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식 중장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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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mm 기관총 장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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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 작전 중인 92식 중장갑차. 앞에는 92식 장갑차, 뒤에는 수미다 장갑차다.
1. 개요
2. 제원
3. 개발
4. 설계
5. 바리에이션


1. 개요


뭔가 강력해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92식 중장갑차는 일본군의 첫 번째 자국산 탱켓이다. 기병대에서 정찰과 보병지원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이시카와지마 자동차회사(현재는 이스즈)에서 생산했다. 장갑차보다는 경전차에 가깝지만 일본군 내에서의 구분법 때문에 장갑차로 불렸다. 일본 육군에서 전차는 보병부대 소속인데 92식 중장갑차는 기병대 소속이어서 장갑차라고 불렸다. 일본군만 이런건 아니고 같은 이유로 미국에서도 기병소속의 경전차를 M1 전투차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2. 제원


개발년도
1931
생산년도
1932–1939
생산량
167
무게
3.5 t
전장
3.95 m
전폭
1.63 m
전고
1.86 m
승무원
3
장갑
6–12 mm
주무장
13.2 mm 92식 중기관총[1]
부무장
7.7 mm 97식 중기관총 1정[2]
엔진
프랭클린/이시카와 스미다 C6 공랭식 6기통 가솔린 엔진(45마력)
현가장치
리프스프링
작전반경
200 km
최고속도
40 km/h

3. 개발


1차대전이 끝나고 유럽에서는 기병부대를 기계화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고 일본 또한 이에 동참했지만 성과는 그닥 좋지 못했다. 당시 일본군이 전투를 수행하던 만주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고 겨울이 되면 차량이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서 장갑차를 운용해도 진짜 말타는 기병부대와 섞어서 운용하려고 했다.
20년대 초부터 일본육군기병학교에서는 카든-로이드 탱켓이나 르노 FT-17 같은 유럽 전차들을 테스트하면서 1929년 국산 신형 장갑차를 생산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 카든-로이드 탱켓을 많이 참고했고 적의 장갑차량에 대항할 용도로 사용하려 했다.
92식 중장갑차는 처음에 궤도를 벗기고 바퀴로만 달릴 수도 있는[3] 수륙양용으로 계획되었다. 이때의 이름은 92식 아이고. 방수 차체에 프로펠러도 둘 달리고 플로트도 있었다. 프로토타입이 두대 완성되었는데 실험에서 영 좋은 결과가 안나오자 수륙양용 컨셉을 버리고 지상전용 궤도 차량으로 개발을 시작한다.
양산은 1932년 이시카와지마 자동차 회사에서 시작되었으나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39년까지 167대만 생산되었다. 구동계에 문제가 좀 있었지만 혹독한 만주땅에서 92식 중장갑차는 꽤 잘 굴러다녔고 몇 대는 서치라이트와 94식 Mk.4 을형 무전기[4]를 장착하고 야간 작전에 투입되었다.
생산 물량은 대부분 관동군조선군에게 전달되어 사용되었다.
중일전쟁94식 경장갑차로 대체되었는데 연합군 문서에서는 두 차량을 자주 헷갈린다고 한다.

4. 설계


장갑은 리벳접합과 용접을 둘 다 사용하였는데 차체는 고작 6mm에다 포탑은 12mm 정도였다. 그 당시의 장갑차가 다들 그렇듯 이 정도면 일반 소총탄이나 파편 정도나 막는 수준이라서 중기관총 철갑탄은 물론이고 기관포나 대전차포 같은 무기에는 그냥 숭숭 뚫린다. 근데 이게 당시 독일의 전차 장갑수준이었다.
일본군 내에서도 그러했듯 전차로 분류하기는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92식 중장갑차는 당시 전차 기준으로 봐도 장갑이 좀 얇았다(독일 빼고...). 당시 소련의 BT-7 경전차는 최대 20mm의 장갑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얇은 장갑 덕분에 무게는 상당히 가벼운 2톤에서 3톤 사이[5]라서 교량 등을 지나가기 편리했으며 속도는 40km/h 정도였다.
무장은 기관총 2정인데 하나는 차체에, 하나는 포탑에 있었다. 차체 기관총이 92식 13.2mm 중기관총이었는데 그걸 실질적인 주포로 썼다. 포각은 안좋은데 특수 조준장치와 고각 사격용 마운트가 있어서 대공 사격을 할 수 있는 기묘한 기능이 있다. 추가로 외부에 대공기총용 마운트가 있어서 91식이나 97식 기관총을 달 수 있다. 여기서 또 일본군의 기묘한 기능이 있는데 엔진 해치를 열어서 고정하면 외부 기총 사격할 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완성된다! 포탑의 무장은 본래 91식 6.5mm 기관총이었다가 나중에 97식 7.7mm 기관총으로 대체되었다. 포탑은 수동으로 돌린다. 여러모로 독일의 1호 전차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도 차체에 장착된 13.2mm 중기관총 덕분에 화력은 1호 전차보다는 좋았다.
생산 종료후에 도태된 92식 중장갑차를 다시 전장에 맞게 개량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실제로 13.2mm 기관총 대신 98식 20mm 기관포를 장착하기도 해서 꽤 괜찮은 실험결과가 나왔고 몇 대가 이렇게 개수되어 전장에 투입되었다. 그 밖에 37mm 대전차포까지 얹으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건 결과가 좋지 못했다.

5. 바리에이션


크게 3가지가 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궤도를 벗기고 달릴 수 있는 수륙앙용 프로토타입의 상당수를 차용한 극초기 생산형은 서스펜션에 문제가 있어서 고속으로 달리면서 선회할 때 궤도가 잘 벗겨졌다고 한다. 나중에 이 문제는 서스펜션을 개량해서 해결했다. 초기형 모델들은 6.5mm 기관총 두정을 장비했고 1932년 하얼빈 공격에서 기병대에 의해 사용되었다.
개량된 초기형과 중기생산형들은 13.2mm 중기관총을 장비하고 8사단 제1 특수 전타 중대에서 1932년 내몽골 침략때 쓰였다. 이 과정에서 몇 대가 대공사격 기능을 추가하는 개수를 받았다. 1939년의 할힌골 전투 때도 소수의 차량이 관동군 휘하 수색대에 배치되어 전투에 동원되었다.
후기형은 1942년 4월 만주에 배치되었고 구동계통과 관측창이 개수되었으며 포탑의 기관총이 신형 97식 7.7mm 기관총으로 교체되었다.

[1] 초기형은 차체 장착 6.5 mm 91식 경기관총.[2] 초기형과 중기형은 포탑 장착 6.5 mm 91식 경기관총.[3] 이 차량만의 독창적인 기능은 아니고 소련의 BT 전차에도 같은 기능이 있다.[4] 1km 정도의 통신범위를 가졌는데 무게는 40kg에 안테나 길이만 7m였다.[5] 당시 왠만한 탱크들은 이거 2배는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