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 뫼니에
1. 제원
2. 개요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프랑스군이 사용했던 반자동소총이다. STA No. 8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3. 상세
프랑스군은 1886년 르벨 M1886소총을 제식소총으로 채택했고 짧은 시간동안 기존의 그라 소총을 대체했지만 얼마 안가 독일에서 위원회 소총이 채택되자 르벨 소총의 8×50mmR 탄이 마우저사의 7.92×57mm 탄 보다 약하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소총탄과 그 소총탄을 사용 할 소총을 개발할 계획을 세운다.
1890년부터 나케-라로크 장군의 지휘로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프랑스 정부 소속 연구기관 4곳[2] 이 달려들어 7개의 신형 탄약과 22개의 시제형을 만들어 냈다.
3.1. 탄약 개발
6×58mm 뫼니에 1897
6×60mm ENT, 1900
6.5×60mm CAP 1905
6.5×61mm STA 1910
6.5×55.5mm 베르티에 1910
7×59mm STA 1912
7×57mm 뫼니에1912
이 중에서 채택된 탄환은 7×59mm STA 1912이다.
3.2. 소총 개발
1894년부터 1913년까지, 수 많은 소총이 개발되었고 시험을 제식 채택을 위한 경쟁을 치뤘다.
'''포병 기술지원국 (STA)'''
Rifle A 1 later redesigned as Rifle A 4
Rifle A 2 STA 5
Rifle A 3 STA 6
Carbine A 4
Rifle A 5 STA 7
Rifle A 6 STA 8
'''국제 사격 훈련소 (ENT)'''
Rifle B 1, ENT 1901
Rifle B 2
Rifle B 3
Rifle B 4
Rifle B 5
Rifle B 6
Rifle B 7
Rifle B 8
'''베르사유 기술위원회 (CTV)와 퓌토 기술지원국 (APX)이 공동 개발'''
Rifle C 1 CTV 1
Rifle C 2 CTV
Rifle C 3 APX 3
Rifle C 4 APX 4
Rifle C 5
Rifle C 6
Rifle C 7
Rifle C 8[3]
이 중에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인 소총이 A6 STA 8이었고 약 3,000발을 잔고장 없이 사격했다고 한다.
4. 채택
소총의 채택 자체는 1910년에 이미 끝났지만 탄환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고 탄피의 길이와 탄환의 발사속도를 두고 생산공장 간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하며, 결국 기나긴 싸움 끝에 1913년 7×57mm 탄을 채택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 병림픽스러운 논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군은 1차대전이 시작했을 즈음인 1914년 8월 정도에는 전체 병력의 절반에 다다르는 군사들에게 뫼니에 소총을 보급했을 것이고 프랑스군의 피해도 크게 줄었을 거란 시각도 있다.
카빈형 관련 설명
5. 실전
생-테티엔 군수공장은 1914년 봄부터 매달 약 5,000정의 뫼니에 소총을 생산 할 거라는 계획을 세웠으나 전운이 도는 시기에 독일에게 최신기술의 소총이 보여지면 큰 문제가 일어날 거라는 군부의 생각때문에 대량생산은 무산되었고 결국 툴레 군수공장에서 1,013정 정도의 뫼니에 소총이 생산되었다.
툴레 공장에서 생산된 수량중 843정이 최전선으로 보내졌으나 총 자체가 복잡했고 과열이 자주된다거나 하는 잔고장이 있었고 무엇보다 독일의 압도적인 공세때문에 대부분 전장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결국 군부는 뫼니에 소총의 한계를 실감했고 뫼니에 소총을 대체할 반자동 소총을 다시 개발하기 위해 세 명의 총기 개발자[4] 에게 의뢰했고 그렇게 나온 소총이 RSC 소총이다. 뫼니에 소총보다 생산률도 더 높고[5] 총 자체도 르벨 소총을 재활용 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내구성도 준수한데다가 야전에서도 다루기 쉬우며 무엇보다 신형 탄약이 아닌 르벨 소총에서도 쓰이던 8×51mmR 르벨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뫼니에 소총은 아주 빠르게 RSC 소총으로 대체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