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점
黑點 / sunspot
2020년 기준 최신의 초고해상도 관측 사진 및 움짤
자기장으로 인해 대류가 방해받아 평균적인 태양 표면의 온도보다 낮아지면서 검게 보이는 부분이다. 평균적인 태양의 표면 온도는 약 5800K(켈빈) 정도이지만, 흑점의 온도는 4000~5000K 사이이다. 태양 흑점의 변화에는 11년의 소주기와 80년의 대주기가 존재한다. 지구의 기온이 이 태양 흑점 변화 주기를 따라가는데, 흑점의 갯수가 많아짐은 태양의 활동이 활발해짐을 의미한다. 흑점의 크기는 제각기 다른데, 거대 흑점은 지구보다 10배 이상 클 때도 있다.
실제 태양은 너무나 밝기 때문에 흔히 보이는 붉은 구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지구에서도 정면으로 바라보면 실명할 정도로 강렬한 빛의 덩어리를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태양의 붉은 구 같은 이미지는 실제로는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엄청나게 낮춰서 찍은 것이다. 때문에 흑점도 말이 검은 점이지 실제론 어디까지나 다른 부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어두울 뿐이다. 인간의 시각에서 본다면 실제로는 흑점도 어마어마하게 밝다. 흑점만 툭 떼다가 보면 대략 보름달 밝기의 10배 정도 된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린지 잘 이해가 안 간다면 역광사진을 찍어보자. 찬란한 태양 아래 당신이 찍으려던 피사체는 검게 변하게 될 것이다.
왠지 흑점이 많아지면 지구 상에 역병이 돌거나 기상이변, 지각변동 따위의 대재해가 일어난다는 미신이 있다. 픽션에서도 흑점을 기준으로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옛 중국에서는 별 중에서도 특히 태양을 숭배하여 흑점에 대한 관찰과 점에 대한 기록이 꽤 많이 남아있다.
실제론, 이것이 많을 때는 태양의 활동이 활발함을 뜻한다. 플레어나 홍염(프로미넌스) 등이 많이 관측되는 시기이기도 한데, 문제는 이때 태양풍도 강해진다는 것. 덕분에 인공위성 등은 몸을 사려야 하며, 대기가 교란되어 일부 통신기기가 오작동할 위험이 있다.
흑점을 발견한 게 누군가? 말이 많지만 ...실상은 2천여 년 전 중국에서 이미 발견했다. 서양에선 독일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프 샤이너(Christoph Scheiner, 1575 ~ 1650)가 케플러식 망원경을 제작하여 1611년 태양 표면의 흑점을 발견했는데, 그 전 해인 1610년 갈릴레오와 요한네스 파브리치우스(Johannes Fabricius,1564~1617)가 이미 흑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부등호 항목에도 나오는 영국 수학자 겸 천문학자인 토머스 해리엇도 1610년쯤에 흑점을 발견했다고 하며 유럽 각지에서 서로가 발견자라고 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중국 후한 성제 때의 ‘오행지’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28년 3월에 태양 가운데서 동전 모양의 검은 기운을 보았다고 적고 있다. 그 후 10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흑점 기록은 약 70회 정도 나타난다. 게다가 유럽에서보다 훨씬 먼저 흑점에 대한 발견 및 연구 기록은 고려나 조선을 비롯하여 아시아 각나라에 흔하게 나온다. 고려 초인 1151년(의종 5년) 3월 태양에서 계란만한 흑점이 보였다는 분명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이래 조선시대까지 흑점에 대한 기록이 꾸준히 보인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는 태양에 까마귀가 산다고 한 기록이 많이 보이는데, 그런 믿음도 흑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후한의 왕충이 지은 ‘논형’을 보면 “태양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살고 있다”고 되어 있으며, ‘회남자’라는 책에도 “태양에 사는 까마귀가 가끔 땅에 내려와 불로초를 뜯어 먹는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즉 삼족오도 흑점에서 유래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1402년(태종 2년) 10월 20일 태종실록을 보면 “해의 가운데에 흑점이 있었다. 태양 독초를 소격전에서 행하여 빌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독초(獨醮)란 조선 초기 행해졌던 초제의 일종인데, 초제는 왕실의 안녕과 천재지변 등을 물리치기 위한 제사를 말한다. 즉, 태종은 태양에 흑점이 나타난 것을 보고 곧바로 제사를 지낸 것이다.
세종 때 천문학자로서 지동설을 주장하던 이순지(1406~1465)가 쓴 ‘천문유초’에서도 흑점이 나와있다. 이 책자에선 “흑점은 신하가 임금의 총기를 가릴 때 일어나는 것”이라 설명해 놓았으며 1520년(중종 15년) 3월 11일, 전라도 곡성에서 태양 가운데 흑점이 나타나고, 별과 달이 아래위에서 서로 싸우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지진이 일어났다는 등의 여러 가지 천재지변 현상이 보고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당시, 흑점 측정기록이 지방에서 이뤄지고 한양 천문부에서는 발견하지 못해 중종에게 천문을 담당하던 일관들이 호되게 꾸지람을 듣었다고 한다. 일관들은 부랴부랴 목성과 달이 궤도를 같이 했기 때문에 한양에서 볼 수 없었사옵니다라고 변명했지만 중종은 “지진은 지역마다 모두 다르게 일어나겠지만 해의 변이나 달ㆍ별의 관측이 중앙과 지방이 어찌 다를 수 있는고?”라고 일관들을 꾸짖었다.
숙종 때 관상감 천문학 교수였던 최천벽(1640~1713)이 쓴 ‘천동상위고’에는 “신하가 임금의 악을 드러낸 때 흑점이 생긴다”고 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아랍 천문학자들도 진작에 흑점을 알고 있었다. 알 이븐 마르완 무하위드(813~901)는 877년 태양에 검은 점이 생기니 알라의 뜻이 기분이 좋지 않을 듯하다며 이 시절에도 흑점이 생기면 좋은 일이 없다라는 속설이 아랍에서도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무하위드의 기록에 의하면 검은 점은 10년 이상 커졌다 줄었다고 하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 늘어난다라고 적혀있다.
이처럼 흑점에 대한 기록이 오래전부터 나와있기에 현대에서는 갈릴레이와 파브레치우스가 유럽에서 처음 발견했다라고 유럽이나 서구권도 기록한다. 흑점에 대하여 연구하자면 이미 1500년도 더 된 중국에서까지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20세기 초만 해도 서구가 세계 중심이라고 주장하던 서구 천문학계도 이젠 그런 주장은 하지 않는다.
11년 주기로 인해서 2008년~2009년에 극소기를 겪었고, 2013년~2014년에 극대기를 겪었다. 그리고 다시 흑점이 줄어 2019년~2020년에는 다시 흑점 극소기에 들어갔다.
여담으로 흑점 극소기때 춥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흑점 극소기에 이상 기후가 심해도 별로 춥지는 않고 오히려 이상 고온이 찾아올 때가 있다. 다만 그로부터 약 1~2년 뒤에는 추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2008~2009년에는 별로 안 추웠지만 2009년 11월 중반부터 2010년까지, 그리고 2011년 1월, 3~4월에는 대체로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