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대입구역
漢城大入口(三仙橋)驛 / Hansung University(Samseongyo) Station
[clearfix]
1. 개요
수도권 전철 4호선 419번[1] .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교로 지하 1 (삼선동1가) 소재.
2. 역 정보
한때 역 내부의 조명 자체가 인접 역과 비교해 어두컴컴하여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2014년 들어서는 조명이 밝아졌다.
곡선 승강장으로 되어 있으며, 역 내 안내도와는 다르게 화장실이 게이트 안에 있지 않다.
2020년 역 리모델링이 예정되어있다.
서울교통공사 전동차 안내방송에서는 병기역명 (삼선교)까지 방송하지만, 한국철도공사 전동차에서는 한성대입구 역명만 방송한다.
3. 역명 문제
인근에 한성대학교가 있어서 한성대입구역으로 붙었지만 서울 지하철 6호선 창신역이 개통되고 나서 오히려 이 역보다는 창신역과 가깝게 되었다. 최단거리로 1km, 창신역에서는 961m. 그러나 창신역에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한 길이므로(낙산 자체를 넘어가야 한다) 한성대학교 학생들은 당연히 이 역으로 통학한다. 모 역과는 반대되는 상황. 학교버스도 이 앞으로 오고 서울 버스 성북02 역시 여기서 타고 갈 수 있다. 학기중에 1, 2번 출구로 나가면 버스 타려고 기다리는 학생들의 줄이 아주 길다. 물론 이 상황은 한성대학교측이 한성대입구역이라는 명칭을 사수하기 위한 조치이다. 서울 버스 종로03을 타면 동대문역이나 동묘앞역, 창신역에서 한성대 후문까지 편리하게 올 수 있다. 다만 해당 항목에서도 설명되듯 워낙 고지대이기 때문에 한성대입구역으로 한성대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 4번 출구로 나오면 코앞에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과 혜화동 성당이 있고, 좀 더 걸으면 동성중학교·고등학교가 있다.[2]
부역명은 '삼선교'로 예전 동소문로 위에 있던 성북천을 건너는 다리 삼선교에서 유래했다. 삼선교는 성북천을 복개할 때 같이 사라졌으나, 현재는 성북천 복원 사업을 통해 적어도 이곳에 다리가 있었다는 느낌은 주고 있다. 절대 다리 복원까지는 아니다. 수도권 전철 4호선 삼선교 구간을 공사할 당시에 하천 복개 공사도 동시에 진행했다.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삼선교 앙쪽이 모두 하천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성북천 복원 사업으로 삼선교 남측은 하천으로 환원되었지만 삼선교 북측(성북동쪽)은 하천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이 일대를 삼선교라고 부른다.[3] 공사 당시 역명도 삼선역이었으며 1단계 개통(상계-한성대) 당시만 해도 삼선교역이라는 역명이 붙었고 부역명이 한성대입구였다. 즉 '''삼선교(한성대입구)역'''이었던 셈. 그러나 전 구간 개통 이후 한성대의 로비로 인해 삼선교는 되레 부역명으로 밀리고 한성대입구가 주역명이 되었다. 이에 따른 역명판 교체 등의 비용부담은 한성대가 떠맡았다. 이렇게 역명 제정의 역사가 좀 구질구질한 편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대학역명 논란을 야기시킨 주인공 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4] 다만 기사에 따르면 숙명여대와 성신여대, 한성대 및 총신대 등 4개 대학이라고 하여 비단 이곳의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논란을 일으킨 주인공 중 하나로 인식되는 이유는,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당시 단과대학이던 한성대학의 인지도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역 주민조차도 모를 정도이며 서울특별시의 제법 유명한 전문대학보다도 듣보잡 취급을 받았었다. 한성여중·고는 알아도 한성대라는 대학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성여중·고는 1951년에 설립되어 그 지역에서 21년을 넘게 자리하고 있었던 반면 한성대학교의 전신인 한성여자대학의 설립은 1972년의 일이었다. 당시의 유명한 종합대학을 상대로는 애당초 인지도로 보나 역사로 보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던 셈. 종합대학으로의 승격은 1990년대가 넘어서야 겨우 이루어졌다. 2010년 이후 입결과 인지도가 꽤 높아져 주변 주민들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반면에 삼선교라는 지명은 꽤 널리 알려진 상태였는데, 제3, 4공화국 시절 정권 실세들에 제법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즉 인지도 차이에서 극과 극인 상황이었는데 이것을 뒤바꿨기 때문. 여기에는 3, 4공화국의 흔적을 지우려는 29만원 정권의 비호가 있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또한 이 때문인지 부역명 중에서는 드물게 주역명에 맞먹을 정도로 많이 사용되는 역이다. 인터넷에서 삼선교역이라고만 해도 꽤 많은 검색결과가 걸릴 정도이며, 마을버스에서도 아예 삼선교역으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삼선교역'''이라고 검색해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
4. 역 주변 정보
중앙버스전용차로상의 한성대입구역 정류소와도 연계가 되어 여러 대의 간선 및 지선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전철역과는 달리 버스 정류소의 이름은 '''삼선교한성대입구'''로 되어 있다. 방송도 그렇게 한다. 옛날 역명을 그대로 쓰는 셈인데, 전철역과 주-부역명을 뒤바꾸어 놓은 것이다. [5] 도심방향 중앙차로정류장의 위치는 한성대역보다도 한성대에서 더 가깝고 삼선교(터) 바로 아래에 있는 한성대역과는 달리 삼선교(터)에서 500m이상 떨어져 있다. 왠지 이름이 바뀐 듯하다.
4호선 열차가 터져나가는 시간대에는 한성대입구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들도 터진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이 있는 강북의 교통이 다른 구역이나 거주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면이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강북구와 성북구 일부 지역은 4호선 하나에 '''목숨을 걸 정도'''로 의존도가 심하다. 한 번 4호선이 운행중단 크리 먹는 순간 이 지역들은 헬게이트가 된다. 그래서 우이경전철을 계획한 것이지만 여전히 4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대부분이다.[6] 하지만 헬게이트가 성신여대입구-동대문 사이로 옮겨갈지도.
역의 5번 출구로 가면 나폴레옹과자점 본점이 있다. 사실 진짜 본점은 1번과 2번 출구 사이에 있었으나 성북천의 복원 공사 과정에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맛있고 비싸다. 전체적으로 품질이 좋지만, 이곳의 슈크림빵은 비싼 만큼 제값을 하는 간판 빵. 슈크림의 맛이나 양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 김영삼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찾았던 단골 국수집으로 유명한 '국시집'도 인근에 있다.
7번 출구 근처에 매우 저렴한 중국집이 있다. 짜장면이 '''3,500원'''[7] , 짬뽕이 '''3,500원'''이다. 요즘 이런 가격의 중국집은 매우 드물지만, 이 동네에는 두 곳이나 있다.
2014년 10월, 5번 출구에 에스컬레이터 공사가 완료되었다.
5. 일평균 이용객
한성대입구역을 이용하는 도시철도 일일 승객 수이다. 아래 표는 승차객 + 하차객의 총합이다.
- 출처: 서울교통공사 자료실
이 역을 포함해서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 이북 구간의 열차 수송분담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서, 이 역에 올때쯤 되면 서울역 방면 4호선 전동차는 이미 '터져나간다'. 그 이유는 4호선이 지나가는 지역을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일단 상계역, 노원역 주변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아파트 밀집지구이며 창동역은 경원선 환승으로 인해 경기북부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거기에 쌍문, 수유, 미아리까지. 2007년 이후에는 길음동 일대도 뉴타운 재개발을 하고 있어서 이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왜 미아리/길음동 일대까지 지하철을 타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길음뉴타운에서 한성대입구역까지 지하철로는 10분, 그것도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한 것이고, 버스로도 10분 가량 걸리지만 문제는 한성대입구역 아랫쪽으로는 중앙전용차로가 없어져서 종로/율곡로의 정체에 걸린다! 게다가 이 구간은 버스도 터져나가기 때문에 그나마 더 빠른 지하철을 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 9시까지에는 이 역에서 사당 방면으로 타서 앉을 수 있는 확률은 사실상 0에 수렴한다. 심지어 운 좀 없다 싶으면 밤 11시 넘어서 사당 방면으로 타도 못 앉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사실 못 앉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정도가 아니고 거의 100% 앉을 자리가 없다.
6. 승강장
[image]
[image]
역 안내도. 섬식 승강장이다.
한성대입구역은 1면 2선의 섬식 승강장을 가진 지하역이다.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으며,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새가 넓으니 승하차시 발빠짐에 주의해야 한다.
이 역은 혜화방면으로 7퍼밀 상구배가 있다.
7. 종착역
[image]
삼선교행 종착 시절의 플랩식 행선안내표시기.
수도권 전철 4호선 1단계 개통 당시의 시종착역이었으며, 지금도 당고개방향 한정으로 첫차와 막차가 이 역에서 시종착한다. 옛날엔 주박을 하지 않고, 차량기지로 회송하였으나,(다이어상 한성대입구발 노원행과 창동발 한성대입구행)그 다이아는 없어진지 오래고 지금은 한성대입구 Y선에 주박을 한다. 이에 따라 막차를 타고 이 역에 내리면 한성대 이북 지역의 역인 수유역/쌍문역/창동역을 가려는 사람들 노리고 택시기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찮아서 버스를 타는통에 막차구간의 한성대입구를 지나치는 버스는 그야말로 출근길 지옥못지 않은 모습.[9] 특히 밤 늦게까지 운행하면서 멀리 덕정동까지 가는 108번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콩나물이다. 회차선로는 성신여대입구역 방향에 있다. 원래는 혜화역 방향으로도 있었으나, 사당역까지 개통하면서 철거하였다.
8. 자살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에는 자살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수도권 전철 4호선의 노선색인 파란색과, 섬식 승강장이라는 이 역의 특성이 결합되어 심리적으로 이 세상에 나 혼자 뿐인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다 보니 자살이 많았던 듯하다. 게다가 하필 이 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공사하려던 와중에 석면이 대량으로 검출되어 석면 제거 공사를 먼저 했기 때문에, 스크린도어 설치가 늦어지기도 했다. 2009년 연말 스크린도어 설치가 끝나서 더 이상 이 역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게 되었다. 대신 노량진역과 남영역에서 자살하려는 이들이 많아졌으나, 현재는 노량진역과 남영역에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9. 대한민국 발전사 축소판
이 역 주변 동네에 옛날 허름한 주택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 역은 '''성북동'''과 삼선동의 경계에 있는 역으로, 역 바로 북쪽인 성북동과 한성대입구역 주변의 주택을 둘러보면 '여기 같은 동네 맞아?' 수준으로 대한민국 주택 변천사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다. 그나마 주상복합아파트와 판자촌이 한 사진 안에 어우러져 위화감을 조성했던 구룡마을은 근래 들어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옛날 주택들이 많은 장수마을과 북정마을은 문화재 보호 때문에 재개발도 힘든 상황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한민국 초기 주상복합아파트의 형태인 삼선시장아파트까지 존재했다면 진짜 대한민국 주거형태 축소판. 삼선시장아파트는 한성대입구역에서 삼선동 동사무소까지 1.5km정도 되는 구간의 하천을 복개한 위에 1970년대 초반에 건설되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단계적으로 철거되었다.
역 기준으로 남쪽은 일반적인 단독주택과 원룸촌이 혼재되어 있지만 과거 남쪽, 특히 삼선동3가 쪽은 옛날 단독주택 사이사이에 재개발로 아파트가 군데군데 들어서 있으며, 북쪽으로 길을 올라가면 한남동, 청담동 등과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 동네로 꼽히는 성북동이 있다. 하지만 성북동 쪽에서도 고지대 쪽(심우장 쪽)은 지은지 50년 넘은 주택들이 일부 있다. 이런 아스트랄한 주거 환경을 한 눈에 보고 싶다면 한성대학교 캠퍼스에 올라가거나 서울 성곽 배바위쪽, 간송미술관 등지에 올라가보면 알 수 있다. 성능 좋은 쌍안경 하나 있으면 더 좋다.
- 고급 주택 밀집지역 - 성북동[10] 일부 지역에 위치한 고급주택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의 거처였던 돈암장[11] 도 여기, 삼선중학교 바로 아래에 있다. 간송미술관도 이 근처에 존재하는데, 애초에 간송미술관은 진짜 미술관이 아니라 개인 주택이다. 또한 롯데가 인물 일부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 또한 성북동에 거주한다. 최소 50억으로 보면 된다.
- 중산층 단독주택 - 일각에서는 성북동을 최고의 부촌과 달동네의 공존으로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온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주거에서 느껴지는 빈부격차와 양극화는 서울 도처에 산재하며, 무엇보다 이러한 무지는 성북동에는 중산층의 고급 자택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체적으로 재벌가 부촌의 이미지는 대로인 성북로 이북 한정이다. 간단하게 성북동 330번지가 성북동을 대표하는 부촌의 대명사다. 그러나 성북로 4길과 성북로 8길, 선잠로길, 성북로23길 초입과 성북로 23'가'길에 일반인들 수준에서는 구매할 수 없는 고급의 중산층 주택들이 즐비하다. 최소 20억으로 보면 된다.
- 아파트 - 동소문 한신아파트는 50평형이 가장 세대수가 많다. 단일 아파트단지에서 50, 56평형 세대수가 1,200세대 이상 되는 단지는 적어도 강북에서는 거의 없다. 게다가 50평형대 이상의 아파트는 비싼 관리비 때문에 동수저 이상은 되어야 살 수 있는 곳이며, 사립초등학교인 우촌초등학교, 강남권 고급 아파트 상가 못지않은 규모의 상가까지 있는 걸 보면 분양 당시 언론에서 강북의 압구정동 드립을 한 것도 이해가 될 만한 대목이다.
- 다가구주택 - 과거 한옥을 재개발해 다가구주택으로 만든 인근 지역. 하지만 전세값은 생각보다 높다. 삼선동 1, 2가 지역의 다가구주택들의 경우 한성대 학생들의 자취/하숙으로 많이 이용한다.
- 옛날 한옥집들 - 아직도 동소문동 1,2가에는 지어진지 70년이 넘은, 푸세식 화장실을 쓰는 허름한 20평대 한옥집들이 많다. 재개발예정지역이라서 보수를 안하는 듯.
- 달동네로 남은 문화재 보호구역 - 삼선동 1가 장수마을(한성대 서측), 성북동 성북로 23길 위쪽 북정마을. 길음동, 미아동도 다 뉴타운 재개발로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는데 이곳만은 문화재 보호 때문에 재개발도 못 한다. 장수마을과 북정마을 모두 한양도성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영원히 달동네로 남을지도. 참고로 한진아파트에도 영세민용 영구임대아파트가 500세대 가량 된다.
9.1. 지역 재개발
재개발로 이 역 주변의 달동네는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달동네는 많다. 뛰어난 도심 접근성으로 아파트 수요가 많아서 재개발이 이어졌으며 일단 완공되면 삼선동 SK아파트처럼 만만치않은 가격으로 거래되나 한양도성으로 인한 고도제한으로 장수마을 처럼 현실적(경제적)으로 재개발 불가능한 지역이 많다. 이미 고지대 재개발은 거의 끝난 듯. 물론 입지가 더 좋은 한성대입구 역세권 평지 재개발(동소문2구역 등)이 있으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예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 아니, 재개발은 외부 투기세력이 들어와야 신속하게 진행되지 지역주민들 스스로는 잘 안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곳.
이 지역 주민들은 재개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삼선교 지역은 인구이동이 매우 적다. 삼선교 지역의 거주지역 개발은 한신/한진아파트 지역을 제외하면 단독주택이나 빌라와 같은 소형 다세대주택 위주로 이루어진데다, 그나마 2010년대 이후에는 대규모 주택 개발이 멈춘 편이라서 갑작스러운 대규모 인구 유입이 일어나기 힘들다. 특히 성북동 부촌은 대규모 인구 이동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한 곳. 이러한 지역의 특성 때문에 오래된 옛 이야기들도 잘 기억되는데, 특히 동소문 한신, 한진아파트 재개발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주민들 사이에서 잘 기억되고 있다. 1973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서 1987년 착공까지 무수히 많은 알력다툼, 비리, 파벌싸움, 입주권 및 영세민 딱지 불법거래 등의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 중 상당수는 사실이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1971년 광주대단지사건때부터 1986년 정부가 뒤로 빠지고 건설사가 앞장서는 합동재개발 방식으로 바뀌는 동안 재개발 관련 법령도 여러번 바뀌었고 특히 1981년 쿠데타로 집권한 5공정부가 대민 유화책으로 무허가주택을 대거 양성화했는데 여하튼 이러한 주변여건에 따라 이해관계인의 처지가 바뀌고 혼란이 있었다. 1987년 착공 이후에도 조합원들의 다툼으로 공사중단도 여러번. 결국 1995년이 되어서야 완공, 입주했다. 그런데 입주한 이후에도 등기가 안 나서 재산권행사를 제대로 못 했고 결국 2005년에서야 등기가 나서 재개발이 완료된, 재개발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다 보여줬던 재개발 백화점이였다.
이런 과정들을 잘 알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재개발에 대해 부정적이며 투기세력들은 이런 부정적 분위기가 적은 길음, 미아쪽으로 갔다. 여담이지만 이 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겪은 무수한 시행착오로 성북구청의 재개발 노하우가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앞서며 그 결과 뉴타운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었다. 그 시범사업이 바로 길음뉴타운. 이 노하우로 순식간에 길음뉴타운 사업을 끝내버렸으며 장위뉴타운도 엄청난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다만 길음뉴타운의 얼굴격인 역세권구역이 아직 시작도 못 한 관계로 완벽히 끝났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역세권구역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구역은 이미 수년전에 사업 다 끝났다. 이제야 하나 둘씩 입주하는 왕십리뉴타운과는 대조적.
참고로 뉴타운 시범지역은 길음, 왕십리, 은평뉴타운 세 곳이었다. 이 중 시 재정이 가장 적게 들었던 뉴타운이 길음뉴타운인데 반면에 기존의 주택재개발 방식에서 크게 다른 것이 뭐냐 하는 반응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은평뉴타운은 시행착오도 많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비용(토지보상비)이 들었으며 비록 주변을 다 갈아엎고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즉 뉴타운의 취지에는 가장 잘 맞지만 비용이 엄청나서 사실상 가성비가 형편없는 뉴타운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들어서 삼선동 지역의 재개발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아파트값 상승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성대학교의 입결상승(특히 무용, 디자인 등 예능 분야)으로 외지 학생 비율이 높아져 원룸수요가 많아진 관계로 기존 단독, 다가구, 빌라단지의 경우 재개발보다는 원룸으로의 신축 및 개조가 더 이익이 되는 상황이 되었고 이는 재개발 취소의 이유가 되었다. 재개발구역이 아닌 곳에 있는 삼선동 다가구주택들도 보통의 빌라에서 급속도로 대학생 상대 원룸주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참고로 위치상 대학가로 개발이 어려운 곳들은 이미 오래전에 아파트로 재개발되었거나 후술한 공동체 복원사업으로 가는 중이다. 이로 인해 삼선동 장수마을이나 성북동 북정마을 등의 달동네들은 전면 재개발이 아닌, 거주민들의 터전을 유지하는 주민참여형 공동체 복원사업으로 방향을 잡은 상태이다. 결국 대한민국, 특히 서울 주거형태 백화점(표본실)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
최근에는 대학로의 시끌벅적함을 떠나서 특색 있는 거리로 한성대입구역 성북동 방향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뜨고 있다는 언론기사도 있다.[12] 역시 스타벅스가 발 빠르다. 한성대입구역 역세권에 스타벅스만 2개가 있다. [13] 성북구 전체에 8개인 것을 감안해 볼 때 대학로도 아니고 돈암동도 아닌 곳에 2개나 되는 것은 역시 미래를 읽은 혜안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아파트 단지 개발의 단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예로 재개발 중단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1] 개정 전 19번[2] 다만 동성중·고등학교는 이 역보다 혜화역에서 가는 것이 더 가깝다.[3] 여담으로, 이 주변의 또 다른 랜드마크 중 하나는 바로 동소문이다.[4] 「대학앞 지하철역명 기부금받고 바꿔줘」, 1986-02-01, 동아일보[5] 회현역도 정류장 이름이 '''남대문시장.회현역'''이다.[6] 우이신설선은 성신여대입구역 이북으로는 성북구랑 강북구 서쪽 변두리만 훑고 지나간다. 사실상 정릉동 빼고는 큰 수요처가 없다고 봐도 될 정도. 하지만 아직 이 쪽에는 4호선 외의 대체제가 없는 지역들이 수두룩하다. 동북선이 개통될 계획이기는 하지만.[7] 2018년 6월 기준[8] 어디까지나 다른 4호선 역들과 비교해서 그런 것이며, 이 역이 중요도가 떨어지는 역은 결코 아니다.[9] 한성대입구행을 타고 와서 이 역에서 버스로 환승하려 한다면, 혜화역에서 버스로 환승하는 것을 추천한다. 출구에서 나와서 버스정류장 까지 다소 걸어야 하는 한성대역과는 달리 혜화역은 2번출구로 나가면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조금이나마 착석확률이 높아진다.[10] 성북동 330번지 인근에 특히 현대가 관련 인물들이 살고 있다.[11] 지금은 대성그룹 소유.[12] 「연트럴파크, 후암야경길… 새로운 골목이 뜬다」, 2015-10-12, 조선일보[13] 박명수 건물은 성신여대입구역 역세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