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G 50
'''제50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50)'''
독일 공군의 전투항공단 중에서 그 명칭이 자주 혼동되는 부대 중 하나로 처음에는 '''남부 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Süd)'''으로 불렸으며, 임시로 편성된 부대였던 탓에 부대의 활동은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G 50'''의 창설은 1943년 초여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대는 정식으로 완편된 항공단이 아니었고, 고공에서 빠르게 날아 독일 본토 심장부까지 손쉽게 침투해오는 영국 공군의 드 해빌랜드 모스키토 전폭기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빠른 쌍발기는 루프트바페가 가진 기체 중에서 효과적으로 잡아낼 기종이 없다시피 했다. 이들은 원래 주간에 도버 해협을 나무 꼭대기 높이로 낮게 날아 방공 레이더에 걸리지 않고 갑자기 비행장 상공을 통과하면서 1~2톤의 폭탄을 떨구거나 기총소사로 쑥대밭을 만든 다음, 순식간에 달아나버리곤 했다. 영국 공군 폭격기 사령부의 아서 해리스가 치밀하게 준비한 야간 공습이 본격화된 후에는 선도기로 7,000 m 이상의 고공으로 날아오면서 뒤에는 중폭격기 수백 대를 끌고 공습 목표까지 정확히 안내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남부 전투항공단은 1943년 6월 1일에 비스바덴-에르벤하임(Wiesbaden-Erbenheim)에서 발대식을 가졌고, 가동 기체로는 단좌 단발 전투기인 메서슈밋 Bf 109G-5/U2를 장비하고 있었다. 고공 요격기로 475대만 생산된 이 형식은 여압 설비가 딸린 조종석과 희박한 대기 조건에 적합하도록 튜닝된 DB 605AS 엔진을 갖추고 있었고 여기에다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GM-1 부스터도 추가된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기수 상단에 달린 기관총은 구경 13mm 중기관총인 MG 131로 교체되어 화력도 보강되었다.
이 특수 요격부대는 요제프 캄후버(Josef Kammhuber) 장군이 지휘하는 제12항공군단(XII. Fliegerkorps)에 배속되어 있었다. 창설 무렵만 해도 이 부대는 겨우 20대의 작전기만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름만 전투항공단이었지 실제 규모는 항공단은 고사하고 1개 비행단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8월 12일에는 참모진과 연락장교가 보강된 후 부대 지휘관으로 1943년 7월에 부임해온 헤르만 그라프 중령이 직접 인솔하는 제1비행중대가 연합군 중폭격기 무리에 맞서 첫 번째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8월 15일에 부대는 Jagdgeschwader 50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기존 가동 기체와 조종사들에 더하여 휘하에 비행단을 포함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렇지만 JG 50은 그로부터 50여일 후인 10월 31일에 JG 301(Jagdgeschwaders 301)의 제1비행단(I. Gruppe)으로 재편성되어 흡수되어버렸다. 이들은 달빛 아래에서 야간 비행을 하면서 적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있었던 탓에 주간 비행에만 익숙한 숙련된 베테랑 에이스들도 눈에 띄는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대가 흩어지면서 JG 50 조종사들은 JG 1(Jagdgeschwaders 1)와 JG 11(Jagdgeschwaders 11)로 옮겨가게 된다.
항공단 본부와 제1그루페는 활동하는 4개월 동안 26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고 보고했다. 그 댓가로 이들이 치룬 희생은 6명의 조종사가 전사하고 13대의 전투기를 잃었는데, 이쯤되면 전혀 수지맞는 장사라고 할 수 없었다. JG 50의 고공 요격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Bf 109G 시리즈는 개량만으로는 연합군 항공기와 벌어진 성능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팩트가 밝혀진 것이다. 원래 이들의 목표였던 모스키토는 단 한 대도 격추시킬 수 없었으니 말이다.
1. 창설 배경
독일 공군의 전투항공단 중에서 그 명칭이 자주 혼동되는 부대 중 하나로 처음에는 '''남부 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Süd)'''으로 불렸으며, 임시로 편성된 부대였던 탓에 부대의 활동은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G 50'''의 창설은 1943년 초여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대는 정식으로 완편된 항공단이 아니었고, 고공에서 빠르게 날아 독일 본토 심장부까지 손쉽게 침투해오는 영국 공군의 드 해빌랜드 모스키토 전폭기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빠른 쌍발기는 루프트바페가 가진 기체 중에서 효과적으로 잡아낼 기종이 없다시피 했다. 이들은 원래 주간에 도버 해협을 나무 꼭대기 높이로 낮게 날아 방공 레이더에 걸리지 않고 갑자기 비행장 상공을 통과하면서 1~2톤의 폭탄을 떨구거나 기총소사로 쑥대밭을 만든 다음, 순식간에 달아나버리곤 했다. 영국 공군 폭격기 사령부의 아서 해리스가 치밀하게 준비한 야간 공습이 본격화된 후에는 선도기로 7,000 m 이상의 고공으로 날아오면서 뒤에는 중폭격기 수백 대를 끌고 공습 목표까지 정확히 안내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2. 장비
남부 전투항공단은 1943년 6월 1일에 비스바덴-에르벤하임(Wiesbaden-Erbenheim)에서 발대식을 가졌고, 가동 기체로는 단좌 단발 전투기인 메서슈밋 Bf 109G-5/U2를 장비하고 있었다. 고공 요격기로 475대만 생산된 이 형식은 여압 설비가 딸린 조종석과 희박한 대기 조건에 적합하도록 튜닝된 DB 605AS 엔진을 갖추고 있었고 여기에다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GM-1 부스터도 추가된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기수 상단에 달린 기관총은 구경 13mm 중기관총인 MG 131로 교체되어 화력도 보강되었다.
이 특수 요격부대는 요제프 캄후버(Josef Kammhuber) 장군이 지휘하는 제12항공군단(XII. Fliegerkorps)에 배속되어 있었다. 창설 무렵만 해도 이 부대는 겨우 20대의 작전기만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름만 전투항공단이었지 실제 규모는 항공단은 고사하고 1개 비행단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8월 12일에는 참모진과 연락장교가 보강된 후 부대 지휘관으로 1943년 7월에 부임해온 헤르만 그라프 중령이 직접 인솔하는 제1비행중대가 연합군 중폭격기 무리에 맞서 첫 번째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8월 15일에 부대는 Jagdgeschwader 50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기존 가동 기체와 조종사들에 더하여 휘하에 비행단을 포함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3. 실패와 해산
그렇지만 JG 50은 그로부터 50여일 후인 10월 31일에 JG 301(Jagdgeschwaders 301)의 제1비행단(I. Gruppe)으로 재편성되어 흡수되어버렸다. 이들은 달빛 아래에서 야간 비행을 하면서 적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있었던 탓에 주간 비행에만 익숙한 숙련된 베테랑 에이스들도 눈에 띄는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대가 흩어지면서 JG 50 조종사들은 JG 1(Jagdgeschwaders 1)와 JG 11(Jagdgeschwaders 11)로 옮겨가게 된다.
항공단 본부와 제1그루페는 활동하는 4개월 동안 26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고 보고했다. 그 댓가로 이들이 치룬 희생은 6명의 조종사가 전사하고 13대의 전투기를 잃었는데, 이쯤되면 전혀 수지맞는 장사라고 할 수 없었다. JG 50의 고공 요격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Bf 109G 시리즈는 개량만으로는 연합군 항공기와 벌어진 성능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팩트가 밝혀진 것이다. 원래 이들의 목표였던 모스키토는 단 한 대도 격추시킬 수 없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