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익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황문익은 1879년 12월 9일 경상도 밀양도호부 부북면 중항(현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중항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단장면 안법리 출신 손경헌의 주도로 조직된 대한협회 밀양군지부에 가입하고 애국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활동하다가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횡포가 심해지자 1913년 4월, 가족들을 거느리고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 봉성현(鳳城縣) 봉황성(鳳凰城)[4] 에 정착하게 되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에서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였으며, 무송현(撫松縣)[5] 에 있는 백산학교(白山學校)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1920년 11월 흥업단 단장 김호로부터 길림성군정서 부속 흥업단 군관 양성자금 20만원을 모금하라는 명령을 받고, 손경헌·이만준(李萬俊)·김인제(金仁濟)·최성기(崔聖基) 등과 함께 권총 5정·실탄 90여발을 휴대하고 국내로 잠입, 경상남·북도 지방에서 동지 규합 및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여 6만엔 정도를 모금하던 중, [6] 1922년 12월 26일경 일본 경찰에 검거, 송치되었다.#
체포된 후 그는 오랜 기간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이듬해인 1923년 봄,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다이쇼 8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 및 강도, 상해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7]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3년 5월 8일 별세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