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

 


1. 개요
2. 작품 목록
2.1. 만화·웹툰
2.2. 삽화
3. 작품 성향
4. '비사회적인 인간'
5. 신비주의
6. 건강
7. 단월드 계열 운동 투신과 작가활동 중단


1. 개요


[image][image]
'''이름'''
강효경
'''필명'''
호연
'''출생'''
1983년
'''국적'''
한국
'''직업'''
만화가
'''대표 작품'''
도자기, 단군할배요!
'''링크'''

한국의 여성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2007년 네이버 웹툰 <도자기>로 데뷔, 특유의 한국적인 색채와 정서, 독특한 상상력, 그리고 한국 작가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성으로 많은 매니아와 팬층을 확보하였다.
필명인 '호연'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데뷔 당시 재학 중이던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의 기숙사인 '호연학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필명을 멋있게 쓰면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진실되지 못한 것 같아서' 일부러 가볍게 지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ㅊ군', '현조', 첼로부인' 등 다수의 닉네임을 사용했다.
《도자기》로 만화계에 정식으로 발을 내딛기 이전인 2000년대 초-중반부터 《강철의 연금술사》, SNK 격투게임 등 작품의 2차 창작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수의 자캐 커뮤니티 동인 활동을 펼친 이력이 있다. 한편 꾸준히 자신의 홈페이지에 만화일기, 일러스트레이션을 여럿 업로드하였는데, 특유의 진한 감수성이 이목을 끌어 웹툰 데뷔 이전부터 상당히 이름을 날렸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후술할 이유로 창작 웹투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며, 그 대신 '해운대 천부경 명상센터' 원장이자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의 강사로 활동하며 종교색을 띤 특정 기업에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물을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의 주요 SNS 중에서는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투리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비정기적으로 투고하고 있다.

2. 작품 목록



2.1. 만화·웹툰


2008년 5월부터 동년 11월까지 야후! 카툰세상에서 연재하였던 호러/판타지 장르의 작품. 꿈 속의 꿈을 소재로 하여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맞닥뜨린 초현실적인 사건, 그리고 그 배후에 자리한 정체불명의 존재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었다. 복선을 흥미롭게 배치하고 전개 역시 탄탄하여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둥글둥글한 화풍과 대비되는 스산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수작이었으나 후술할 작가의 건강 문제로 인하여 초반부 내용만을 남긴 채 연재가 끊어지고 말았다. 이후 판권 문제에 대한 거론조차 없이 야후! 카툰세상 자체가 공중분해되고 말았으며, 작가 본인 또한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재개의 의지를 잃어 이야기를 매듭짓지 못하게 된 비운의 작품이다.
수준 이하의 저질 작품이 많고, 화제성 역시 매우 떨어지던 당시의 야후! 카툰세상 내부에서도 주호민의 《무한동력》과 함께 많은 주목과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었으며, 더욱이 작가 역시 연재 직전 『팝툰』과 가졌던 인터뷰에서 자신의 구상에 상당한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하였기에 연재중단이 매우 아쉬운 작품으로 꼽힌다. 현재는 《단군할배요》 팬 카페에 스크랩된 당시의 연재분만을 열람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에 비정기적으로 투고되었던 일기들. 개인사와 각종 신변잡기에 특유의 위트를 곁들여 세 컷으로 짤막하게 그려낸 만화들이다. 작가의 오랜 감성과 만화적 표현이 함축되어 담긴 작품들로, 작가 스스로 밝히기를 자신에게 있어 이후의 모든 창작활동의 근간이 된 귀중한 작품이라고 한다. 《단군할배요!》 이후의 작풍과는 달리 씁쓸하고 처연한 감수성이 짙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인데, 이 때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이 더러 있다. 2009년의 일기까지만 해도 고독감이나 병세로 인한 신체적 중압감 등을 자주 주제로 삼았던 반면에 2010년부터 별안간 기체조, 단월드 회원과의 교류 내용, 낙관론 등이 자주 그려지는 등 가치관 변화가 크게 두드러진다.
2011년 애니북스를 통해 그간의 연재분을 엮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를 위해 저해상도로 작업되었던 초기 에피소드를 모조리 다시 그리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는데, 이를 불사할 정도로 이전부터 작가는 오랜 기간 이 일기들을 모아 책으로 만드는 데 상당한 열의를 보이고는 했다. 정작 담당 편집자는 상업적 측면에서 불리하다며 《도자기》나 그리라는 핀잔을 주었다고. 초판 특전으로 컵받침과 스티커 등이 동봉되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찾기 힘든 귀한 굿즈다.
통일부와 협업한 공익 성향의 웹툰으로 통일부 블로그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현재는 폐간된 씨네21 산하 만화잡지 『팝툰』 32호(2008년 6월) 에 게재되었던 단편. 충청남도 태안의 태안 마애삼존불, 예산군의 예산리 사면석불, 국립부여박물관의 청양리 출토 도제대좌,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등을 소재로 한 답사기이다. 본래 병산서원을 주제로 정성들여 원고를 그렸으나 타 작가와의 소재 중복으로 인해 짧은 시간 안에 다시 그려낼 수 밖에 없었던 원고라고 한다.

2.2. 삽화


  • 《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
  • 《인생을 바꾸는 100가지 질문》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 《치즈는 어디에?》

3. 작품 성향


마치 한지에 그린 수묵화 같은 그림체가 특징이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페인터를 통해 이러한 느낌을 낸다고 한다. 이런 독특한 그림체와 더불어, 다른 흥미위주의 만화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소재와 한국적인 정서로 인해 '가장 한국적인 만화를 그리는 작가'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감성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독자적인 경지에 오른 수준. 노골적인 최루성 소재나 연출 없이, 섬세하고 독창적인 표현으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전달 능력은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고 작가적 역량이 감동·치유물에만 치우친 것도 아니라서, 특유의 위트와 개그센스도 훌륭하며, 쓸쓸하고 시니컬한 센스를 살려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픔,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괴로움 등을 표현하는 데에도 능하다. 또한 (비록 제대로 연재되지는 못했지만)《꿈의 주인》에서는 색다른 공포물을 시도, 호평을 받기도 했다.

4. '비사회적인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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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일기》
상당한 반골 기질을 가졌던 듯싶다. 외동으로 태어나 집안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자랐으나[1], 고등학교를 진학한 뒤 성적이 크게 떨어지자 반항심이 생겨 공부를 안 하겠다고 아예 손을 놔 버렸다고 한다.(…)
이후로도 상당한 좌절과 갈등을 겪으며 사회에 대한 강한 반발심이 생겼던 것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비사회적인 인간'이 되겠다 하여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3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며 방황했다고 한다. 스스로도 자신의 앞날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해 많이 괴로워했던 듯 하다. 이 때의 심경과 감정은 당시 작가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던 《사금일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다 뒤늦게 수능 준비를 하여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하고, [2] 대학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전공지식을 살려 《도자기》 연재를 시작하게 된다.[3]

5. 신비주의


현재는 사진도 공개하고(선한 인상이 돋보이는 훈훈한 인상),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만 데뷔 때부터 대략 2010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작가 자신의 신상을 일절 드러내지 않고 신비주의(?)를 유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팬들은 작가의 정체, 그 중에서도 작가의 성별을 크게 궁금해하기도 했다. 작가 스스로를 모델로 한 듯한 《도자기》의 주인공 캐릭터는 여성인 반면, 다른 그림이나 일기에서 등장하는 오너 캐릭터는 남성이니…
이에 대해 작가는 '원래 스스로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에 작가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 이라고 답한 바 있다. 현재는 이러한 성격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고.

6. 건강


몸이 약한 편인지 남들이 잘 걸리지 않는 희귀병을 자주 앓았다고 한다. 특히 2008년 《꿈의 주인》 연재 도중 특이한 심장질환이 발병하여 불가피하게 연재를 중단하고, 심지어는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까지'''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다.
이 때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그림을 돈을 받고 파는 형식으로 팬들에게 모금을 받았으며, 이에 호응한 많은 네티즌들의 도움으로 다행히도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쳐 건강을 회복하였다. 이 일이 모 신문에 의해 성급히 기사화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하나, 어찌어찌 잘 마무리 된 듯. 후일 건강을 회복한 뒤, 작가는 당시 자신을 도와준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하나하나 그림 엽서를 그려 보내는 정성을 보이며 약속을 지켰다.
이 때의 경험으로 작가의 성격과 가치관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지, 이전 작품에서 종종 나타나던 특유의 어둡고 쓸쓸한 감성이 크게 퇴색하고, 작품의 성향이 완전히 뒤바뀌어 긍정적이고 밝은 내용으로 가득 채워졌다.
작가 스스로는 이 일을 계기로 '슬픔보다는 기쁨을, 좌절보다는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순수한 선의에서 우러나온 도움을 받아 되살아난 것이니 세상이 달리 보일 만도 하다. 다만 워낙에 급격하게 작가의 성향이 변화한 탓에, 이전의 관조적이고 우울한 감성을 선호하던 이들에게는 아쉽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7. 단월드 계열 운동 투신과 작가활동 중단



수술 후 요양과 회복을 거치는 과정에서 거주지 인근의 단월드에 참석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이후 작가로서의 커리어나 대외적인 이미지가 크게 어그러지고 말았다. 단순히 회복보조를 위한 운동 목적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으나 하필이면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을 상태에서 빠져들어 깊게 의지한 모양인지, 해당 업계에서 펼치는 유사과학·교조적 민족주의 이념에 노출되어 이를 곧이곧대로 수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자신의 만화 《단군할배요!》에 지속적으로 단월드 및 환단고기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시켜 큰 논란이 일었고, 이 일을 계기로 많은 팬들이 실망하여 등을 돌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 뒤로는 SNS상의 활동을 완전히 단월드 관련사업 홍보 목적으로 전환하고 엇나간 민족주의 색채가 뚜렷하게 엿보이는 창작물을 대거 업로드하는 등, 이전까지의 활동과 확연히 구분되는 행보를 걷고 있다. 장편 만화 작업에 대한 의지 역시 2011년 이후 상실한 것으로 보여 기존 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2016년 11월 28일 모교인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세미나 수업의 강사로 방문하였다. 방문 당시 단월드 계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으며 그 외에도 단월드 계열 시민단체 등에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벌인 것 등을 강연하였다.

[1] 이후 여동생이 태어나긴 했다. 무려 '''11살 터울'''. 외동으로 지낸 기간이 길어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여동생을 많이 미워하고 질투하기도 했다고 한다.[2] 위 만화에서도 보이듯, 어떠한 뜻이 있어서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기 보다는 결국 주변의 압박에 떠밀려 앞날에 대한 뚜렷한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진학했던 듯 하다.[3] 출처: 『팝툰』 31호(200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