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의 혼란
그리스어: Εικοσαετης Αναρχία
영어: Twenty Years' Anarchy
1. 개요
동로마 제국에서 695년에서 717년의 23년 사이에 황제가 6번이나 바뀌었던 정치적 혼란기. 3-7-6-2-2-2년간 황제들이 재위하던 시대이다. 특히 711년 ~ 717년까지는 3명의 황제가 2년씩 재위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20여 년간의 시기에는 기록이고 문화고 거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암흑의 시대였다. 다만 717년에 즉위한 레온 3세가 우마이야 왕조의 콘스탄티노플 포위를 견뎌내고 25년간 재위하며 제국은 중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2. 배경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692년 세바스토폴리스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한 장군 레온티오스를 문책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이것뿐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695년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신설한 헬라스 테마의 스트라고테스로 투옥시킨 레온티오스를 임명한 것이다.
이에 레온티오스는 청색당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힘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과도한 징세로 인기를 잃은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찬탈당한 후 쇠사슬에 묶인 채 군중으로부터 비난과 욕설을 들으면서 원형 경기장을 한바퀴 돌았다. 그 후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코와 혀가 잘려 케르손에 유배되었고, 그 때문에 '코가 잘린 이' 라는 뜻의 '리노트미토스'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3. 전개
3.1. 695 ~ 705년
그러나 레온티오스 역시 697년, 우마이야 왕조에게 카르타고를 빼앗기면서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레온티오스는 카르타고를 탈환하기 위해 게르만족 출신 장군 아프시마로스를 지휘관으로 한 병력을 보냈으나 실패했고, 아프시마로스는 반란을 일으켜 제위를 찬탈했다. 레온티오스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했던 것처럼 코와 혀가 잘리고 달마티아의 수도원에 유폐되었다(...). 아프시마로스는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꾸어 티베리오스 3세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티베리오스 3세는 로마 제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게르만족 황제로 즉위하였다.
티베리오스 3세는 카르타고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의 동생인 헤라클리오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소아시아와 시리아에서 성공적인 군사 활동을 벌였다. 이 티베리오스 3세의 치세는 20년간의 혼란의 시기 중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으며 이슬람군을 상대로 역습을 가하여 세바스토폴리스 전투로 상실했던 아르메니아를 잠시 수복하기도 하였고, 지중해의 제해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케르손으로 추방당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그곳에서 힘을 길렀고, 슬라브족과 불가르족을 끌고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했다. 그러나 전에 했던 짓이 있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이 받아들일리 없었고,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는 엄청난 욕과 조롱이 쏟아졌다. 이에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수도를 몇명의 병사들과 함께 직접 타고 들어가 블라케르니아 궁전의 경비병들을 해치우고 궁전을 점거했고, 이 소식을 접한 티베리오스 3세는 비티니아로 도망쳤다. 결국 시민들은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굴복하였고,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복위에 성공하였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티베리오스 3세와 레온티오스를 체포하였다. 두 사람은 사슬에 묶인 채 시내를 가로질러 원형 경기장을 돌았고 시민들은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오물을 던졌다. 그 후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그들의 목에 발길질을 한 번씩 가했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자신을 복위시켜준 대가로 불가르족의 왕을 제국의 부제로 임명하였다.
3.2. 705 ~ 711년
복위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대내적으로는 공포 정치를 펼쳤으며, 서방에는 퀴니섹스툼 공의회 문제와 교황수위권 문제를 들며 압박하며 라벤나를 공격하기까지 하여 교황 콘스탄티노를 굴복시켰다. 711년 유스티니아노스는 크림 반도의 케르손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을 지시했지만, 이를 지시받은 바르다니스는 반란 세력에 합류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거하고 제위에 올랐다.
3.3. 711 ~ 7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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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코스로 이름을 바꾼 그는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파기된 단의론을 지지하여 교회와 갈등을 빚었다. 게다가 불가르족과 우마이야 왕조가 침공하는 데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필리피코스는 2년간의 짧은 제위 끝에 713년 옵시키온 테마 부대의 반란으로 폐위되었고, 아나스타시오스 2세가 황제로 추대되었다.
아나스타시오스 2세는 제위에 오른 후 수도의 성벽을 보수하였고, 로도스 섬을 바탕으로 우마이야 왕조를 선제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옵시키온 테마 부대가 또 반란을 일으켰다(…). 715년 군대는 조세징수관인 테오도시오스를 강제로 제위에 앉혔다.
테오도시오스 3세는 아랍의 침공에 맞서 불가르족과 우호적인 관계를 조성하였다. 717년 아나톨리콘 테마의 스트라티고스 레온 3세가 반란을 일으켰고 테오도시오스 3세는 제위에서 내려온 후 수도원에 들어갔다.
4. 종결, 중흥기를 향해
레온 3세는 아랍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내었다. 740년 아크로이논 전투에서 아랍 군대도 격파하고 토지대장과 테마 제도도 개편하고.. 하지만 성상 파괴령을 내리며 향후 150여 년간 제국을 분열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 이후 이사브리아 왕조가 성립되어 동로마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