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

 


1. 신라 자장이 설립한 사찰
1.1. 개요
1.2. 역사
1.3. 소장 문화재
1.3.1. 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
1.3.2.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1.3.3. 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1.3.4.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1.3.5. 기타 건축물
1.3.6. 성보박물관 소장 문화재
1.4. 기타
2. 고려 태조가 설립한 사찰
2.1. 개요
2.2. 공신당
2.2.1. 삼한공신
3. 기타

한자 : 神興寺 / 로마자 : Sinheungsa
홈페이지

1. 신라 자장이 설립한 사찰



1.1. 개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에 있는 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1.2. 역사


653년(신라 진덕여왕 7) 자장(慈藏)이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9층사리탑을 세워 향성사(香城寺)라고 불렀다. 701년(효소왕 10) 수천 칸의 대사찰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고 앞뜰의 9층석탑도 화재로 파손되어 3층탑만 남았다. 그 후 의상(義湘)이 이곳 부속암자인 능인암(能仁庵) 터에 다시 절을 짓고 선정사(禪定寺)라고 하였다. 선정사는 이후 약 1000년간 번창했는데, 조선 중기 1644년(인조 22)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다시 절이 세워졌으며,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라 부르게 되었다. 불상은 선정사 때 봉안된 것으로 의상이 직접 조성한 3불상의 하나이다. 당시 지은 대웅전, 명부전, 보제루, 칠성각 등의 건물이 현존한다.
6.25 전쟁 때 신흥사에 소장되어 있던 경판(목판)이 국군에 의해 땔감으로 소각된(...) 흑역사가 있다. 1951년 신흥사에 육군 1군사령부 임시연대본부가 차려지고 연대수색중대 병사들이 미리 와 있었는데, 추위에 모닥불을 피운다고 보제루에 보관중이던 경판 등을 가져다 땔감으로 썼다고... 이 어처구니 없는 꼴을 뒤늦게 발견하고 부연대장에게 알려 소각을 막은 것이 당시 1군사령부 예하 11사단 9연대 소속 중위였던 리영희 선생.리영희 선생 기고(법보신문)불교신문 기사 당시 소각된 경판들은 조선 중기에 제작된 것인데, 한자, 한글,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쓰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신흥사가 유일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기에, 온전히 보존되지 못했음이 애석할 따름. 그나마 277판이라도 남은 것이 다행.

1.3. 소장 문화재



1.3.1. 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


향성사는 신흥사의 전신이 되는 절로, 현재는 통일신라기 삼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향성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제443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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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성사지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형태가 다소 형식적이라 무겁게 느껴지기는 하나 동해안에서는 최북단에 위치한 신라시대 탑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9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6년에는 해체보수공사가 있었으며, 사리공에서는 달리 발견된 것이 없다.[1]

1.3.2.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조선 중기 만들어진 삼존불상이다. 보물 제172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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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발원문에 따르면 1651년에 무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작연대가 확실하기 때문에 타 불상에 대한 연구에 기준이 된다.

1.3.3. 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조선 중기 제작된 지장삼존상이다. 보물 제174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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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함께 1651년 제작되었음이 복장에서 발견된 축원문을 통해 확인된다. 역시 무염의 작품이다. 시왕상들과 권속상들 없이 지장보살삼존만이 남아 있다.

1.3.4.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조선 중기 건립된 신흥사의 중심법당이다. 보물 제198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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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천왕문 - 보제루(普濟樓)로 이어지는 가람배치의 중심축상에 위치한다. 창살에는 다양한 꽃이 새겨져 있다. 기단에는 삼태극, 용두 등 특이한 조각들이 여럿 새겨져 있다. 총 4차례의 중수기록이 남아 있어 건물의 연혁을 잘 확인할 수 있다.

1.3.5. 기타 건축물


  • 보제루 - 도유형문화재 제106호
  • 명부전 - 도유형문화재 제166호
  • 신흥사 - 문화재자료 제7호[2]

1.3.6. 성보박물관 소장 문화재


  • 신흥사경판 - 도유형문화재 제15호
  • 금고(金鼓)[3] - 도유형문화재 제163호
  • 동종 - 도유형문화재 제164호

1.4. 기타


  • 최근 가장 논란이 되는 국립공원의 문화재 관람료 문제로 가장 많이 욕을 먹는 절이다. 다만 설악산의 상당수를 신흥사에서 가지고 있다보니 어쩔 수 없는 감이 없지 않다.
  •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항상 붐비는 절이다. 재수 없으면 1시간 가까이 길에 갇혀 있어야 할 수도 있다.

2. 고려 태조가 설립한 사찰




2.1. 개요


新興寺
만월대 황성 부근에 있던 사찰이다. 또한 신흥사는 고려 태조가 재위 2년, 개경에 지은 10개의 사찰 중 하나이다.

2.2. 공신당


10대 사찰 중 신흥사는 태조 23년에 추가로 중축해 공신당(功臣堂)을 설치한다. 이 공신당의 동서쪽 벽엔 태조가 봉한 '''삼한공신(三韓功臣)'''의 초상화가 걸렸으며 이들을 위한 불교 기도식이 열렸다. 삼한공신을 삼한벽상(壁上)공신이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벽 위에 초상화가 걸려 있기 때문.
고려의 신하는 이 곳에 초상화가 걸리는 것이 최고의 명예로 여겨졌고 개국공신 이외에도 강감찬, 양규 등 위대한 업적을 세운 신하들도 신흥사 공신당에 삼한벽상공신으로서 초상화가 걸렸으며 이자겸, 척준경, 정중부, 이의방, 이고, 두경승, 최충헌 등 권신들도 이 곳에 자신의 초상화를 걸었었다.

2.2.1. 삼한공신


태조 대 신흥사 공신당에 초상화가 올려진 개국공신들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불렸다. 현종여요전쟁 이후 추가로 올려진 공신들은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으로 불렸다. 그리하여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공신호는 개국공신 뿐만 아니라 신흥사 공신당에 올라간 모든 공신들을 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삼한공신은 삼한벽상공신의 줄임말로 보인다. 삼한벽상공신은 벽상삼한공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즉 삼한공신, 삼한벽상공신, 벽상삼한공신은 다 같은 의미로 보이며 위 단락에 서술했듯이 삼한공신은 작은 의미로 개국공신만을 칭하거나 포괄적인 의미로 삼한후벽상공신까지 포함해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가끔 묘지명을 비롯한 고려시대 금석문에는 '태조성조공신(太祖聖朝公臣)' 공신호가 등장하는데 이는 '신성한 태조의 공신'이란 뜻으로 삼한공신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3. 기타


  • 태조가 서경에 설립한 중흥사와는 정반대의 뜻을 가졌다. 중흥사는 '다시 부흥하다'란 뜻인데 신흥사는 '새롭게 부흥하다'란 뜻이다.

[1] 대개의 석탑들은 사리장치가 도굴된 경우가 많다.[2] 신흥사 자체가 문화재자료로 별도로 지정되어 있다.[3] 쇠(金)로 된 북(鼓)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