 즉 화장실)가 되는데?"라고 반문해 부랴부랴 Tank로 바꿨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또한 WC는 윈스턴 처칠의 약자이기 때문에 적에게 '뭔가 예사롭지 않은 병기'라는 의심을 살 여지가 있어 변경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의미없이 사람만 죽어나가는 정체된 전선을 타파한 병기. 초창기에는 단순한 모양새의 병기로 장난감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게 없었으면 1차 대전이 더 오래 끌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7]
2.1.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독일군과 프랑스군, 영국군은 서부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그들의 싸움은 곧 진흙탕 속으로 빠져든다. 전쟁이 기동전에서 참호전으로 변화되면서, '''철조망, 참호, 기관총'''이라는 악마 3총사가 군인들 앞을 막아선 것이다. 사람을 갈아넣는 것으로는 '''절대로 뚫리지 않는''' 이 악마 3총사 앞에서 군인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솜 전투가 시작된지 불과 하루만에 영국 육군은 '''사망자 2만명'''을 기록할 정도였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영국, 프랑스, 독일은 해결책 마련에 골몰했다.
이때 영국군 공병장교인 어니스트 던롭 스윈튼(Ernest Dunlop Swinton)이 무한궤도를 이용한 장갑차량을 새로 개발해서 참호를 돌파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육군성에서는 이 의견에 퇴짜를 놓았으므로 스윈튼의 야심찬 아이디어는 그대로 사장되는 듯했지만, 당시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이 아이디어를 채용, 육상전함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리틀 윌리다. 리틀 윌리는 무한궤도가 달려있는 철판으로 둘러싸인 모양을 한 일종의 장갑차 같이 생긴 놈이다. 하지만 이 전차가 참호를 넘지 못해 좀 더 실용적으로 바뀌면서 나온 물건이 바로 Water Carrier라는 이름의 장갑차량으로 (추후 Tank로 이름 변경), 이것이 현대 전차의 조상인 Mk 시리즈다.
참고로 초기 전차의 개발에 미국이 의외로 큰 기여를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 궤도차량에 익숙치 않던 유럽에 미제 트랙터(특히 홀트 트랙터)가 대량으로 보급되어 무한궤도의 우수성을 알렸고, 전쟁이 발발하자 이 트랙터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CA1, 생 샤몽 그리고 독일의 A7V가 만들어졌다.
[image]
1916년에 출현한 영국의 MK I은 최초의 전차로 기록되었는데, 사실은 프랑스에서도 같은 시기에 슈나이더(Schneider) CA1, 생샤몽(Saint Chamond)이라는 전차를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두 전차는 개발은 MK I보다 빠르나 실전투입이 늦은 데다 실패작이므로, 최초의 전차라는 영광은 MK I에게 빼앗겼다.
[image]
이후 프랑스에서는 와신상담하여 선회식 포탑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현대 전차의 기계적 구성요소를 처음으로 완성한 르노 FT-17를 만들었다. 그 전까지의 전차는 움직이는 토치카에 가깝지만, 르노 FT-17은 선회식 포탑 사용, 하나의 주포, 후방 엔진 구조를 지님으로써, 이전의 전차와는 다르게 현대 전차의 정의(定義)의 하나인 강한 직사포를 원활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전차의 시작은 MK I, 현용 전차의 아버지는 르노 FT-17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FT-17은 의외로 오래 살아남아서 2차대전 당시에도 폴란드 침공 때 폴란드군이 운용했으며 중국 국민당군과 일본군이 중국 전선에서 운용하기도 했고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때, 이탈리아군이 이걸 끌고 나와 맞서기도 했으며 베를린 공방전 때도 소련군이 노획해 모아 놓은 독일군 전차 사이에 독일 측에서 급한 대로 끌고 온 이녀석이 사진으로 남았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근처에서도 기동 가능한 FT-17 2대가 목격되었다. 2000년대 들어 발견된 르노 전차들을 아프간은 각국에 선물하였고, 아프간의 FT-17들은 원래 폴란드군 소속이던 것을 소련군이 뺏어 아프간에 기증한 것이라 그 중 1대는 폴란드로, 2대는 미국으로 보내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한다.
그러나 1차대전 전차들은 하나같이 문제점이 심했다. 구동계통의 신뢰성이 엉망이라 툭하면 퍼졌고, 기관총 이상의 방어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장갑이 상당히 빈약한 편이라 일반 야포나 항공폭탄은 물론이고 대전차 소총이나 집속 수류탄 등으로도 격파되거나 승무원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차대전 당시 참전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차를 "철의 관"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또 이 '철관'이 1차대전 내내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인츠 구데리안의 저서인 "Achtung, Panzer"를 읽어보면 책 내용의 반 이상이 협상국의 전차 때문에 독일 제국이 전쟁에서 진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1차대전 독일 제국군 참전용사에게 독일이 1차대전에서 패배한 이유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협상국의 전차' 때문이라고 답을 했다는 말도 있다. 그들도 굴러다니는 자동차야 본 적이 있었겠지만, 전면이 강철로 뒤덮여서 어지간한 구경의 총 따위는 씹어삼키는 강철기동요새는 역사의 첫번째가 되어 처음 봤을 테니 말이다.
또한 실제 사례를 들어보면, 1918년 춘계 공세 때에 후티어 전술을 앞세운 독일 제국군이 해안가의 영국군과 내륙의 프랑스군을 서로 갈라놓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미앵에서 파리 근교를 코 앞에 둔 독일군에게 느닷없이 프랑스군이 슈나이더나 생 샤몽, FT-17 같은 전차들을 모아 한번에 반격을 행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자 바로 독일군의 공세여력이 사라지고 독일군은 퇴각하였으며 다시는 공세를 취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또 다른 사례로 백일 전투 당시에 프랑스군의 FT-17 3대가 침투해들어오자 독일군 사단 하나가 기동을 멈추고 돌격대 4개 대대가 붙어서 수 백명의 병사들이 다치고 실종된 다음에야 겨우 다 잡았다. FT-17 전차가 그리 크고 빠르지도, 무장이 강하지도 않은 경전차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3대만으로 알보병 사단 하나를 멘붕에 빠뜨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 당시 현실이다. 사람 숫자로 따지면 르노 FT-17에는 전차장과 조종수 2명만 타므로 단 6명이 다루는 3대의 전차 때문에 1개 사단이 망가졌다는거다.
2.2. 전간기
1차 대전 이후 서방 국가들은 장갑화된 전력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그 때문에 전쟁 직후 전차의 종주국이였던 프랑스와 영국은 전차 발전을 주도하게 되었는데 둘의 발전 방향은 상당히 달랐다. 프랑스는 1차 대전식 전차인 보병과 같이 돌진하는 개념의 초중다포탑전차인 Char 2C[8] 와 1인승 포탑을 가진 FT-17의 발전형을 만들었지만, 영국은 독립적인 전차부대 창설[9] 을 위한 "실험적 전차부대"를 창설하여 선진적인 전차 연구에 중점을 두면서 빅커스 미디엄 MK 1,2 전차를 대공황기를 포함한 기간동안 130~300대나 만들어 낸다. 특히 이 빅커스 전차는 전차장과 포수, 탄약수를 분리한 3인용 포탑, 제대로된 서스팬션, 차체 기관총, 동축 기관총[10] , 무전기 등 사실상 혼자서 2차대전 전차의 구성을 정립하였고 해당 전차는 마틸다 전차의 차대로 활용되게 된다.
이후 이 3인포탑은 영국의 인디펜던트 전차의 주포탑에 계승되어 다포탑 전차 붐 당시에 생산된 다포탑 전차들에 3인용 포탑이 장착되게 하였다. 때문에 독일, 소련, 영국 등은 전간기동안 자국의 전차들에 3인용 포탑을 장착하게 된다. 반대로 인디펜던트를 참조한 다포탑 전차를 만든 적이 없는 국가들은 전간기 동안 2인용 포탑을 채용한 전차만을 생산했다.[11]
다포탑 전차 붐이 발생한 이유는 전간기에서 2차대전 중기 까지는 대전차포(Hard Target)[12] 와 대보병포(Soft Target)[13] 가 이원화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인디펜던트 전차[14] 를 본 독일과 소련이 이를 해답으로 여기고 인디펜던트 전차를 본받은 다포탑 전차들을 만들어 대전차포와 대보병포를 같이 장착했다. 이후 2차대전 동안 전차들에 대구경 주포가 장착되면서 이원화는 끝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포탑 중(中, 重)전차는 당시의 기술로 실현이 가능할지 불확실한데다 비싸기까지 했기 때문에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어려웠던 국가들은, 영국의 카든-로이드 탱켓과 빅커스 6톤, 프랑스의 FT-17을 수입해와 자국 전차 산업의 기반으로 삼으며[15] 비교적 경(輕)장갑인 경전차 위주로 개발했고, 강대국들 또한 경전차를 중(中, 重)전차완성의 공백을 매우는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경전차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image]
독일 전차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독일의 1호 전차 A형. 대전간기(大戰間期)에 개발된 대표적인 과도기적 경전차이다. 독일도 대공황의 여파 및 다포탑 중전차의 실패로 전쟁중반 까지 중형전차 대신 경전차를 대량으로 운용했다.
[image]
이시기에 중(中, 重)전차완성의 공백을 매우는 개념으로 등장한 경전차 중 최고의 완성도를 가졌던 LT vz. 38이다.
2.3. 전간기 말기 ~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다포탑 전차 붐이 끝나면서(혹은 동시에) 중(中, 重)전차의 주류는 보병전차(보병과 합동작전)와 순항전차(기병 기동교리) 체계로 이어졌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대전차주포를 장착한 대신에 '''장갑'''과 기동성을 기준으로 기동성을 중시한 순항전차와 방어력을 중시한 보병전차로 둘을 구현하려 했고, 독일은 가벼운 무게에 '''주포와''' 기동성을 기준으로 대전차포와 기동성을 중시한 주전차(3호 전차)와 대보병포를 장착하고 신뢰성[16] 높은 보조전차(4호 전차)구현하려 했으며, 소련은 같은 대전차주포와 가벼운 무게에 '''생산성'''과 기동성을 기준으로 생산성이 좀 떨어져도 기동성이 좋은 쾌속전차와 생산성이 매우 좋은 경보병전차를 구현하려 했다.
결국 전간기 동안에도 무기개발에 손을 놓지 않았던 강대국들은 이런저런 전차들을 만들고 시험하면서[17] 전차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교리를 만들면서 전간기 말기에서 전쟁 초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은 주포 이원화의 해답으로 생각했던 다포탑 전차를 포기하였으나, 대전차포 탑재 3호 전차, 대보병포 탑재 4호 전차, 보병근접 지원용 3호 돌격포의 비슷한 체급의 전차를 3대나 사용하는 모습이 되었다. 거기다 생산마저 원할하지 못해[18] 2차대전 개전 시점에서 2호 전차와 노획전차를 주력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전쟁이 길어져서도 이 노획전차들을 버리지 못하여[19] 보급과 유지보수에 지장이 가게된다. 게다가 주력으로 삼으려던 3호 전차는 작은 크기로 인해서 개량의 한계가 오게 되어 보조였던 4호 전차를 주력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후 T-34와 KV-1을 마주치면서 순항전차, 보병전차 개념에서 나왔던 3호, 4호 전차 체계를 버리고 판터와 티거 전차로 대표되는 중형전차, 중전차 체계로 넘어가게 된다.
소련은 다포탑 전차를 양산까지 가버려 전쟁 초기까지 전차 컨셉에서 갈팡질팡하지만, 겨울전쟁에서의 경험으로 다포탑 전차를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자 다포탑 중전차를 단포탑 중전차로 발전시켰으며, 할힌골 전투에서의 경험으로 쾌속전차 체계를 T-34 중형전차로 발전시켜 대보병과 대전차전이 모두 가능한 대구경 주포를 가장 이른 시기에 도입하고, 소품종 대량생산 체계로 현대적인 전차 운용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대숙청으로 인한 부대 혼란 상황과 함께 신형전차에 대한 훈련도 부족과 독일보다 생산량이 많았어도 여전히 구식전차가 태반인 상황에서 침공한 독일군에게 속절없이 밀리게 된다. 하지만 소련은 포기하지 않고 공장을 전선 뒤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하며, 이 전차 공백기를 생산이 쉬운 경보병전차 대량생산으로 버텨내는 데 성공한다.[20]
영국은 다포탑 전차의 기관총 포탑들을 떼어내며 점점 현대적인 전차의 모습을 갖추어 갔으나, 보병전차의 완성과는 반대로 순항전차의 완성이 늦어져 프랑스 전투에서 순항전차 대신 Mk.6 경전차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로 전차의 역할을 나눈 것이 생각처럼 유연한 활용이 불가능해, 보병전차는 기동력이 순항전차는 방어력과 신뢰도가 부족[21] 하게 되었다. 또한 전차의 주포는 기본적으로 대전차포를 탑재하고, 동형 전차에 CS(Close Support)형으로 3인치(76.2mm), 3.7인치(94mm), 후기에는 95mm 박격포를 장착해 혼합 배치함으로써 대보병전에 대비하기로 하였지만, 주포 이원화에 집착한 나머지 대전차포 탑재 전차에 고폭탄을 지급하지 않아, 대보병전에 취약해져 대보병전에서 피해를 보게 된다. 이에 영국은 처칠 전차 차체에 CS용 포를 달기도 하고(처칠 mk1), 6파운더에는 고폭탄을 지급하는 등 해결법을 모색했지만, 결국 미국의 75mm와 포탄이 호환되는 주포를 자체 생산하여 해결하게 되었고[22] , 순항전차의 장갑도 점점 두꺼워져 중형전차와 차이가 없어지며, 보병전차도 처칠만 생산[23] 하면서 사실상 중형전차, 중전차 체계가 된다.
프랑스는 전간기 동안 보병지원에 유탄발사기 수준의 주포를 사용하는 등 보수적인 개념을 고수하며 다포탑 전차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때문에 개전 시점에 1인용 포탑을 유지하면서 그 여유 용적만큼을 방어력에 투자하여 훌륭한 방어력을 가진 전차들을 생산했지만, 기동 능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데다[24] , 1인용 포탑으로 대응 능력이 형편없었다. 그나마 대벙커포와 대전차포를 두꺼운 장갑과 함께 장착한 B1 전차가 구축전차와 비슷한 지휘, 활약이 가능해 활약하게 되었지만 독일에 항복하면서 전차 발전이 멈추게 된다.
미국은 대서양 넘어의 전운을 감지하고 전차 개발의 시동을 걸고 있는 와중, 전격전의 소식을 듣고 대전차 자주포를 준비하면서, 타 국가들이 전간기 동안 쌓아올린 기술력을 전쟁 기간 동안 엄청난 공업력으로 따라가고 있었으며, 오히려 전간기 전차 개발을 소홀히[25] 하였기 때문에 순항전차와 보병전차 체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적절한 전차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적절한 성능에 수송 능력을 중시한 M3 리와 M4셔먼 중형전차를 생산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전차의 주포보다 전차의 방호력의 증가가 두드러지는 시기였는데, 전간기 전차개발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영국의 순항전차가 전간기에 14mm에서 신형이 개발될 때마다 장갑이 두꺼워지다 중형전차와 차이없는 전면 최대100mm, 측면 46mm가 되었고, 폴란드 침공 시기에 15mm의 장갑을 가지고 있던 3호, 4호 전차는 아프리카 전선에서 후퇴할 때 70~80mm의 전면장갑을 가지고 있게 되었으며, 소련은 BT 쾌속전차를 T-34 중형전차로 발전시켰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두꺼운 장갑을 가진 보병전차들이 고평가를 받았다.
2.4. 제2차 세계 대전
전쟁 초반기에 전간기의 재고(在庫)가 많아 널리 사용되던 경전차들은 말기에 이르러 중(中, 重)전차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개조된 채 정찰, 수송, 자주포, 구난차량, 포 운반 트랙터, 포병 관측, 정도의 임무만 맡게 됐다.
2차 대전의 아이콘으로 대표되는 중(中, 重)전차들은 아래와 같다.
[image]
대전 중 생산된[26] 서방세계 전차인 미군의 마스코트 M4 셔먼 중형전차. 한국전까지 사용되어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공헌한 전차다.
[image]
대전 중 셔먼 이상으로 많이 생산된 소련의 대표적 전차인 T-34 중형전차. 이 전차 또한 북한군 때문에 한국전에서도 사용됐다.
[image]
대전기 중 생산된 중(重)전차들 중 가장 균형 잡힌 성능을 가졌다고 보는 독일의 6호 전차 티거(중기형).
양 대전 간기에 자동차 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에 힘입은 엔진과 서스펜션의 발전에 따라 전차의 중량제한이 완화됐다. 이 때문에 생긴 여유중량은 더 큰 주포와 더 무거운 장갑을 가능하게 했으며, 전쟁과 함께 진행된 각국의 주포 vs 장갑의 경쟁은 전차성능의 급격한 개량을 가져오게 되었고, 구경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대전차포(Hard Target)와 대보병포(Soft Target)를 나누어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다만 더 큰 주포에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1차대전때 Mk 시리즈 전차들이 참호에 포신이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신을 줄인 이후 전세계의 전차 개발자들은 전차포가 전차의 궤도와 차체밖으로 튀어 나와서는 안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 탱켓들 중에서 대전차포나 대전차 소총, 중기관총을 달면서 포신이 튀어나온 전차들은 있었지만, 전차가 너무 작아서 그런 것이였으며, 3호 전차도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장포신 전차포를 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련은 1940~1년에 제대로된 전차인 T-50 경전차와 T-34 중형전차에 차체를 살짝 넘는 주포를 장착하면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T-34/57을 생산하면서 확실하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 독일 1941년 말기에 히틀러의 주장대로 3호 전차에 장포신 주포를 장착하기 시작하였으며, 영국은 처칠 수상의 2파운더 우선 생산 방침에 의해 6파운더 생산 자체가 늦춰져 독일보다 장포신 주포 장착이 늦어지게 된다.
미국의 경우는 복잡한데, 1941년 M3 리를 설계할 당시 차체를 넘어가는 대구경 장포신 75mm 주포를 장착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장포신 주포(셔먼에 달린 그것)의 생산 부족으로 단포신을 생산하게되었고, 장포신에 맞춰진 수직안정기 덕분에 짧아진 주포의 끝에 무게추를 달면서 M3 리/그랜트는 차체를 넘기는 주포를 제대로 달지 못하게 된다.[27] 이후 M6 중전차에 차체를 넘기는 장포신 주포를 장착하였으나 한정적으로 양산되었고, 1942년 9월 M10 GMC를 생산하면서 또 장포신을 장착하게 되었지만 전차가 아니였다. 때문에 미국은 1944년 1월에 T23의 포탑을 장착한 M4A1(76)w 셔먼이 생산되면서야 장포신 전차가 등장하게 된다.
결국 이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전차들의 대전차 능력이 상승하게되고, 본격적으로 전차 VS 전차의 구도가 성립하게 되었으며, 현대적 의미의 전차가 탄생했다. 이러한 대결의 정점이 아래의 쿠르스크 전투라고 볼 수 있는데, 1939년만 하더라도 차체를 넘어가는 장포신 주포를 가진 전차는 프로토타입과 페이퍼 플랜을 합쳐도 다섯 손가락으로 샐 수 있었지만, 쿠르스크 전투 당시에는 최신형 전차는 전부 차체를 넘어가는 장포신 주포를 가지고 있었다.
[image]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6호 전차 티거 1(초기형). 장포신 대구경 주포를 장착하고 있다.
[image]
마찬가지로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한 생산공장에서 나오는 장포신 3호 전차들. 오른쪽의 말린 것들은 궤도이다.
전쟁기간 중 경전차(輕전차, Light Tank), 중형전차(Medium Tank), 중전차(Heavy Tank), 보병전차, 순항전차, 돌격포, 구축전차(Tank Destroyer), 기병전차, 다포탑 전차, 초중전차 등 여러 분류의 전차 개념들이 고안되었다.
여기서 흔히 중(中)전차와 중(重)전차를 한글로 중전차로 표기해서 동음이의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원래 이런 표기는 일본에서 Medium Tank를 中戦車로, Heavy tank를 重戦車라고 번역해서 사용한 것이 한국에 도입되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동음이의어 문제가 나는 한국어와 달리, 일본어는 中(chū)과 重(jū)의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나무위키에서는 이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중(中)전차는 '''중형전차'''로 대체해서 구분하며, 중전차 문서는 Heavy Tank, 즉 重戦車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다.
2.5. 냉전/현대전
크게 보아서 경전차 및 기병 전차, 보병 전차의 기능은 일부 국가에서 사용하는 정찰 장갑차나 M3 브래들리의 기병전투차(CFV)[28] 또는 BMP-3 같은 보병전투차가 일부를 이어받았고, 대전차 미사일이 발전하면서 Tank destroyer의 역할도 일부 떠맡게 되었다.
그리고 중(中)전차는 MBT(주력 전차)로 진화하였고, 순항 전차 개념 역시 여기에 포괄되었다. 현대 전차들이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이유 하나가 긴 항속거리를 얻기 위함이다. 중(重)전차 개념은 핵 만능주의 시대에 멸종되었다가, 1970년대 말부터 엔진기술의 발전, 시가전의 본격화, 대전차무기의 발달과 함께 급격히 중장갑/증가장갑화되면서 주력 전차에서 살아났다.
이렇듯 2차 대전 이후 냉전시기가 되면 과거에 존재하던 수많은 전차들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주력 전차(Main Battle Tank)로 모두 통합됐다. 냉전 이후 전차라고 하면 곧 주력전차(MBT)를 가리키는 것이다.
[image]
사격 중인 M1 에이브람스 전차.
현재 MBT는 1950년대에 등장한 1세대를 시작으로, 2세대를 거쳐서 3세대에 도달하였다. 특히 90년대 후반 이후로 새로운 개념과 기술 아래에 개발된 AMX-56 르클레르, K-2 흑표, 10식 전차 등은 3.5세대 전차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4세대에 해당하는 전차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3.5세대 기능+전열 화학포+새로운 개념의 방어체계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냉전 이후에는 전차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전쟁양상이 전면전에서 시가전, 저강도분쟁으로 바뀐 것도 전차에게는 달갑지 않은 환경. 미국의 경우에는 아예 무인공격기가 전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전차는 무인 공격기와는 여러 가지 차별화가 가능한 장점들이 매우 많으며, 일단 적의 화력을 정면으로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다는 몸빵 자체는 어디 가지 않는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전차의 장점이 상당수 재입증되었다. 미군도 이라크 전쟁 전까지는 경장갑화된 공수전차나, 장갑차에 포를 다는 등의 전차대체차량을 연구하다가, 이라크 전쟁 이후 죄다 폐기시키고 기존의 전차에 주력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현대전에 전차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잘못된 시선이다.
2.5.1. 6.25 전쟁
2차대전 후 5년 만에 일어난 전쟁이기에, 아직 대전 당시의 장비들과 교리의 흔적이 남아있는 전쟁이다.
북한군이 사용한 T-34는 경사장갑 때문에 전쟁 초반에 한국군은 물론이고 미군 또한 버거워한 상대였지만, UN군의 증원이 이루어짐에 따라 초반에는 M4 셔먼, 중반 이후부터는 아래와 같은 최신예 전차들이 투입되며 상황이 역전됐다. 이 당시 국군이 겪던 T-34 쇼크는 참으로 커서, 지금의 대한민국 국군에까지 그 영향이 이어졌다.[29] 실제로 현대 대한민국 육군은 웬만한 국가는 왕복싸대기를 갈길 정도의 전차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서 3세대 전차를 3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다. 육군력/전차 문서 참조. 반대로 미 공군의 폭격에 국토가 아주 절단나다시피 한 북한에서는 엄청난 방공망을 구축해놓았다.
[image]
M26 퍼싱. T-34를 격파하기 위해 투입된 미군의 중(中)전차이다. 2차 세계대전 때 개발됐지만, 전적(戰績)도 제대로 못 쌓고 종전을 맞았다가 한국전에서 T-34를 압도적으로 털어버리며 그 한을 풀었다.
[image]
M46 패튼.퍼싱과 함께 투입된 미군의 최신예 전차이다. 반면 소련은 최신예 전차인 T-54A와 초기양산형 T-54, 중전차인 IS-3가 이미 양산되어 있었으나 6.25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를 주지 않기 위해 전쟁에 투입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공산당의 전차들 중엔 중국군의 구식 IS-2가 가장 강한 전차였다. 퍼싱과 패튼, 또는 셔먼은 한국전 당시 전선 포병전력이 후달리거나 할 때 자주포 대용으로 저렇게 포탑을 뒤로 돌리고 대각선으로 파놓은 참호로 기어들어가서 고각(高角) 사격을 하곤 했다.
2.5.2. 베트남 전쟁
게릴라전 위주였고, 밀림에서 치고 받던데다 정작 가장 강력한 전차전력을 끌어 쓸 수 있는 미군이 소련의 견제로 인해 북진하지 못했던 베트남 전쟁 특성상 제2차 세계 대전이나 6.25 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차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 당시 전차들은 보병을 엄호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image]
M48A3, 해병대원들이 전차 위에 타는 모습이다.
[image]
T-64. 베트남전에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이 당시 소련에서 미국에 대항하여 보유하던 최신예 전차이다. 당시 베트남군이 쓰던 전차는 T-54나 그 라이선스형이던 59식 전차이다.
[image]
M60 패튼. 이 또한 베트남전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미국에서 개발하던 최신예 전차이다.
또한 6.25 당시의 대한민국보다 더욱 전차를 사용하기 힘든 지형이였기 때문에 경전차가 큰 활약을 한 전쟁이였다.
2.5.3. 제4차 중동전쟁
6.25 전쟁 이후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진 전쟁이다. 비교적 대등한 전력에서 벌어진 사실상 마지막 제대로된 전차전이며 실제로 여기서 벌어지는 상황(산악지형이 많다던가 대전차 지대 봉착 등)이 한반도에서 벌어질 상황과 상당히 흡사한 면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에서 이스라엘군 제77전차대대장 카할라니의 수기 《골란고원의 영웅들》을 대대적으로 인용하는 등 이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전훈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전술 및 교리 등을 채용하고 있다(보전합동 강조 및 전차부대에 박격포 배속 등).
2.5.4. 걸프 전쟁
3세대 전차들이 벌인 최초의 전차전. 그러나 다운그레이드 수출형인 깡통 소련 전차 + 미숙련 승무원 덕에 미국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전쟁이었다.
[image]
미군의 진격에 버림받은 T-72. 이 전쟁 때문에 포탑사출 땡칠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T-72는 개량형에 따라 성능이 엄청나게 달라지며 걸프전은 T-72가 개발된지 한참 후에 일어난 전쟁이지만 이라크군이 사용하던 T-72M이나 바빌론의 사자는 당연히 소련이나 쓰던 T-72B같은 후기형이 아닌 T-72 기본형의 단순 개량형으로 이미 한참 구식이었으며 사용하는 날탄 또한 80년대의 망고탄 같은 것도 아닌 관통력 200대의 극초기형이 주력이었고 그나마 강력한게 300정도 되는 70년대 탄이었다. 다만 이스라엘군이 적군에게 노획한 T-55을 비롯한 구형 전차를 모아다가 마개조하여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혁혁한 공을 세운 경우도 있다.
[image]
이 또한 버림받은 T-54A.
[image]
미군의 제3기갑사단에 소속되어 진군중인 미군의 M1 에이브람스.
[image]
당시에 투입되지 않았지만, 미군에 대항하여 소련이 지니고 있던 최신예 전차 T-80 시리즈. T-80U가 처음 공개된 당시에 미군은 당시 105mm포를 능가하는 관통력과 화력에 가스터빈 엔진의 높은 기동성, 콘탁트5 반응장갑을 통해 M1전차를 능가하는 전면 방어력에 상당히 쇼크를 먹었다.
3. 전차 승무원
전차 승무원 문서 참고.
4. 역할
전차는 조롱의 대상에서 중요한 무기로 바뀌었다. 철판으로 몸을 두르고 기다란 열을 지어 굴러오는 이들의 모습은 다른 어느 것보다 전쟁의 모습을 구체화해준다.
우리에게 집중포화를 퍼붓는 대포의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공격하는 적의 제1선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전차들은 기계들이다. 전차의 쇠사슬을 두른 벨트들이 전쟁처럼 끝없이 굴러온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포탄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가 멈추지 않고 다시 기어 올라오는 모습은 가차없는 파괴 그 자체이다. 이는 으르렁거리며 포연을 뿜어대는 장갑차들의 함대이며, 포격에도 끄떡없이 사상자들을 무자비하게 으깨 버리는 강철로 된 짐승들이다, 얇은 피부를 가진 우리들은 이들 앞에서 잔뜩 움츠러든다. 이들의 육중한 무게 앞에서 우리의 팔은 지푸라기가 되고, 우리의 수류탄은 성냥개비가 된다.
포탄, 독가스 연기, 전차의 소함대가 짓밟고 갉아먹으며 목숨을 앗아간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의 전차 묘사
4.1. 육군 화력의 주축
지상전의 왕자라는 별명처럼 전차는 현대 육군의 핵심 전력의 역할을 한다. 전차로 증강된 전투력을 보유한 부대의 충격력은 매우 위협적이며 특히 공격작전에서 전차를 활용하여 위력적인 전술을 펼칠 수 있다. 때문에 전차는 육군전력이 결정적 작전을 수행하는데 중심이 되는 핵심 중 하나다.
공격 헬기, 대전차화기, 포병, 공군은 순간적인 화력투사(火力投射) 면에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전선 유지 능력은 크게 떨어진다. 전투기는 전장환경의 기상에 제한을 많이 받으며, 무장 탑재량과 연료량의 제한 등 항공기 자체의 한계와 비싼 가격과 유지비, 승무원 양성의 어려움 등으로 보유량을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는 특징 때문에 상시(常時)적인 전투력 제공이 어렵다. 미리 주변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항공기가 아니라며 즉각적인 중심전투에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전투기를 교대로 투입하는 등의 전략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정도 공군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반면에 전차 부대는 아군 보병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 자체로 큰 전력이 되며,[30] 전차 부대가 충격력을 이용해 전선을 뚫고 들어올 때 방어군에게 전차를 저지할만한 수단이 없다면 전차 부대는 그 특유의 뛰어난 기동성과 방어력, 공격력을 이용해 방어군을 말 그대로 짓밟고 지나가며 전선에 커다란 구멍을 내버릴 수 있다. 1943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소련의 전투 교리에서 방어선 돌파를 위한 IS계열 중전차 사단이 존재했었고 지금도 비슷한 역할의 전술이 존재하는 이유다. 물론 이런 전차의 급속침투를 저지하기 위해서 방어측은 CAS를 포함해 다양한 대기갑 수단을 연구하고 배치하지만 공방 싸움에서는 항상 공격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시간 내에 결착을 내기위해 싸움을 걸어오는 첨입전술에 대응하기에는 반응성이 느릴 수 있고, 이런 전차의 충격전술을 저지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적 전차의 충격력을 받아내려면 방어측도 단순 화력수단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방어전차를 활용하여 최대한 적의 공세를 늦출 필요가 있어지는 것.
현대 육군에게 전차가 없다면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처럼 참호를 파고 숨어있는 적 방어거점의 보병들을 돌파해내는 것이 훨씬 어려워진다. 정밀해진 아군 포병과 항공 전력의 화력지원은 매우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거점에 진입해서 피할 수 없는 직접전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전차 없이 보병만으로는 피해가 매우 커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 결국 결정적인 공격작전에 있어서 전차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보병이 휴대가 가능한 대전차 로켓은 그나마 대전차 수단들 중에서는 가장 저렴하기도 하고, 1~2인 정도의 소수의 보병이 운용할 수 있다는 특성상 전차를 상당히 골치썩게 하는 무기지만, 그 사거리와 명중률이 전차포에 비하면 너무 열등하다. 물론 재블린처럼 사거리 2,500m가 넘게 나오는 유도식 대전차미사일이면 모르지만 저런 미사일은 전혀 저렴하지 않아서 다수를 운용하기 어렵고, 로켓은 300m면 긴 편이고, 전술차량이나 장갑차에 얹히는 TOW 등의 유도 미사일은 사정거리는 꽤 길지만 그만큼 도달 시간이 길어 유도 도중에 미사일 팀이 끔살당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최근에 나온 능동방어체계를 갖춘 전차는 미사일을 요격해버릴 수도 있다. 이런 판이니, 쏘고 나서 전차를 하나 터트렸어도, 사격한 보병이 바로 적 전차의 동료에게 포탄을 얻어맞고 즉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에 대응하는 대전차 미사일의 발전 방향이 발사 후 망각이 가능하게 해 발사 후 바로 이탈하게 하는 것이기는 하다. 문제는 그런 고급 기능을 가진 미사일은 매우 비싸서, 보병 손에 들어오기 힘들다. 게다가 그런 미사일을 써도 그나마 맞은 전차가 '''터지지도 않고 반격한다면''' 그저 눈물이나 닦아야지(…). 보병 전투차도 대전차 미사일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몇 발 없는 데다 요즘 전차는 유도탄 요격 능력도 있고, 기습할때나 쓸모가 있지 설령 전차와 정면승부라도 하면 근본적인 화력과 방어력의 차이로 인해 바로 발린다. 어디까지나 자위 용도이다.
또한 전차의 강력한 기동성은 전열 후방에 위치한 화력지원 부대에게 엄청난 위협이 된다. 포병은 전통적으로 높은 기동력과 돌파력을 갖춘 부대에게 취약했는데, 과거의 포병이 기병대의 급습에 쉽사리 박살났듯이 현대의 포병은 짧은 시간에 전선을 비집고 들어오는 전차부대와 헬기부대에 무력하다.
4.1.1. 천적
전차를 제압하는 다양한 무기와 전술이 지금까지도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전차가 방어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방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때문에 전차 또한 생존성을 보장받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활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전차는 현대 전장에서 쉽게 무력화될 수도 있다. 아래와 같은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도록 전략을 짜는 것이 전차부대 사령관의 주 과제다.
보병은 전차의 시야를 제한하는 엄폐물들과 전차의 뚜껑을 날릴 수 있는 미사일/로켓/무반동총이 갖추어질 경우 사신으로 돌변한다. 대전차 미사일이나 로켓포들은 엄폐물만 충분하다면 보병들에게 잔뜩 들려서 사방에 배치할 수 있다. 거기다 FGM-148 재블린같이, 취약한 상부를 골라서 때릴 수 있는 전차 운용병 입장에서는 빌어먹기 그지없는(…) 무기도 나와서, 재수 없으면 강한 장갑판을 별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불덩이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공격 헬리콥터 역시 시야나 기상 환경, 연료 보급망만 갖추어진다면 헬기 한두 대로 전차부대를 고립시킬 수 있다. 공격 헬리콥터의 주 기동 방식은 언덕 등의 뒤에서 꼭대기의 레이더만 내밀고 있다가, 전차가 감지되면 갑자기 날아와서 허약한 상부 장갑에 기관포나 로켓 세례를 날리거나, 그냥 그 자리에서 유도탄 조준을 해버리는 식이다. 공격헬기를 견제하지 않으면 아파치급 중(重)공격헬기 1대에 전차 2개 소대나 지상군 1개 중대가 날아가는 건 이론 상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다만 지상군도 이런 위협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기갑TF에는 방공이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전차도 포탑에 거치된 중기관총으로 대공 감시/사격을 실시하며, 주포로 HEAT-MP-T탄을 이용한 직접적인 대공 타격 등 대책을 강구하며 공격헬기가 올 만한 곳을 감시한다. 공격헬기는 여러가지 이유로 다닐 수 있는 항로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4.2. 보병 지원
기갑부대는 보통 기계화보병과 같이 편성되며, 기계화부대는 아니더라도 차량을 타고 운송되는 다른 보병부대와 함께한다. 순수하게 전차만으로 편성된 여단급 이상의 대규모 부대는, 러시아의 종심 전투 교리에서 방어선 돌파를 위한 전차사단밖에 없다. 그 외에는 비율의 차이는 있어도, 전차의 기동에 따라갈 수 있는 기계화보병과 혼성 편제가 보통이다.
기갑부대는 이들 보병들이 전선을 형성하도록 지원해주는 엄폐물, 게임으로 치면 탱커의 역할을 담당한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전차는 '''수십 톤짜리 움직이는 쇳덩이'''이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 퓨리에서 꽤나 2차대전 당시를 잘 살려서 이런 모습이 등장하며, 퓨리에서는 뻥 뚫린 개활지 너머 적군이 있고 이 개활지를 전진하기 위해 퓨리를 비롯한 M4 셔먼 수십 대가 '''꽁무니에 보병부대를 데리고 날아오는 총탄과 포탄을 막으며 전진한다.''' 영화에서 묘사하듯이 이렇게 기갑부대가 어그로를 끄는 사이에 기계화보병들이 산개해서 전선을 형성하는 식의 싸움이 기본이다. 설령 파괴되더라도 보병의 엄폐물 역할을 해줄 수도 있으며, 육군의 다른 병기들보다 내구성이 당연히 더 좋고, 전차에게 필요한 연료와 적절한 지원을 해줄 공병장비만 있다면 '''계속 보병과 함께 머무를 수 있다'''. 전차를 수리할 수 있는 공병대도 있다면 금상첨화.
[image]
[image]
[image]
그리고 전투 상황이 아닐 때에는 행군하는 보병 부대 옆에서 같이 따라다니면서 중화기처럼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아예 보병들을 태우고 다니기도 한다. 이러면 전차 입장에서는 보병들이 수색이나 자잘한 공격을 맡아주고 전차가 퍼졌을 땐 수리를 도와 줄 일손이 느는 셈이며 보병 입장에선 어쨌든 행군하려면 다리는 아프고, 옆에 같이 가는 전차는 비었으니까. 물론 안전벨트는 커녕 제대로 된 좌석도 없는 전차에 대충 올라타는 건 자칫 굴러떨어져 낙사하거나 후속 전차에 깔려죽을 위험이 몹시 크고 주력 전차의 시대가 열리면서 전차의 속도 자체도 빨라져 겁대가리를 상실하지 않은 이상에야 질주하는 전차의 외장에 걸터앉아 탑승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으며 그렇다고 보병 몇명 편하게 태워 가자고 저속 주행하는 것은 현대 기동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에 이런 짓은 냉전기 이후로 거의 사라졌다.
4.3. 상대 전차의 격파
아무리 전차를 잡을 방법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상대방 전차 부대가 아군을 향해서 우르르 몰려올 때 적의 전차 부대를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같은 전차다.''' 물론 공군이 전차의 천적인 것은 맞다. 실제로 A-10은 탱크 디스트로이어라고도 불리고, 전투기들의 바밍 런[31] 이나 폭격기들의 폭격도 전차 부대를 상대로 좋은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이렇게 공군만으로도 전차 부대를 완파할 수 있는 군대는 없다. 덧붙여 그 미군도 러시아군처럼 공군력이나 방공전력이 만만치않은 상대로는 냉전 이후 보여줬던 일방적인 유린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공격을 개시하지 않고 은엄폐하여 전투력 보존에 집중하는 전차 부대를 항공 전력으로 격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공군은 전차를 때려잡는것 말고도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
골란고원의 영웅들에 수록된 생포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전차대대장의 회고를 살펴보면, '39일간의 연합군의 공중/정밀 폭격에도 대대의 39대의 전차들 중 32대가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전차전이 시작된 지 20분 만에 대대의 모든 전차가 연합군 전차에 의해 파괴되었고, 나에게는 단 한 대의 전차도 남아있지 않았다'라는 대목에서 보듯, 항공 전력만으로 숨어있는 전차를 격멸하거나 발을 묶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상 항공폭탄으로 안 된다면 핵무기를 사용하면 되지 않냐고? 50년대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지만 대비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T-55를 필두로 한 동구권 전차들은 본격적인 NBC 방호 장비를 갖춰서 무리 없이 방사능 지대를 돌파 가능했으며 소련에서는 본격 핵전쟁 전용 전차도 등장했다. 서구권에선 만약 미국-소련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먼저 얻어맞을 독일과 프랑스에서 레오파르트 1과 AMX-30을 개발했는데, 이들은 방사능 대비 장치는 열악했지만 대신 엄청난 기동성으로 방사능 오염지역을 돌파하여 승무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현용 전차들은 더 방사능 대비책이 잘되어 있다. 그리고 핵무기 사용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까지 생각하면 안쓰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4.4. 각 국가 육군력의 상징
전차는 단순히 하나의 무기를 넘어 해당 국가의 육군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대 육상 병기 중 가장 대표적인 무기이기도 하고 중공업, 국방과학기술의 집약체라 해당 국가의 육군력, 중공업 능력을 판단하는데 좋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준 전차나 선군호 및 폭풍호는 국내외 밀리터리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도 육군력이나 북한 육군력을 비하할 때 흔히 거론된다. 반대로 M1 에이브람스나 K-2 흑표 전차는 미 육군과 한국 육군의 강력함을 말할 때 흔히 제시된다.
또한 전차를 공격하는 것은 소속 국가의 군대와 군인에 대한 공격이 되어 선전포고 및 정부 입장에서의 내란 행위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 상황에 특정 국가가 수틀리면 무력으로 개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명을 흔히 전차 몇 대로 하기도 한다.
[image]
2006년에는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무기고가 파괴된 이스라엘군이 보복작전으로 레바논 국경마을을 공격하려 했으나 프랑스가 UN군 소속 AMX-56 르클레르 전차를 배치해 메르카바 전차까지 끌고온 이스라엘군을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참고로 르클레르 뒤에 있는 신기한 물건은 센추리온 전차를 개수한 장갑차인 나그마숏.
[image]
베를린 봉쇄 때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였던 체크 포인트 찰리에서 더 이상의 움직임이 있으면 무력 개입을 하겠다는 의사로 소련의 전차 T-54A와 미국의 전차 M48 패튼이 서로 마주보며 대치했던 사례가 있다.
5. 전차의 수송
전차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차를 전선까지 수송하는 것이다. 만약 전차가 전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퍼진다면 전투에 참여조차 할 수 없으며, 수송과정에서 전차에 무리가 가서 전투 도중 전차가 퍼질 수 있다. 때문에 1차 세계대전에서 전차가 등장 하자마자 전차의 수송은 최고의 중요 과제였다.
- 지상수송
이러한 단점 때문에 두 번째로 구상된 것이 전차 수송차였다. 우선 바퀴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수송에 최고였으며, 도로는 철도보다 반대 차선을 통제하기 쉬웠고, 철로보다 촘촘하여 교량 및 터널을 우회하기 수월했다. 하지만 대량 수송에는 철도에 비할바가 못 되었다.
지상수송에서 마지막으로 고려된 것은 의외로 자력주행이였는데, 무한궤도는 바퀴보다 험지주행에 적합하기는 했지만 장거리주행시에는 파손 확률이 한참 높았다. 거기다 1차 대전의 기술력으론 무한궤도만 걱정거리가 아닌 움직이는 모든 부품이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경전차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으로 고려해볼만한 방법 정도는 되었고, 소련과 같이 광할한 영토를 가진 국가는 도저히 국토에 촘촘히 철도를 깔 수 없었다. 때문에 소련은 자력주행과 항속거리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핵무기의 등장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전차의 자력주행은 비단 소련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 전차 운용국의 고려사항이 되면서 자력주행에 적합한 2세대 전차가 등장하게 된다.
여담으로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은 바다사자 작전에 대비해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 해안에 상륙할 목적으로 해저 자력주행이 가능한 3호, 4호 수중전차를 시험했으나 작전 자채가 수행되지 못 했기에 해저운용은 포기하고 담수에서만 매우 제한적, 전술적으로 운용하게 된다.
- 해상수송
- 공중수송
5.1. 전략적 기동성
전략적 기동성이란 전차가 전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전차 자체의 자력주행능력도 중요하지만 '전차를 수송에 얼마나 용이하게 설계하였는가?' 도 매우 중요하다. 즉 전차의 전략적 기동성은 전차의 자력주행능력 뿐 아니라 운용 국가의 수송능력까지, 더 나아가 기동 중 퍼진 전차를 수리할 수 있는 운용 능력과 '얼마나 수리가 용이하게 설계되었는가?' 까지 종합적으로 판단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전격전이라 불리는 전차 전술이 나오면서 더욱 중요시 되었는데 아무리 하드웨어 스펙이 좋아도 전략적 기동력이 좋지 않으면 일반 전차병들은 몰라도 지휘부는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이 전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록 이 경향이 강했는데 대표적으로 패튼장군, 대전 초기 독일군, 대전 후기 소련군, 영국의 순항전차 부대들이 그랬다. 이들이 사랑한 전차는 셔먼 전차와 T-34였다. 때문에 독일의 구데리안 장군도 전후까지 T-34를 극찬하고 패튼 장군은 셔먼 전차가 '''무거운''' 독일 전차(티거 전차, 판터 전차)보다 좋지 못하다는 말에 극렬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33] T-34는 소련 전차 특유의 선회와 변속의 문제가 있었지만 '''직진''' 만큼은 확실히 잘했으며[34] 연비가 뛰어난 디젤 엔진을 사용했고, 셔먼 전차는 수송 용이성, 신뢰성과 정비성이 좋아서 언제나 기동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략적 기동성이 좋지 못한 전차는 사실상 강대국만이 운용할 수 있으며 현대에는 너무 무거워진 주력전차 대신 전략적 기동성을 신경 쓴 최신 기술의 경, 중형전차라는 이름의 전차들이 다시 나오는 추세이다.
전술적 기동성은 전투 중의 순간적인 전차의 기동능력(선회력, 가속력, 최고속력, 반응속도)을 말하며 전술적 기동성이 좋지 못한 전차는 사실상 전투를 치룰 수 없는 지경이며 선회하다 혼자서 퍼지는 경우도 있다. 전차의 방어력을 말할 때 순간적 기동성과 전차의 방호력을 종합해 평가한다.
6. 기타
아군 전차가 기동할 때는 전차보다 '''앞에 있으면 안 된다'''. '''뒤에 있더라도 거리를 둬야한다'''. 잘못하면 깔려 죽을 수도 있다. 대중매체에 기갑장비가 나오면 앞에 있다가 전진하는 전차에 깔리거나 뒤에 있다가 후진하는 전차에 깔려죽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중장갑을 두른 전차는 시야가 극히 제한되기 때문에, 조종수나 전차장이나 포수, 어느 위치의 승무원이든 전차 바로 곁에 뭐가 있는지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35] 그리고 날탄을 사용할 경우 장탄통이 포구 근처에서 분리되는데, 여기에 맞으면 바로 죽는다.[36] 포구 화염이나 발사 폭풍 등 전차포의 위력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적인 위험 요소를 생각하면, 포탑 전면 150m 이내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전차 위에 타는 짓 같은 건 전시(戰時)가 아니라도 위험하니까 하지 말자.
기름 잡아먹는 귀신이다. 시동을 켰다 끄기만 하는데도 찦차 뒤에 달고 다니는 보조 기름통 1팩 수준의 기름을 소모한다. 주행시에는 더 심하게 잡아먹는다. 이 때문에 기갑 병과는 다른 육군 병과에 비해 유지비가 많이 들어간다.
근데 진짜 열차+전차(탱크)가 있긴 하다. 장갑열차를 떠올릴 수 있는데 그거와는 조금 다르다. [동방특급열차-김정일의 러시아 방문기] 라는 저서가 있는데 이 책을 쓴 저자는 전 러시아 전차병 출신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쓴 저 책에 보면 러시아에서는 반세기 훨씬 이전에 탱크(전차)의 무한궤도를 열차의 대차(바퀴 부분)로 교체해서 전차(탱크) 자체 엔진을 활용하여 철도궤도를 따라 움직일 수 있는 탱크도 개발하였다고 한다. 여기까지 얼핏 들으면 그거 장갑열차잖아? 라고 할 수 있는데 조금 다르다. 장갑열차는 대차는 열차바퀴인데 그 위에 포가 올려져 있는 거라고 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열차탱크(?)는 우리가 아는 그 전차(탱크) 바퀴를 열차바퀴로 바꿔서 달은 거라 보면 되겠다. 즉, 전차(탱크)와 똑같이 생긴 열차가 궤도를 달린다고 머릿속에 상상하면 될 것이다. 이 탱크열차는 장비 1개 샘플만이 제작되었고 현재는 러시아 연방군 전차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참고. 독일군에도 비슷한 녀석이 있다.
[image]
[image]
전차의 포탑을 일종의 토치카로 개조하기도 한다. 멀쩡한 전차를 왜 이 꼴로 만드나 싶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포탑과 포 부품은 멀쩡한데 기동력을 상실한 전차나 장기간 운용하기 곤란한 노획전차 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실시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되려 기동할 필요가 없으니 무게 걱정 없이 온갖 추가장갑과 위장 소재들을 산처럼 쌓아올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포탑만 똑 떼서 만들기도 하지만 대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전차를 넣은 뒤 시멘트로 메워 포탑만 튀어나오도록 만들었다.
[image]
도로교통법이 매우 관대하게 짜여 있는 미국에서는,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개조해서 만들어낸 전차(를 재현한 탈것) 및 장갑차를 도로에서 끌고 다닐 수 있다. 실제로 모 대학생 양덕후가 시도한 적이 있는데, 실력을 인정받아 관련 업체에 취직하기도. 관련기사. 거기다 군에서 폐기처분된 전차는 개인이 직접 소유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징병제로 병역 의무를 전차병으로 이행한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한 때 자신이 군복무할 당시 탑승했던 전차와 동일 기종의 전차를 자가용으로 타고 다니기도 했었다. 대한민국은 아쉽게도 무기소유가 불법인지라 개인이 전차를 소유하는 것은 엄연한 법 위반.
[image]
(사진 속의 장갑차는 영국군의 FV107 시미터 장갑차)
영국 같은 나라에선 위 사진처럼 전차에 가까운 물건을 구매해서 끌고 다니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정확히 따지자면, 위에 나오는 사진은 전차가 아니라 영국군의 기갑정찰차인 시미터지만, 어찌보면 경전차라고 할 수도 있다. 사진의 시미터는 군사적인 목적으론 사용할 수 없도록 무장해제를 지시하였다. 유명 유튜버 벤 필립스의 이복동생 엘리엇 자일스도 개인 수집가 소유의 2S1 그보즈디카를 타 본 적이 있다.
12.12 당시에 '''반란군 놈의 새끼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는''' 용도로 쓰일 뻔도 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물론 이 말은 그냥 진압군을 이끌고 박살내 버리겠다는 말이겠지만…[37] 실제로 고속선회하는 포신에 머리가 부딪혔다가는 정말 머리통이 날아간다. 실제로 조종수가 조종석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는걸 간과하고 내부에서 포탑을 선회시켰다가 조종수가 사망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 현대의 전차는 기관총 탑재가 기본사양이기 때문에 기총으로 긁어버리면… 실제로 국군이 운용하는 M48에는 포방패 안쪽에 파묻힌 상태로 설치된 전차의 동축기관총에 임의로 돌출된 소염기를 설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염도 소염이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안전사고 방지 목적이 크다고 한다. K1 전차 정비병으로 지원한다면 무슨 소리인지 알 것이다. 전차 정비 중에 상체만 조종석에 집어넣어서 시동 걸다가, 포탑에서 정비하던 사람이 포를 돌린다면?[38] 포탑 탈거 후 조립했는데 시운전 한다고 포탑 돌리는데 옆에 얼쩡거리다가 포신에 맞는다면? 전부 실제사례가 있는 사고들이다. 전차병 또한 조종수, 포수, 탄약수 할 것 없이 정비를 하므로, 기갑계열 특기병을 지원한다면 조심하도록 하자.
예비군 훈련을 가면, 소총과 수류탄으로 전차를 상대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마이웨이나 할힌골 전투처럼 전차가 왕창 구식이거나 자신이 영화 주인공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엔진을 집요하게 공략하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건 전차에 아무도 안타고 있을 때나, 입구를 안 닫고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2차대전당시 오함마로 전차를 두들겨서 승무원이 확인하러 나올때 수류탄을 해치 안에 까넣거나 포신을 규격이하로 변형시켜 못쏘거나 폭발시킨 경우도 있다.[39] 러시아군의 경우 호를 파고 들어가있다가 전차가 그 위를 지나가면(!) 머리를 내밀고 전차 뒤쪽 엔진부를 수류탄이나 화염병으로 가격하는 전술을 가르친다.
여담으로, 군예식령에 의해, 전차포는 예포 발사용으로 쓸 수 있다. 1970~80년대에는 대학교 교정에도 탱크가 있었다고 한다.
7. 전차를 소재로 한 군가
전차의 특징에 맞게 장갑과 화력, 때로는 기동성을 강조한 가사와 힘찬 리듬이 많은 편이다.
- 충성전투가 - 한국
- 무적전차병가 - 한국
- 황색 마후라 - 한국
- 기갑가 - 한국
- 기계화학교가 - 한국
- 육군은 전진한다(The Army Goes Rolling Along)[40] - 미국
- 기갑의 노래(機甲の歌) - 일본
- 이탈리아 탱크 군단 찬가(Inno dei Carristi d'Italia) -이탈리아
- 제 2 기갑사단 행진(Marche de la 2ème DB) - 프랑스
- 판처리트(Panzerlied) - 독일
- 우리 기갑사단(Unsere Panzerdivision) - 동독
- 소련 전차병 행진곡(Марш советских танкистов) - 러시아
- 전선의 구름들은 침울하게 떠다닌다(На границе тучи ходят хмуро) - 러시아
8. 창작물 속의 전차
9. 전차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게임
- 강철의 왈츠 - 중국산 전차 모에화 모바일게임.
- 메탈 맥스 시리즈
- 탱크 바탈리언, 배틀 시티, 탱크 포스
- 블리츠 1941
- 아머 블리츠 - 미국의 전차모에화 모바일 게임이자[41] 디펜스류 게임.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전차들이 있다.
- 아머드 워페어
- 워 썬더 지상군 - 1.91 기준으로 독일, 미국, 소련, 영국, 일본,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가 있다. 다만, 이 게임의 경우 원래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개발되었던 인디게임 출신이기 때문에 탱크 게임으로 부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 월드 오브 탱크 - 게임 특징으로 자주포도 있다. 모바일 버전은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
- 탱키온 - 베타테스트만 하고 망한 탱키온라인의 후속작이지만, 이 역시 클로즈베타만 4번 한 이후 소식이 뚝 끊겼다…
- 포트리스, 포트리스2, 포트리스3, 뉴 포트리스
- Tanktastic
- TankPit
- Tank Mechanic Simulator - 전차 수리게임.
10. 전차의 분류
병기의 분류는 1순위가 제작자 '''0순위가 사용자'''가 정하는 것이다. 구축전차 VS Tank destroyer VS 돌격포나 최초의 주력전차 같은 분류를 명확히 하려는 밀덕들의 노력은 사실상 의미 없으며, 초중전차의 경우는 후대의 분류로, 사용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던 분류인 등 사용자가 아닌 후대의 외국에서 정확하게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같은 전차라고 할지라도 운용국가에 따라 분류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미국이 개발한 M36 전차는 미국에서 대전차자주포로 분류됐으나 한국에서는 경전차로 분류됐다. 심지어 현대 덴마크군은 MBT로 개발된 레오파르트2 전차를 중전차로 분류했다.
10.1. 전차의 하위 분류
10.2. 용도별 분류
10.3. 중량별 분류
10.4. 시대별 분류
11. 관련 문서
[1] 일반인은 Tank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며, 군은 Armor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루머가 있지만 armour는 부대 단위를 구분하거나 기갑차량을 통칭하는 용어다. 사실 영어권에서 차량에 armor관련 이야기가 들어가면 대부분 방탄차를 의미한다.[2] 판처캄프바겐. 직역하자면 장갑전투차량이다. 다만 역사적인 모델 관련 얘기를 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일반적으로 독일어로 탱크를 지칭할 때는 Kampfpanzer 즉, '주력전차'이다. 줄임말인 Panzer, 혹은 더 줄여서 Pz를 쓴다. 참고로 영미권에서 Panzer라고 하면 단순히 독일군의 전차만을 일컫는다.[3] 그래서 러시아 전차들의 이름은 Танк를 줄인 Т- 를 쓴다. 당장 견고한 무쇠 덩어리라고 일컬어진 T-34만 봐도 이건 탱크를 지칭하는 것이다.[4] 포탑 형상을 보아 포르쉐 버전으로 보인다.[5] 이 전차는 프라모델도 존재한다. 아카데미과학에서 이탈리아 L3사와의 협업으로 낸 제품으로, 태엽으로 움직인다. 그 외에는 원본 설계도와 비슷한 편.[6] 사진의 차량은 그 중 Mk. 4 모델이다.[7] 사진에 나오는 Mk 시리즈가 장난감 같이 보여도 무게가 30톤이다. 이쯤 되면 비가 와서 물에 젖거나 전선 전면에 노출되어 구축이 제대로 안 된 참호는 그대로 뭉개버릴 수 있고, 그 와중에 깔리는 사람들은 다진고기 신세가 된다.[8] 3인용 포탑을 채용할 정도로 선진적이긴 했지만 전차가 퍼지면 탑승원들이 그대로 전투에 투입되는 1차대전형 중전차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물론 영국도 이런 구식 전차를 시도 하지 않은건 아니다.[9] 1차대전 전차 부대 지휘관이였던 풀러와 리델 하트가 주장하였다. 사실상 독일 전격전과 다를바 없을 정도로 혁신적이였다.[10] 동축 기관총이지만 주포와 연동되지 않고 장전수가 사용[11] 물론 2인용 포탑은 가격, 무게, 크기 등등 더 많은 요소가 복합되어 있기는 하였다. 다만 다포탑 전차의 특징이였던 3인용 포탑을 체험해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12] 주로 37~57mm로 소구경 고관통에 속사 중심이였다.[13] 기본적으로 75mm이상의 대구경 저관통이였지만, 대벙커를 상정하고 상당한 관통력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14] 독일 소련의 생각과 다르게 영국은 다포탑 전차에 기관총포탑만을 장착해 참호전에 대비한 형태였다.[15] 게임이기는 하지만 고증에 정통한 월드 오브 탱크의 각국 1티어 전차는 절대 다수가 언급된 3대의 전차 중 하나거나 이를 기반으로 개량된 전차들이다. 이처럼 이 3대의 전차들은 수출적으로 대박을 쳤으며, 전차 역사에서 빠질 수 없다.[16] 이미 독일이 토션바 서스펜션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동성이 떨어져도 신뢰성과 싼 가격, 유보수 편의성을 위해 판스프링 서스펜션을 4호 전차에 장착했고, 3호 전차와 달리 전면 변속기 커버를 통해 변속기를 교체하도록 하였다. [17] 스페인 내전, 겨울전쟁, 폴란드 침공, 할힌골 전투 등[18] 이는 독일의 생산력과 자원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독일이 총력전 태세로의 전환을 너무 늦게 한 것이 문제였다. 독일은 전쟁 중반까지 시민들의 기성품을 생산할 정도였다. 때문에 전쟁 내내 생산한 4호 전차보다도 나중에 생산을 시작했지만 총력전 태세로 전환된 시점에 생산된 판터전차의 평균 연간 생산량이 더 많다.[19] 2차대전의 전쟁 규모가 너무 커 독일의 생산력으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좋든 싫든''' 이 노획전차들을 버릴 수 없었다.[20] 전차 공백기를 자력으로 버틴 건 미국(셔먼VVSS → HVSS)과 소련(공장이전)밖에 없었다. 독일은 실패하여 3호전차 공백기를 체코의 35(t)와 노획 전차들로 버텨내야 했으며, 이후에도 4호 전차를 판터로 완전 전환 못 하여 4호(구축)전차를 전쟁 끝까지 생산했다. 영국이 경우도 순항전차의 기가막힌 신뢰성으로 인한 반공백기(?)를 렌드리스(셔먼과 M3그랜트)로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T-34-76 → T-34-85로의 과정은 소련도 무기대여법 덕을 많이 보았다.[21] 순항전차들이 미국과 소련의 중형전차에 비해서 방어력이 부족했다는 뜻이지 처음부터 경장갑을 상정한 독일의 독일의 3, 4호 전차와 비교했을 땐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신뢰도가 문제가 생긴 것도 커버넌터부터였다.[22] 셔먼과 M3리/그랜트의 M2, M3 75mm포를 그대로 사용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미군과 영국군의 포수와 장전수의 자리가 운전수의 위치 때문에 반대였기에 따로 생산해야 했다.[23] 소련 렌드리스 용으로 발렌타인 전차도 많은 수가 생산되기는 하였다.[24] 엔진 출력 부족, 연료 적재량 부족, 유보수 시 특수 윤활유 필요 등 프랑스 전차는 기동 능력에서 많이 부족했다.[25] 어느정도였냐 하면 M3리의 초기 75mm포탄이 실전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였다. 고폭탄은 사막의 모래에서 폭발하지 않았고, 철갑탄은 장갑에 충돌하면 붕괴되었다. 이를 병사들이 임기응변으로 탄두를 갈아끼워 해결해야했다. 고폭탄은 프랑스의 75mm 것을 사용했고, 철갑탄은 독일의 75mm를 사용했다고 한다.[26] 약 5만 대.[27] 때문에 장포신 M3는 극극초기형과 최후기형에서 보이며 유럽전선 보다는 아시아전선에서 더 많이 보인다.[28] 분류를 나누면 타국의 정찰장갑차와 비슷하게 취급되지만 실 전투교리는 타국의 정찰장갑차와 확실히 다르며, 역할도 과거의 전투용(비수송) 장갑차 또는 경전차에 가깝다.[29] 개전 초기에 국군은 전차가 1대도 없었다.[30] 전사(戰史)에도 주포가 고장난 전차를 후방으로 빼서 정비시키지 않고, 전차의 충격력을 이용하기 위해 동축기관총만으로 전투에 참여시킨 사례가 있을 정도이다.[31] bombing-run: 폭탄을 후드득 떨어뜨리고 쌩 가버리는 것[32] 일본 전차의 무게가 제한 받는 것을 협궤 때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협궤는 전차의 크기를 제한 할 뿐 무게는 제한하지 않는다. 일본 전차가 무게 제한을 받는 건 철도의 기반시설 및 교량의 무게제한이 낮기 때문이다.[33] 미군은 노르망디 상륙 초기 패튼이 그 유명한 병사 폭행사건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라 전차전을 할 줄 아는 장군이 없어서 독일의 방어선에 정면으로 전차를 들이대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독일 전차와 비교되며 공포를 느끼게 되었지만 코브라 작전부터 패튼식 전차 운용법을 도입하면서 셔먼이 진정한 활약을 하게 된다.[34] 이 전술대로는 전차들이 보급대가 못 따라올 만큼 적진 깁숙히 침투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직진'''능력만 있으면 되었다!.[35] 자전적 그래픽 노블 Alan's War: The Memories of G.I. Alan Cope에서 이런 장면이 자세히 묘사된다. 독일군이 항복한 후 무장 해제를 하러 가는 행렬에서 티거가 바로 앞에서 걸어가던 보병을 보지 못하고 깔아뭉개면서 지나가버린다. 주인공은 티거의 조종수에게 사람이 앞에 있다고 외치지만 소음 때문에 당연히 듣지 못한다. 패튼 대전차군단에서 역시 독일 패튼 전차(...) 앞에서 총 쏘던 독일군이 깔려죽을뻔한 장면이 나온다.[36] 날탄의 포구초속이 대략 1600m/s이다. M60 기관총의 총구초속이 800m/s인 점과 장탄통은 7.62mm 탄두보다 매우 무겁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 죽는 게 이상하다.[37] 정말로 반란군들은 장태완 장군의 전차를 두려워 했다. 알보병으로는 절대 전차부대를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38] 시동과 동시에 포수조준경과 전차장 조준경은 일치된다.[39] 할힌골 전투 때는 BT 전차를 상대로 이런 짓이, 태평양 전쟁 때는 미군 전차들을 상대로 아까 것보다 더 미친 짓이 유행했으나, 대개 이런 건 논외로 친다.[40] 2절에 '패튼 전차들' 이라고 짤막하게 언급된다.[41] 강철의 왈츠 보다는 늦게 서비스를 시작했다.[42]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옛날 전차' 하면 셔먼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