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베어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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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88년에 독일 제국에서 채용된 볼트액션 소총.
2.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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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영상
3. 상세
게베어 1871를 대체하려는 독일에서 개발하였다. 마우저가 개발하지는 않고 독일군에서 자체 개발한 소총. 그래서 별명이 '위원회 소총'이었다. 르벨 M1886과 함께 무연화약을 쓴 (독일로선 최초의)소총이다. 탄약은 총알 역사에 큰 획을 그을 7.92mm탄을 최초로 채용하였다. 네이버 등지에서 7mm탄[4] 을 쓴다던가, 최초로 고정식 탄창과 탄 클립을 채용했다던가, 최초로 내장형 탄창을 사용했다던가 하는 말이 떠도는데 이건 '''오류'''다. Gew88이 사용한 En-bloc식 클립과 탄창 시스템은 당시의 오스트리아 제식소총 만리허 M1885가 먼저 채용했다. 그리고 이것을 모방하여 약간 개량을 한 것이 Gew88 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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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부터 제조까지 의도적으로 '''마우저를 제외하고 만든 소총'''이지만,[6] 실제로는 무연화약 채용, 성공작 Gew71의 구조 채용, 위아래 어느쪽으로든 삽입 가능한 고정식 탄창 채용[7] , 프랑스 소총의 튜브로 감싼 총열 모방 채용등 마우저의 소총을 포함해서 당시 나온 총들의 장점들을 추려 모았다. 물론 특허권이나 라이센스 같은 것은 무시한 상태였다.
그러나 짜집기는 하던 와중에 각 소총에 있었던 단점도 들어가서 여러가지 면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엔블록식 클립 사용에 따른 문제와, 설계상의 문제로 나누어 볼 후 있는데 엔블록식 클립 사용에 따른 문제는 다음과 같다.
- 클립 배출부가 총 아래이기에 총 하부에 개구부가 만들어졌다.[8] 따라서 이곳을 통해 이물질이 잘 들어가는 등의 이유로 고장이 심했다. 원본인 오스트리아 소총도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독일도 이건 개량하지 못했다.
다만 이 문제는 엔블록식 클립 사용 시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문제는 아니고, 어느 정도 개량의 여지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엔블록식 클립을 쓰는 M1 개런드의 경우, 장전한 탄을 모두 발사하면 클립이 위로 튀어올라 배출되는 설계를 적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 물론 개런드가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것을 감안하면, Gew88이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 것은 충분히 변호의 여지가 있다.
- 클립이 엔블록식이라 클립째로 넣어야만 장전이 되므로, 총 안에 들어간 클립에 총알이 남아있을 경우에는 재장전이 안된다. 볼트액션식 소총은 내부탄창의 용량이 적고 발사속도가 느리므로 사격하는 도중에 잠깐씩 짬을 내서 1발씩 총에 총알을 넣는 방법을 사용해서 유사시 최대한의 장전량을 확보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소총은 그게 불가능하다.[9][10]
- 클립이 없으면 단발총이 되어버린다. Gew98같은 건 클립없이 그냥 1발씩 총알을 넣어서 5발 장전이 가능하나, 이 것은 그게 안 된다. 엔블록식 클립을 쓰는 소총이라면 공통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는데, M1 개런드조차도 이건 개량하지 못했다.
- 설계 실수로 종종 2발씩 총알이 약실로 들어가서 장전불능사태가 난다.
-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소총을 기반으로 설계하는 바람에 노리쇠 등의 강도가 매우 약해서 현대식 무연화약 소총탄의 발사시 그 압력을 잘 견디지 못했다.
- 총열도 프랑스식의 얕은 강선을 사용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강력한 7.92mm 탄을 사용할 경우 탄두의 겉껍질 찌거기가 강선을 빠르게 메꿔버렸고, 종종 화약잔재물이 쌓이거나 이로 인해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다.[11]
- 철제 튜브가 총열을 감싸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설계는 프리플로팅 배럴 구조를 구현하여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설계였으나, 동시에 여러 문제를 유발했다. 먼저, 튜브가 사격반동으로 파손되면 튜브 위에 달린 가늠쇠나 가늠자의 위치가 비뚤어지면서 명중률이 떨어졌다. 또한 철제 튜브가 밀봉식이라서 튜브가 약간이라도 파손되면 내부로 습기가 들어오는 바람에 총열이 녹슬게 되는데, 현장 수리가 불가능하고 공장에 보내서 튜브를 제거하고 손질한 후 재장착하는 번거로움이 있다.[12]
- 각국의 특허권이나 라이센스를 씹어먹고 만든 물건인지라,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자국의 만리허 소총을 카피했다고 소송을 거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슈타이어사에 Gew88의 하청발주를 30만정이나 억지로 해주어야 했으며, 하청가격도 매우 비싼 바가지를 써야 하는 것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Gew88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고, 2급 장비로 분류되어 후방에서 예비군의 무기로 쓰여졌으며 국외로 수출, 공여되어 보어 전쟁,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 및 아일랜드 독립 전쟁에 투입되었고 1차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총기가 부족했던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에 공여되기도 하였다.[13] 1921년 이후로는 완전 퇴역하여 예비물자로만 보관되어 왔지만 2차 대전 말기에는 무기 부족으로 게베어 1871과 함께 국민돌격대에 지급되기도 했다. 게다가 Gew88의 탄환인 7.92×57mm는 성공적이었으며 나중에 Gew98에도 채용되었고 뒤이어 마우저에서는 이 탄환을 7.92x57mm Mauser IS라는 뾰족한 탄두가 들어간 탄환으로 개량했다.
청나라에서 88식 소총이란 이름으로 라이센스 생산을 하기도 했는데, 한양 병공창[14] 이 생산을 맡아서 한양 88식 소총, 혹은 한만식(漢卍式)으로도 불렸다. 말기에 원년식 소총으로 Gew98의 라이센스 생산을 시도하나 예산문제로 소량만 생산되었다. 아무튼 88식의 생산은 지속되어 청나라가 멸망하고 군벌들이 판을 치고 있을 때에도 계속되었고 그렇게 국공내전을 비롯해 중일전쟁까지 쓰이면서 중국에서 60년 넘게 사용되어 근대사에서 유명하다.[15] 이후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과 베트남 독립전쟁 당시 중국의 지원을 받은 비엣민도 사용했으며, 소련의 지원을 받는 1950년대를 기점으로 2선급으로 물려나 80년대에 민병대로 넘어가면서 퇴역했다. 일부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던 무자헤딘에게 지원되기도 했다.
4. 등장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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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등장한 영화가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이다. 제임스 모리아티가 소유한 독일의 군수공장의 경비병들이 무장하고 있었으며, 홈즈 일행과 숲에서 추격전을 벌이다가 한판 붙어서 홈즈가 한개를 빼앗아 존 왓슨에게 주어 왓슨이 그걸로 세바스찬 모런에게 부상을 입힌다. 그러나 모란은 호흡을 가다듬고, 근처의 철로로 지나가는 화물차를 타는 홈즈 일행 중 집시 한명을 쏘아 죽인다.
중국산 게임 소녀전선에 중국 라이센스 모델인 한양조 88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꽝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개조를 통해 재평가를 받고있다.
5. 둘러보기
[1] 카빈형[2] Gew98처럼 스트리퍼 클립을 이용해 장전할 수 있게 개조된 버전이다.[3] 중국 생산형, 원본에는 없던 총열 위를 덮는 핸드가드가 추가되었다. 이는 1910년 생산분부터 적용된 개량사항이다.[4] 마우저 소총의 해외수출형 중 7mm Mauser탄을 사용하는 모델들이 있긴 하지만 Gew88은 마우저가 만든 것이 아니다.[5] 애초에 여기저기서 베껴 만든 총이다.[6] 사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각국 군부의 상층부에는 '국가를 위해 싸우는 군인들이 사용할 무기는 국가에서 직접 만들어야 한다'라는 경직된 사고가 상당히 많이 퍼져있었다.[7] 원본인 오스트리아 소총은 위로만 삽입해서 아래로 빈 클립을 밀어내는 방식이었다. 독일은 이걸 개량해서 클립의 위아래 방향 상관 없이 삽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8] 마지막 5번째 총알을 약실에 장전하면 클립이 개구부를 통해 떨어진다.[9] 단, 이런 엔블록식 클립에도 나름의 장점은 있으니, 클립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재장전이 안 되는 대신 스트리퍼 클립보다 더 빨리 재장전을 할 수 있다. 때문에 이탈리아나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엔블록식 클립을 사용했다.[10] 확인이 필요하다. 원본인 만리허 소총은 M1개런드처럼 클립 멈치를 눌러 탄창에 남아있는 클립과 탄을 틴창에서 제거할 수 있는 기능이 존재했다. 당연히 클립에 총알이 남아 있더라도 클립을 빼서 클립에 탄을 추가로 끼워 재장전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만리허 소총을 참고한 Gew88에도 같은 기능이 존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11] 이 문제의 해결 및 새로 도입된 S탄의 사용을 위해 강선을 더 깊게 파는 개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개량이 이루어진 총은 S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총에 S가 각인되어 있다.[12] 중국 생산형인 한양 88식의 경우, 1904년 생산분부터 이 같은 철제 튜브를 없애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1910년에는 총열 위를 덮는 목재 핸드가드를 추가하는 개량도 이루어졌다.[13] 특히 오스만 제국에 공여된 양이 꽤 많았는데, 이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Gew88 중에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각인된 초승달 각인이 남아있는 총이 제법 있다.[14] 중국에서는 조병창을 병공창(兵工廠,bīnggōngchǎng)이라 부른다. 직역하면 말 그대로 '무기 공장', 참고로 한양병공창의 초기 명칭은 호북병공창이었다. 지금의 우한시 한양구에 있었다.[15] 참고로 한양 88식 소총은 첨두 탄두인 S탄은 사용할 수 없었고 Gew88과 함께 채용된 초기형 마우저탄인 88탄을 써야 했다. 1934년에 민 23식 소총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한양 88식 소총을 S탄을 쓸 수 있게 개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기존 한양 88식 소총을 개조하는 대신 Gew98 기반의 중정식 소총을 생산, 도입하는 쪽으로 방침이 바뀌어 소수만 개조된 채로 개조 사업이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