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이하라 미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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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二井原実'''(にいはら みのる)
1960년 3월 12일 오사카부 오사카시 스미요시 구 출생.
헤비메탈의 살아있는 전설 LOUDNESS의 보컬리스트이자, '''아시아의 대 보컬리스트'''. 아시아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를 논할 때 주저 없이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VOW WOW의 겐키 히토미, ANTHEM의 사카모토 에이조, E.Z.O의 야마다 마사키와 함께 일본 헤비메탈계의 4대 보컬로 불린다. 최근 Double Dealer와 샤벨 타이거에서 활동했던 시모야마 타케노리까지 합쳐서 5대 보컬이라고도 한다. 보통 3대 밴드라고 하면 LOUDNESS, VOW WOW, ANTHEM를 꼽지만 4대부터는 44 매그넘이나, E.Z.O나, 어스쉐이커나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정치적으로는 우익 성향으로 보이지만, SNS에 대놓고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써버려서 한국에서의 활동이 불투명해진 GALNERYUS의 오노 마사토시와는 달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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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드니스의 라이브에서 앵콜곡을 부를 때 욱일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나온다.
2. 바이오그래피
초등학교 시절부터 R&B와 비틀즈를 좋아했으며, 할머니가 사준 베이스 기타가 음악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동기 이시하라 신이치로(기타), 쿠도 요시히로(드럼)와 EARTHSHAKER를 결성했고 같은 시기에 포크 밴드인 『금붕어 천벌밴드』에서도 보컬과 베이스를 맡았다. 당시 보컬리스트가 수준 이하의 가창력과 인격적인 문제로 1년만에 팀을 떠났기 때문에 니이하라가 보컬을 맡았다고.
대학 시절 경음악부에서 후지무라 유키히로(현재는 차차마루라는 예명으로, 각트의 백밴드인 각잡에서 기타와 작곡, 편곡담당)와 훵크 밴드 『청춘회』를 결성해, ITACHI 등과 함께 쿄토에서는 유명한 훵크 밴드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청춘회』 시절 음원을 들은 LAZY의 타카사키 아키라가 니이하라의 소리에 흥미가 생겨 오디션을 받아 보지 않겠냐는 전화를 하고, 니이하라는 가벼운 기분으로 오디션을 받고자 5000엔만 가지고서 야간 버스를 타고 상경했다. (...) 당시 니이하라 미노루의 어스쉐이커 시절 라이브 테이프를 들려주며 열심히 니이하라를 추천한 이가, 후에 라우드니스의 베이시스트로 함께하게 되는 야마시타 마사요시였다.
오디션은 무난히 통과했지만[2] LAZY [3] 해체 당시 타카사키 아키라의 사정이 말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히구치 무네타카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밴드에 합류하고도 몇 달 동안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당시 히구치의 집에서 숙식했던 경험 덕분에 둘은 각별히 친한 사이가 되었다.
1981년 8월에 라우드니스 첫 음반을 녹음하여 메이저에 데뷔, '''그리고 전설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의 활동은 말할 것도 없이 폭풍이었다. 아시아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로 수많은 록 보컬들의 우상이자 롤 모델이 되었다. 잡지에 보컬 강좌를 연재하거나 보컬 교재를 쓰는 등의 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가 쓴 교재는 한국에도 정식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요점을 알면 길이 보이는 록 보컬 마스터>(아름출판사)가 그의 교재다.
영어 발음 문제를 핑계로 1988년 라우드니스에서 해고된 후 잠시 솔로활동을 하다가, 대학동기인 후지무라 유키히로(차차마루)와 함께 Ded Chaplin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히구치 무네타카, 이시하라 신이치로, BLIZARD의 테라사와 코이치와 함께 Sly로 활동했었다. 99년에 Sly 활동이 중단되자 은퇴를 결심[4] 했지만 히구치 무네타카의 설득으로 2000년에 복귀, 근육소녀대의 키츠타카 후미히코, 폭풍 슬럼프의 와사다 타츠히코, 펑키 스에요시와 함께 X.Y.Z.→A라는 밴드로 활동하여 상당한 주목을 받았으며, 2006년에는 17년만에 솔로앨범을 발매하기도 한다.
현재는 원년 멤버로 부활한 라우드니스에서 다시 보컬리스트로 활약중. 젊은 시절에 비해 힘과 음역이 떨어져서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으나, 2010년 이후부턴 다시 목소리를 되찾았는지 20대 시절 불렀던 거의 모든 곡을 원키로 소화하면서, 재결성 초기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시절 그의 보컬의 특징이었던 강렬한 스크래치를 자제하고 담백하고 힘있는 톤을 찾아낸 모습을 보면, 그가 이미 대가의 반열에 들었음에도 부단히 연구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니이하라 미노루 특유의 앙칼진 하이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쉬워하는 듯하나, 50대 중반에 3옥타브 이상의 음역대를 가진 메탈 보컬리스트라는 것 자체가 이미 굉장한 일이다.
3. 여담
- 하드록을 그만둔다며 EARTHSHAKER를 탈퇴한 니이하라가 하드록/헤비메탈 밴드인 라우드니스로 데뷔한 걸 알게 된 이시하라 신이치로는, 「너 이 자식 하드락 그만 둔다며? 잡히면 죽여버린다!」라고 말하고 다녔고, 니이하라는 「멍청아 니네가 데뷔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로 응수해 버렸다. 그러자 이시하라 신이치로가 빡쳐서(...)「어스쉐이커 데뷔만 해봐라 엄청 팔릴거다! 탈퇴한 거 후회나 하지 마라 망할놈아!」라고 응수할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다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두 명이 만났을 때 니이하라의 첫마디는 「미안! 용서해줘!」(...). 그 후 두 사람은 시원스럽게 화해했다고 한다. 나중에 SLY라는 밴드까지 함께 했으니 앙금은 완전히 풀린 듯. 현재는 라우드니스와 EARTHSHAKER 모두 일본 메탈계의 대선배격 존재다.
- 라우드니스 에서 그가 처음 데뷔했을 때는 영어 가사를 보고 귀동냥으로 듣고 부르는 수준이었으나[5] , 현재는 영어로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발음은 여전히 일본인 특유의 영어 발음이지만[6] (...). 실제로 한국 공연에서도 영어로 이야기했고, 해외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도 영어로 대화했다.
- 각트의 세션 밴드인 GACKT JOB의 리더 차차마루와도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불교 대학의 동기로, 경음악부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친해졌다고. 여담이지만 차차마루는 정토교의 영향을 받아 평화주의적인 사상을 가졌으며, 현재까지 우익적인 발언은 일체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 어느날, 폭풍 슬럼프와 XYZ→A의 드러머인 펑키 스에요시가 니이하라의 자택에 묵으러 왔을 때, 그의 우락부락한 풍모를 본 니이하라의 아이가 무서운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후로 니이하라는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펑키 스에요시 이야기를 해서 아이를 협박(...)했다고. 지금까지도 가족 모두가 사이가 좋다고 한다.
- 라우드니스나 SLY에서는 무게감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리스트지만, X.Y.Z.→A로 활동할 때는 라이브 MC에 시모네타가 넘쳐나는 코믹한 컨셉으로 활동했다. 여성 팬들까지도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한다.
- 히구치 무네타카 추모 라이브에 카게야마 히로노부와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바가 있다. 일본 록계에서 엄청난 입지를 가진 이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오른다[7] 는 것 자체가 보기 힘든 상황인데, 한번 들어볼 것을 권한다.
- 평소에 엄청난 노력파.. 아니 노력광으로 알려져있다. 일본의 수많은 보컬리스트의 귀감이 되는것도 50이 되어도 끊임없는 열정과 자기관리 덕분이라고
- 보컬부분이 하드록과 헤비메탈에만 한정하여 특화된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장르 상관없이 다양한 보컬 테크닉을 자랑한다. 특히 라우드니스 사상 가장 다양한 실험이 들어갔던 PANDEMONIUM 앨범에선 Real Man이라는 곡에서 랩도 무난하게 소화해낸다 물론 정통 힙합뮤지션들이나 결성 때부터 랩코어나 뉴메탈을 하던 밴드에 비해서는 랩스킬 자체가 딸리는 건 사실이지만 곡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매력있게 포장하는 그의 보컬역량 및 평소의 카리쓰마 하나만으로 전혀 위화감 없을 정도로 랩을 한다. 이 쯤 되면 선배격 일본 메탈 밴드 보컬들 중에서 테크닉 자체로 보면 제일 괴물적이다.
[1] 페이스북 같은 실시간 SNS에 올린게 아니라 개인 블로그에 올려서 그의 망언은 처음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야스쿠니 참배해야 하는데 스케줄 때문에 가지 못했다'라든가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면 확실히 일본 교과서에 등재해라'등 우익성향의 발언을 올렸다고 한다.[2] 당시 부른 노래가 'When a Man Love a Woman'이었다.[3] LAZY는 1981년 2월의 해산 라이브 이후 5월에 해체. 1997년에 오리지널 멤버 그대로 재결성했다.[4] "요즘 같은 음악계에 나 같은 보컬리스트가 설 자리는 없다"고까지 생각했다고.[5] 라우드니스 초기 곡들을 들어보면 발음이 전형적인 일본식 발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듣고 땄기(...)때문에 완전 wiki:시망 까지는 아니지만. 워낙 발음이 특이하다보니 LA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에서 유명해지자 그게 특유의 창법인 줄 알고 따라하는 미국인(!)밴드들까지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6] 반면에 겐키 히토미의 경우, 영국인들이 자기네 밴드인 줄 알 정도로 자연스러운 발음을 구사했다. 야마다 마사키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발음이 능숙한 건 당연하고...[7] 카게야마 히로노부는, 현재는 록보다 애니송 계열에서 조금 더 입지가 넓다.