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1년 양양 대지진

 

1681년 양양 근해 지진
<colbgcolor=#bc002d> 발생일시
(UTC+9)

'''1차'''
1681년 6월 12일 신시(오후 3~5시경)
'''2차'''
1681년 6월 26일
최대진도
(추정)

'''1차'''
VIII
'''2차'''
VIII~IX (KMA)
규모
(추정)

'''1차'''
'''M 6.5±0.5''' (KMA 지진연구소)
'''2차'''
'''M 7.5''' (KMA, NGDC)
'''M 7.5'''(가사하라 준조 도쿄대 명예교수)
최대 진도
(일본 기준으로 환산, 추정치)

'''1차'''
'''진도 6강'''(메르칼리 진도 최대 추정치 값 환산)
'''2차'''
'''진도 7'''(메르칼리 진도 최대 추정치 값 환산)
피해상황
(추정)

총계
불명
쓰나미 여부
'''있음'''
1. 개요
2. 1차 지진
3. 2차 지진
4. 이전, 이후의 타임라인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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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681년 양양 근해 대지진은 1681년(숙종 7년) 6월 12일과 6월 26일 두 차례에 걸쳐서 발생한 규모 M6~7급의 대지진이다. 특히 1681년 6월 26일 발생한 지진은 '''한반도 사상 최대규모의 지진'''이다.[1]

2. 1차 지진


1차 지진은 1681년 6월 12일 발생했으며, 한국기상청 및 산하 지진연구소는 추정진도를 VIII, 추정규모를 '''M 6.5±0.5'''로 본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간방(艮方, 북동쪽)으로부터 곤방(坤方, 남서쪽)까지 지진이 있었는데, 집이 몹시 흔들리고 창(窓)과 벽(壁)이 흔들렸으며, 길을 가던 사람 중에는 말이 놀라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다.《朝鮮王朝實錄》

경기감사 서목의 내용이다. 광주 등 34개 읍에서 올리기를, “지난 4월 26일(己酉) 신시(오후 3시-5시)에 지진이 있었다”고 하였다.《承政院日記》

공청감사 서목의 내용이다. 지난 4월 26일(己酉) 두루 도내에 지진이 있었는데, 건물이 흔들렸으며, 창문이 모두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두려워 물러났으며, 초목이 흔들렸다. 5월 초 2일에 홍주 등 16개 읍에서 또 지진이 있었다. 26일과 마찬가지로 동요하였다. 변이에 관계된 일이다.《承政院日記》

강원감사 서목의 내용이다. 4월 26일(己酉) 신시(오후 3시-5시)에 측정하였다. 지진이 있었으며, 오래되어서야 그쳤다. 식경(식사를 할 만한 시간)에 또 지진이 있었다가 곧 그쳤다. 또 5월 초 2일 인시(오전 3시-5시)에 지진이 있었는데, 더욱 심하였다. 신시(오후 3시-5시)와 해시에 또 지진이 있었다. 하루 안에 3회에 이르렀다. 담벽이무너졌으며 건물의 기와가 날라 떨어졌다. 전후 지진은 변이 비상한 일이다. 《承政院日記》


3. 2차 지진


2차 지진은 1681년 6월 26일 발생했으며, 1차 지진으로부터 불과 2주일 후에 다시 발생했다. 한국기상청 및 미국 NGDC에서는 추정진도를 VIII~IX, 추정규모를 '''M 7.5'''로 본다. 한국기상기록집(역사지진목록)에 따르면, 양양과 강릉, 삼척 지역에 걸쳐 VIII~IX의 진도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반도 거의 전역에서 지진동이 감지되었다고 한다.
실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가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 및 계조굴의 거암이 모두 붕괴[崩頹]되었다. 삼척부 서쪽 두타산 층암은 옛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모두 붕괴되었다. 그리고 (삼척)부의 동쪽 능파대 수중의 10여 장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 혹은 5, 60보 노출되었다. 평창 · 정선에도 또한 산악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 이후 강릉 · 양양 · 삼척 · 울진 · 평해 · 정선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地動)하였는데, 이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숙종실록 11권, 숙종 7년(강희 20년) 5월 11일 계해 1번째 기사


4. 이전, 이후의 타임라인


발생일자
추정최대진도
추정규모
발생지
사상자
비고
출처
1643. 7. 24.
'''VIII~X'''
'''M6.5~7.4'''
울산광역시 인근 해안
불명
쓰나미 발생
조선왕조실록
한국기상기록집
NOAA
1668. 7. 25.
'''XII'''
'''M8.5'''
중국 산둥성
사망자 42,758명
'''진도 XII'''
NOAA
1668. 7. 31.
'''VI'''
'''M6.4'''
황해
불명

김소구 교수 논문[A]
1681. 6. 12.
'''VIII'''
'''M6.5'''
강원도 양양군 인근 해안
불명

한국기상기록집
KMA 지진연구소 논문[B]
1681. 6. 26.
'''VIII~IX'''
'''M7.5'''
강원도 양양군 인근 해안
불명
쓰나미 발생
KMA, NGDC
1703. 12. 31.
'''7'''
'''M8.2'''
일본 보소 반도 남서쪽 바다
사망자 5,233명
쓰나미 발생
최대높이 10.50m
NOAA
1707. 10. 28.
'''7'''
'''M8.6~9.3'''
일본 난카이 해역
사망자 5,000여 명
쓰나미 발생
최대높이 '''25.70m'''
NOAA
※1668년 4월과 1702년에는 백두산이 분화하였고, 1707년 호에이 대지진 이후에는 후지산이 폭발하였다.

5. 여담


한국어 위키백과에도 이 문서와 비슷한 문서가 올라왔으나 우회 IP를 사용하여 다중 계정에 심지어는 무려 기계 번역까지 이어지면서 그렇게 이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편집하였으나, 이후 삭제되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1] 참고로 두 번째로 강한 지진은 1643년 울산 대지진(M 6.5~7.0)이다.[A] 김소구, 1982년, '한반도와 그 인접지역의 지진'[B] 2002년, '1681년 6월 12일, 17일, 그리고 26일 양양-삼척 근해에서 발생한 지진기록의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