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식 경장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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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능력을 시험중인 94식 경장갑차.
1. 제원
2. 개요
2.1. 개발
2.2. 실전
2.3. 장점
2.4. 문제점
2.5. 말로
2.6. 그 외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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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장 : 3.36m
  • 전폭 : 1.62m
  • 중량 : 3.45t
  • 속도 : 40km (견인시 30km)
  • 행동거리 : 200km
  • 주포 : 91식 6.5mm 경기관총 1정, 1937년 이후 후기형은 97식 7.7mm 경기관총 1정, 총탄 1,980발
  • 장갑 : 8 ~ 12mm
  • 엔진 : 공랭직렬 4기통 가솔린
  • 출력 : 35마력/2,500rpm
  • 승무원 : 2명

2. 개요


94식 경장갑차(통칭 TK차)는 1934년(쇼와 9년)에 채용된 장갑차다. 명칭인 94식은 이 장갑차의 채용연도인 황기 2594년에서 유래한 것이다.

2.1. 개발


원래는 최전방에서 탄약 등의 위험물을 운반하는 견인용으로 개발되었다. TK차란 통칭은 특수견인용의 머릿글자를 간략화한 것이다. 전용 트레일러로 94식 3/4둔피견인차(750kg까지 탑재 가능)이 동시에 채용되었다. 개발 당시 영국에서 수입한 카든-로이드 MK. VI 탱켓을 참고하였다.
설계상의 특징으로는 용접구조의 채용과 서스펜션의 관련링크 방식을 이용했다. 관련링크 방식이란 두 개의 차륜을 연성현가(連成懸架, 보기 식)해서 하나로 만들어 이를 전후 2조로 구성해 충격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94식 경장갑차에 써 본 결과 성공적이라 판단되어 95식 하고 경전차와 97식 전차 등에도 채택되어 이후 일본군 전차의 대표적인 형식이 되었다. 1937년에는 보기륜을 개선한 후기형이 개발되었다.
94식 경장갑차의 장갑(두께 8~12mm)은 보병이 가진 소총과 파편에 대한 방어력 정도를 낼 수 있는 성능으로 설계되었다. 어차피 견인용 장갑차였으므로 이 정도의 장갑으로는 충분할 것으로 판단했다.

무장은 비전투차량인걸 고려하여 91식 6.5mm 차재 기관총 1정을 포탑에 설치한 것 뿐으로 원래는 방어용이었다. 후기에는 신형인 97식 7.7mm 차재 기관총으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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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화력 강화형으로 94식 37mm 전차포를 탑재한 경우도 간혹 있었다.
탑승인원은 2명으로 전방에 조종수가 앉고 후방에 차장이 탔다. 엔진도 전방에 있어 차체 후면엔 대형의 승강용 해치가 설치되었다.

본질적으로는 견인차였지만 전차 같은 면도 갖추고 있어 소총으로 무장한 게릴라의 습격같은 공격에는 즉시 보병을 지원 사격해주는 등의 운용이 가능했다. 전용 트레일러가 없이 일반 트럭에도 탑재가 가능했고 또 전차교량이 없어도 통나무 2개를 덧대면 도하도 가능해 보병부대로선 아주 쓸만한 병기였다.
견인차로서 개발되었으나 일본군의 시각에서는 그럭저럭 전투용으로 사용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당장 중일전쟁 전의 세계 각국 전차의 주력은 경전차와 TKS같은 탱켓이었기 때문에 판단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육군참모본부도 이를 주시해 호칭을 장갑견인차에서 경장갑차로 변경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11개의 사단에 경장갑차 훈련소가 신설되어 기갑병기 보급의 모태가 되었다.
이런 유용성을 바탕으로 해서 94식 경장갑차는 1937년까지 823대가 생산되었다.

2.2. 실전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94식 경장갑차도 89식 중전차와 같이 기갑전력으로 전장에 보내져 독립경장갑차 중대가 편성되었다. 이들 부대는 전차부대와 같은 임무를 부여받는 경우가 많았다.
1937년 12월의 난징(南京)공략전에서 독립장갑차 제 2중대(후지타 소좌), 제 6중대(이노우에 중위)가 참가했는데 원래 제 1선의 보병을 협력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기갑부대같은 움직임으로 인해 마치 전차처럼 난징 성벽의 중화문을 포위하고 성벽을 제압하는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소전차의 한계를 실감했는데 철심교(鐵心橋)부근 전투에서 대전차포에 의해 이노우에 부대의 경장갑차 4량이 파괴되고 전사 7명을 기록했다.
1938년 10월의 광둥(廣東)공략전에서는 독립장갑차 제 11중대(우에다 소좌), 제 51중대(고사카 대위)가 참가했는데 이 때는 해군육전대의 협력과 항공지원도 있어서 상기 두 중대는 서로 경쟁하듯이 광둥으로 향했다. 도중에 대전차포에 의한 공격도 받아 중국군 기계화부대와 전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순조롭게 광둥에 도착했다. 당시 빠른 진격속도 탓에 오토바이를 탄 중국군 장교가 중국군 기계화부대로 착각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1939년 할힌골 전투에서도 일부 차량이 기갑부대 및 보병사단 수색대에 소속되어 실전 투입되었다.

2.3.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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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묘사한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 94식 '''경장갑차'''
  • 경기관총으로 무장하여 유사시 전투용으로도 써먹을 수 있었으며 이는 중일전선에서 큰 장점이 되었다.
  • 최대 장갑 12mm는 당시 이 정도 크기의 경장갑차로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독일의 경전차1호 전차는 전면 장갑이 13mm였으며 소련의 BT 전차도 20mm 정도였다. 또한 전면경사를 통해 장갑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줬으며 중일전쟁에서 중국측이 대전차 화기를 유효하게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장갑차임에도 중형전차같은 활약을 보일 수 있었다.

2.4. 문제점


하지만 94식 경장갑차도 실전을 거친 결과 여러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 험로에서의 기동성이 별로 좋지 않았다.
  • 엔진이 전방에 있어 소음과 고열로 조종수가 괴로웠으며 접지면적이 적어서 기총사격시 전차가 흔들리는 안정성 부족도 있었으며 무한궤도가 바깥쪽 가이드 방식이어서 선회시 밖으로 빠지기 쉬웠다.
  • 조종수의 시선구(視線口)가 방탄유리가 아니었기에 피격시 조종수의 눈이 부상당할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결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육군은 1937년에 후속인 97식 경장갑차를 개발했다.

2.5. 말로


당시 일본군은 독일군보다 훨씬 기계화가 덜 된 군대였다. 전차를 전차로서 사용하고 장갑차를 장갑차로 사용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나, 여건이 그러지 못했다. 그런 사정 아래서 만들어진, 차륜형이나 하프트랙도 아닌 궤도형 장갑차를 만들어놓고 여기에 화기까지 달았으니 일선 지휘관은 경장갑차임에도 이걸 경전차로서 사용하고 싶어했다. 독일군조차 돌격포와 하노마크까지 차출해 대전차부대에 편성했는데, 일본군이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전차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전차 대용품이 되었다.
우선, 늘어나는 전선으로 일본군은 장비가 부족했다. 덕분에 신형전차가 개발된 후에도 94식 경장갑차는 몇몇 부대에선 계속 유지되었고 후방 치안부대의 경비차량으로도 사용되어 보병사단의 수색연대등에 배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일전쟁 전에 개발된 물건을 중일전쟁시의 좋은 경험만 가지고 태평양 전쟁까지 써먹겠다는 일본군의 판단은 문제였다.
하지만 기갑전력이 부족했던 일본군으로선 장갑이 약한 94식 경장갑차도 귀중한 차량이었다. 덕분에 레이테 섬 전투에선 미군의 상륙용보트에 대해 우연히 모래사장을 순찰하던 2량의 94식 경장갑차가 총격을 가했다는 기록도 있다. 심지어 1945년도에는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본토결전용의 전력으로 활용될 계획이 있었다. ''' ''' 물론 독일군은 당장 수도까지 밀려버린 상태에서 급한상황에 아무거나 집어넣은거고 일본군 이런걸 계속 경전차급으로 채용했단는 점이 다르다.비유를 하자면 독일군이 1호 전차를 이때까지 제식으로 쓰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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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을 상대할 미군의 전차는 M4 셔먼이었다.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일 상황이었으며, 위 사진과 같이 박살난 뒤에 전리품으로 실려가는 수모를 겪었다.[1]

2.6. 그 외


광영사명 코옵 모드 중 쓰싱 창고 전투 맵에서 94식 두 대가 2번째 웨이브의 보스로써 출현한다.

[1] 게다가 위 사진을 보면 포탑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