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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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67
2020년, 25위[1]
언론자유지수
23.85
2020년, 45위[2]
민주주의지수
7.96
2019년, 25위

1. 개요
2. 삼권분립
3. 의회
4. 행정부
4.1. 대통령
4.2. 국가행정조직
5. 사법부
6. 선거
7. 정당
7.1. 특성
7.2. 미국 정당제의 역사
8. 정경유착
9. 관련 문서


1. 개요


본 문서는 미국의 정치와 관련하여 서술한다. 미국은 대통령제를 정치 체제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2. 삼권분립


미국은 삼권분립(Separation of Power)이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는 국가이다. 삼권분립은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에 의거해서 이루어지며 최대한 한 곳에 지나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예를 들어 입법부(legislative branch)는 대통령과 사법부의 대법관들을 탄핵할수 있고, 법을 통과시키거나 개정할 수 있지만, 사법부(judicial branch)는 법이 헌법에 어긋나거나 준수하지 않을 때 해당 법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행정부(executive branch)는 거부권(Veto)을 행사하여 해당 법을 미 의회에 돌려 보내고, 입법부는 2/3 찬성표를 따내야만 해당 법을 대통령 서명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삼권분립 안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중에 비교적 우위를 점하는 곳이 있다. 미국 건국 초반에는 입법부가 상대적 우위를 점했다. 이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에 입법권한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이 필요한 정책에 한해서 의회 내에서 대신 상정 해줄 의원(Bill Sponsor)을 상·하원에서 찾는다. 이러한 일을 대신 해주는 의원에게 행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것을 그 답례로 준다. 그래서 대통령이 의원들과 많은 소통을 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건국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는 보통 의회중심의 정치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미국은 적법한 대리자 부재로 영국으로부터 피해를 받아 건국되었기 때문에 의회의 중요성, 대리성의 중요성이 상당히 대두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외교적 개입주의를 선택하게 되면서 미국 의회는 행정부(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상승시켰고, 결과적으로 행정부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또 냉전 때 여러 전쟁에 개입해야 할 때, 의회의결을 기다리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급했고, 따라서 미국 의회는 일렬의 법안을 통과시켜 행정부(대통령)가 위급 시에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단, 일정 기간을 넘거나 전쟁 선포와 같이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권한을 행사할 시에는 무조건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부정적 결과로 인해 의회는 의회 승인 없이 대통령이 치를 수 있는 전투일을 제한했고, 부시 대통령도 이라크와의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서 의회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3]
사법부도 사법적극주의를 채택해 법적 해석에 근거한 판결이 상당한 영향력을 줄 수 있으며[4], 연방대법원 판사는 종신직으로 의회와 행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일정하게 자유로울 수 있다.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에서 나름의 힘을 가지고 이 둘을 견제하며 힘의 균형을 맞추게 된 것은 4대 연방 대법원장존 마셜의 공이 상당히 컸다.

3. 의회



미국 의회(United States Congress)는 주별로 2석인 상원(Senate)과 인구비례에 따른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이 있다. 속령과 워싱턴 D.C.는 하원에 발의권과 법안심사권은 있고 본회의 표결권이 없는 대표 1인을 파견한다.
미국 연방의회는 양원제로 하원은 인구비례로 각 주별로 의석수가 정해지며 상원은 인구비례와 무관하게 각 주별로 의석이 2석씩 주어진다. 이렇게 상하원 의석배정이 된 이유는 건국 초 큰 주와 작은 주의 대립에서 시작된다. 인구수가 많은 주의 대표격인 버지니아 주는 인구수 비례를 주장하는 버지니아 플랜을 원했고 작은 주를 대표하는 뉴저지는 각 주 1표라는 평등을 원했다. 이 두개의 주장은 대타협이라고 불리는 코네티컷 타협을 통해 현재의 의회 모습을 갖추게 된다.
주의회는 네브래스카를 빼고 양원제이며, 그보다 낮은 단계의 지역의 의회는 단원제이다.

3.1. 상원


각 주당 2명씩 합계 100명으로 구성되어 있며, 임기는 6년으로 전체의 1/3이 2년마다 교체된다. 문서 참조.

3.2. 하원


투표권이 있는 435명과 투표권이 없는[5] 6명, 합계 44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서 참조.

4. 행정부



4.1. 대통령





4.2. 국가행정조직





5. 사법부




6. 선거


미국은 11월 첫 월요일의 다음 화요일에 선거를 치른다. 대통령/부통령 선거인단 선출, 상/하원의원, 주지사 선거 등을 한다.
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이며, 소선거구제를 통해 선출된다.
상원이 약간 복잡하다. 상원의 임기는 6년인데, 전체의 1/3이 2년마다 교체된다. 처음 미국이 건국될 때 헌법에 초대 상원의원들의 임기를 전체의 1/3은 2년(class I), 1/3은 4년(class II), 1/3은 6년(class III)으로 정했고, 결국 처음 당선된 상원의원들이 모인 첫 회의 때 제비뽑기로 자신들의 임기를 정해 출발했다. 이후 새로운 주가 편입될 때도 이 1/3의 원칙이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 class 중 인원이 적은 두 class를 배정하는 방법을 택하였으며, 여러 주가 동시에 가입할 경우 어떤 주가 어느 class들을 가져갈지를 동전 던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매번 선거때마다 1/3씩 교체가 가능하다. 각 주에 속한 2명의 상원의원은 임기가 다르며, 결원이 발생하지 않는 한 두 명이 동시에 교체되는 일은 없다. 주에 따라서 결원이 생긴 경우 다음 선거일까지 2년 이내의 상원의원을 주지사가 지명하고, 다음 선거일에는 임기 6년의 상원의원을 새로 뽑기도 하는 등 주마다 선거 방식이 조금 다르다. 아울러 본래 상원의원은 주 의회에서 선출했지만 1914년 헌법을 수정해 주민 직선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임기의 중간에 치뤄지는 상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중간선거(Midterm elections)라 한다.
미국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치고는 투표율이 낮게 나오는 편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이 50% 언저리를 맴돌고[6], 중간선거는 더 낮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정치적 무관심이나 정치혐오 말고도 여러가지 원인들이 거론된다.
  • 미국은 연방정부 선거와 주 선거를 막론하고 주가 선거 절차를 결정하는데, 노스다코타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투표를 하려면 선거 전에 직접 관청에 찾아가거나 온라인으로 유권자 등록(Voter registration)[7]을 해야 한다. 유권자 등록이 안 되어 있으면 선거를 할 수 없다. 유권자 등록은 미국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고 홍콩, 영국, 호주 등 꽤 많은 나라에 있지만, 유권자 등록을 언제나 받는 영국, 호주 등과 달리 미국은 선거 2~4주[8] 전에만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고, 이걸 매 선거마다 해야 투표할 수 있다. 이것이 투표에 대한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유권자 중에서 유권자 등록을 신청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 미국의 등록된 유권자 중 투표율은 80% 후반에 이르러 결코 낮지 않다. 관련 기사
  • 유권자 등록이나 투표 현장(일부 주 한정)에서 신분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과 같은 전국민에게 의무화된 국가 공인 신분증(주민등록증 등)이 없어서 개인이 알아서 국가 공인 신분증(운전면허증 등)을 발급받아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신분증 발급에 드는 기회비용이 크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75달러에서 175달러 사이를 기회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고. 출처 다만 신분증이 투표율을 낮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미국은 땅덩이가 워낙 넓은 탓에 동부와 서부 사이에 시차가 존재하고, 따라서 지역마다 사용하는 시간대에 따라 투표시간이 약간 차이가 난다[9] 바꿔 말하면, 뉴욕 주에서 투표가 마감되고 개표를 진행하고 있을 때, 캘리포니아하와이는 아직 투표 진행 중이라는 소리. 물론 개표방송은 인디애나켄터키[10]가 투표를 마감하는 동부시각 오후 6시부터 시작한다. 이 탓에 동부 지역의 선거결과가 서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제 그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서부 주들의 상당수는 정치성향이 이미 고정되어 있기 때문. 예를 들자면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주, 하와이는 무조건 민주당이고, 알래스카, 유타, 와이오밍, 아이다호는 무조건 공화당인 식이다. 서부 지역에서 그나마 동부 결과에 영향을 유의미하게 받을 만한 경합주는 애리조나[11]네바다, 아이오와[12] 정도. 사실 선거의 향배를 가르는 경합주들의 절대다수는 동부, 남부[13] 및 중서부에 몰려 있어서 동부와의 시차가 끽해봐야 1시간[14]이다.

7. 정당





7.1. 특성


미국은 사실상의 양당제 체제이다. 주요 정당은 공화당민주당이며 그 외 군소 정당들로는 자유의지당, 녹색당, 헌법당이 있다. 미국은 유난히 제3당이 힘을 못 쓰는데, 물론 선거제도의 영향도 있겠지만 비슷한 선거제도를 채택한 캐나다나 영국과 비교해 봐도 유난히 제3당의 입지가 듣보잡에 가깝다.[15] 어쩌다 의석이나 주지사를 내는 정당은 전국에 조직을 갖추지 못한 지역 정치인 1인에 기반을 둔 주 내의 군소정당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주지사나 자치단체장, 국회의석, 지방의석 등이 아닌 당원의 규모나 전국 지지도로 제3당의 서열을 매긴다.
과거에 제3당이나 제3후보가 영향력을 발휘한 경우가 있었기는 했는데 공화당[16] 인민당이나 진보당이 대표적인 예이고, 심지어 사회주의 정당도 의석을 확보한 예도 있었다. 다만 사회주의 정당이 상하원에서 의석을 확보한 건 1948년 선거가 마지막이다. 이후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시민단체 비슷무리한 수준. 그 이후에는 남부 지역 민주당원이 탈당하거나 반항해서 따로 정당을 차리거나 후보를 낸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은 결국 공화당으로 흡수된다. 제3후보로서는 로스 페로가 끝물이다.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드문 케이스. 현재 당선된 정치인들 중 무소속인 이들은 버니 샌더스 버몬트 주 상원의원, 앵거스 킹 메인 주 상원의원 이 둘뿐이다. 공식적으로는 무소속이지만 버니 샌더스와 앵거스 킹은 민주당 상원 교섭단체 소속이다. 위원회 배정 때문에 무소속이더라도 어느 쪽과 뜻을 같이할 건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타국과는 다르게 정당의 선호보다는 인물 변수가 강력하게 선거에서의 정당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잦다. 전국단위선거(대선의 경우) 주의 정치적 지지성향이 대체로 벗어남이 없이 red states, blue states, purple states[17]로 나뉘는데 반해 gubernatorial election(주지사, 각 지자체 행정관 선거)는 레드 스테이트인 경우에도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선두해서 이기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북동부의 뉴잉글랜드지역에서도 공화당이 주지사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경우가 있다.[18] 총선거는 구도와 정당 지지율, 심판론이 다소 더 영향이 크지만 한국과는 달리 압도적인 의원 현역 프리미엄과 조직 다지기, 프라이머리 등의 다른 정치 풍토가 있기에 다른 결과들을 보여준다.

7.2. 미국 정당제의 역사



미 건국 초기에는 정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정당 제도가 "국가를 분열시킨다"고 생각했던 건국 지도자들의 뜻과,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았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정당을 갖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이 퇴임하자마자, 연방의 권력을 늘려 강대한 국가를 이루고 싶어했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각 주들에게 최종권력을 주지 않으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말소될 것을 우려한 토머스 제퍼슨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결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해밀턴의 추종자들이 만든 연방당, 그리고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자신의 민주공화당에서 승리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적 정당의 체제가 정립되기 이전이라, 두 당 모두 실질적인 권력은 별로 없었고, 유권자들도 대체적으로 당보다는 후보의 자질을 보는 편이었다.
연방당은 해밀턴의 사망과 함께 사실상 소멸되었고 제퍼슨과 매디슨 그리고 먼로까지 대통령으로 배출한 민주공화당은 존 퀸시 애덤스가 당선된 1824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분열 조짐을 보였다. 민주공화당 주류에 공공연히 반대해온 앤드루 잭슨은 지지세력을 이끌고 탈당하여 민주당을 세웠다. 앤드루 잭슨의 민주당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현존 최고(最古)의 정당이 되었다. 존 퀸시 애덤스와 헨리 클레이의 국가공화당은 이합집산을 통해 휘그당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다. 휘그당은 이따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승리한 대통령이 죄다 병으로 급서하는 안습함을 보이며 점차 몰락의 기미를 보였으며, 노예제와 남북으로 나뉜 지역주의라는 큰 두가지 담론에서 어떠한 이슈에도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다.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할 무렵, 휘그당이 몰락하고 새로 생긴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어 지금의 양당제가 시작된다. 참고로 이때 승리한 공화당은 아직도 미 역사상 유일하게 신생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링컨으로 시작되는 공화당의 24년간의 장기집권(1861~1885)이 있었다.[19] 개혁적인 이미지로 민주당의 클리블랜드가 잠시 집권하여 이를 깨뜨렸으나(그나마도 이어진 임기가 아니었다) 이후 공화당이 다시 16년간(1897~1913) 장기 집권했다.
링컨 이후 한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은 약간의 관세 정책 빼고는 정책차가 거의 없었으며, 공화당이 선거인단 덕에 당선된 케이스도 두번이나 된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 예로 수차례나 대통령에 출마한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는 1912년 선거에서 6%나 득표한다.[20] 또한 부패한 관료들과 자비없는 대기업들에 반발한 중서부 농부와 서민층이 주축이 된 인민당(people's party, 혹은 populist)을 결성했는데[21], 1892년 선거에서 이 당의 후보로 나온 제임스 위버 후보는 8.5%, 약 백만 명의 지지를 받고 중서부 4개 주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권 연장을 꾀한 민주당이 윌리엄 J. 브라이언이라는 걸출한 웅변가를 대선후보로 내세운 다음 인민당과 손을 잡아 1896년도 대권에 도전했으나, 쇼미더머니 수준의 선거자금을 모은 공화당의 윌리엄 매킨리 후보에게 대패하고 만다. 중서부에서는 대승했으나 북부를 털려서 망했어요. 브라이언은 인민당과 연대를 해제한 1900년과 1908년에도 다시 도전하지만 역시 패배하게 된다. 일설에는 대통령이 됐으면 아마 지금 미국은 농경국가로 탈바꿈해 있을지도 모른다 카더라.
이런 정치적 변혁은 현실 정치적인 변화도 이끌었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반트러스트와 개혁을 옹호하는 혁신주의(progressivism) 경향이 두드러진 것. 공화당 역시 혁신주의를 주창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나왔다. 이런 경향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이하 테디)를 건너 정권을 교체한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으로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테디는 1912년 공화당을 탈당해 혁신당(progress party, 혹은 진보당)을 차리기까지 했다.[22] 이러한 공화당의 분열로 윌슨의 민주당이 8년을 집권했으나 외교정책 문제와 1차대전 참전 문제로 신임을 잃고, 대공황까지 다시 공화당이 12년(1921~1933) 집권한다. 다만 이시기의 공화당은 혁신주의 사조를 완전히 뺀 자유방임주의 보수정당이었다.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이하 'FDR')이 나타나 4선까지 하고 해리 트루먼까지 이어가면서 민주당이 20년(1933~1953)을 집권한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서민과 남부, 공화당은 중산층 이상과 북부의 지지를 받았으나 20세기 후반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이, 민주당과의 텃밭 바꾸기 전술, 일명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이다.[23]20세기 들어와서도 남부에서 공화당의 입지는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남북전쟁 이후 피해를 입은 남부에서 봤을 때 공화당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존재였기 때문. 남북전쟁 자체가 노예제뿐만 아니라 노예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 즉 농업과 산업의 대립, 남부의 현금작물 대농장과 북부 개척민(자영농)들의 대립 등 나라가 팽창하면서 생긴 여러 가지 뿌리깊은 대립이 모여서 터진 것이기 때문에[24] 아예 출생 성분이 달랐던 공화당은 남부에서는 거의 멸시와 혐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들은 딕시크랫이라고 불리며 민주당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런 어색한 동거는 FDR 때부터 시작한 민주당의 진보화(정확히는 연방정부 강화주의와 민권운동)에 불안을 느끼면서 삐걱대더니, 드디어 존 F. 케네디린든 B. 존슨이 민권운동을 강력히 지지하면서 헛돌기 시작했다. 존슨이 텍사스의 거물급 상원의원이면서도 민권운동과 여러 중요한 법안(업적)들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딕시크랫들은 이런 분위기에 불만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를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남부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스트롬 서먼드가 감지하였고 그가 주권민주당을 창당하면서 남부 백인들의 마음을 돌려 민주당을 분열시켰다.[25] 닉슨은 당시 일고 있던 민권운동에서 슬며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이 딕시크랫들을 유혹했으나, 기어이 1964년 서먼드가 공화당에 입당하면서 남부의 정치토양은 대 균열을 일으키게 되었다.
196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남부 애리조나 출신인 배리 골드워터였다. 결국 선거 결과는 존슨의 대승으로 끝나지만, 압승 속에도 공화당을 지지한 것은 기어이(그리고 도리어) 남부였다. 존슨의 지지 기반이었던 텍사스를 비롯하여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주 등은 존슨을 찍어 주었으나 Deep South로 분류되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조지아, 미시시피, 루이지애나는 골드워터의 손을 들어 주었다. 참고로 50개주+DC 중에서 골드워터가 승리한 주는 전술한 Deep South 5개주+골드워터의 Home State인 애리조나가 전부. 상황이 정반대가 된 것이다.[26] 이는 잠시 남부 출신인 지미 카터가 등장하면서 주춤해지지만[27] 후에 레이건이 이런 문화적 보수주의 전략을 한층 더 승화시켜서 현대 공화당의 전략을 확립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주당은 캘리포니아 등 서부 해안지대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결국 부시의 실정크리와 함께 오바마는 케네디 이후 최초의 북부(일리노이)에 지역구를 둔 대통령이 되며 남방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또한 인구 3위의 플로리다에서도 두번 모두 승리하면서 고어 vs 부시 때의 설욕을 확실히 했다. 재선에도 인디애나노스 캐롤라이나만을 내주며 비교적 여유롭게 성공.
하지만 민주당도 3연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위세는 오바마 재임기간 내내 압도적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득표에서는 2.1% 패배했음에도 오하이오를 비롯해 민주당의 오랜 텃밭인 "러스트 벨트"(미시건위스콘신),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아이오와메인주 일부 선거인단까지 승리하면서 충격적인 선거인단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날처럼 중서부와 남부 백인, 남성[28], 장년층, 군인(재향+현역), 경찰, 복음주의 기독교, 교외 지역과 시골[29], 대기업[30] +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층[31]은 공화당을 지지하고, 메이저 언론, 대도시, 북동부 및 서부해안 지역, 사회적 소수자(소수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 청년, 페미니스트, 고학력자(학사 이상), 문화예술업계 (스포츠 + 할리우드), IT 업계,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구도가 굳었다.


8. 정경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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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슈퍼팩, 정치신탁(Union[32]), 사회복지기금[33], 기타[34]를 망라한 미국 정치자금 지출 현황.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 1인 당 하원의원 선거 시 정치자금 모금 및 지출 액수의 평균을 나타낸 것이다. 2012년 이후로 해가 갈 수록 눈금 단위 자체가 갈려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2018년1월부터 8월까지만 집계한 결과라는 점이 충격과 공포. 기사
미국 정치판의 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위해서 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먼저 여기서는 내역만 공개한다면, 로비가 합법이다. 그래서 미국 정치판은 SHOW ME THE MONEY(금권정치/금권주의)다. 그 법적 근거는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2010년에 내린 Citizens United v. FEC 판결[35].
미국이 합법적 로비를 시행하는 논리는 이렇다. 어차피 안 보이는 곳에서 뒷돈으로 로비하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로비 내역을 전부 공개하는 한에서 합법으로 만들어 어떤 기업이 어떤 정치인에게 후원을 했는지 알 수 있게 함으로써 시민들이 그 정치인이 어떠한 정책을 펼것이며 그 정책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혹은 자신의 의견에 맞는지를 미리 예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만약에 그 정치인이 다시 재선에 도전 했을 때에 , 예를 들어 A 후보의 로비 내역에 테슬라가 있고, B 후보는 엑슨모빌에서 로비를 받는다면,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A 후보를 뽑을 것이고, 정유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B 후보를 뽑을 것이다. 즉, 정경유착을 인정하는 대신 국민들의 알 권리라도 보장하자는 논리이지 정경유착을 줄이자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어찌보면 맞는 말인게 우리나라와 같이 로비가 완전히 불법이거나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로비가 매우 제한적인 나라들도 말로만 로비가 불법이지, 몇몇 정치인들이 뒷쪽으로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면 유권자들이 이 후보가 정말로 공약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로비 때문에 당선 후 공약을 지키지 않을 것인지 알 수가 없으므로 로비 내역을 공개하는 선에서 로비를 합법화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투명한 정치를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비를 정말로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체가 정치가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기업체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래서 정치가들도 로비를 받은 이상 기업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돈만받고 먹튀라도 했다간 돈줄이 끊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인-기업인 네트워크에서 열외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국민들도 로비가 합법이라고 해도 로비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로비가 합법이라지만 왜 버니 샌더스슈퍼팩(Super PAC)을 거부하며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모으려 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고, 왜 도널드 트럼프도 슈퍼팩을 비난하며 그것을 통해 후원금을 모금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36]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된 큰 이유 중 하나도 저것이었다. 미국인들도 자국의 정경유착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로비가 합법화되었다고 하여 뒷돈이 오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로비는 로비일 뿐이다. 그에 대해서 분명 생각할 부분이 많다. 또 기업 사람이 정부 일 하다 퇴임하고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9. 관련 문서



[1] https://www.transparency.org/cpi2018[2]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3] 문제는 베트남 전쟁처럼 행정부가 입법부를 상대로 거짓말을 했을 수 있다는 정황이 나와서, 이라크 전쟁 자체가 위법이었다는 의견도 있다는 것이다.[4] 예시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ACA(오바마케어)의 합헌 여부 때문에 대법원의 눈치를 봐야 했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의 합헌 여부를 두고 사법부의 눈치를 봐야 했다.[5] 주가 아닌 특별구나 속령을 대표하며 발언권만 있다.[6] 2020년 대선에서는 67%로 몇십년 만에 최고 투표율인데 이마저도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나 한국의 대선과 비교하면 낮다.[7] 오리건같은 몇몇 주는 운전면허증 발급과 유권자 등록을 연동해 처리하므로 사실상 개인이 유권자 등록을 신청할 필요가 없으나 이런 주는 적다.[8] 일부 주는 당일에도 등록이 가능하거나 한 번 등록하면 영구적으로 유권자 등록을 할 필요가 없지만 이러한 주는 많지 않다.[9] 같은 시간대를 써도 주마다 투표마감시각이 다르다. 똑같은 동부시간대를 쓰는 인디애나는 오후 6시에, 버지니아는 오후 7시에, 웨스트버지니아는 7시 반에, 펜실베이니아는 오후 8시에, 뉴욕 주는 오후 9시에 마감한다. 심지어 주 내에서 시간대가 갈리는 플로리다, 텍사스 등의 경우 주 안에서도 투표마감시각이 갈리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쯤 되면 혼돈의 카오스.[10] 가장 빨리 투표가 마감되는 주들이다. 동부시간 오후 6시, 서부시간 오후 3시.[11] 동부 시간 기준 오후 9시에 투표 종료.[12] 둘 다 동부 시간 기준 오후 10시에 투표 종료.[13] 남부의 상당수는 동부시각을 쓴다. 텍사스 같은 곳은 중부시각.[14] 중부시각과 동부시각 간 시차가 1시간.[15] 오죽하면 미국에는 당이 2개밖에 없는줄 아는 사람들이 매우 많으며, 심지어는 미국은 제3의 당을 만드는게 금지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보인다.[16] 1830년대부터 50년대까지는 휘그당이 양당제를 구성하던 정당이었지만 1860년 선거를 기점으로 공화당이 제1당이 되면서 휘그당은 듣보잡 신세가 되었고, 결국에는 해체되었다.[17] 빨간색+파란색=보라색인 주, 즉 뉴햄프셔, 아이오와, 콜로라도 같은 경합주를 의미한다.[18]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라 여겨지는 뉴저지 주에서 공화당 크리스 크리스티가 당선되기도 했고, 2014년에는 공화당 찰리 베이커가 매사추세츠 주 주지사로, 매릴랜드에서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한국에서도 이름이 좀 알려진 공화당 후보 래리 호건이 당선되었다. 반대로 전통적으로 공화당 텃밭이라 여겨지는 켄터키 주에서는 2019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19] 사실 링컨의 후임자인 존슨은 민주당이다. 그러나 존슨은 민주당원이면서 연방 분열에 반대하여 민주당에서는 비주류 중 비주류였다.(민주당 주류는 노예제를 긍정하면서 아메리카 연합국 건국을 계기로 연방을 이탈했고, 존슨을 비롯한 민주당은 소수만 연방에 남았다.) 남북전쟁 공화당은 국가연합당(National Union Party)으로 잠시 당명을 바꾸었고, 국가 통합의 관점에서 민주당 인사인 존슨을 재선 당시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그래서 존슨은 링컨 암살 이후 대통령이 되었지만 내각은 공화당이 장악했다.[20] 이 시대의 정치사를 사회주의자의 시각으로 본 것이 소설 <강철군화>이다. 강철군화는 인민당이 주지사 권한을 넘겨받지 못할 것이고, 선거 역시 그럴 것이라는 대단히 냉소적인 시각을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물론 지금도 미국의 급진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이 시대는 "사회주의 혁명을 의회 쿠데타에 가까운 보수 양당의 선거제도 개악으로 저지시킨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선거인단 제도나 완전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미국의 선거제도는 소수당 득표를 사표로 몰아 붙이는 경향이 있다.[21] 포퓰리스트, 포퓰리즘의 어원이 되는 정당이라고 하나, 포퓰리즘의 진짜 어원은 로마의 평민파에서 출발한다.[22] 흔히 "진보 정치사조"로 해석되는 "progress"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민참여당 정도가 "혁신진보" 사조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의 사조는 "사회/사민"사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란 단어 자체는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시작되었지만, progress의 의미는 이렇게 조금 복잡하다. 링컨의 반트러스트적 면모를 두고 혁신주의 사조를 링컨대까지 끌어올리는 시각도 있다. 이후에도 혁신주의는 1924년, 1948년(이 경우는, 민주당의 전직 부통령 월리스가 탈당한 경우) 대선 등에서 독자 출마로 상당한 득표력을 보인다.[23]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주도 지금은 민주당의 든든한 텃밭이지만 1992년 전까지만 해도 공화당의 텃밭이었다.텍사스주도 지금은 공화당의 대표적인 텃밭이지만 남북전쟁 이전부터 민주당을 찍었고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민주당을 많이 찍어줘서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이었다.[24] 이 부분은 남북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에서 특히 강조하는 측면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예제가 핵심 대립 지점이었으며 다른 차이는 부차적이라는 이론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25] 케네디의 경우엔 대선에서 남부 선거인단 15명이 제3의 인물을 지지하는 돌발사태까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몬드의 표였다.[26] 참고로 골드워터가 출마한 이때를 미국 20세기 보수주의의 시작으로 본다. 골드워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자유의지주의'와 '신보수주의'가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이후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싹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골드워터는 낙태를 반대하지 않는 등 그야말로 자유주의자라서 훗날의 미국 공화당 정서와는 조금 안 맞는 인물이지만... 이 계통을 재밌게도 존 매케인이 이어받았다.[27] 카터는 버지니아 주를 제외한 모든 남부 주에서 승리했다.[28] 그러나 백인 여성들도 백인이라 백인 여성 지지율도 낮은 편이 아니다.[29] 백인으로 통합 가능하다. 교외 지역과 시골이 대도시보다 백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이런 지역서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30] 주류 언론, 엔터테인먼트, IT업계는 제외[31] 2018년 중간선거 출구조사 결과[32] 보통 신탁은 Trust이지만 미국에서 정치인한테 '투자'하는 신탁은 'Un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정치인한테 투자를 하면 정치인은 당선 이후에 정책을 짤 때 당연히 해당 신탁에 사업 참가권을 주는 방식으로 보답한다.[33] 보통 자선 기부단체를 말한다. 2008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 이후 자선 기부단체들도 슈퍼팩마냥 정치자금을 지출할 수 있게 되었다.[34] 주로 크라우드 펀딩이 많다.[35] 당시 대법관 이념성향에 따라 5:4로 결정되었다. 찬성 측앤서니 케네디(의견 집필자), 앤토닌 스캘리아(이상 레이건 지명), 클래런스 토머스(아버지 부시 지명), 존 로버츠(대법원장), 새뮤얼 얼리토(이상 아들 부시 지명) 5인 / 반대 측존 폴 스티븐스(의견 집필자, 포드 지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라이어(이상 클린턴 지명), 소냐 소토마요르(오바마 지명) 4인이었다.[36] 허나 슈퍼팩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트럼프는 모금액이 예상액에 미치지 못하자 결국 자기 회사의 자금을 사용했고 논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