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청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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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리원청년역과 해주항역을 잇는 철도, 북한에서는 황해도의 다른 철도를 달고 있는 간선 철도로 분류되어 있다. 많이들 오해하는 사실인데 이 노선의 종점은 해주청년역이 아니다.
경의선이 처음에 부설될 때 해주시를 거쳐 돌아가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쪽 방향으로 철도를 부설할 경우 험준한 지형이나 고지대가 있는 지역이 사리원과 해주사이 구간의 일부에 국한되며, 험난한 수준도 낮아서 충분히 채산성이 있었다. 하지만 예성강을 건너는 철교를 짓기 곤란하여 무산되었다. 예성강의 경우 상류보다 하류가 엄청나게 강폭이 넓어지는 경향이 있고, 조석간만의 차가 크며, 갯벌까지 존재하므로 교량을 건설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 그래서 평부선 한포역부근에서 예성강을 건너는 표준궤 철교보다 토해선의 예성강철교가 훨씬 길며, 그나마 수십년 후에 만들어진 물건인데다가 협궤철교다. 당연하게 1900년대 당시의 기술로 표준궤로 교량을 짓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해주는 황해도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철도가 지나가지 않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을 뿐 아니라, 해주의 주변지역이 비옥한 농토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이 빈약한 수상교통이나 육상교통으로만 운반되는 것도, 공업이 발전한 해주시의 공산품과 해주항의 물자가 철도로 수송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철도를 연결하려는 계획이 수립된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철도는 황해도지역의 경의선(평부선)의 연선지역과 떨어져 있는 지역에 협궤철도를 까는 계획을 수립하게 되면서 지금과 약간 다른 노선으로 사리원과 해주를 잇는 철도가 건설되게 된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사리원청년역에서 서쪽으로 분기하는 장연선의 삼강역에서 분기하여 해주에 이르는 철도를 1936년 완공했다. 하지만 협궤에다가 장연선과 공용하는 구간이 있었기 때문에 수송력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표준궤로 1944년 사리원에서 하성까지 은파역을 경유하는 철도가 개통하였다. 해주까지 표준궤로 개궤할 계획이 짜여져 있었지만 일제의 패망과 어수선한 환경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58년에 북한에 의해 개궤되었다. 개궤된 사유는 당연하게도 황해도의 농산물을 평양에 수월하게 공급하고 해주항으로 수출입할 화물을 철도로 이송하기 위해서이다.
백두산청년선처럼 본선보다 더 긴 지선철도인 은률선을 달고 있는 노선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평부선과 만포선을 잇는 여객열차는 해주-만포, 장연-만포로 운영되지 개성-만포로는 운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개성과 만포사이를 평양을 거치는것은 우회이고 사리원에서 개성 사이는 시골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자료로는 사리원-해주 구간이 73.3km인데 북한 조선지리전서에서는 사리원-해주항이 무려 100.3km로 기재되어 있다.
2. 역 목록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어 규정에 따라 적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