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1. 개요와 배경
1912년에 치뤄진 미국의 제 28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
집권 여당인 공화당의 내부분열로 표가 분산되어 민주당 후보인 우드로 윌슨이 8개주를 제외한 전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며 16년만에 정권교체가 되었다. 이전 선거까지 본토 내 준주였던 애리조나와 뉴멕시코가 1912년 주로 승격 되면서 미국 본토 지역 모든 주에서 선거인단을 배출 할 수 있게 되었다.
2. 후보
2.1. 민주당
무려 46회 까지 가는 경선 끝에 우드로 윌슨 뉴저지 주지사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 되었다. 부통령 후보 경선은 2차만에 토머스 R. 마셜 인디애나 주지사로 확정 되었다.
2.2. 공화당
윌리엄 태프트 현 대통령과 그의 보수 정책에 반발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포함한 5명의 후보가 경선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당시 주류였던 보수파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하여 최종 후보로 태프트 현 대통령이 결정 되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 세력인 진보파는 이에 반발하여 공화당을 탈당하였다.
부통령 후보는 제임스 S. 셔먼 현 부통령이 경선에 지명 되었으나 얼마안가 지병으로 사망하여 니콜라스 머레이 버틀러 후보가 최종 부통령 후보로 확정 되었다.
2.3. 진보당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포함한 공화당 내 진보파들은 공선과정에 문제로 공화당을 탈당하여 진보당을 창당. 대통령 후보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부통령 후보에는 히람 존슨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명하였다.
2.4. 기타 정당
- 금지당 : 대통령 후보에 유진 샤핀, 부통령 후보에 에이런 왓킨스을 지명하였다.
- 사회노동당 : 대통령 후보에 아서 라이머, 부통령 후보에 어거스트 길하우스를 지명하였다.
3. 결과
우드로 윌슨이 41.8%의 득표율에 비해 선거인단을 435명 확보하여 당선되었다. 이는 전체 선거인단의 약 82% 비중으로 득표율 대비 2배이다. 범 공화당 계열 후보인 루스벨트와 태프트의 득표율을 합치면 50%를 넘었으나 표가 서로갈린 탓에 각각 6개 주(선거인단 88명), 2개주(선거인단 8명)으로 그치며 민주당이 어부지리를 거두었다.
4. 여담
- 공화당의 분열은 1860년의 선거의 민주당의 사례와 유사하다. 당시 민주당은 노예제 문제를 두고 당이 북부와 남부로 갈라지는 바람에 공화당에게 정권을 내줘야만 했었다.
- 태프트는 이번 선거에서 선거인단 확보가 단 8명에 그쳐 1936년 같은당의 알프 랜던 후보와 같이 공화당 역사상 최저 선거인단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