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성황후 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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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欽成皇后 朱氏
1052년 ~ 1102년
흠성황후 주씨는 중국 북송시대의 황후로 신종의 황후이자 철종의 모후이다. 흠성황후, 주황후로 불린다.
2. 황후 책봉과 황태비 생활
1052년에 개봉에서 최걸의 딸로 태어났으나, 최걸이 죽고 가세가 기울어 모친인 이씨가 주사안에게 시집을 가면서 주사안의 성을 따라 주씨가 되었다. 신종 희령 연간[1] 에 시녀로 입궁하여, 훗날 재인, 첩여를 거쳐 철종과 채왕 조사, 서국공주 등 2남 1녀를 낳고 덕비로 작위가 올라갔다.
신종 사후, 주덕비 소생인 철종이 즉위하면서 황태비가 되었고, 원우 3년(1088년)에 성서궁에 거처하였다.
3. 철종 사후
1099년에 철종과 소회황후 유씨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인 헌민태자가 죽고, 이듬해에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후계자 논의는 자연스레 철종이 사망한 1100년 기준으로 생존한 신종의 아들들[2] 중에서 선정해야 했다. 당시 재상이었던 장돈은 심한 눈병을 앓고 있던 신왕 조필을 건너뛰고, 철종과 같은 주덕비의 소생인 간왕 조사를 후사로 삼을 것을 주장했으나, 철종의 생모인 덕비 주씨와 사이가 안 좋았던 흠성헌숙황후 상씨는 단왕 조길을 철종의 후사로 세울 것을 주장했다.[3] 장돈은 단왕 조길을 즉위시키자는 태후의 주장에 "그분은 행동거지가 경박하여 황제가 되는 건 불가합니다"라고 반대했지만, 흠성헌숙황후의 의견이 관철되고 이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결국 단왕 조길이 황제로 즉위하게 되니, 이가 바로 제8대 황제인 휘종이었다.
주 태비는 휘종이 즉위하고 2년 후인 숭녕 2년(1102년)에 사망하여, 황후로 추존되고 시호를 흠성(欽成)이라고 하였으며, 신종의 무덤인 영유릉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