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43 나우엘

 



[image]
아르헨티나중형전차.
1. 제원
2. 개발
3. 설명
4. 매체에서의 등장


1. 제원


[image]
'''DL43 나우엘'''
개발사
에스테반 데 루카 조병창
중량
36.1t
전장
6.22m
전폭
2.33m
전고
2.95m
운용 인원
5명
최대 속도
시속 40km/h(도로), 시속 20km/h(야지)
항속 거리
250km
엔진
1 x FMA-로렌 디트리히 EB 12기통 가솔린
마력
500hp
톤당 마력
14.3 hp/tonne
현가 장치
버티컬 볼류트 스프링 서스펜션
주무장
75mm 크룹 Model 1909 30구경
부무장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1정
7.65mm 마드센 M-1926 다목적기관총 3정
장갑
25~80mm

2. 개발


DL-43 나우엘 (Tanque Nahuel DL 43)는 아르헨티나 최초의 국산 전차이다. 외모덕에 M4 셔먼 전차의 파생형으로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주포나 엔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의 기술을 지원받아 아르헨티나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3. 설명


아르헨티나 전차의 역사는 1대의 피아트 3000의 도입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시험 도입이며 제식 채용되지 않았고 그후 영국Mk.III 경전차의 수출형인 비커스 M1934를 채택하여 1937년에 12대를 도입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정부는 적어도 160대의 전차가 필요하다고 판단, 체코슬로바키아LT vz. 38 전차의 추가 도입을 계획했지만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에 뒤이은 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취소된 결과, 아르헨티나는 12대의 Mk.III 경전차와 1928년에 3개 기병 연대에 배치된 비커스 크로슬리 장갑차 6대 3개 분대의 빈약한 기갑 전력으로 2차 세계 대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르헨티나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로 인해 이웃나라인 브라질, 칠레와 달리 미국에서의 무기 공여 대상국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또한 미국제 무기를 유럽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던 탓에 배분 여력이 없어서 수입은 불가능했다. 이 때 브라질 국경에 있는 히우그란지두술주에 총 230대의 전차·장갑 전투 차량이 집결되어 있어서 전차 증강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아르헨티나는 군수 본부(스페인어, DGFM : Dirección General de Fabricaciones Militares)의 지휘하에 1942년에 자국의 전차 설계를 시작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에스테반 데 루카 조병창 (Arsenal "Esteban de Luca")에서 설계 제작을 지휘하는 알프레도 아킬레스 바이시(Alfredo Aquiles Baisi) 중령은 목업 만들기에 착수했으며 목업은 45일간 만들어졌고 이것을 바탕으로 2개월에 걸쳐 시제 차량을 제작했다. 이 전차를 개발할 때 당시 일관된 공정을 해낼 군수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 우호적이었던 독일의 기술지원과 국가와 민간의 80개사가 참여하였다.
크룹사 제 75mm 포를 채용, 외형상으로는 M4 셔먼 전차의 영향을 받아 1943년에 완성된 이 전차는 DL-43 나우엘로 명명되고 2대의 전차를 아르헨티나 쿠데타 기념일인 1944년 6월 4일에 첫 공개되었다.
1945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이 되고 대량의 잉여 M4 셔먼 전차와 파이어플라이 전차가 시장에 풀려 저렴해져서 도입이 가능해져 DL-43 나우엘 전차 생산은 극소수인 16대를 마지막으로 생산 중단되었으며 그 후 생산된 전차는 현역으로 있다 훈련용으로 돌려졌으며 1962년 마지막으로 전량 퇴역된다.

4. 매체에서의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