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빈 김씨
1410~?[1]
조선의 왕세자빈. 세종대왕의 첫 번째 큰며느리이고, 왕세자 시절 문종의 첫 정실부인이다.
안동 김씨[2] 가문 출신으로, 상호군 김오문의 딸이자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의 조카이다. 세종의 누나인 경정공주의 사위가 휘빈의 오빠 김중엄이였으므로 이런 가문의 배경으로 1427년, 세자 향(후일 문종)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왔다.
야사에 휘빈이 박색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자는 휘빈보다는 효동, 덕금이라는 궁녀들을 더 좋아하였다. 휘빈은 남자에게 사랑받는 술법을 시녀 호초(胡椒)에게 물었다. 호초는 세자의 수발을 드는 궁녀의 신발 앞코를 잘라 그것을 태워 재로 만든 다음 세자의 술에 넣어 마시게 하면 세자가 궁녀들을 잊고 세자빈만 찾게 될 것이라는 내용과, 암수 뱀이 교미할 때 나오는 기운을 손수건에 묻혀서 가지고 있으면 세자를 혹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이상한 술법을 행했다는 흔적이 나오자 소헌왕후가 세자빈의 시녀 이호초를 국문해 세자빈이 술법을 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소헌왕후가 이를 세자빈에게 추궁하자 김씨는 이를 순순히 인정하였고, 중전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세종대왕은 격노하여 시녀 호초를 참수하고[3] 휘빈 김씨를 폐서인하여 궁에서 내쫓았다.'남자가 좋아하는 부인의 신을 베어다가 불태워서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술에 타서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내가 사랑을 받게 되고 저쪽 여자는 멀어져서 배척을 받는다' 하오니, '효동, 덕금 두 시녀의 신을 가지고 시험해 보는것이 좋겠습니다.' 했다. 효동과 덕금 두 여인은 김씨가 시기하는 자이다. 김씨는 즉시 그 두 여인의 신을 자기 손으로 베어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이나 하여 그 술법을 써보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틈을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호초가 또 말하기를, '그 뒤에 주빈께서 다시 묻기를, 그 밖에 또 무슨 술법이 있느냐' 고 하기에 제가 또 가르쳐 말하기를, '두 뱀이 교접할때 흘린 정기를 수건으로 닦아서 차고 있으면, 반드시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세종실록>> 11년 7월 20일
성종 때 폐비 윤씨를 폐하려하자 임사홍이 반대하였는데, 이때 근거 중 하나가 "세종대왕께서도 휘빈을 쫓아내고 나중에 후회하셨습니다."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세종은 성급히 휘빈을 쫓아낸 걸 후회했다. 두 번째 세자빈인 순빈 봉씨가 궁녀와 동침하는 황당한 사건을 일으켰기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