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DNESS(음반)
1. 개요
'''LOUDNESS'''는 1992년 6월 10일에 발매된 일본의 헤비메탈 밴드 LOUDNESS의 10번째 정규앨범이다. 워너 뮤직 재팬에서 발매되었으며, 2002년 2월 14일 제 2기 이후의 다른 앨범과 함께 염가판이 출시되었다. 염가판에서는 가사 카드, 라벨의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가사는 야마다 마사키와 JODY GRAY가 공동으로 작사한 '''HELL BITES (From The Edge Of Insanity)'''와 '''FIRESTORM''' 이외에는 모두 영어이며, 앨범 아트는 유명 미술가 '''요코오 타다노리'''가 제작했다. 초회 발매판에는 사진집이 있는 소책자와 CD 케이스를 넣는 종이 상자, 밴드 이름 로고 스티커, 회원의 사인이 들어간 점퍼 선물 응모권이 들어있는 등 기존 라우드니스 앨범에서는 보기 드문 초호화 사양이였다.
2. 상세
'''이견이 없는 라우드니스 최후의 명반'''[1]'''최강의 멤버로 제작된 최강의 록 앨범'''
- 타카사키 아키라, 히구치 무네타카
니이하라 미노루의 해고 이후 마이크 베세라와 함께 한 SOLDIER OF FORTUNE의 지지부진한 판매량과 악평, 일본에서의 베세라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 멤버들의 불화 등 위태로운 상황에서 제작된 앨범이지만, LOUDNESS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준 앨범이며 혹자는 이 앨범을 LOUDNESS의 '''진정한 전성기이자 마지막 전성기[2] '''라고까지 평한다. 또한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불어닥친 메탈 빙하기에 유일하게 희망적인 소식이기도 했다.
니이하라 미노루나 마이크 베세라와는 전혀 다른 타입이며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도 E.Z.O로 라우드니스에 비견되는 인지도를 얻은 보컬리스트 '''야마다 마사키'''와, X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활동하던 베이시스트 '''사와다 타이지'''의 영입 소식으로 인해, 이 앨범은 발매 전부터 이미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야마다 마사키는 원래 니이하라의 탈퇴 직후에 가입 제의를 받았지만 당시 E.Z.O소속이라 거절했고, E.Z.O 해산 후 타케우치 미츠오(JOE-ERK 출신, 후에 D.T.R에 합류)와의 경합 끝에 라우드니스의 세 번째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타이지는 이전부터 친한 후배였고 '좀 쉬고 싶다'며 탈퇴를 선언한 야마시타 마사요시가 자기 대신 추천하는 식으로 X JAPAN에서 해고된 지 1주일만에 레코딩 멤버로 참가했다가 정식 멤버가 되었다.
종래의 라우드니스의 앨범 뿐 아니라 현재까지의 전체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매우 이질적인 앨범으로 꼽히는데,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판테라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루브 메탈 사운드는 이 앨범이 유일하다. 당시 타카사키 아키라의 덥수룩한 수염도 다임백 대럴을 연상시킨다. 기타와 베이스는 야마다 마사키의 보이스 컬러에 맞춰 하프 다운 튜닝이 되어 있고, 상당한 테크니션이던 타이지와의 앙상블을 통해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한 리프와 더불어 테크닉적으로도 진일보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야말로 '''드림팀'''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3]
이 앨범은 '''오리콘 차트 2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LOUDNESS의 오리지널 앨범 중 최고 기록이다. 이 앨범 판매로 얻은 매출도 '''역대 최고'''였으며 '''WELCOME TO SLAUGHTER HOUSE''' 라이브 투어는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지명도[4] 도 크게 늘었고, 기타 전문지 '영 기타'부터 심지어 비주얼계를 주로 다루는 잡지 'SHOXX'에서까지 취재가 이어졌다. 이런 인지도 상승은 당시 메탈 밴드로서는 메우 이례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던 X 출신인 사와다 타이지의 영향이 컸다.
인지도는 올라갔지만 X 시절의 타이지를 잊지 못한 타이지의 팬들이 공연장 안팎에서 심한 진상짓을 하는 바람에, 기존의 라우드니스 팬들과의 대립이 지독했던 시절이다. 공연장에서 '''타이지 FUCK''' 같은 심한 욕설도 나오는 등, 외적인 반응만으로 따지면 최고의 시간이지만 타이지는 무대에 서기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최악의 나날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미국에서의 활동은 멈추었고, 일본 내에서의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하지만 이 팀은 오래 가지 못했다. 멤버들 간의 대립이 심해지자 타이지는 자기 사무소와 팬클럽을 따로 차리며 뒤통수를 치고 결국 1993년 11월에 탈퇴, 그리고 라우드니스의 리더인 드러머 히구치도 이 음악 스타일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며 탈퇴, 야마다 마사키마저 탈퇴를 선언하며 밴드가 '''일시적으로 해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히구치 무네타카는 오리지널 멤버 라우드니스와는 별개로 이 멤버로 또 하나의 라우드니스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의 사망으로 결국 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멤버로 단 한장의 앨범이 더 나왔다면 어땠을까...'''라는 말은 일본의 록 팬들과 평론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며, 매우 이질적인 사운드였기 때문에 이 조합을 라우드니스가 아닌 '''별개의 팀'''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일본 록 역사를 되짚어보아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멤버로 이루어졌고, 그나마도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끝났기에 그 가치를 더 인정받는 앨범이기도 하다.
3. 수록곡
4. 기타
▲ 1992년에 연주한 '''SLAUGHTER HOUSE'''의 라이브.
▲ 원년멤버 재결합 이후에 니이하라 미노루가 '''SLAUGHTER HOUSE'''를 부르기도 했다. 2002년에 열린 라이브.
[1] 라우드니스 음반 가운데 논란의 여지가 없이 보편적으로 명반으로 꼽히는 건 4집 DISILLUSION 〜撃剣霊化〜, 5집 THUNDER IN THE EAST, 그리고 10집 LOUDNESS 정도로 좁혀진다. 이 이후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2] 라우드니스의 앨범 가운데 뭐가 가장 명반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지만 10집 이후 10집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준 앨범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3] 사실 이질적인 만큼 기존 팬들에게 '이건 내가 알던 라우드니스가 아닌데..?' 라는 의견도 물론 있긴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키라가 말한 '최강의 멤버로 제작된 최고의 록 앨범' 이라는 평은 부정하지 못한다.[4]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 때문에 흔히 간과되지만 메탈 음악의 인기는 일본 역시 제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