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선생님
1. 개요
한국 어린이 드라마의 전설
제목 그대로 호랑이란 별명을 가진 덩치 큰 초등학교 교사 허봉수(연기자는 조경환)를 중심으로 해서 허봉수가 담임을 맡은 5학년 5반의 어린이들이 만들어가는 일상과 고민을 담은 작품.
2. 설명
1980년 11월에 국보위는 신문-방송겸영을 금지시켜 TBC와 DBS, 서해방송, 전일방송을 KBS로 강제통합시킨 동시에 컬러 TV 방송을 개시하고 81년 들어서 KBS의 상업광고를 재개하고 컬러TV 수신료를 종전 800원에서 2500원으로 무려 3배나 확 올리는 결정[1] 도 하고, 1973년 이후 폐지되었던 아침방송을 재개하는 등의 등 방송 개편을 광범위하게 실시하였다. 이때 정부에선 가급적 일본 애니메이션만 방영하지 말고 어린이 드라마를 만들어서 방영하란 지시를 내려보냈다.[2] 이에 MBC는 기존에 만들었던 X 수색대 같은 SF형식을 배제하고 초등학교 한 반의 교사와 어린이들의 일상을 담는 형식으로 만들어낸 게 이 드라마.[3]
1981년에 시작된 이 드라마는 방영 시작후 무지막지한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애초 기획이 기획이다 보니 계몽적인 내용이 많긴 했으나, 그럼에도 한국의 티비를 통해 방영된 여러 영상물들 중 호랑이 선생님만큼 당대 한국 어린이들의 일상과 밀접한 내용을 담고 있던 작품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 거기다 청소년 드라마도 변변한 게 없던 판이라[4] 호랑이 선생님을 즐겨 보던 중고등학생들도 많았다.
호랑이 선생님을 만들게 한 정부의 지시 때문에 KBS 역시 어린이 드라마를 만들었고 호랑이 선생님이 인기를 끌자 호랑이 선생님의 콘셉트를 따라한 드라마를 만들기까지 했지만 그리 큰 반응은 얻지 못하고 사라졌고, 그 때문에 한때 호랑이 선생님은 방송 중인 유일한 어린이 드라마로 군림하기까지 했다.
드라마의 엄청난 인기 덕에 선생님 역을 한 조경환은 MBC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교육위원회로부터 명예교사 자격증을 수여받기까지 했으며[5] , 드라마는 1000화가 넘는 방영횟수를 기록하면서 6년여간 평일 MBC의 오후 시간대를 책임졌다. 하지만 장기 방영 속에 약발이 다했는지 후반으로 가면서 초기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고, 결국 1986년 10월을 끝으로 드라마는 종영되었다. 이후로 90년대까지 꾸러기나 댕기동자 같은 여러 MBC 어린이 드라마가 만들어지게 된다.
장기 방영 속에 호랑이 선생님은 이금림이나 송지나 같은 당시 젊은 드라마 작가들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을 단련하는 무대가 되었으며, 1984년부터는 강철수가 드라마 작가로 각본을 맡았다. 물론 강철수 각본때부터 약발이 다했다는 평이 있지만.
초기에 김승수 피디가 연출을 맡았던 호랑이 선생님은 1983년부터 황인뢰가 연출을 맡아 작품을 이끌어갔고, 황인뢰는 어린이 드라마란 틀 속에서 온갖 실험을 더해가며 자신의 재능을 펼쳐냈다. 이런 실험이 가능했던 건 당시 호랑이 선생님이란 드라마가 방학 때만 되면 특집 형식으로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도 용인했기 때문. 이 때문에 호랑이 선생님은 방학 때만 되면 모험물도 되고 공포물[6] 도 되고 SF도 되는 식으로 변신했다. 특히 미래의 대한민국을 소재로 한 가상 역사물[7] 에서는 소년잡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미래 설정에 비윤리적이고 위험해서 폐기처분된 유전공학 기술을 훔쳐서 '''자기에게 주사한''' 친구가 퍼렇게 생긴 괴물[8] 로 변하는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고 (주인공은 자기 반 친구를 시켜서 자신에게 주사를 놓으라고 했고, 친구는 시키는대로 주사를 놓아줬는데 괴물이 되고 말았다. 친구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벌벌 떨고 자기 모습을 모르는 주인공은 난데 왜 그렇게 놀라느냐며 두려워한다. 친구가 거울을 비추어주자 주인공은 경악하며 울부짖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친구는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약을 주사해줄테니 빨리 달라고 하는데 주인공은 거기다 대고 말한다. "그건 아직 발명 안했어...") [9]혹성탈출을 패러디한 미래 사회 방학 특집극에선 한국 드라마 최초로 라텍스를 이용한 얼굴 전신 분장을 통해 원숭이 인간을 드라마에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1982년 방학특집 'TV시대 아이들'에선 조용필, 서세원 등 당대 여러 스타들이 까메오로 출연한 일도 있다.
3. 여담
호랑이 선생님은 사자에상 시공이 아니라 작중 시간과 외부 시간이 일치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이 때문에 방영 후 시간이 지나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시작한 드라마를 그대로 6학년까지 진행시키는 것까지는 되었지만, 방영 후 2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 작중 시간 흐름상 졸업할 때가 되어버린 것. 하지만 그렇게 졸업시키고 드라마를 끝내기에는 호랑이 선생님의 인기가 너무 좋았다. 결국 제작진이 어떻게 머리를 짜낸 끝에 선생님이 변두리 지역의 학교로 전근을 가 새로운 반의 담임을 맡는다는 식으로 물갈이를 하고 드라마가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출연진 교체가 이어지면서 호랑이 선생님은 결과적으로 시즌제 드라마 비슷한 형식을 원조급으로 시도한 작품이 되었다.[10]
1기 때의 멤버들이 인기가 좋은 편이었으나 1기 아역들 중 성인 연기자로도 어느 정도 자리잡은 사람은 윤유선, 강문희 정도. 갑자기 은퇴하는 바람에 잊혀진, 이후 복귀했지만 아직 제자리를 못 찾은 유경아는 3기였다. 그리고 1기 때 인기 멤버였던 황치훈은 가수가 되어서 80년대 후반 <추억 속의 그대>라는 노래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에 모친 사망 후 불운이 생겨 군 생활을 거쳐 1992년 2집 실패 후 가수활동을 중단한 후 온갖 직종을 전전하다 2005년부터 재규어/랜드로버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잡던 황치훈은 2007년 결혼한지 2년도 안돼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투병중이란 사실이 알려져 황치훈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는데 세상을 떠나기까지 11년간 식물인간 상태였다. 2011년 김진만, 안정훈, 윤진영, 정혜욱, 신양희 등 30년전 호랑이 선생님 주역들이 동창회를 가져 입원한 황치훈을 면회가기도 했다. #
황치훈을 진료한 의사조차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사실상 숨만 쉴 때 거의 사망 상태라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2017년 10월 16일 새벽에 뇌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그 외 출연자 중 강기선은 성인이 되면서 MBC FD가 되어 1990년대 초~중반 <뽀뽀뽀> 등 어린이 프로그램 녹화진행, 자료수집 등을 맡았다.
어린이 소설이 붐을 이루던 1986년에 소설화가 되어 책으로 나온 일이 있다. 저자는 만화가 강철수 화백이었다.[11]
[1] 이 때문에 수신료를 30년 넘게 올리려고 하는 게 번번히 무산되고 있다.물론 30년이나 지났다고 항변하지만 KBS의 각종 논란으로 인하여 계속 수신료 올리려는 게 번번히 막히고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2] 그런데 이런 지시가 내려왔어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계속 방영되었다(...). 이유는 국산TV만화영화를 만들기에는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때문(...) 일본제 로봇 애니메이션의 경우엔 저런 지시로 인해 방영이 배제된 혐의가 짙지만. 다만 애니매이션 제작이 생각보다 넘사벽으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당장 만화가 박재동의 오돌또기도 사실상 엎어져 버렸고 당대 기준은 물론 현재도 한국과 일본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넘사벽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데 아케이드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KOF를 내는 동안 한국에서 낸 게 왕중왕에 불과했다.[3] 따지고 보면 이런 콘셉트도 「3학년 B반 킨파치 선생님」 같은 일본 드라마의 영향을 배제할 수가 없긴 하다.[4] 그나마 시간이 좀 지나면서 고교생 일기같은 청소년 드라마들이 방송되기는 했다.[5] 참고로 조경환은 수사반장의 엄청난 인기로 대한민국 경찰의 이미지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일로 인해 형사 역할의 배우 전원이 명예 경찰관으로 임관했을 때 명예 경위가 되었다. [6] 죠스까지 나온 바 있다. 물론 상어 다큐멘터리를 무단 삽입하고 정작 상어 모형을 조경환이 칼로 찔러버리는 허무한 최후로 나오지만[7] 작중 대사를 통해서 90년대 공산주의는 몰락했고, 김일성은 사망, 김정일은 공산주의 몰락때문에 '''정신이상을 일으켜 군에서 수감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8] 조춘씨가 표범가죽 쓰고 열연했다[9] 잘만 끌면 괜찮은 시리즈가 될뻔했으나 어른의 사정인지 괴물이 반을 때려부수는 곳에서 갑자기 끝난다. [10] 뒤에 사춘기 1기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학교 시리즈는 애초 미니시리즈로 출발할 때는 후속 시리즈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그냥 2학기 말로 시간대를 잡았지만 주간 단막극으로 정착하면서 극중 시간과 외부 시간을 맞추게 된다.[11] 강철수 화백은 한동안 호랑이 선생님의 극본을 썼으니 따로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